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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책을 펴는 즐거움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의 양심과 사랑을 그려낸 ‘처절한 정원’

기획·김동희 기자 / 글·민지일‘문화에세이스트’ / 그림·하태임‘서양화가’

2006. 05. 12

1999년 프랑스에서 실제 있었던 나치 전범 모리스 파퐁의 재판을 배경으로 한 작품.A4 용지 열 장쯤 되는 짧은 분량에 암울한 시절의 역사와 그 속을 걸어온 인간의 양심,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의 양심과 사랑을 그려낸 ‘처절한 정원’

Une Impression, 2006, 130.5×194cm, 캔버스에 아크릴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거의 무명인 프랑스 작가 미셸 캥의 소설 ‘처절한 정원’은 기막힌 작품이다. 오감(五感)을 열어 읽게 만들다 끝내 가슴을 쿵 치는 흥분에 몸을 떨게 하니 말이다. A4 용지 열 장쯤 될까. 짧은 분량에 암울한 시절의 역사와 그 속을 걸어온 인간과 양심, 사랑을 교직(交織)했다. 탄탄한 짜임새와 감동은 상상 이상이다. 인간이 역사를 만드는지 아니면 역사가 인간 삶의 물줄기를 바꾸는지 근원적 물음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읽는 재미와 함께 역사와 인간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이런 작품을 만나는 건 큰 즐거움이자 행운이다.

소설의 배경은 1999년 프랑스에서 실제 열린 모리스 파퐁의 재판.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프랑스 괴뢰정부였던 비시 정권의 보르도경찰 치안부국장이었다. 1천6백 명의 유대인을 체포해 죽음의 수용소로 몰았으나 전후 자신의 행적을 숨기고 파리 경찰국장과 예산장관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던 한 역사학자의 끈질긴 추적 끝에 죄상이 드러나고 종전 50년 만에 결국 재판에 회부됐다.

‘어릿광대 피에로가 모리스 파퐁의 재판이 열리고 있는 보르도 법정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경찰이 그를 막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증언했다. 어릿광대는 엉터리 화장에 너덜너덜하게 해진 광대 옷을 입고 있었다. 끝내 법정으로 들어가지 못한 어릿광대는 (…) 그 다음 날부터 피에로 분장을 벗고 매일 법정에 나와 재판과 변론 과정을 지켜봤다. ’

어릿광대 피에로에 관한 남모르는 추억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의 양심과 사랑을 그려낸 ‘처절한 정원’

어릿광대는 물론 이 소설의 화자다. 잿빛처럼 우중충해야 할 반인륜 범죄자의 단죄현장에 왜 알록달록 낡은 옷과 빨간 코의 희극적 피에로가 나타나는지 독자는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시각적 효과를 동원한 이미지 대비로 호기심을 극대화시키면서 작가는 이내 피에로 분장의 화자를 통해 자신은 “어릴 적 이 세상 누구보다 어릿광대 피에로를 증오하고 싫어했다”고 증언한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기회만 있으면 아마추어 어릿광대로 분장하고 공짜 공연을 위해 어디로든 달려나갔기 때문이다.



무보수 자원봉사 어릿광대라니? 그것도 근엄한 선생님이! 자기 아들과 딸이 다니는 학교 수업시간에마저 광대 복장을 하고 나갔다니….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 빨려든 독자들에게 작가는 차분히 프랑스가 독일의 지배를 받던 시절과 당대를 살던 가족의 수난, 그리고 불의와 반인륜 범죄에 저항했던 한 독일 병사의 숭고한 정신을 눈에 잡힐 듯 그려 보인다. 바로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숙모가 겪은 처절한 정원에서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어릿광대 인생을 살게 된 연유를 설명하는 건 삼촌이다. “1942년 말 네 아버지와 나는 레지스탕스 세포조직에 가입했어. 그런데 우리 동네 역에 있는 변압기를 폭파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지….” 아버지와 삼촌은 아주 쉽게, 불꽃놀이라도 하듯 상부의 명령을 수행한다. 하지만 다음 날 두 사람은 독일 헌병대에 체포돼 정원에 파놓은 구덩이에 갇힌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들이 변압기 폭파범으로서가 아니라 진짜 폭파범을 찾아내기 위한 인질로서 또 다른 두 명과 함께 잡혔음을 알게 된다.

독일 점령하 비시 정부는 독일에 대항하는 테러가 발생할 경우 주민을 인질로 잡고 사흘 안에 범인이 안 잡히면 범인 대신 인질을 처형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무력화하고 주민 동조를 막으려는 악랄한 술책. 진짜 폭파범인 아버지와 삼촌은 당연히 딜레마에 빠진다. 자신들이야 처형당해도 별 수 없지만 함께 잡힌 다른 두 사람은 정말 죄 없이 억울하게 처형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기막힌 사실을 고백한들 독일 헌병이 믿어줄 것 같지 않고 결국 넷 다 처형될 운명만 남아 있는 듯했다.

인간 존엄성을 짓밟고도 반성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용기있는 외침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의 양심과 사랑을 그려낸 ‘처절한 정원’

Un Passage, 2006, 130.5×130.5cm, 캔버스에 아크릴


비까지 내려 진흙탕이 된 구덩이에서 절망에 빠진 네 사람. 그런데 삶의 희망을 거의 접은 그들을 감시하러온 독일 보초병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 구덩이 위에서 능청맞은 익살과 묘기로 인질들을 웃기고 음식을 주며 추위와 공포를 잊게 해준다. 장교의 눈을 속이고 인질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장교가 진짜 폭파범이 자수하지 않으면 한 명씩 차례로 처형한다며 인질들 중 누가 먼저 죽을지 제비뽑기를 하라고 통보하고 자리를 뜨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네들이 진짜 범인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중요한 건 독일군의 계략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자네들 스스로 희생양을 뽑아 준다면 반인륜적 선택을 하도록 한 그들의 논리에 덩달아 춤추는 꼴이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도리어 그들의 논리가 정당하고 그들은 자네들에게 동정을 베푼 셈이 되는 거란 말일세. (…) 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난다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악의 편에 있는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그런 보초병이 하늘을 감동시켰을까, 네 사람은 풀려난다. 변압기 폭파범이 부인의 신고로 체포, 총살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범인은 아버지와 삼촌인데 도대체 누가 붙잡혀 총살됐단 말인가. 마지막 장면은 깜짝 놀랄 감동으로 이어진다. 독자들은 보초병이 전쟁 전 어릿광대였다는 것과 작가의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든 어릿광대 피에로로 분장해 그때의 처절함을 잊지 않고 빚 갚음을 하려 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돌아간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은 피에로 복장으로 모리스 파퐁의 재판에 나타난 것이다.

표제는 시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기욤 아폴리네르의 마지막 시집 ‘칼리그람’ 중 ‘우리의 처절한 정원에서 석류는 얼마나 애처로운가’란 대목에서 따왔다. 전쟁이란 처절한 역사의 무대에서 가족, 인생, 그리고 운명이란 자칫 석류처럼 벌어지거나 터지기 쉬운 애처로운 개체라는 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책은 인간 존엄성을 짓밟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진실을 감추고 반성하지 않는 이들의 가슴을 직접 겨냥한 화살이다. 강제 징용과 군대 위안부 문제 등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고도 딴소리를 일삼는 일본과 그들 편에서 민족을 배반했던 친일인사들이 읽기에는 절대 즐거운 책이 아니다. 문학세계 간. 이인숙 옮김.
글쓴이 미셸 캥

1949년 프랑스 파드칼레에서 태어났다. 릴르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20여 권의 책을 출판했다. 2000년 출간된 ‘처절한 정원’은 프랑스에서 1년 이상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미국·독일·영국·이탈리아·일본 등 세계 각국에 번역 출간됐다.

그린이 하태임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색채로 대담하고 자유로운 이미지를 그려내는 젊은 작가. 최근 화장품 브랜드 헤라의 메이크업 라인을 모티프로 ‘꿈’이라는 제목의 대형 회화작품을 선보이며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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