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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삶에 여유를 찾아주는 70%의 철학

입력 2005.12.06 17:53:00

살이 빠졌다. 얼굴살이 빠지더니 허리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운동과 식이요법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니다. 일에 치여 바쁘게 지내다 보니 음식물 섭취량이 평소의 70% 정도로 준 덕분이다.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대도 욕심도 70%만 채우며 만족하는 버릇을 들이면 고통이나 스트레스도 줄고 삶이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삶에 여유를 찾아주는 70%의 철학

살이빠졌다. 몸무게로는 4kg, 놀라운 숫자는 아니지만 내 몸에서 쇠고기 일곱 근 가량의 무게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발전과 성장만 계속했던 몸무게가 이렇게 후퇴를 하다니 감개무량하다.
가장 먼저 얼굴살이 빠졌다. 40년 넘게 빠지지 않던 볼살이 빠졌다. 그 다음은 허리가 가늘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 아랫배는 그대로 볼록하게 보존된 상태를 유지한다. 가슴의 지방분도 좀 줄었다. 체격에 비해 가슴이 큰 편이라 66사이즈를 입었는데 이젠 55사이즈를 입게 됐다. 딸의 재킷을 몰래 입고 나갔다가 적발돼(?) 딸로부터 ‘주책바가지’란 비난도 받았다.
비결이 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열심히 운동하고, 적당한 식사조절을 했다”고 멋지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니다. 지면을 통해 밝히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회사의 새로운 프로젝트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를 하고 보고서를 썼으며, 그 와중에 중년남자들에 대한 책을 쓰느라 도무지 간식을 먹을 여유가 없었다. 하루 세 끼 외에 각종 과자와 케이크, 라면, 떡볶이, 초콜릿, 심지어 4인 가족용인 말린 누룽지까지 콜라와 함께 먹어대던 나의 무쇠 위장도 노화현상과 함께 소화불량 증세를 보이기에 간식을 삼갔더니 확실히 위의 활동량이 줄어들었다. 이젠 예전처럼 먹어대면 숨이 차고 고통스럽다.
기대도 애정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해
아, 내가 살 빠진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다. 평소 먹던 음식량의 70%만 섭취하다 보니 살이 빠지더란 사실을 밝히고도 싶었지만 비단 음식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70%’를 적용하면 과체중에서도, 과욕으로 인한 욕구불만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내가 남들에게 해준 것의 70%만 되돌려받기를 기대하면 실망하거나 허망함을 느낄 이유가 없다. 내가 빵 10개를 사줬는데 상대가 다음에 10개를 안 줬다고 섭섭해하면 나만 치사한 인간이 된다. 잊지 않고 7개만 줘도 감사할 일이다. 항상 타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다가 정작 상대방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데 혼자 서운해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내게 무척이나 잘해주는 분이 계셨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지극정성으로, 물심양면으로 내게 애정과 관심을 쏟아부어 주셨다. 처음엔 감동했고 나중엔 도대체 이유가 뭘까 의아했고 그 다음엔 지겨워졌으며 나중엔 부담스러움을 지나쳐 짜증이 났다. 이성관계였으면 스캔들이 났을 테지만 같은 아줌마였다.
“왜 내게 이렇게 잘해주시냐?”는 물음에 그분은 “그저 인경씨를 도와주는 것이 행복하다. 커다란 일을 할 사람인데 너무 바쁜 것 같아 여러모로 돕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받은 것은 돌려줘야 한다는 계산법에 익숙한지라 도저히 일방적으로 채무자가 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말씀드렸고, 그분은 매우 실망했으나 몇 개월간의 공백 끝에 다시 나타났다. 마음은 모르겠지만 과잉 액션은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처럼 다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70%만 보여주는 친절함 덕분에.
한 노처녀의 경우도 그랬다. 자신이 믿고 존경한다는 남자 상사를 항상 자랑했다.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하도 자주 이야기를 들어서 마치 나와도 친한 사이 같았다.
“그분이 그러는데요~.” “이건 그분이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그토록 서로 아끼고 챙겨주는 직장 선후배라니 정말 부럽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와 상사의 관계는 서로 밀고 끌어주는 사이가 아니라 넘어지면 꾹 밟아주는 사이인데…. 어느날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졌다. 그 상사에 대한 존경심이 애정으로 변해서 감정조절이 어렵다고 했다. 자꾸 아무런 일도 아닌데 의미를 부여하고, 휴일에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답 메시지를 받으면 마음이 환해졌다가 답이 없으면 암담해지고….
하지만 그 상사는 유부남에다 전문직이라 무척 바쁜 사람인데 그렇게 후배 여직원에게 항상 알뜰살뜰 잘해줄 수 있을까. 그 상사도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담긴 말이나 행동을 했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주제넘게 이런 조언을 해줬다.

삶에 여유를 찾아주는 70%의 철학

“누굴 좋아하는 마음은 참 귀한 거예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의 좋은 점을 인정할 수 있으면 더욱 소중하지. 그런데 인간이 참 간사하고 약한 존재라 이성의 경우엔 각자의 마음속에도 주변에도 숱한 지뢰가 깔려 있거든. 주변 상황 때문에 괜히 감정이 증폭되기도 하고, 아무 일도 아닌데 오해를 받기도 해요. 왜 실연당했다고 위로해주다가 친구의 친구랑 결혼한 이들이 얼마나 많아? 또 정말 순수한 사이인데 주변에서 의혹을 받아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존경받을 만한 상사를 만났다는 건 로또 당첨된 것보다 더 행운일 수도 있는데 그런 행운을 과장된 감정으로 깨뜨릴 위험도 있지 않을까? 그 상사가 댁의 애정을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고, 만약 똑같은 감정이라면 그건 더 문제고…. 그러니까 좀 냉정하게 생각해서 연인관계보다 인간관계를 튼튼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70%의 성공에도 만족해야 100%의 꿈 이룰 수 있어
예전 신참 기자시절에 호기심인지 장난인지 내게 약간 느끼하고 추근대는 태도를 보인 이들이 있었다. 명사들도 있었지만 본질은 중년 아저씨들이었으니 20대 중반의 어리버리한 여기자에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다행히 워낙 무디고 둔한데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덕분에 “자, 인터뷰도 마쳤으니 어디 가서 칵테일이라도 한잔?” 하면 “아뇨. 빨리 가서 꼭 드라마를 봐야 해요. 오늘 여주인공이 죽거든요”라며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거나 어쩌다 손이라도 잡으려고 하면 “무좀이 발만 아니라 손에도 생긴다면서요”라고 말했으니 멜로물은커녕 코미디로만 끝났다. 그때 근사한 추억 하나 만들었으면 고백 수기라도 써서 돈을 벌었겠지만 명랑만화 같은 캐릭터를 고집한 덕분에 돈은 못 벌어도 그들과 20여 년간의 오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인간관계는 돈으로도 살 수 없지 않은가.
일이나 욕심도 그렇다. 올해 10가지 계획을 세워서 그 가운데 7가지라도 성취했다면 그건 엄청난 성과다. 최고의 야구선수들도 4할, 10개의 공 가운데 4개를 받아치는 확률을 보이는 이는 드물다. 내가 꿈꿨던 일의 70%만 이뤘어도 감동하고, 감사할 일이다.
무조건 대충대충, 적당히 하라는 것이 아니라 70%에도 만족해야 더 커다란 에너지를 비축해 나중에 100%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밥도, 사랑도, 일도, 욕심도 70%로 줄이면 과식으로 생긴 과체중이나 과로로 인한 피로, 욕구불만에서 오는 고통과 스트레스도 30% 이상 줄일 수 있다. 그런데 70%만 기대했는데 100%의 성과가 생기면 어떡하냐고? 그거야 내 복이니까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여성동아 2005년 12월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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