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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최초로 미국 본토 직선 시장 된 최준희

글 & 사진·공종식‘동아일보 뉴욕특파원’

입력 2005.12.06 17:12:00

한국인으로는 처음 미국 본토에서 직접 선거로 시장에 당선된 최준희씨.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세탁소집 아들이었던 그가 시장이 되기까지의 성공 스토리를 취재했다.
한인 최초로 미국 본토 직선 시장 된 최준희

당선 확정 직후 어머니를 끌어안는 최준희씨.


미국 동부시간으로 11월8일 밤 9시, 미국 뉴저지주 에디슨시 민주당 선거본부에선 3백여 명의 선거운동원이 손에 땀을 쥐며 시장선거 개표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한인 교포인 민주당 후보 준최(34·한국명 최준희)와 무소속 후보 빌 스티븐스가 막판까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접전을 벌였기 때문.
밤 9시45분. 갑자기 “준 초이, 준 초이” 하는 연호가 터져나왔다. 그의 당선이 확정된 것. 최 후보가 1만2천1백26표, 스티븐스 후보가 1만1천9백35표로 1백91표 차였다. 이로써 그는 하와이 빅아일랜드 시장으로 있는 해리 김씨에 이어 미국 전체로는 두 번째, 본토에서는 최초의 한인 출신 직선 시장이 됐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살았던 도시인 에디슨은 1954년 주민투표를 거쳐 도시 이름을 래리탄타운십에서 에디슨으로 바꿨다. 뉴저지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인 에디슨시는 10만 명 인구 가운데 백인이 60%, 아시아계가 30%를 차지한다. 아시아계 중에는 인도계, 중국계 등이 많고 한인 유권자는 5백 명 안팎에 불과하다. 인도에서는 에디슨이 이른바 ‘꿈의 도시’로 불리는 까닭에 인도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들 소수계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 선거 유세 때마다 인도계와 중국계가 오히려 한국인들을 압도했다.
실제로 그가 당선되자 인도계와 중국계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하고 축하했다. 뉴저지주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신문과 잡지, 방송들이 대거 몰려와 그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소수 인종인 아시안계가 ‘아시안’이라는 연대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인 출신 첫 미국 본토 직선 시장’이 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을 거쳐야 했다. 민주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뉴저지주의 한 백인 라디오 진행자는 그를 겨냥해 “아시아인이 미국 정치를 좌우해선 안 된다. 미국인이 미국 정치를 결정해야 한다”는 인종차별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아시안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문제의 라디오 진행자는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사과하기를 거부했다. 결국 현대자동차 등 광고주들이 광고철회 의사를 밝히고서야 마지못해 사과를 했다. 그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문제를 일으킨 진행자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사태가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인종차별 발언 파문이 확대되면서 그의 지명도는 높아졌고 그동안 투표를 잘 하지 않던 소수계가 투표장으로 대거 나오는 계기가 됐다.
한인 최초로 미국 본토 직선 시장 된 최준희

그는 선거 기간 동안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왔다.


그는 민주당 후보경선에서 12년간 에디슨 시장을 지낸 현 시장을 제치는 이변을 연출했다. 에디슨시는 민주당의 텃밭이라 시장선거에서 낙승이 예상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후보는 불과 1백91표 차이라는 박빙의 차이로 당선됐다. 백인의 견제심리가 작용하면서 상당수 백인 민주당 표가 무소속으로 나온 상대 후보에게 갔기 때문. 이는 그만큼 미국 주류 정치권에 한인들이 진출하기가 어렵고 ‘인종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71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씨가 미국으로 이민 간 것은 세 살 때. 육사 17기인 아버지 최상영씨(65)는 대위 시절 교육훈련을 위해 미국에 파견 나갔다가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에 정착했다. 그의 부모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줄곧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그를 키웠다. 최씨 위로는 스탠퍼드대학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는 누나 최정은씨(36)가 있다.
그의 원래 꿈은 우주비행사였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뉴저지주) 캠프에 합류하면서 정치 쪽으로 행로를 바꿨다. 당시 그는 컬럼비아대학 공공정책학 석사과정에 있었다.

“남들 가지 않는 길 걸으며 세상 변화시키고 싶어…”
한인 최초로 미국 본토 직선 시장 된 최준희

최준희씨는 당선 후 아시아인을 위한 시장이 아닌 에디슨 전체 시민을 위한 시장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브래들리 전 의원의 책을 읽으며 정치에 관한 꿈을 키워갔다. 브래들리 전 의원은 이번 선거운동 기간 중에 몇 차례나 준최 후보 캠프를 방문하는 등 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정치권에 입문한 배경에 대해 그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가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 교포사회에서는 최씨처럼 이른바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2세들이 많지만 정치권에 진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소수계 중의 소수계’로 통하는 한인으로 정치권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똑똑한 2세들은 대체로 안정적이고 소득이 높은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을 선호한다.
그에게도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일자리 제의가 많았지만 그는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다”며 정치권을 고집했다. 미국에서 정치권은 돈을 크게 버는 곳이 아니다. 에디슨시만 해도 시장 연봉이 5만 달러(약 5천만원)다.
아직 미혼으로 미남형인 최씨는 한국말은 서툰 편이다. 특히 ‘생활 한국어’가 아닌 복잡한 내용이 있는 한국어는 잘 구사하지 못한다. 따라서 공식석상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그가 자란 에디슨시에는 한국인들이 거의 없어 한국말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한국인 밀집지역이 아닌 곳에서 자라 다양한 배경과 문화적 경험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점은 오히려 미국에서 정치를 하는 데 있어 자산으로 작용했다.
어머니 홍정자씨(62)는 아들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정이 많고 봉사정신이 강해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했다”며 “처음에는 ‘편한 일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며 반대했지만 아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만큼 도와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고 했다.
최씨는 당선 직후 ‘한인 출신 시장’이나 ‘아시안 출신 시장’이라는 점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점에 대해 경계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기자들과 만나 “미국 땅에서 동포들이 진정한 미국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아시아인만을 위한 시장이 아닌 에디슨 전체 시민의 시장이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에디슨시는 연간 예산이 약 1억 달러(약 1천억원)에 공무원 숫자만 해도 1천7백 명에 이른다. 최씨는 행정 경험에 있어서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그러나 중부 뉴저지 지역 유력 지방지인 ‘스타레저’가 그에 대한 지지 사설에서 밝혔듯이 ‘개혁’과 ‘변화’를 상징하는 최 당선자가 에디슨 행정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성동아 2005년 12월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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