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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화제의 인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경선 결과 깨끗이 승복해 ‘아름다운 패배’로 주목받은~

글·송화선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제공

2007. 09. 22

지난 8월20일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제 17대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하지만 이날 더욱 주목받은 이는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며 우리 정치에 ‘아름다운 패배’의 문화를 만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였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저 박근혜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공식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8월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단상에 오른 박근혜 전 대표(55)는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다. 이명박 전 시장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뒤에는 그쪽을 향해 미소를 띠며 가볍게 목례도 했다. 그의 ‘패배 인정’ 선언이 나온 순간 단하에서는 ‘박근혜’ ‘박근혜’를 외치는 연호가 터져나왔다.
사실 박 전 대표의 연설이 있기 직전까지 한나라당 전당대회장은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박 전 대표가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11곳에서 이 전 시장을 누르고, 전체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4백32표 차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에 뒤져 패배가 확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두 후보의 격차는 1.5%에 불과했다. 경선 기간 내내 “이 전 시장으로는 안 된다”며 날카롭게 각을 세웠던 박 전 대표가 과연 이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것.
하지만 경선 패배를 인정하는 박 전 대표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또박또박했다. 그는 깨끗하게 경선 승복을 선언한 뒤 이어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잊자. 하루 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며칠이 걸려서라도 잊자. 그리고 다시 열정으로 채워진 마음으로 돌아와 나와 함께 당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박 전 대표의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함께 경선 레이스에 참여했던 원희룡 후보는 “코끝이 찡해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존경과 위로를 보낸다”고 말했다.

박 대표만이 할 수 있는 여성적 리더십·‘내공’의 힘
박 전 대표의 경선 승복이 더 빛난 건 경선 불복과 탈당이 전통처럼 굳어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 지난 6월 초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3개월 여 동안 이 전 시장과 치열하게 경쟁해왔던 박 전 대표는 이날 하얀색 재킷 상의에 두 장의 연설문을 넣어두었다고 한다. 오른쪽 주머니엔 당선 시 읽을 후보 수락 연설문이, 왼쪽엔 패배 시 읽을 경선 승복 연설문이 준비돼 있었다. 이날 오전까지도 박 전 대표의 우세가 점쳐질 만큼 박빙의 승부가 계속됐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석패한 뒤 그가 승복 연설문을 펼쳐 읽자 박 후보 캠프의 핵심 참모인 최경환 상황실장, 유정복 비서실장, 유승민 정책메시지총괄단장, 이혜훈 대변인 등은 단상 뒤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허태열 직능총괄본부장은 “직접 선거에서 이기면 되지, 여론조사를 하고 그 대상자에게 가중치를 주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너무 아쉽다”고도 했다. 5천4백90명이 전화로 응답한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인단 3만2천7백71명으로 반영돼 실질적으로 여론조사에 참여한 한 명이 6표를 행사한 것으로 간주된 결과를 지적한 것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 전 대표가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전당대회장을 나서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지지자들에게 눈웃음을 보냈고, 이 전 시장의 연설이 끝날 때는 박수를 쳤다. 그는 말로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경선 승복’과 ‘이 전 시장 당선 축하’를 표현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깨끗한 패배 인정’은 박 전 대표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원칙’에 철저한 여성으로서의 장점과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오히려 침착함을 발휘하는 그의 ‘내공’이 결합된 결과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처음 정치에 입문한 것은 지난 97년. 79년 10·26 이후 18년간 은둔하다시피하며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그는 “IMF 경제 위기로 국민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무너지는가’ 하는 분노에 정치를 시작했다”고 말하곤 했다. 이듬해 대구 달성 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한 그는 폭넓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곧 유력 정치인 대열에 들어섰고, 지난 2004년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주목받았다. 당시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을 맞아 지지율이 곤두박질 쳐있는 상황이었고, 총선에서 50석도 얻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용서를 받으면 승산이 있다’며 취임 즉시 당사를 천막으로 옮겼고, 전국을 돌며 지원 유세를 했다. 그의 솔직한 참회와 따뜻하고 모성적인 리더십은 당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1백21석을 차지하며 원내 2당을 차지하는 견인차가 됐다는 평을 들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유세 당시 ‘면도칼 테러’를 당했을 때도 그는 침착했다. 오른쪽 뺨을 면도날에 베여 깊은 상처를 입고도 수술에서 깨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대전은요?”라고 물으며 당시의 격전지를 챙겼고, 퇴원하자마자 그는 피습당할 때의 옷차림 그대로 대전으로 달려갔다. 한나라당은 박빙의 대전시장 선거에서 끝내 승리를 거뒀다.
이 같은 박 전 대표의 성격이 이번 경선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함으로서 박 전 대표는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브랜드’를 얻었다. 서울, 경기와 호남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이 전 시장에 앞서는 지지율을 기록함으로써 전국에 걸쳐 있는 두터운 지지 기반도확인했다. 이번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더 탄탄한 정치적 자산을 갖게 된 박 전 대표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박근혜 전 대표 경선 승복 연설 요지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오늘부터 저는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하겠습니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경선은 이제 끝났습니다.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 이젠 잊어버립시다. 하루 아침에 잊을 수가 없다면, 몇 날 며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 저와 함께 당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여러분의 그 열정을 정권교체에 쏟아주시길 바랍니다.
정치를 하면서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도 여러분은 저에게 과분한 사랑을 줬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랑,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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