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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성폭력 피해여성들에게 요가 가르치는 최김희정

“요가 통해 몸의 소중함 가르치고 있어요”

글·강지남 기자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5.12.12 10:54:00

2001년 재학 중인 대학원 지도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이후 힘겨운 싸움을 벌여왔던 최김희정씨는 요즘 성폭력 피해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요가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자기 몸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성추행 사건 이후 민·형사 소송을 벌이며 겪은 힘겨웠던 지난날들과 요가를 통해 평온을 되찾은 요즘 생활에 대해 들어보았다.
아이들과 성폭력 피해여성들에게 요가 가르치는 최김희정

서울 광화문에 자리한 자그마한 요가수련원 ‘세상 속으로 가는 요가원’ 원장 최김희정씨(가명·34)는 요가 지도자를 양성하면서 의무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요가와 성희롱은 언뜻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김씨의 생각은 다르다. 특히 아이들에게 요가를 가르칠 경우 요가 지도자가 직접 아이들의 몸을 만지며 요가 자세를 바로잡아주어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몸과 몸의 접촉, 그 사이에는 상대에게 수치감을 주지 않도록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게 최김씨의 생각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요가를 가르칠 때 아이들 몸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다른 친구들의 몸에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한번은 요가 동작을 바로잡아주면서 조금 살이 찐 남자아이의 배를 제 손으로 몇 차례 톡톡 건드렸어요. 저는 귀엽다는 표시였는데, 그 아이가 ‘아이, 선생님 왜 그러세요?’라면서 기분 나빠하더라고요. 그래서 곧장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했어요. ‘친밀감을 표시하려고 손잡은 것도 성희롱이냐’ ‘웃자고 한 이야기인데 성희롱이냐’ 하면서 사람들은 성희롱이란 참 애매모호한 거라고 말해요. 하지만 성희롱이란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해요. 당한 사람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자기 의도와는 관계없이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대한 게 되는 거죠.”
요가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가르침을 전하는 수행이기도 하다. 요가의 경전 중 하나인 ‘아힘사’는 불살생(不殺生), 즉 비폭력의 정신을 전한다. 이에 최김씨는 “아이들이 아힘사에 따라 자기 몸을 소중하게 여기고 남의 몸 또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최김희정씨가 이처럼 요가를 가르치면서 내 몸의 소중함과 존중받을 권리를 강조하는 까닭은 그 자신이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지난 몇 년 동안 고통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명문 대학 대학원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01년 10월 최김씨는 회식 자리에서 지도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지도교수가 술에 잔뜩 취한 채 최김씨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충격적인 말과 행동을 한 것.

성추행 사건 떠올리면 지금도 몸에서 두드러기 나
아이들과 성폭력 피해여성들에게 요가 가르치는 최김희정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당한 성추행을 조용하게 덮어두는 많은 여성들처럼 두눈 질끈 감고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김씨는 자신에게 닥쳐올 불이익이 두려워 없던 일로 덮어두는 대신 제대로 짚고 넘어가자고 맘먹었다.
“집에 돌아와 남동생에게 이 일을 털어놓았더니 ‘만약 이 문제를 거론한다면 누나가 지금까지 힘들게 공부해왔던 것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충고하더군요.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성추행을 당하고도 제대로 고발하지 못하는 현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고도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다. 학생들을 주축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져 학교 측에 해당 교수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결국 교수는 학교로부터 3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마침 안식년을 맞았던 교수는 1년 후 학교로 돌아와 자신의 연구실 대신 최김씨를 포함한 대학원생들이 머무는 대학원실로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이에 공동대책위원회가 다시 소집돼 사태 해결에 나섰다. 2003년 8월 학교 측은 교수를 해임했다. 또한 교수는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형사소송에서 7백만원 벌금을 무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민사소송에서도 2천2백28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교수는 같은 해 12월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의위원회에 재심을 요구했고 해임에서 정직 3개월로 징계를 낮춰 받아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아이들과 성폭력 피해여성들에게 요가 가르치는 최김희정

지난 4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하나씩 털어놓으면서 최김희정씨는 종종 얼굴과 목, 팔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가 쓰다듬는 피부에는 울긋한 두드러기가 솟아나 있었다. 4년 전의 성추행 사건과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 탓에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두드러기가 나는 후유증을 앓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때 일들을 떠올리면 몸에서 두드러기가 난다고 한다.
“교수에게 민사·형사상 책임을 묻는 등 성과를 거뒀어요. 하지만 그걸로 성추행 사건으로 받은 상처가 다 극복된 건 아녜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는 중이에요.”
하지만 그는 “어제 논문자격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성추행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2년 전에 박사학위를 취득했겠지만, 이 일로 인해 그는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느라 졸업이 꽤나 늦어졌다. 또한 그에게는 다른 대학원생들처럼 학부수업 강의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고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대학원실이나 도서관조차 맘 편하게 이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 차례 들었지만 그럴 순 없었어요. ‘실력도 없는 사람이 괜한 일로 분란을 만들었다’는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기 싫어 ‘무엇이든 최고로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덕분에 논문자격시험에서 외국어 과목을 만점 받았어요(웃음). 시험장에서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떠올라 남몰래 울었어요.”

성폭행 피해여성들에게 요가 가르쳐 마음의 안정 얻도록 해
한국요가연합회 기획실장이기도 한 최김희정씨는 요즘처럼 ‘요가 열풍’이 불기 한참 전인 95년부터 요가를 시작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 고민을 하다 마음을 평안하게 다스리고 싶어 요가수련원의 문을 두드린 것. 지난 7월에는 요가 수련생 34명을 이끌고 인도 북부지역에 있는 힌두교 성지 라시케시를 방문해 요가니케스탄 아쉬람(일종의 수도원으로 힌두교의 종교 공동체)에서 요가와 명상을 하고 왔다. 그는 또 경기도 가족여성개발원이 4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양성평등의식 교육 프로그램 중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라는 요가 강좌를 맡아 성인지력(性認知力) 향상 교육강사로도 활약 중이다.
“강의를 듣는 분들 대부분이 남성인데 처음 해보는 요가 동작을 많이 어색해하고 힘들어하세요. 그런 분들에겐 먼저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지요. 유연한 요가 동작이 나오지 않는 건 몸이 뻣뻣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고집과 권위를 부리기 때문이거든요. 마음을 유연하게 하면 몸도 따라서 유연해지기 마련이에요.”
최김희정씨는 자신의 요가수련원(세상 속으로 가는 요가원, 02-734-5072)에서도 다양한 요가 강좌를 열고 있는데, 성폭행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그를 찾아와 요가를 통해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처방법 등을 함께 의논하기도 한다고. 앞서 말했듯 그는 특히 아이들에게 요가를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라도 학교에서 받는 학업 스트레스가 무시 못할 정도이기 때문에 요가를 통해 스스로 스트레스와 화를 다스리고 마음의 평온을 갖도록 훈련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동료 학생들, 여성단체들과 함께 최김씨가 벌인 지도교수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투쟁’은 그에게 여전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져다주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대학 내 성추행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학교에는 ‘반성폭력 학칙(성폭력·성희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이 제정됐고 학생생활상담연구소 산하 ‘양성평등 성상담실’이 문을 열었다.
“성폭행 사건이 벌어지면 언론매체에서 저를 자주 찾아와요. 인터뷰에 응하고 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아 며칠씩 고생하지만 그래도 거절하지 않는 것은 저로 인해 우리 사회가 성폭력에 대해 조금은 성숙한 태도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자신의 몸은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마땅한 권리가 있으며, 다른 사람의 몸 또한 그렇다는 걸 모두가 깊게 깨닫기를 바라요.”



여성동아 2005년 12월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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