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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뜻밖의 고백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애정 털어놓은 진미령

“가끔씩 집에 들르는 빵점짜리 아버지였지만, 나라를 위해 사신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기획·강지남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5.12.07 11:57:00

가수 진미령의 아버지 김동석 예비역 대령이 북파공작원의 대부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진미령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아버지에 대한 어린 시절의 원망, 추억, 그리고 애틋한 마음.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애정 털어놓은 진미령

지난10월 말 김동석 예비역 대령(82)의 ‘This Man 김동석 이 사람’의 출판기념회가 열린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전우회관에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채명신 전 주월 한국군사령관을 비롯해 장경순 전 국회부의장, 김영관 전 해군참모총장, 신국주 동국대 전 총장, 무변 스님 등 5백여 명의 내빈이 참석해 행사장을 가득 메운 것. 채명신 전 사령관은 “한국전쟁 당시 김동석 대장이 수집한 정보들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달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당시 맥아더는 김 대장을 가리켜 ‘디스 맨(This man)이 보낸 정보는 믿을 수 있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 대령의 딸 진미령이(46·본명 김미령) 참석해 아버지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빨간색 재킷 차림의 그는 환한 미소로 단상에 올라 “이 자리에 흐뭇한 표정으로 앉아 계시는 아버지를 보니 기쁘다. 그동안은 진미령의 아버지로만 살아서 자기 이름이 없으셨는데 오늘 ‘김동석’이라는 아버지의 이름 석자를 되찾은 것 같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힌 뒤 아버지 곁에 다가가 볼에 입맞춤을 하며 부녀애를 과시했다.
“엄마는 저희 4남매를 데리고 서울 성북동에 살았고, 아버지는 강원도에서 지내시면서 가끔씩 집에 들르셨어요. 몇 달 만에 아버지를 봐도 우리 남매들은 무서워서 아버지 곁에 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밥을 먹을 때도 아버지 옆에 서로 앉지 않으려고 다툴 정도였죠.”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이키며 진미령은 아버지를 ‘무뚝뚝하지만 눈빛이 형형하게 살아 있던 분’으로 회상했다. 하지만 가정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자식에게 애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분이라 부녀 사이는 서먹서먹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모두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데, 우리 4남매는 ‘아버지’라고 불렀어요. 친구들이 아빠의 귀여움을 받으며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몰라요. 어머니에게도 무뚝뚝한 남편이어서 솔직히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기도 했어요.”

“영화 ‘실미도’로 아버지가 하셨던 일 짐작하게 됐어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애정 털어놓은 진미령

북파공작원을 양성한 육군첩보부대 대장 출신인 진미령의 아버지 김동석 예비역 대령.


진미령의 아버지 김동석씨는 1923년 러시아 프리모르스키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친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큰아버지의 양자로 입적됐는데 큰아버지는 사업수완이 뛰어나 부유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1945년 광복 이후 중국 국민당 의용군에 입대해 소령으로 임관한 그는 중국 하얼빈에서 한국인들이 해방된 조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돕다 중국의 조선족 공산당에 붙잡혀 사형집행 직전까지 가는 긴박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진미령은 아버지의 자서전에서 사형집행 장면을 묘사해놓은 부분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고 한다. 공산당원들이 구덩이를 파놓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아버지는 “내 부하들은 모두 풀어주고 나만 죽여라. 우리는 모두 조선족인데 왜 남의 나라 전쟁에 와서 동족끼리 서로 죽이려고 하느냐? 저 젊은 동지들을 훈련시키는 데 20년 이상의 세월과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아깝지도 않느냐”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진씨는 “이런 아버지를 지켜본 사형 집행관이 아버지의 용맹성과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 사람 됨됨이를 높이 사 풀어주었다”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김동석씨는 육사 8기로 입교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맥아더 장군, 리지웨이 극동연합국 최고사령관, 백선엽 육군대장 등과 함께 ‘미국이 선정한 4인의 한국전쟁 영웅’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는 52년부터 61년까지 육군첩보부대 파견대장으로 근무하다가 예편해 삼척군수, 강릉시장, 속초시장 등을 지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애정 털어놓은 진미령

요즘 진미령은 “왜 그동안 아버지가 북파공작원 대장이었다는 걸 밝히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진씨는 “안 밝힌 게 아니라 묻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육군첩보부대 대장 출신이라는 건 예전에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맡으신 일이 북파공작원과 관련됐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영화 ‘실미도’가 상영돼 북파공작원들에 관해 많이 알려진 이후에야 육군첩보부대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됐고 아버지가 하셨던 일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됐죠.”
진미령은 화교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서울화교고등학교를 나온 까닭에 오해가 빚어진 것이다. 그가 화교학교를 다닌 건 단순히 외국어를 익히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원래는 미국인 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등록금이 부담스러워서 아버지와 친분이 돈독한 중국대사의 협조를 얻어 화교학교에 입학하게 됐다는 것.
“길에서 만난 주부들이 제게 ‘오향장육은 어떻게 만들어요?’라고 물은 적은 있지만, 그 누구도 단도직입적으로 제게 ‘화교냐’고 묻지는 않아서 아니라고 말할 기회가 없었어요.”

화교고등학교 졸업해 화교라는 오해 많이 받아
가수로 데뷔하면서 쓰게 된 진씨 성은 몸이 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열한 살까지 그를 키워준 외할머니의 성을 따른 것. 김미령 아닌 진미령으로 활동하게 된 데는 “연예인 자식은 필요 없다”던 아버지의 반대도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진미령은 지금까지 아버지가 크게 세 번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이번 출판기념회가 그렇고, 99년 서울 서초 정보사 안에 체육관이 지어지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따 ‘동석관’으로 명명된 일이 그렇다고.
“어머니를 모시고 현판식에 참석하면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는 빵점짜리 남편이고, 자식들에겐 살가운 정 한번 안 주신 아버지이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열심히 사신 분이라는 감회에 젖었어요.”
진미령은 또한 2002년 남편과 함께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전쟁박물관에 마련된 ‘김동석 지사 영웅실’에 다녀오면서도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아버지를 위해 꾸며진 그 방은 아버지의 흉상과 파란만장했던 시절의 추억을 기록한 사진들, 한국과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각종 훈장들로 채워져 있다고. 개관식 날 미군 사단장 부부를 비롯해 고위직 장성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행사도 치러졌다고 한다.
그는 젊은 시절 건장한 군인으로 전쟁터를 누비던 아버지가 지금은 연로한 노인이 된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김동석씨는 10년 전 다리를 삐었는데 자식들이 병원에 가보자고 수차례 권해도 “나는 이제 다 살았다”고 고집 부리며 결국 병원에 가지 않아 그 후유증으로 조금 절룩거리며 걷는다고.
“오빠와 언니, 남동생 모두가 미국에서 살고 어머니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시기 때문에 아버지 혼자 지낼 때가 많으세요. 그런데 다행히 아버지가 요리를 참 잘하세요. 순두부찌개나 된장찌개 끓이는 솜씨가 수준급이에요. 아버지는 특이하게도 된장찌개에 달걀을 풀어 넣으시는데 그 맛이 일품이죠.”
진미령 또한 요리에 일가견이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 요리 관련 책을 출간하고 홈쇼핑에서 자기 브랜드의 꽃게를 선보일 정도로 전문 요리꾼인 그는 개성 출신인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개성음식을 자연스럽게 익혔다고 한다. 그는 조만간 외식업체를 오픈할 계획도 갖고 있다. 남편 전유성은 요즘 서울 여의도에 작업실을 얻어 사진작가, 한시 연구가 4, 5명과 함께 ‘삼국지’를 집필 중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책에 관심을 보이시는데 북파공작원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가정보다는 나랏일에 중심을 두고 살아온 여든두 살의 노인네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정리한 것쯤으로 보아주시면 좋겠어요.”

여성동아 2005년 12월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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