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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다시 찾은 행복

29세 연하 몽골 여성과 결혼해 늦둥이 딸 얻은 유퉁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에 만난 아내와 늦둥이 딸의 재롱보면서 삶의 의욕 느껴요”

기획·김명희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5.11.02 16:08:00

연극인, 영화배우, 탤런트, 화가, 가수, 국밥집 사장까지 다양한 직함을 가진 유퉁이 뒤늦게 세상사는 재미에 푹 빠졌다. 29세 연하 몽골 여대생과 사랑에 빠져 지난 여름 늦둥이를 얻었기 때문. 전 재산을 사기당하고 이혼까지 한 뒤 죽을 생각으로 찾아간 몽골에서 운명처럼 만난 어린 아내, 늦둥이 딸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취재했다.
29세 연하 몽골 여성과 결혼해 늦둥이 딸 얻은 유퉁

대구시 북구 동천동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탤런트 유퉁(48)의 국밥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아줌마 팬들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29세 연하의 몽골 여성 바상 자르갈씨(19·한국이름 자가)와 결혼, 지난 여름 딸 다예를 얻은 그는 매일 국밥집에 나와 가마솥에 국을 끓이고 직접 손님상에 서빙을 하고 틈이 나면 이처럼 그림을 그린다. 국밥집 곳곳에는 그가 그리고 꾸민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그의 국밥집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닌 갤러리인 셈. 취미로 그린 것 치고는 작품이 좋다며 여기저기서 그림을 달라는 사람도 있지만 순전히 국밥집 손님들을 위해 재주와 꿈을 나누는 것이기에 팔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국밥을 먹고 나오던 한 중년 주부가 “딸은 잘 크느냐, 예쁘냐”고 묻자 그는 “손도 예쁘고 발도 예쁘고 모든 것이 다 예뻐서 이름도 ‘다예’라고 지었다”며 웃는다.
사실 그에게는 다예 위로 아들 둘이 더 있다. 열아홉에 결혼해 큰 아들이 29세, 작은 아들이 27세가 되었다. 그때는 어머니와 누나가 길러줘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잘 몰랐다는 유퉁은 그런 의미에서 다예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첫 아이’라고 말한다.

이민 떠났던 뉴질랜드에서 전 재산 날리고 죽음의 유혹 느껴
“아들만 있다가 이번에 딸을 얻게 돼서 더 기뻐요. 다예가 재롱떠는 걸 보면서 ‘행복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새삼 느끼죠.”
사실 그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 오랫동안 앓아온 당뇨로 인해 말초 신경에 문제가 생겨 오른쪽 눈이 침침하고 발 상태도 좋지 않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혈당이 올라갔다며 잠시 양해를 구하고 인슐린 주사를 놓았다.
그는 지난해 초 이민을 떠난 뉴질랜드에서 전 재산을 사기당하고 이혼까지 한 뒤 안면마비가 와서 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몽골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다예를 얻으면서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됐다고 한다.
29세 연하 몽골 여성과 결혼해 늦둥이 딸 얻은 유퉁

“자가는 제게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고 다예는 제 삶의 희망이죠. 가정을 잘 이끌어가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열심히 일해서 잘 먹이고 잘 입히죠.”
그는 자가와의 만남에 앞서 전 부인과의 이혼 경위부터 털어놓고 싶어했다. 그는 지난 2001년 18세 연하의 대구 아가씨와 결혼했다. 그때 그는 이미 열아홉에 결혼한 두 아들의 친엄마를 포함해 세 차례나 결혼을 한 처지였기에 네번째는 이번 상대야 말로 ‘진짜 운명의 여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마 전처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그렇게 헤어지지는 않았을 거에요. 연애기간까지 8년을 살면서 정관 복원 수술을 하고 불임클리닉까지 열심히 다녔는데도 아이가 없었던 걸 보면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2003년 5월 모친상을 당한 그는 그해 9월 전처와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뉴질랜드에 건물을 짓고 갤러리를 만들 꿈에 부풀었지만 이듬해인 2004년 4월 사기를 당해 재산을 모두 날리게 됐다. 이후 전처와 협의이혼을 한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생각에 자살 유혹에 시달렸다고. 그러다 마지막으로 인생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몽골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8년 전 KBS ‘도전! 지구탐험대-몽골 오지탐험’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몽골과 인연을 쌓기 시작, 몽골의 전통 씨름선수와 의형제를 맺기도 했으며 몽골 민간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죽을 결심을 한 그는 몸에 용과 호랑이, 태극마크를 문신으로 새겼다. 몽골 땅에서 자신이 죽었을 때 문신을 보고 한국 사람으로 생각하고 연락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 “유퉁이 몽골에서 조직폭력배를 한다”는 엉뚱한 오해를 낳았다고 한다.

지난 5월 한국에 들어와 혼인신고 하고 보금자리 꾸며
그는 이런 고통의 와중에 지금의 아내 자가를 만나게 되었다. 몽골 한인 교회 목사의 소개로 당시 대학 1학년생이던 자가를 만난 것.
“한국말을 잘 모르는 줄 알고 ‘참 못생겼다’고 말했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나 알아요. 나 안 예뻐요’라고 하는 거에요. 실수했다 싶었죠. 헤어지면서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는데 자가가 먼저 연락을 해 왔어요.”
처음에 자가를 이성으로 생각지 않았던 그는 두 번째 만남도 가볍게 생각했다고. 만나서 영화를 보고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이트클럽에 잠시 들렀는데 그곳에서 자가의 춤추는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여태껏 그렇게 예쁘게 춤추는 여자는 본 적이 없어요. 한 눈에 반했죠. 알고보니 몽골의 학교에서는 사교춤을 기본으로 가르친다고 하더군요. 그날 밤을 함께 보냈는데 아침에 차비하라고 돈을 주었더니 안 받으며 ‘오빠 밥 사먹어’ 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어요.”
이후 그는 울란바토르의 한 아파트에서 자가와 함께 생활했으며 지난해 12월 자가가 임신을 하자 그녀의 부모로부터 결혼을 허락받고 지난 5월 한국으로 돌아와 혼인신고를 했다고 한다. 다섯 번 결혼을 한 그는 ‘부부는 생각이 같은 사합(思合), 마음이 같은 심합(心合), 식성이 같은 식합(食合)이 맞아야 진정한 연분’인데 자가야 말로 그런 연분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가는 다예를 낳기 하루 전에도 만삭의 몸으로 무릎에 저를 눕혀 놓고 ‘오빠가 건강해야 한다’며 마사지를 해 준 여자예요. 국밥집을 열고 매출이 형편없어 걱정을 했더니 돈 보다 행복이 중요하다며 절 위로해 주더군요.”
시련 끝에 몽골에서 운명처럼 만난 사랑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는 유퉁. 때문에 그는 시간이 나면 사전을 펼쳐놓고 아내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아내 대신 다예의 기저귀를 갈아주기도 한다고 한다.
“직업이 배우이다 보니 남을 즐겁게 해줄 줄만 알았지 저를 위해서 살지 못했어요. 그런데 자가와 함께 있으면 제가 즐겁고 행복해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슨 힘으로 사는지, 요즘은 알 것 같아요.”
죽음의 문턱에서 운명처럼 만난 인연과 다시 행복한 가정을 꾸린 유퉁. 그의 가정에 늘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여성동아 2005년 11월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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