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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아이 손잡고

청계천 소재 소설 펴낸 작가 고은주와 두 딸의 청계천 나들이

“청계천 물줄기 따라 걸으며 다양한 볼거리 설명해줘요”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5.11.15 18:28:00

청계천 복원에 맞춰 청계천 다리 가운데 하나인 광통교를 소재로 한 소설 ‘시간의 다리’를 펴낸 고은주씨가 두 딸과 함께 청계천을 찾았다. 청계천의 볼거리들을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주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고은주씨 가족의 특별한 나들이를 따라가보았다.
청계천 소재 소설 펴낸 작가 고은주와 두 딸의 청계천 나들이

“아이들과 새로 복원된 청계천에 처음 나와봐요. 아니, 나들이 자체가 오랜만이네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무척 신나해요.”
지난 10월13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작가 고은주씨(39)가 두 딸 신재윤(10), 재오(6) 자매와 함께 나타났다. 그동안 고씨는 청계천 복원에 맞춰 기획된 소설 ‘시간의 다리’를 집필하느라 아이들과 놀아줄 틈이 없었다고 한다.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하얀 타이즈에 까만 구두를 신은 재윤이와 재오는 청계천 시작 부분에 있는 ‘청계광장’에 들어서자 마냥 신나는지 이리저리 내달린다.
“엄마, 여기 조그만 시냇물이 흘러요.”
재윤이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청계광장 바닥에 청계천을 133분의 1 크기로 축소한 길이 60m의 ‘청계 미니어처’였다. 이내 청계 미니어처 사이를 고무줄 놀이하듯 폴짝 폴짝 뛰다가 분수대 쪽으로 다가간다.
“와아! 물방울들이 불꽃축제를 하는 것 같아요.”
원형의 슈터분수와 촛불 형태의 분수 앞에서 재윤이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모른다.
“그동안 이곳 청계천을 시멘트로 덮어놨는데 이번에 새로 공사를 해서 47년 만에 다시 물이 흐르게 된 거란다.”
엄마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재윤이와 달리 호기심을 주체 못해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는 재오의 모습은 마치 바람개비 같다.

정월 보름이면 남녀노소 청계천 12개 다리 건너며 1년의 건강 기원
청계천 소재 소설 펴낸 작가 고은주와 두 딸의 청계천 나들이

북적이는 인파를 헤치고 재오가 먼저 도착한 곳은 ‘광통교’. 이 다리는 폭 15m, 길이 13m로 청계천 다리 가운데 가장 크다. 지난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땅에 묻혀 있다가 원래 있었던 자리에서 150m 이전해 원형 그대로 복원됐다. 옛날에는 ‘대광교’ ‘광교’로 많이 불렀고 청계천 지류에 있던 소광통교와 구분해서 ‘대광통교’나 ‘북광통교’라고도 했다.
광통교 아래 신장석 부근에서 고씨는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을 불렀다.
“재윤아, 저기 구름무늬 보이지. 구름 가운데 이렇게 두 손을 모으고 있는 할아버지 보여?”
“네, 보여요.”
“이 할아버지를 ‘화엄신장’이라고 불러. 가슴에 두 손을 이렇게 모으는 것을 합장이라고 하는데, 저기 왼쪽 위에 있는 돌 좀 봐.”
“어? 할아버지가 거꾸로 서 있어요!”
“응, 이런 돌을 신장석이라고 하는데 맨 처음 다리를 만든 사람이 예쁘게 잘 조각된 신장석은 똑바로 세워놓고 그렇지 못한 신장석은 저렇게 거꾸로 돌려놓았대.”

청계천 소재 소설 펴낸 작가 고은주와 두 딸의 청계천 나들이

그가 최근 펴낸 소설 ‘시간의 다리’는 조선시대 광교를 주요 무대로 삼았고, 현재 광통교를 떠받치고 있는 신장석이 중요한 모티프가 됐다.
마흔한 살의 평범한 은행원 이성계는 전생에 그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였다고 주장하는 내레이터 모델 강자영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자영은 청계천과 경복궁, 남대문 등을 돌아다니며 성계에게 그의 전생을 떠올리려 하지만, 성계는 도무지 과거나 전생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연애도사 성계는 오로지 자영과 언제 침실에 드느냐가 중요한 관심사일 뿐이다.
6백년 전 태조 이성계와 계비 신덕왕후가 과연 21세기 청춘남녀로 환생했는지 여부는 모호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성계에게 알리기 위해 애쓰는 자영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관심 밖에 두었던 역사의 뒷얘기와 광통교를 둘러싼 이채로운 풍속사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저 다리는 당신이 도성을 건설할 때 흙과 나무로 만든 거예요. 하지만 태종10년 여름에 큰비가 내려 다리가 쓸려가버리자 돌을 이용해서 새로 지었죠. 그때, 내 무덤 터에 있던 묘석들을 가져다 썼어요. 병풍석이었던 열두 개의 신장석은 다리받침 삼아 축대로 만들었고 난간석과 바닥석은 다리의 난간과 바닥으로 만들었죠. 내 무덤의 돌들은 그렇게 조선 최초의 돌다리가 되었던 것이에요.’ (‘시간의 다리’ 중에서)
태종이 계모의 무덤 돌을 뽑아서 다리를 놓은 이유는 혼백마저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도록 하겠다는 일종의 분풀이였다. 그런데 이 다리 위에서 펼쳐진 조선시대 풍속도는 태종의 분노나 신덕왕후 혼백이 가진 원한과는 무관하게 자못 화려하고 장엄했다.
“궁궐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남북대로가 청계천과 만나던 그 일대를 ‘광통방’이라 불렀는데, 넓게 통하는 지역이라는 뜻이죠.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정월 대보름 무렵 사람들은 저 차가 다니는 광교에서 연을 날렸고,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연등놀이를 벌였어요. 불교를 억제하던 때라 나라에서는 폐지하라고 했지만 연등행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요.”
조선시대 무렵만 해도 청계천의 다리는 총 12개. 사람들은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광교뿐 아니라 수표교, 장통교, 모전교, 효경교 등 일 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열두 개의 다리를 밟으며 한 해의 건강을 기원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자정이 다다른 시각에 흥에 겨워 답교놀이를 했던 사람들 중 절반은 ‘여성’이었다는 사실.
“조선 초기까지는 여자들도 자유로운 편이었어요. 중기 이후에도 장옷을 입고 나올 수 있었고요. 정월 대보름에는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됐기 때문에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밤새워 풍악을 울리고 노래를 했다고 전해져요.”

고씨가 들려주는 ‘살아 있는 과거’를 눈앞에 그리며 청계천 물줄기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아담한 징검다리가 나온다. 아직 시간에 마모된 흔적이 없는 ‘새내기 다리’지만 인기는 광통교 못지않다. 징검다리를 스치는 물줄기가 제법 세찬데도 사람들은 너도나도 징검다리를 밟으려고 줄을 길게 섰다. 재윤이와 재오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고기가 살까? 안 살까?”
물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재윤이의 눈이 맑다. 청계천은 작은 물고기가 살기에는 수초도 없고 물의 흐름도 지나치게 빠르다. 그래도 아이들은 손으로 당장 피라미라도 잡을 것처럼 흐르는 물살을 쥐락펴락한다. 자연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놀이터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청계천 가장자리를 장식한 식물 또한 ‘생태교육’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겐 친근한 놀잇감이다. 엄마가 잠시 한눈을 팔기만 하면 무조건 앞으로 내달리는 재오.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으로 뾰족하고 둥그런 식물들을 톡톡 건드리는가 싶더니 ‘벌개미취’라고 쓰인 팻말 앞에서 글 읽기를 시작했다.
“저, 한글 잘 읽어요. 벌. 개. 미. 취.”
요즘 글눈이 조금씩 뜨여가고 있기 때문일까. 이번엔 ‘털부처꽃’ 팻말 쪽으로 냉큼 달려가더니만 고개를 갸우뚱한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여러 가지 단어의 조합이 재오 입에서 흘러나왔다.
“제 동생은요, 저렇게 모르는 글씨가 나오면 저 혼자서 말을 막 만들어내는 게 취미예요.”
청계천 복원을 둘러싸고 어른들 사이에선 말이 많았지만 아이들 귀엔 그런 잡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나보다. 시원한 물소리와 아담한 꽃들의 손짓에 무척 행복해하는 얼굴이었다.



청계천 벽면에 마련된 각종 미술품과 설치물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
청계천 소재 소설 펴낸 작가 고은주와 두 딸의 청계천 나들이

광통교, 화엄신장, 정조반차도, 버들습지, 소망의 벽, 리듬벽천 등 청계천의 다양한 볼거리들(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청계천 벽면에 마련된 각종 미술품과 설치물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재윤이와 재오가 찾은 날에는 꽃 공예 전시물이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정조반차도’ ‘리듬벽천’ ‘소망의 벽’도 놓치지 말고 봐야 할 청계천의 명물.
정조반차도는 길이 186m, 높이 2.4m의 대형 도자작품으로 정조대왕이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화성(경기도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에 다녀온 8일간의 행차를 담은 그림이다. 총 1천7백79명의 사람과 말 7백79필이 행진하는 모습을 고풍스런 색채로 표현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긴 벽화’라는 기록을 세웠다.
리듬벽천은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 청계천 남안에 높이 5m, 폭 20m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벽 상단에서 물이 흘러넘쳐 대리석 벽을 타고 흘러내리게끔 했다. 소망의 벽은 세라믹 자기질 타일벽화로 국민 2만여 명이 만남과 화합,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각종 메시지와 그림 등으로 표현했는데 광역시·도, 이북 5도민, 재외동포 등 국내외 각지에서 작품을 접수받아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청계천 마지막 다리인 고산자교 하류에는 청계천 전체 구간을 통틀어 가장 자연적인 생태를 잘 살린 공간으로 꼽히는 ‘버들습지’가 있다. 간혹 청둥오리, 백로 등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예쁜 조명이 불을 밝히는 밤에는 주변 풍경이 훨씬 운치 있다고 한다. 재윤이와 재오는 휴일 밤에 아빠와 다시 청계천의 명소를 찾기로 엄마와 약속하고 쉴 만한 조용한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계천을 소재로 한 소설 시리즈 ‘맑은내 소설선’ 가운데 김별아씨의 작품 ‘영영 이별 영 이별’이 지난 7월 가장 먼저 출간되었는가 하면 고씨의 ‘시간의 다리’는 10월 초쯤 마지막으로 출간됐다. 원고 마감에 지각한 그의 변명이 그럴듯했다.

청계천 소재 소설 펴낸 작가 고은주와 두 딸의 청계천 나들이

“맑은내 소설선 기획에 성실하려고 소설 쓰는 내내 노력했어요. 지인들이 ‘왜 이렇게 원고를 늦게 쓰느냐’고 닦달하면 ‘모범적으로 쓰느라 늦었다’고 되레 큰 소리를 쳤죠.”
그도 그럴 것이 장편소설 ‘여자의 계절’, 소설집 ‘칵테일 슈가’ 등을 통해 ‘연애소설 제조기’로 알려진 그가 생전 처음 역사소설을 손에 붙들고 이만저만 고생을 한 게 아니었던 것.
“꼬박 1백일 동안 소설을 썼는데 친구도 안 만났어요. 역사소설은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소재에 집착해 다큐멘터리로 치달을 수 있거든요. 제 작품이지만 쓸 때마다 항상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고요.”
그는 평소 역사소설에 대해 냉담한 입장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인물 창조보다는 이미 존재했던 인물의 캐릭터를 활용한 작품은 퇴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직접 역사소설을 집필하면서 자신의 시야가 확 넓어지는 느낌이었다고.
“텔레비전 드라마도 사극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현재적인 것에 늘 관심이 많고 ‘상상할 것이 아직도 많은 것 같은데 왜 역사를 작품의 소재로 하지?’ 하며 반감이 컸죠. 그런데 이번에 광통교의 신장석, 종묘의 박석 등 시간의 흔적이 담긴 오래된 돌을 유심히 보면서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하찮은 돌도 ‘관심’을 가지면 ‘느낌’이 온다는 것이 그의 고백인데, 고씨는 ‘시간의 다리’를 집필하면서 나이 어린 독자들을 염두에 두었다.
“중학생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어요. 특히 엄마가 먼저 소설을 읽어보고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청계천 탐방을 하면 좋을 만한 이야기가 많아요.”
MBC 아나운서 출신인 그는 95년 단편소설 ‘떠오르는 섬’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99년 ‘아름다운 여름’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성동아 2005년 11월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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