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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부부 살아가는 이야기

작가 권지예·미술평론가 김종근 부부

글쟁이 아내와 수집광 남편의 21년 결혼생활 들려준~

기획·구가인 기자 / 글·박경아‘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서울 목동 스카이뷰41

2007. 06. 22

작가 권지예씨가‘글에 미친 여자’라면, 그의 남편인 김종근씨는 ‘책에 미친 남자’다. 이렇듯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이 만나 유별난 연애와 결혼을 거쳐 결국엔 ‘행복에 미치게 된’ 스토리를 공개한다.

작가 권지예·미술평론가 김종근 부부

‘뱀장어 스튜’ ‘꿈꾸는 마리오네트’의 작가 권지예씨(47)는 25년 전인 스물두 살 시절, 책을 사랑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 ‘마치 의자왕이 삼천궁녀 거느리듯’ 삼천 권가량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던 그 남자는 굶더라도 책은 사야 하는 남자였고, 자취방 벽을 뱅 둘러 채워진 책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남자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 뼈에 사무쳤던 가난이 싫은 여자는 어느 날 이 가난한 남자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그러나 30분도 채 되지 않아 그 남자를 보내는 것이 ‘인생 최대의 실수인 것 같은 뜬금없는 확신’이 몰아친 그는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스스로에게 인생을 건 내기를 걸었다. “만약 이 길에서 30분 안에 다시 그를 만난다면 그에게 내 인생을 걸겠다. 그러나 만나지 못하면 그걸로 이 남자는 내 인생에서 끝이다.” 그러고는 남자를 찾아 헤맸다. 그는 그 남자의 집 길 건너편 작고 초라한 서점에서 남자를 찾아냈다. 눈과 코끝이 발개진 채로 시집을 읽고 있던 그 남자. 결국 권지예씨는 이렇게 책에 미친 남자, 김종근씨(49·숙명여대 겸임교수)와 지난 86년 결혼했다. 최근 출간된 권씨의 산문집 ‘해피홀릭’에는 이처럼 ‘책에 미친’ 남편과 살게 돼 “악착같이 책을 사지 않는 버릇”이 생긴 작가 아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결혼 전 사귄 애인 사진까지 자기 개인사의 일부라며 가져온 남편
부부가 함께 간 8년간의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에도 남편 김씨는 여전히 책에 미쳐 있었다. 심지어 귀국할 때는 그동안 아내 몰래 사놓은 뒤 친구 집에 맡겨놓았던 책을 자동차 한가득 가져와 부부는 크게 싸우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그들 집에는 책이 넘쳐난다. 부부의 집은 물론이고 김씨의 작업실, 권씨의 작업실, 시골 시가, 친정 등 무려 다섯 군데에 김씨의 ‘삼천궁녀’들이 저장돼 있다. 먹고 쉬고 잠자고 하는 생활공간을 빼앗긴 아내로서 책을 몰래 버리고 싶은 유혹이 없었을까.
“물론 있었죠. 하지만 남편이 모으는 책은 대개 평론이나 그림에 대한 책이어서 제가 버려도 되는 책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요.”
김씨는 책 사는 것에 반대하는 아내에 대처하는 방법이 두 가지였다고 한다. 첫째, 안 사면 된다. 둘째, 안 들키면 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책을 안 산다는 것은 힘들었어요. 그래서 안 들키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습니다.”
사실 김씨의 수집벽은 책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그는 ‘수집의 명수’다. 전공인 그림 수집은 당연하고, 어린 시절 성냥갑이나 미니어처 술병을 모으는 데서부터 시작해 연애시절에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까지 보내기 전 복사해 보관해두는 정도였다고 한다. 결혼 후에는 아내가 뽑은 사랑니며 한동안 그림을 끄적거렸던 아내의 스케치북, 아이들의 메모며 그림, 노트 등 가족들의 흔적을 샅샅이 보관하고 있다.
광범위하게 펼쳐진 그의 별난 수집벽 때문에 이들 부부는 신혼 초 대판 부부싸움을 한 적이 있다. 김씨가 결혼 전 사귄 애인의 편지며 사진까지 끌고 왔기 때문이다.

작가 권지예·미술평론가 김종근 부부

“세상에 어떻게 결혼 전 애인 물건을 신혼집에 끌고 들어와요? 제가 버리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그 물건들이 자기 개인사의 일부라며 못 버리겠다고 우기더군요. 그래서 화가 나서 잠시 나갔다 들어왔더니 옥상에서 사진과 편지를 태웠더군요. 아마 태우면서 눈물깨나 흘렸을걸요, 이 사람. 지금은 그런 행동이 수집벽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미련이 남은 것이 아닌가 싶어 속이 뒤집어졌죠.”
책을 사이에 두고 징글징글한 삼각관계에 놓였던 그들에게도 남들처럼 싸우고 각서 쓰고 한 ‘평범한’ 신혼의 추억이 있다. 5년을 연애하다 결혼한 권씨는 “결혼을 하니 곧바로 신분의 변화가 감지됐다”고 했다. 호적상 유부녀가 된 것은 당연한 법적인 신분 변화였지만 결혼 전에 그렇게 공을 들이며 자신을 ‘공주 모시듯’ 하던 남편이 결혼하자 갑자기 ‘무수리 대하듯’ 했기 때문이다.
‘무수리’의 절정은 결혼 후 처음 떠난 여름휴가 여행 때였다. 남도지방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부부는 여행지에서 만난 다른 커플과 함께 한산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통영으로 갔다. 가는 동안 권씨는 그 커플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아주 빈정이 상하고 말았다고. 그 커플의 여자는 손가락 까딱 안 하고 왕비처럼 떠받들어지는 반면 ‘무수리’로 전락한 자신은 남편의 변변한 배려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밸이 꼴린’ 그가 뒤처지다보니 어느새 남편과 다른 커플 일행이 사라지고 없었다. 정신 나간 듯 남편을 찾아 통영항구를 헤매던 그는 몇 시간 뒤 다른 커플과 함께 한산도 유람을 마치고 유유자적 돌아온 남편을 보고는 획 ‘돌아버렸다’. 남편 김씨에게 바다에 빠져 죽어버리겠다고 난리를 치던 그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미친 듯 온몸의 열기를 뿜어내며’ 뒹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네 개까지 이를 구경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미친년인갑다, 야.”
그때의 상황을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하는 권씨에 반해 정작 남편 김씨의 반응은 덤덤했다.
“그게 다 친구 녀석들의 잘못된 조언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5년을 사귀다 결혼한다고 하니 친구 녀석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말이 ‘마누라는 결혼 초에 잡아야 평생 편하다’고 해서 아내 기 한번 꺾어보려고 한 일인데….”

대학시절 품었던 꿈 못버려 소설 집필 욕심 드러내면 ‘삼류소설’이라고 핀잔주는 아내
권지예씨는 남편 김씨에 대해 “성격은 밝되 하고 싶은 말은 가슴에 담아두는 성격의 착한 남자”라고 말한다. 사실 함께 살기에 맞벌이 아내보다 힘든 게 글쟁이 마누라다.
“글에 미친 듯 몰두하다 보면 예사로 며칠씩 살림을 손에서 놓아요. 글에만 미치나요? 바람처럼 며칠씩, 때론 한 달씩 여행을 떠날 때면 아이들 뒤치다꺼리는 제 몫이죠.”
김씨 말마따나 권씨는 올해 초 홀로 3주 동안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지역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그곳에서 3장의 엽서를 남편에게 부쳤다. 엽서에는 가족의 소중함, 소박한 일상이 주는 행복, 자신의 내면을 성숙시킨 숱한 인연에 대한 절절한 심정을 담았다고 한다.

작가 권지예·미술평론가 김종근 부부

대학시절 문학 동아리에서 만나 5년 연애 끝에 결혼한 김종근·권지예 부부. 아내 권지예씨는 최근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비롯한 자신의 경험담을 엮어 에세이집 ‘해피홀릭’을 펴냈다.


“이 사람은 외유내강형의 여자입니다. 힘든 오지여행이었는데도 자그마한 체구로 견뎌내고. 사실 체력은 안 되는데도 내면적으로 강한 여자죠.”
바로 전까지 작가 아내를 둔 어려움을 토로하던 김씨가 금세 아내 자랑으로 말꼬리를 튼다. 하지만 이 외에도 김씨에게는 글쟁이 아내를 둔 남다른 고충이 하나 더 있다.
“아내의 글 속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사실 신경 쓰이죠. 그래서 평생 ‘몸조심하면서’ 삽니다.”
글 쓰는 아내와 그림을 평하는 남편은 가끔 서로 ‘크로스 오버’를 하기도 한다. 그림소설로 불리는, 200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집 ‘사랑하거나 미치거나’나 2002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뱀장어 스튜’에서 볼 수 있듯, 한때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권씨의 소설에는 화가라는 직업이나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아내와 함께 대학시절 ‘다락방’이란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던 김씨는 지금도 소설 창작이란 꿈을 아직도 가슴 한켠에 간직하고 있다.
“아내에게 가끔 이러이러한 소설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물을 때가 있어요. 그럼 아내는 ‘삼류소설’이라고 핀잔을 주죠.”
대신 그는 ‘한국현대미술, 오늘의 얼굴-1’ ‘샤갈, 내 영혼의 빛깔과 시’ ‘달리, 나는 세상의 배꼽’ ‘태교명화’ ‘피카소 이야기’ 등 번역 작품을 통해 글 솜씨를 선보이고 있다.



한적한 전원에 지금까지 모은 그림과 책 전시하는 개인 박물관 짓는 게 꿈
각자 자신의 일에 바쁜, 범상치 않은 부모를 둔 덕에 이집 아이들 역시 범상치 않은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낳아 함께 프랑스 유학길에 데려간 큰딸은 지금 이화여대 1학년으로 엄마의 대학 후배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8년을 산 딸은 프랑스어 특기생으로 대학 진학해 국제기구에 들어가기 위해 미국유학을 준비 중이라고.
프랑스에서 유학생들에게도 지급되는 육아보조비(한 달 생활비의 4분의 1 정도나 됐다!)가 탐나 덜컥 현지에서 만들어(?) 낳은 아들은 지금 중학교 1학년이다. 요즘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사이버 세상을 헤집고 다니는 아들은 ‘메이드 인 프랑스’인 탓인지 자유분방한 천성을 타고났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엄마가 4개월간 외국에 체류하는 동안 자신이 다니던 학원에 전화를 걸어 “엄마가 학원을 다니지 말라고 하셨다”며 학원을 모조리 그만두는 맹랑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요즘 이 부부는 ‘책을 위한 이사’를 준비 중이다. 서울 평창동 김씨가 운영하는 출판사 사무실로 썼던 1백20평짜리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해 넓은 서고를 마련하고, 그동안 시집과 친정, 집, 권씨의 사무실 등에 ‘분산 수용’했던 책들을 한자리에 모으려 한다고.
“꿈이 있다면 한적한 전원에 넓은 땅을 마련해 지금까지 모은 그림과 책을 전시하는 개인 박물관을 짓는 겁니다.”
이 꿈에는 아내에게 보답하려는 마음도 담겨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제 여건을 마다하지 않고 시집와준 아내에게 진심으로 잘해주고 싶은데 바쁘다 보니 실질적으로 잘해주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언젠가 경제적인 여유가 좀 더 생기면 아내에게 책과 그림을 전시한 공간에서 차 한잔 하는 여유를 누리게 하고 싶습니다.”
권씨는 자신의 산문집 ‘해피홀릭’에서 돈을 ‘감기약’이라고 표현했다. 돈은 감기약처럼 인생의 환난과 고통에 약간의 도움을 주지만 인생 그 자체의 고통을 완전 치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 원해서 함께 파리 유학을 떠났을 때 경제적으로 참 어려웠어요. 쓸 돈은 한정돼 있지, 매끼 집에서 밥 지어 먹으며 외식비라도 한 푼 아끼려고 애쓴 생활이었어요. 그 시절에 대한 고마움이 지금도 남편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 고생을 다 갚으려면 돈으로 되겠어요? 서로 진심으로 이해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갚는 거죠.”
다른 듯 닮은, 그러나 서서히 더 닮아가는 듯한 이 부부의 모습을 보니 “결혼이 뭉근한 온기로 모든 것을 녹여내는 질화로 같다”는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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