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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했습니다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타까운 모정 연기하는 이혜숙

“마흔 넘어 연기의 참맛 알아가지만 눈물 연기는 아직도 어려워요”

글·김유림 기자 | 사진ㆍ박해윤 기자

2005. 12. 07

탤런트 이혜숙이 주말마다 눈물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로부터 진한 공감을 얻고 있다. KBS 주말드라마 ‘슬픔이여 안녕’에서 자신이 버린 아들과 극적으로 재회한 후 애끊는 모정을 실감나게 연기하고 있는 것. 현재 초등학생 딸아이를 둔 그에게 중견배우로서 갖는 연기 욕심과 단란한 가정생활에 대해 들어보았다.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타까운 모정 연기하는 이혜숙

KBS 주말드라마 ‘슬픔이여 안녕’이 시청률 30%를 넘기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극중 정우(김동완)와 그의 생모 강혜선(이혜숙)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갈등하는 장면이 방영된 후 시청자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는데 두 사람의 가슴 절절한 눈물 연기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안타깝게 만들었다. 극중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아들 앞에 떳떳이 나서지 못하고 오래전 자신의 가족들을 배신하고 전 재산을 가로챈 박일호(한진희)에게 복수하려는 나이트클럽 사장 역을 맡은 이혜숙(43). 그는 “‘큰손’의 여장부 역을 처음 맡아 낯설었지만 혜선 역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언제까지나 예쁘고 착한 연기만 할 수 없잖아요. 연기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마흔이 넘은 요즘에서야 조금씩 연기의 참맛을 알아가는 것 같아요. 이번에 맡은 강혜선 역은 가족에게 갈등과 화해의 요소를 동시에 제공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매력적이고, 드라마 전반적인 내용이 가족 간의 화해와 사랑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자식을 버린 엄마의 심경을 눈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그는 눈물 신을 찍을 때는 오랫동안 감정을 끌어낸 뒤 NG 없이 한번에 촬영을 마친다고 한다. 중간에 끊겼다 다시 촬영을 하려고 하면 감정을 잡기가 처음보다 훨씬 어렵다고. 그는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눈물 신과 같은 내면연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저도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강혜선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죽을 때까지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겠죠.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오랜 시간이 흘러 아이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부터라도 엄마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동안 주지 못했던 사랑을 배 이상으로 주면서요. 물론 처음에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보다 엄마의 사랑이니까요.”
그는 드라마에서 아들 정우로 등장하는 김동완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인기 가수 출신이지만 연기에 대한 의욕이 남다르고 뭐든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극중 정우와 꼭 닮았다는 것. 그는 “가끔 동완이가 친아들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이 많이 들었다”면서 “딸 하나밖에 없는데 이번 드라마 덕분에 아들을 한 명 얻은 기분이 든다”며 웃었다.

“저만 보면 참새처럼 조잘대는 딸아이 덕분에 피로 금세 잊어요”
70년대 말 10대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해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이혜숙. 92년 결혼 후 잠깐의 공백기를 빼놓고 지금까지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오고 있는 그는 늘 ‘변신’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여러 장르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매번 단아하고 인자한 어머니상으로만 비쳐졌기 때문. 그러던 중 그는 지난 2001년 방영된 SBS 드라마 ‘덕이’를 통해 처음으로 기존 모습에서 탈피한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남편 조형기를 꽉 잡고 사는 억척 주부를 연기한 것.
“제 나이 또래 연기자들이 드라마에서 맡는 역할은 대부분 ‘엄마’잖아요. 그래서 엄마 연기는 거의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드라마 ‘덕이’에 출연하면서 같은 엄마 역이라도 다양한 연기가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뒤로 주저 없이 푼수기 있는 역, 표독스러운 역을 맡으며 시청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저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재 초등학교 6학년생인 딸아이를 두고 있는 그는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기분이 들뜨면서도 아이와 남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아이가 자기 일을 스스로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한결 마음이 놓인다고. 또한 그는 아무리 녹초가 돼 집에 들어가도 엄마의 얼굴만 보면 참새처럼 쉬지 않고 조잘대는 딸아이 덕분에 피로를 금세 잊는다고 한다.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타까운 모정 연기하는 이혜숙

“어려서부터 자립심 강한 아이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가끔 아이가 예상 밖의 어른스러운 행동을 보일 때면 깜짝 놀라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아이가 학교에서 중국으로 연수를 다녀왔는데 떠나기 전날 짐을 챙겨주려고 보니까 벌써 자기가 다 알아서 싸놓았더라고요. 저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걸 보고 입이 떡 벌어졌죠. 평상시에도 제가 뭐 좀 챙겨주려고 하면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면서 저는 손도 못 대게 해요. 아이가 성격이 밝고 명랑한 편이라 제가 일찍 집에 들어가면 현관문 앞에서부터 화장실까지 쫓아다니면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아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친구 얘기, 요즘 고민거리까지 모두요. 딸이랑 저는 서로 비밀이 없는 사이예요(웃음).”
그는 아이 교육에 있어서 그리 열성적인 엄마는 못된다고 한다. 공부든 취미든 일일이 관여하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걸 하게끔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고. 또한 그는 아이가 공부에만 전념하기보다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에게 “공부 잘 하는 사람보다 마음 통하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더욱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자주 얘기한다고 한다. 그는 딸아이가 자신의 뒤를 이어 탤런트가 되겠다고 하면 전적으로 지원해줄 의향이 있다고.

딸아이와 같이 요즘 노래 따라 부르며 열광하는 남편
결혼 후 아이를 낳고 3년 동안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던 그가 다시 연기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던 건 남편과 시부모님의 전폭적인 후원 덕분이라고 한다. 시부모는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보며 모니터링도 해준다고.
“결혼할 때부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뒤에는 다시 연기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제 이름 석자가 어느 순간 소리도 없이 사라질 걸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몇 번을 생각해도 그때 다시 연기를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 싶어요. 지금 당장은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일하는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긍정적인 영향이 분명 있다고 믿거든요.”
그는 결혼 초에는 남편과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기도 했지만 이제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며칠 전 오랜만에 두 사람이 큰 소리를 내며 말다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을 본 딸아이가 “엄마 아빠 싸우는 거 처음 본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는 바람에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그와 남편은 지금까지 아이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살림을 잘 하냐”는 질문에 “마음만 먹으면 잘한다”고 말하며 웃음으로 넘기는 그는 남편의 식사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일찍 집에 들어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도 많이 나누면서 부족했던 아내의 몫을 채우려고 노력한다고.
“남편은 가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아이에게도 더없이 다정한 아빠인데 아이가 필요한 게 있다고 하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직접 가서 사오고, TV를 보다 요즘 인기 있는 가수들이 나오면 딸아이랑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열광해요(웃음). 가족들 생일이나 기념일도 저보다는 더 잘 챙기고요.”
밝고 명랑하게 자라주는 딸아이와 가정적인 남편 덕분에 지금껏 큰 걱정 없이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다는 이혜숙. 화면에 비쳐지는 모습 그대로 편안한 표정을 지닌 그는 앞으로는 가족들의 건강에 더욱 신경을 쓸 생각이라고 한다. 그 역시 10년 넘게 꾸준히 운동을 해오고 있는데 고운 피부와 군살 없는 몸매도 규칙적인 운동 덕분이라고.
“20대에는 조금만 피로해도 잘 쓰러지고 기운 없어 했는데 아이 낳고 운동을 시작하면서 많이 건강해졌어요. 이제는 운동하는 게 습관이 돼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피트니스 클럽에 가서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스트레칭을 하면서 땀을 흘려요. 운동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딸은 일찌감치 운동을 시킬 생각이에요. 남편에게도 ‘운동하라’는 잔소리를 좀 하려고요(웃음).”
지금도 카메라 앞에 서기 전 마음속으로 ‘긴장하자, 자만하지 말자, 겸손하자’를 되새긴다는 그는 최근 대부분의 작품들이 젊은 배우들 위주로 구성되면서 중견 탤런트들이 설 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박원숙, 박정수, 김창숙 등 선배 탤런트들의 뒤를 이어 중견 여자 탤런트의 계보를 잇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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