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한 가닥 내린 애교머리, 촌스러운 꽃무늬 셔츠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이원종(41). 그는 “TV에서 보이는 모습과 달리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실제로 인터뷰 내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하는 그에게서 분명 ‘부드러운 남자’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의외의 모습”이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충남 부여가 고향인데,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마음이 여리고 눈물도 많다”며 웃었다.
그가 이번 드라마에서 악덕 사채업자를 연기하자 주위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고 한다. 악수를 할 때 순간 움칫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 또한 가끔 연기와 현실을 혼동해 그가 나쁜 캐릭터로 나오면 며칠 동안 속으로 끙끙 앓아 자식으로서 걱정될 때가 많다고 한다.
“아무리 연기라고 설명을 해드려도 부모님은 아들이 멋지게만 나오길 바라시는 것 같아요. 드라마 ‘야인시대’를 할 때는 남자답고 싸움도 잘하니까 좋아하셨는데 마지막에 김두한에게 맞고 떠나는 모습을 보시고는 며칠을 우셨대요(웃음). 평생 시골에서 지내온 분들이라 순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의 취미는 텃밭 가꾸기라고 한다. 경기도 의정부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송추 주말농장에서 배추·무·상추·쑥갓·가지·토마토·옥수수 등 각종 채소를 기르고 있는데, 밤샘 촬영을 한 날에도 집에 들어가기 전 농장에 들러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는 등 웬만한 농사꾼 못지않게 밭에 정성을 쏟고 있다고. 아이들도 농장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해 자주 데려 간다는 그는 장마가 끝난 뒤에는 온 가족이 함께 알이 꽉 들어찬 감자를 캘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텃밭 옆에 있는 흙집도 조금씩 수리를 하고 있는데 훗날 아이들이 자란 뒤 이곳에 내려와 살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는 “소박하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다섯 살 연상 아내에게 “제가 모시고 살면 안 될까요” 하며 프러포즈
그는 애처가로도 유명하다. 지난 94년 다섯 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한 그는 집안일을 잘 도와줄 뿐 아니라 아내의 발을 씻겨주고 마사지까지 해준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남편을 점수로 매겨달라”는 지인의 말에 아내가 80점을 불러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그는 “50점만 받아도 감지덕지인데 (아내의) 마음이 넓어서 그렇다”며 아내를 치켜세웠다.
“집안일은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대신 각자 잘하는 일을 하는 거죠. 아내는 저보다 음식을 잘하고 저는 아내보다 청소를 잘해요. 식사 후 설거지도 하고, 아내는 키가 작으니까 빨래도 제가 자주 널고요. 그런데 사실 요즘은 나태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집안일이 도통 하기 싫어져요. 하루는 아내가 ‘요즘은 왜 청소 안 해?’ 하고 묻기에 ‘글쎄… 요즘은 하기 싫어. 다시 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려주면 안 될까?’ 했죠. 그랬더니 아내도 ‘그래 얼른 돌아오면 좋겠어’ 하고 말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아내가 남편을 다룰 줄 아는 여자인 것 같아요. 럭비공처럼 모가 나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축구공처럼 그대로 둥글게 내버려두는 거죠(웃음).”
‘쩐의 전쟁’에서 화려한 셔츠와 금 장신구로 사채업자 ‘마동포’ 캐릭터를 잘 살린 이원종.
두 사람의 인연은 그가 대학 졸업 후 극단 미추에서 연기활동을 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아내는 무용을 전공하고 극단에서 배우들에게 창·판소리·탈춤 등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그는 수업 첫날 아내를 보고 ‘바로 이 여자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를 까마득한 후배로만 생각한 아내는 결코 그를 남자로 보려 하지 않았기에 그는 1년 동안 화난 척, 삐친 척하면서 아내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했다고. 결국 그의 끈질긴 구애에 마음을 연 아내는 “더 이상 바래다주는 것은 싫습니다. 제가 모시고 살면 안 될까요” 하고 프러포즈를 하는 그에게 “그래라” 하고는 흔쾌히 결혼을 승낙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보증금 30만원에 월세 4만원짜리 방 한 칸이 전 재산이었던 그는 오로지 결혼을 하기 위해 급하게 취업을 결심했고, 마침 3개월 근무 시 장기저리주택대출이 가능하다는 회사의 구인공고를 보고 원서를 접수, 합격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3개월 동안 회사를 다닌 뒤 2천만원 주택자금 대출을 받고 바로 회사를 그만뒀다. 두 사람은 그 돈으로 13평짜리 아파트를 얻어 신혼생활을 시작했는데 막상 먹고살 길은 막막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아내 몰래 막노동을 하기도 하고, 아는 형의 권유로 젓갈 장사까지 했다.
“아이가 생기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어요. 결국 잠시 연극을 쉬고 장사에만 전념했죠. 다행히 장사가 잘돼 1년 반 만에 살고 있던 전셋집을 3천9백만원에 사게 됐어요. 하지만 젓갈 장사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주로 아파트 단지 내 일일 시장이 열릴 때 자릿세를 내고 장사를 했는데, 손님 대부분이 아주머니들이다 보니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장사를 못하겠더라고요.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지나가는 아줌마 손목을 붙잡고 와 젓갈을 맛보게 하는 등 여유가 생겼어요. 1년에 한 번 서울 효창공원이나 여의도 광장에 ‘김장 시장’이 서면 하루에 돈을 자루에 끌어담을 정도로 많이 벌기도 했죠(웃음).”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만뒀다. 어느 정도 돈을 벌기는 했지만 더 했다가는 돈맛에 길들여져 다시는 연극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2년 정도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될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벌어놓고 다시 연극을 시작했다. 당시 아내도 그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부터 그의 연기에 대한 재능을 아꼈던 아내는 그가 다시 한 번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그러다가 사극 ‘용의 눈물’에 출연하며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드라마를 시작하고 나서 그는 한동안 대학로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연극이라는 순수예술을 버리고 대중예술로 방향을 돌린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 하지만 지금은 장르와 상관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면 어디라도 출연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드라마를 시작하고도 일년에 한 번 정도씩 꾸준히 대학로 무대에 서왔다.
두 딸이 “아빠” 하며 달려와 안길 때 가장 행복해
열세 살, 일곱 살인 두 딸도 아빠가 연기자라는 사실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아직 나이가 어려 그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지 못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아빠 얘기를 들으면 신이 나 집에 돌아와서도 자랑을 한다고.
“‘쩐의 전쟁’도 15세 이상 관람이라 아이들은 못 보게 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큰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는 ‘아빠, 요즘 마동포 역할 한다며?’ 하고 묻더군요. ‘텔레비전 못 봤을 텐데 어떻게 알았어? 재방송 봤어?’ 했더니 ‘아니 친구들이 아빠 인기 짱이래’ 하고는 웃더라고요. 둘째는 아직 어려서 제가 텔레비전에 나오기만 하면 신기해하고 좋아해요.”
그는 두 딸에게 더없이 자상한 아빠다. 요즘은 방송 스케줄이 바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지만 가능한 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다고 한다. 아이들 손톱발톱도 직접 깎아준다는 그는 “통통한 손을 만지고 있으면 ‘요것들이 내 딸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이들을 예뻐하는 아빠다 보니 늘 아이들을 야단치는 건 엄마의 몫이라고 한다. 어쩌다 한 번 그가 큰맘먹고 아이들에게 훈계할라치면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들은 미리 울 준비를 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봐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다고. 그는 “아들보다 딸 키우는 재미가 훨씬 큰 것 같다”며 ‘아빠’ 하고 달려와 아이들이 안길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금껏 강한 외모 때문에 선 굵은 연기를 주로 선보여온 그는 앞으로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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