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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명화 ②

승리를 기념하는 70m 대작 ‘바이외 태피스트리’

2005. 12. 12

승리를 기념하는 70m 대작 ‘바이외 태피스트리’

바이외 태피스트리(부분), 1077, 태피스트리, 전체 사이즈 0.5×70m, 프랑스 바이외, 바이외 상트르 기욤 르 콩케랑


지금으로부터 1천년 전쯤 만들어진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매우 독특한 작품입니다. 당시의 역사를 기록한 그림이지만 물감으로 그린 게 아니라 수를 놓아 만든 것이고, 길이가 무려 70m에 이르는 대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린 형식도 특이해 어떤 이는 만화의 원조라고 하고 어떤 이는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야기 전체를 띠 그림 형식으로 계속 이어 그려 만화 같기도 하고 영화 같기도 한 느낌을 주는 것이지요.
이 작품은 정복왕 윌리엄(프랑스 이름으로는 기욤, 1028~1087)이 영국 왕위를 빼앗기 위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쳐들어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모두 58개의 장면에 6백23명의 인물과 2백2마리의 말, 55마리의 개, 5백5마리의 기타 동물, 41척의 배, 37동의 건물, 49그루의 나무가 등장합니다. 대단한 노력과 수고의 결과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사건의 전개과정을 잘 아는 참전 용사 한 사람이 전체 구성을 관장했을 것이고 바이외 지역의 여러 여성들이 수를 놓았을 겁니다.
그림의 소재가 된 역사적 사실은 이렇습니다. ‘참회왕’이라 불리는 영국 왕 에드워드는 후사 없이 죽게 되자 왕위를 자신과 인척 관계에 있는 프랑스의 윌리엄 공작에게 물려주라고 유언합니다. 하지만 왕이 죽고 난 뒤 해럴드라는 왕의 처남이 왕위를 차지하고 말지요.
이 사실을 안 윌리엄은 1066년 군대를 일으켜 영국으로 쳐들어갑니다. 윌리엄은 해럴드에게 불필요한 인명 피해를 막게 일 대 일로 대결하자고 요구하지만 해럴드는 군대로 맞서 싸웠습니다.
결국 ‘그레이 애플 트리의 전투’라 불리는 전투에서 윌리엄의 군대가 해럴드의 군대를 물리치고 해럴드 또한 이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이 대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미술작품을 제작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결정이었겠지요. 이렇게 긴 작품으로 만든 것으로 보아 그 승리의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생생히 엿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태피스트리는 색실로 짜 만든 직물을 말합니다. 다양한 주제로 여러 가지 그림과 무늬를 짜 넣어 보기에 매우 아름답습니다. 벽걸이나 가리개, 휘장 등의 실내 장식품으로 많이 쓰입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경우 모든 부분을 색실로 짜 만들지는 않고 천 위에 일부만 수를 놓아 일반적인 태피스트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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