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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인터뷰

아버지 자격으로 전처 오수미 딸 결혼식 참석한 사진작가 김중만

글·이남희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지호영‘프리랜서’

2006. 10. 18

고 신상옥 감독의 딸 영화배우 신승리의 결혼식에서 사진작가 김중만씨가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해 화제가 됐다. 신 감독과 ‘비운의 여배우’ 오수미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에게 그간 아버지 역할을 해온 김중만씨의 특별한 고백.

아버지 자격으로 전처 오수미 딸 결혼식 참석한 사진작가 김중만

80년대 김중만씨가 촬영한 오수미의 모습. 오수미는 70년 영화 ‘나이프 장’으로 데뷔했으며, 섹시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오른쪽)


고신상옥 감독의 딸 영화배우 신승리(29)가 지난 9월14일 사진작가 홍장현씨(32)와 서울 장충동 타워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승리는 지난 4월 타계한 신상옥 감독과 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영화배우 오수미 사이에서 태어난 1남1녀 중 둘째.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영화 ‘너는 내 운명’ ‘괴물’ 등에 출연했다.
이날 결혼식에서 눈길을 끈 사람은 바로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한 사진작가 김중만씨(52)다. 지난 80년 오수미와 결혼해 7년간 함께 살았던 그는 2004년 신씨의 오빠 신상균씨(31)의 결혼식에도 아버지 자격으로 참석하는 등 이들 남매에게 그간 아버지 노릇을 해왔다. 그래서일까.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과 행진하기 직전, 김중만씨와 눈빛을 마주친 신부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의 심경은 어떨까. 결혼식 후 나흘이 지나, 서울 청담동 벨벳언더그라운드 스튜디오에서 김중만씨를 만났다. 사진전 준비에 여념이 없던 그는 딸의 결혼에 대한 소감을 묻자 “승리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고 입을 열었다.
“딸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는데 정말 떨렸어요. ‘수미씨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죠. 승리나 상균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힘든 성장기를 거쳤는데, 잘 커줘서 고마웠어요. 결혼이 승리에게 ‘어려움의 끝’을 의미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는 80년 영화배우 오수미와 결혼하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오수미는 남편 신상옥 감독이 북한으로 납치되는 바람에 두 자녀와 살고 있었다. 70년대 프랑스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귀국한 그는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오수미를 처음 본 뒤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처음 수미씨를 보고 ‘한국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있나’ 싶었어요. 그의 사연도 정말 가슴 아팠고요. 수미씨는 저 자신을 버릴 정도로 사랑한 사람이에요. 수미씨와 결혼했을 때 승리는 갓난아기였는데, 승리가 세상에서 제일 먼저 본 남자가 바로 저예요. 제게 딸은 승리 하나밖에 없으니 더 각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사실, 상균이보다 승리를 더 예뻐했다니까요(웃음). 승리는 활달한 성격과 시원스러운 외모가 엄마를 많이 닮았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항상 붙어 지냈어요.”

“딸에게 늘 잘 하는 사위 보면 장인으로서 마음이 푹 놓입니다”
그러나 김씨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일로 오수미와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프랑스 국적을 유지한 채 국가의 허락 없이 85년과 86년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86년 한국에서 강제추방을 당한 것.
“저는 외국 국적을 갖고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한국에서 추방된 뒤, 미국의 한 사진관에서 하루하루 벌어 방세를 내고 끼니 때우면서 사진을 찍었죠. 88년에야 한국 국적을 회복해 귀국했지만, 수미씨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어요. 하지만 헤어진 후에도 수미씨와 종종 연락을 하며 지냈죠.”
오수미는 92년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졸지에 엄마를 잃은 신승리와 그의 오빠는 친부 신상옥 감독(그는 86년 북한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수미씨를 사고로 그렇게 보낸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다행히 신상옥 감독님께서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생전에 그분을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최은희 선생님을 뵐 기회가 있다면 꼭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자격으로 전처 오수미 딸 결혼식 참석한 사진작가 김중만

신승리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선 김중만씨(위). 이날 결혼식에서는 오수미의 언니가 신부의 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상균씨는 미국에 남았지만, 신승리는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중만씨는 신승리를 곁에 두고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가르쳤다. 하지만 신승리는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조연으로 캐스팅된 뒤, 사진공부를 잠정적으로 중단했다고 한다.
“승리가 ‘늙기 전에 엄마가 걸어온 길을 가고 싶다’고 고집했어요. 딸이 원하는 일이니 할 수 없이 허락했죠. 저는 딸이 사진작가의 길을 걷길 원했거든요. 사진을 찍는 일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으니 딸이 언젠가는 카메라를 들길 원해요. 1년 전 승리가 사진작가를 남편감으로 데려온 걸 보고는, ‘사진을 가르쳤더니 사진 찍는 사람 데려왔군’ 하는 생각이 들었죠. 사진을 시원치 않게 찍는 놈이면 반대했을 텐데, 장현이가 워낙 실력 있는 친구라서 딸과의 결혼을 허락했어요(웃음).”
치렁치렁하게 흘러내린 레게머리에 문신, 귀걸이….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그도 정작 가정에서는 보수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는 아내가 일하는 것도, 딸이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도 싫어했다고 한다.
“수미씨나 인혜(지금의 부인)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저 때문에 일을 못했죠. 요즘엔 제 생각이 조금 바뀌어서 인혜가 일하고 있지만…(웃음). 사실 제가 승리에게 남자친구를 못 만나게 해서, 딸은 저보다는 지금 아내에게 연애문제를 주로 상담했어요. 하지만 딸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어려운 삶을 살아온 아이인 만큼, 결혼을 쉽게 결정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요.”
김씨는 늘 사람들에게 “아이가 넷”이라고 말한다. 오수미의 자녀 신상균씨와 신승리, 76년 프랑스 여인과 결혼해 얻은 아들 애니(30), 현재 부인인 이인혜와 결혼해 낳은 아들 네오(16)가 바로 김씨의 네 자녀다. ‘혈연’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는 핏줄을 초월해 아름다운 가족을 이뤘다.
“상균이, 승리, 애니, 네오가 모두 친형제처럼 친해요. 프랑스 니스에서 엄마와 살고 있는 애니를 제가 방학 때마다 한국으로 불렀거든요. 승리의 결혼에 온 식구가 기뻐했습니다. 특히 지금의 아내에게 감사해요. 저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아이들과도 친구처럼 잘 지내니까요.”
신승리 부부는 오수미의 모친이 살고 있는 제주도에 들른 뒤 인도네시아 발리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김중만씨는 “승리와 장현이가 정말 행복하면 좋겠다”며 이들 부부에게 애정이 담긴 메시지를 전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한 삶이 뭘까 생각하면서 결혼생활을 하길 바랍니다. 저는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라’고 충고했는데, 사위가 내 말을 안 듣고 아파트를 준비했더군요(웃음). 사위가 늘 딸에게 양보를 잘하는 것을 보니, 장인으로서 마음이 푹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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