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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책을 펴는 즐거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인간 본성을 파헤치는 기발하고 멋진 상상력

기획·김동희 기자 / 글·민지일‘문화에세이스트’ / 그림·윤장렬‘서양화가’

2006. 03. 17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 ‘공쿠르상’을 2회 수상한 작가 로맹 가리의 소설집. 환상적인 분위기의 표제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비롯해 세계 각지를 배경으로 인간성에 관한 신랄한 고발을 담은 열여섯 편의 단편이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이른바 문청(文靑-문학청년)들 사이에선 그걸 읽지 않고 문학을 논한다는 건 차마 상상조차할 수 없는 작품들이 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그중 하나다. 이 기발하고 멋진, 그러면서 가슴을 얼얼하게 아리게 하는 소설집은 열여섯 개의 단편으로 이뤄졌다. 아니 16종의 ‘인간 탐구 보고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작가 로맹 가리는 40대에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탔다. 60대엔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써 두 번째로 그 상을 탔다. 그리고 5년 후 권총자살로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외교관이었고 영화배우의 남편이었던 ‘넓은 삶’을 산 그의 대표작으로 문청들이 앞선 두 수상작보다 ‘새들은… ’을 찍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가슴으로 읽히는 매혹적인 표제작
우선 표제부터 매혹적이다. 얼핏, 뚫린 가슴으로 시린 바람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한없는 궁금증이 인다. 왜 새들은 죽는 거지? 페루, 그 머나먼 곳까지 가서…. 이건 사람 얘기야, 아님 새 얘기야? 새들은, 연약한 가슴을 지닌 사람들을 말하나? 혹시 어디든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자유나 희망을 비유하는 건 아닐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날아오는 거야, 왜 페루로 가는 거야? 그 지명엔 무슨 뜻이 있는 거야?
이런 수많은 의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활자화돼 있지 않다. 대신 독자들은 단언컨대 그 답을 ‘느낄’ 수 있다. 소설집의 표제작 ‘새들은… ’은 어찌 보면 그림이다. 그것도 잿빛 하늘과 바다, 새, 모래언덕 등의 단색 그림과 에메랄드 빛 원피스와 초록색 스카프, 사육제의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이 든 알록달록 색조가 조화를 이루는 몽환적인 그림이다. 그래서 소설은 가슴으로 읽힌다. 눈앞에 생생한 영상이 펼쳐진다.
‘새들이 왜 먼 바다의 섬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새들은 더 남쪽도 북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 어떤 새들은 아직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새로 도착한 새들이었다. 그들은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 바다의 섬들은 조분석(새똥)으로 덮여 있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내용도 꿈꾸듯 환상적이다. 페루의 외딴 바닷가, 먼 섬의 새들만이 날아와 죽어가는 세계의 끝. 그곳에 달랑 카페 하나 차리고 세상과 희망, 사랑조차 부정하며 사는 47세 남자가 있다. 거기에 한 여자가 온다. 새처럼 죽기 위해. 그녀를 구하면서 사그라진 줄 알았던 자신의 희망도 구한 줄 알았던 남자.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여자는 새들이 왜 이 한적한 바닷가에 날아와서 죽어가는지 알지 못한 채 떠나간다.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여자는 모래언덕 꼭대기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저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페는 비어 있었다.’

멋들어지면서 가슴 아린 결말을 끌어내면서도 작가는 일절 군더더기를 걸치지 않는다. 지문과 대화가 씨줄 날줄로 정교하게 엮이며 하나의 결말을 향해 움직인다.



“이 새들은 모두 어디서 오는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먼 바다에 섬들이 있소. 조분석 섬들이오. 새들은 그곳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죽소.”
“왜요?”

“모르겠소. 갖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럼 당신은요? 당신은 왜 여기로 왔죠?”
“저 카페를 운영하고 있소. 여기 살아요.” 그녀는 자기 발치께에 죽어 널브러진 새들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장면, 아무도 없는 그곳, 텅 빈 카페는 로맹 가리 자신의 최후를 예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희망을 접으려 할 때쯤 슬그머니 새 희망이 고개를 들고 그걸 쥐려는 순간 또 달아나는 숨바꼭질 같은 것, 그러다 결국 한적한 세계의 끝으로 날아가 널브러져 죽는 새들처럼 공허한 것임을 작가는 주마등처럼 보여준다. 갖가지 설명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알 수 없는 삶을 정말로 아련히 그려낸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신랄한 고발 담은 다양한 단편 엮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표제작 ‘새들은… ’에서 본 꿈꾸는 듯한 환상적 분위기는 그 밖에 15개의 단편에서 인간성, 혹은 인간에 대한 신랄한 탄핵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모랫바닥에 떨어져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새를 신발 뒤축으로 짓이기는 잔인한 존재이며 허영과 위선에 눈이 먼 한심한 군상이기도 하다. 체면과 품위와 명예,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얼마나 황당한 삶의 편린들을 만들어내는지 작가는 끝없이 묻고 또 고발한다.
가령 ‘순수는 어디에’에선 남태평양 외딴섬 주민들이 닳고 닳은 유럽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짜 고갱의 그림을 팔아먹는지 능청맞게 설명한다. ‘몰락’에선 반대자들을 시멘트 반죽에 밀어넣어 말린 뒤 예술작품으로 둔갑시키는 잔인함이, ‘비둘기 시민’에선 제도의 노예가 된 인간의 모습을 우화적 비유로 그려낸다.
‘어떤 휴머니스트’에선 친절을 가장한 허위가, ‘류트’에선 명예와 품위라는 고상한 이름 뒤에 숨은 인간의 참모습이 떨리듯 드러난다. 작가는 삶의 아주 작은 부분들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아내 가슴 파닥이는 새를 손바닥 위에 놓고 보여주듯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그 무대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터키 등 유럽과 소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페루 아이티 볼리비아 등 미주, 그리고 남태평양까지 종횡무진이다.
인간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 사실은 가장 비인간적 동물이 바로 인간 아니겠느냐고 묻는 듯한 작가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낄낄거리고 웃게 하던 비유는 어느새 진한 슬픔과 상처로 가슴에 남는다. 전쟁과 학살, 그리고 과학 문명의 발달 속에서 인간성은 또 어떻게 변해나갈 것인가. 책을 덮을 때쯤이면 “아, 인간이라는 종(種)이란…” 하는 탄식과 함께 가슴이 터질 듯한 흥분이 함께 밀려온다.
프랑스 작가, 특히 그중에서도 로맹 가리를 원서로 읽어보려고 본격적으로 불어를 배울까 생각해봤다는 작가 조경란은 이런 표현을 했다.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아직도 가슴이 뛰고 그 사실을 누구에게든 비밀로 부치고 싶다.” 과연 그런가? 문학동네 출간. 김남주 옮김.

글쓴이

로맹 가리는 1914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1980년 파리에서 ‘결전의 날’이라는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1년 전 자살한 전 부인의 뒤를 이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비행중대 장교로 영국, 아프리카 등지의 전투에 참여해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 후 외교관, 국제연합 대변인으로 일하다 1961년 외교관직을 떠났다. 1945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받은 데 이어 1975년 ‘자기 앞의 생’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발표해 다시 한 번 공쿠르 상을 수상함으로써 평단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네 멋대로 해라’의 여배우 진 세버그와 결혼해 8년 만에 이혼했다. ‘커다란 탈의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엘 양’ ‘새벽의 약속’ ‘여인의 빛’ 등 30여 편의 소설, 희곡,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린이

윤장렬은 12회의 개인전을 연 중견화가. ‘중앙미술대전 역대 수상작가 초대전’ ‘한국현대미술의 전망과 기대 전’ ‘화상 10년의 눈 전’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어린시절의 꿈과 기억을 소박하고 담백한 질감으로 표현하며, 특히 친근한 동물을 소재로 삶의 고독과 애환을 시적으로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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