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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이혼으로 오갈 데 없는 아들 친구 돌보는 박숙자 통계청 이혼통계담당 공무원

기획·강지남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5.11.02 13:34:00

대전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통계청에서 혼인·이혼 통계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부모의 이혼으로 오갈 데 없어진 아들의 친구를 3년째 돌보고 있어 화제다. 미담의 주인공 박숙자씨는 2000년부터 노숙자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를 하는 등 불우이웃 돕기에 앞장선 공로로 지난 4월 모범공무원으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오갈 데 없는 아들 친구 돌보는 박숙자 통계청 이혼통계담당 공무원

작은아들이 먼저 친구와 함께 살기를 희망하자 넉넉치 않은 형편에도 기꺼이 허락했다는 박숙자·김석환 부부.


지난 30년 동안 통계청에서 근무해온 박숙자씨(48)는 숫자를 통해 세상의 아픈 곳을 본다. 그의 업무 중 가장 주된 것은 혼인과 이혼 통계인데, 박씨는 우리 사회의 이혼율이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이혼의 그늘 속에 남겨진 이들의 아픔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혼통계를 낼 때는 이혼으로 남겨지는 스무 살 미만의 자녀 수도 함께 집계해요. 부모의 이혼으로 결손가정의 자녀가 되는 아이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을 보면 마음 아프죠. 참고 살기보다 이혼을 택하는 시대적 흐름은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혼율이 낮아졌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이에요. 부모의 이혼이 아이에게는 큰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어른들이 잘 헤아렸으면 하고요.”
올해로 3년째, 부모의 이혼으로 오갈 데 없는 아들의 친구를 돌보게 된 일도 사정을 잘 알기에 모른 척할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작은아들 기원이(20)의 친구예요. 중학생 때부터 저희 집에 자주 놀러오곤 했는데, 작은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던 재작년에 친구를 저희 집에 와 있게 하면 안 되느냐고 묻더라고요. 부모 이혼 후 재혼한 아버지가 사고로 허리를 심하게 다치는 바람에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새어머니마저 떠나버렸대요. 아버지는 아이에게 월세방을 얻어주고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방세를 부쳐주지 못해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고 했어요.”
아들이 자기 방을 친구와 함께 쓰겠다고 하자 “아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돕고 싶어 하는데 부모가 말릴 수는 없는 일”이라며 흔쾌히 허락했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해 기원이와 친구가 대학에 나란히 합격하면서부터다. 박숙자씨 집안 역시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두 명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가 힘들었던 것.
“저희 아들만 대학에 보낼 순 없잖아요. 그래서 통계청 기독교인들의 모임인 신우회 회원들에게 이 사정을 알렸어요. 첫 등록금만 마련되면 그 다음 학비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면 되니까 도와주자, 그렇게 협조를 구했죠.”

큰아들에게 “엄마, 존경해요”라는 말 들었을 때 가장 기뻐
박숙자씨의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것은 그 혼자 7년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기 때문이다. 2000년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7년 동안 치매를 앓아 남편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시어머니의 간호를 전담했다. 하지만 박씨는 돈보다 사람의 도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물론 한 푼 두 푼 저축해 집을 사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사람의 도리를 다 하지 않고 모은 돈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박숙자씨에게 큰아들은 “엄마, 존경해요”라고 말하며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박숙자씨는 큰아들에게서 그 말을 들은 순간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는 그는 “부나 명예를 소유한 그 어떤 사람의 인생보다 자식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듣는 사람의 인생이 훨씬 값진 것 아니겠어요”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박숙자씨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본격적으로 불우이웃 돕기에 나섰다. 2000년부터 한 달에 이틀을 노숙자에게 무료로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새나루 공동체(대전 동구 삼성동)를 찾아가 배식과 설거지, 청소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오갈 데 없는 아들 친구 돌보는 박숙자 통계청 이혼통계담당 공무원

이뿐만 아니라 박숙자씨는 기회 닿는 대로 사정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도왔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살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생활이 어려워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는 사정에 처한 것을 알고는 팔을 걷어붙이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녀 학비보조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몇 해 전에는 병원에서 우연히 싸움으로 손을 다쳐 입원한 고등학생과 인연을 맺어 자립의 기회를 제공했다.
“보호자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아이 얼굴에 웃음을 찾아주고 싶어 다가갔지만 아이는 저를 퉁명스럽게 대했어요. 그 아이가 퇴원하고 나서 연락해보았더니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더라고요. 자립하여 혼자 힘으로 살아갈 준비가 절실히 필요한 아이였죠. 사방으로 수소문해 서울에 있는 청소년 직업학교를 알선해주었어요. 지금은 직업학교를 수료하고 학교에서 소개해준 회사에 다니고 있지요.”
불우한 이웃과 결손가정 아이를 끌어안는 박숙자씨의 따스한 사랑은 쉬쉬하며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입소문으로 점차 퍼져나갔다. 그간의 선행이 알려져 지난 4월 ‘숨은 모범공무원’으로 선정돼 대통령상까지 받게 됐다.
사실 박숙자씨는 인터뷰에 응하기 전에 몇 번이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져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작은아들의 친구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 그럼에도 결국 인터뷰에 응한 것은 주부들에게 오는 11월 실시되는 ‘2005 인구주택총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인구주택총조사는 우리나라의 모든 인구와 주택의 총수, 개별 특성을 파악해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고 강조하는 그를 보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온 그의 30년 공무원 생활 또한 짐작이 됐다.

여성동아 2005년 11월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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