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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작가의 체험

작가 이명랑이 들려주는 춤과 몸에 대한 예찬

건조한 일상 살다 라틴댄스 통해 자아 되찾은 주부 소설로 그려낸 작가 이명랑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5.12.07 10:21:00

건조한 일상을 살던 가정주부가 라틴댄스를 배우며 새 인생을 살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을 펴낸 작가 이명랑. 소설 속 주인공처럼 실제로 춤을 배우며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깨달았다는 그가 들려주는 춤과 몸에 대한 예찬.
작가 이명랑이 들려주는 춤과 몸에 대한 예찬

작가 이명랑은 둘째를 낳은 직후 라틴댄스 동호회에 가입해 자이브, 살사 등을 배웠다고 한다.


소설가 이명랑(33)은 속칭 ‘글래머 스타일’이다. 신체 다른 부위가 살이 찌더라도 잘록한 허리는 변치 않는다고.
“어렸을 때부터 가슴과 엉덩이가 또래 아이들보다 컸어요. 엄마가 서울 영등포에서 식당을 하셨는데 이런 신체적인 특징은 시장판에서 쉽게 희롱의 대상이 될 수 있었죠. 여성성이 두드러진 제 몸이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늘 선머슴 같은 말총머리에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어요.”
최근 그가 펴낸 장편소설 ‘슈거 푸시’는 그간 억압받았던 여성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반발이자 ‘부끄러워만 하고 누려본 적 없는’ 몸에 대한 위안의 표현이다.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보니까 어느 순간 제 몸이 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달걀을 파는 ‘억척어멈’의 것을 닮아가고 있더라고요. 생활에 저당 잡힌 엄마들의 모습 말이에요. 내 몸에서 여성성이 사라져가는 것을 목격하고 거의 공포감을 느꼈어요. 저를 여자로 바라보던 남자들의 시선도, 희롱이 담긴 휘파람도 사라졌어요. 몸에 대해서 부끄러워만 했고 제대로 누려본 적도 없는데, 모든 것이 가버렸어요.”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것이 ‘라틴댄스’였다고 한다.
“뭔가 내 몸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까 춤이 떠올랐어요. 춤이 현실에서 어떤 효용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안에 있는 ‘여성’과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죠.”
둘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2000년 12월, 그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 물 좋기로 소문난 살사바를 찾았다. 인터넷 라틴댄스 동호회에도 냉큼 가입했다.
“그렇다고 저를 ‘춤바람난 아줌마’로 오해하시면 곤란해요(웃음). 댄스 동호회에 처녀들도 많은데 어떤 남자가 아줌마랑 놀아주겠어요. 정기모임 나가면 그저 아줌마들 몇몇이 모여 연습만 열심히 하다 오는 거죠. 자이브를 시작으로 살사, 메링게 등 다양한 라틴댄스를 배우면서 소설을 구상하게 됐어요.”
소설 ‘슈거 푸시’의 주인공 소희는 나이 스물일곱, 몸무게 67kg의 평범한 주부다. 직업군인인 남편과 ‘여왕벌’로 군림하는 친정엄마의 틈바구니에서 질식사하기 직전이었던 소희는 새로운 세계로의 탈출을 열망하고 드디어 ‘티켓’ 하나를 손에 쥔다. 이 티켓은 다름 아닌 백화점 문화센터 라틴댄스 수강증. 그러나 비상 활주로에 선 소희에게 여타 불륜소설에서 행해지는 일탈은 없다. 소희는 그저 ‘슈거 푸시’ ‘아메리칸 스핀’ 등 밀고 당기는 라틴댄스의 기본 동작들을 성실하게 익히면서 가족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해법을 얻게 된다.

“춤을 배우며 내 몸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웠어요”
소설 속 주인공에게는 어느 정도 작가의 모습이 투영돼 있기 마련. 그 역시 춤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많이 겪었다고 한다.
“춤을 통해 아이 둘 낳은 엄마가 가지는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해나갔고, 진정으로 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에 눈을 떴죠.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 몸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내 몸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 말이에요.”
그동안 외면하고 무시했던 ‘몸의 주인’을 보고 ‘어머, 너 거기 있었니?’ 하면서 알아봐준다고 할까. 신체 각 부위, 세포 하나하나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작가 이명랑이 들려주는 춤과 몸에 대한 예찬

“아이를 낳으면 그 순간부터 내 몸을 돌볼 겨를이 없잖아요. 그래도 자신의 몸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돼요. 저는 매일 발바닥의 굳은살을 주무르면서 ‘발아, 너 오늘 하루 종일 걸어다녀서 힘들었지? 고마워!’ 이렇게 대화를 해요. 또 글을 다 쓰고 나서는 ‘손아, 너 글 쓰느라 힘들었다. 아주 잘했어!’ 하고 칭찬도 해주죠. 그럼 세포 하나하나가 굉장히 기뻐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몸을 여기저기 누르고 만지다 보면 특별히 더 아픈 곳이 있어요. 그럼 그 부위를 어루만지면서 이름을 불러주고 말을 걸면 통증이 좀 가시는 효과도 있더라고요.”
그는 소설에서도 라틴댄스 강사 ‘나비’의 입을 빌려 대한민국 바른 생활 주부들에게 이렇게 마술을 건다.
‘나를 막 드러내세요. 더 늦기 전에! 시간은 너무너무 빨리 지나가요. 나는 뚱뚱해, 나는 못생겼어, 내 다리는 코끼리 다리야,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그러다 보면 죽을 때까지 예쁜 옷은 한 번도 못 입어요. 만날 고무줄 바지만 입다가 죽는 거야! 그럼 죽을 때 너무 억울할 것 같지 않아요? 약 오르고 분하잖아. 그냥 막 드러내!’
사실 이렇게 선동하는 그의 옷장 속에도 글래머 스타일을 감추기 위한 검정색 옷 일색이라고 한다.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안다고, 찐 살만큼 자꾸 소심해져가는 주부들의 속내를 어느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몸 따로 마음 따로인 주문을 또 이렇게 외친다.
“가능하면 섹시하게! 이왕이면 요염하게! 꼿꼿하게 멈춰 있던 허리여, 짓눌려 있던 엉덩이여, 브래지어 속에 갇혀 숨도 못 쉬던 가슴이여, 맘껏 움직여라, 흔들려라, 눈치 보지 말고 더 부르르 떨어라!”
유부녀의 ‘춤’ 하면 아직도 ‘가정파탄’을 떠올리는 현실인지라 남편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단박에 ‘닭살 모드’로 바뀐다.
스물다섯 살 되던 해 그는 열 살 많은 남편과 결혼했다. 친정엄마가 농협 영등포공판장에서 식당을 했는데 그곳에 밥 먹으러 자주 들르던 청과물경매사가 2년간의 구애 끝에 그의 마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 이런 남자 없어요. 새벽 3시에 출근해서 오후 1시에 퇴근하면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봐줘요. 밤에 쌀 씻어놓고 자면 새벽에 출근할 때 전기밥통 취사버튼 눌러주고 나가고 일요일에는 된장찌개도 끓여줘요. 라틴댄스도 남편 때문에 배울 수 있었어요. 제가 아이들 때문에 춤 배우기를 망설이니까 ‘내가 아이들 돌볼 테니까 그 시간에 배우고 오라’고 했거든요.”
지금은 돌아가신 부친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풍으로 쓰러져 가난을 면치 못하던 시절, 그는 낮에는 손이 붉게 부르트도록 설거지 더미에 손을 담갔고 보일러가 안 들어오는 식당 다락방에서 시를 쓰며 겨울밤을 견뎠다고 한다. 그의 문학의 나이테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굵어지고 우람해지길 기대해본다.

여성동아 2005년 12월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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