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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아름다운 황혼

수채화 같은 그림 인생 담은 에세이 펴낸 박정희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정경택 기자, 미다스북스 제공

입력 2005.10.11 17:25:00

요즘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육아일기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60년 전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육아일기’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다섯 아이를 기르며 직접 그림을 그리고 육아일기를 썼던 박정희 할머니. 남다른 자식 사랑과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의 수채화처럼 맑은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수채화 같은 그림 인생 담은 에세이 펴낸 박정희

‘육아일기’란 개념도 없던 60년 전에 5남매의 육아일기를 쓴 어머니가 있다.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에서 3년 간 교사로 근무하다 1944년 내과의사인 남편 유영호씨(87)와 결혼해 1남4녀를 둔 박정희 할머니(82)가 바로 그 주인공. 할머니는 최근 60년 전 육아일기를 쓰고 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을 담아 ‘나의 수채화 인생’이란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수채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인천에 있는 ‘평안 수채화의 집’을 찾았다. 3층짜리 오래된 회색 건물 1층에 마련돼 있는데, 원래 이 건물은 남편인 유영호 할아버지가 평생 동안 운영하던 병원이었다고 한다. 나무로 된 간판도 ‘평안의원’이라고 새겨져 있던 것 뒤에 다시 글씨를 새겨 건 것이라고.
“남편이 지난해 여름 의식을 잃고 쓰러져 두 달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어요. 다행히 점점 회복되어서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하루의 3분의 2를 누워서 지내요. 그전에는 남편이 환자를 돌봐 번 돈으로 살림을 꾸렸는데, 이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제가 사람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어요.”
할머니는 자식들한테 의지하지 않고 아직 당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내내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잘 모르는 한글 배워가면서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일기 써
수채화 같은 그림 인생 담은 에세이 펴낸 박정희

박정희 할머니는 육아일기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다섯 남매에게 각각 태어난 날과 시, 이름의 의미, 좋아하는 장남감과 음식 등을 기록하고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려넣은 책을 만들어주었다. 사진은 둘째 현애씨의 육아일기중 일부.


수업이 끝난 후 시간의 여유가 생긴 할머니가 헝겊 주머니를 하나 들고 왔다. 낡고 빛바랜 다섯 권의 육아일기였다.
“원래는 아이들 출가할 때 다 나눠줬는데, 요즘 여기저기서 보여달라는 사람이 많아서 다시 가져오라고 했어요. 오랫동안 안 봤더니 나도 보고 싶더라고. 이게 우리집 보물이에요.”
자녀들의 낡은 옷을 뜯어 그 천으로 쌌다는 표지를 넘기니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쓴 글과 직접 그려 넣은 그림들이 펼쳐진다. 아이를 낳은 날과 시간,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가족들의 모습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과 음식, 아이들이 태어날 당시 우리나라의 정세며 학창시절 담임선생님들의 이름 등이 기록되어 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육아일기라는 것이 흔치 않던 때, 어떻게 이런 걸 쓸 생각이 들었냐고 묻자 할머니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귀중해서”라고 대답한다. “아빠와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신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는 것. 그러면서 할머니는 “아이를 낳아 기를 땐 어머니의 머리가 최고로 잘 돌아가는 거 같다”며 “그 당시에는 머리에서 지혜가 막 샘솟았다”고 덧붙인다.
“우리 큰사위가 그러는 거예요.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장모님이 만들어주신 아내의 육아일기를 본다고. 그러면 ‘아, 잘못했구나’ 한대요.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사람한테 잘못하면 안 되겠구나 싶더래요. 그 얘기 들었을 때 내가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채화 같은 그림 인생 담은 에세이 펴낸 박정희

박정희 할머니는 여든이 넘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수채화를 그리며 바쁘게 살고 있다.


할머니의 육아일기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둘째 딸 현애씨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였다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현애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거예요. 국어시간에 선생님께서 ‘너희들 중에 자기 손으로 쓴 일기 말고 자기의 일을 누가 써주신 일이 있는 사람?’ 하셔서, 다른 아이들도 들겠지 생각하고 손을 들었는데 저 혼자였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셔서 ‘어머니께서 아기 때부터 학교 가기 전까지의 일을 써주셨다’고 했더니 내일 가지고 올 수 있느냐고 하시더래요. 그렇게 해서 ‘현애’라는 이름이 붙은 조그만 기록물이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선보였고 우리 모녀는 유명해졌죠.”
사실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때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글을 잘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배워가면서 육아일기를 썼다고. 할머니는 맞춤법이 엉망이고 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다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할머니의 육아일기가 더욱 훌륭해 보였다.

順愛. 순할 순, 사랑 애. 어머니가 지었다. 얼골이 거므스레하고 눈은 새까맣고 어찌 밉게 생겼는지 아버지는 ‘잿내비’라고 별명을 지어 네가 서너살 된 후 곳잘 “잿내비!”하고 웃어댔다. “양반에 자식은 낫자란다고 퍽 예뻐졌다”고 보는 이마다 네가 커가면서 예뻐진다고 하시는 것을 보니 갓 나서는 몹시 낯서렀든 모양이다. 順愛. 순하고도 힘을 간직한 사랑의 행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유순애라고 불러보면 얼마나 듯기 좋은지 모르겠다.(넷째 딸 순애의 육아일기 중에서)

너를 낫는 시간에는 당미(나의 외가) 가서 안 계셨으나 갖나서의 너를 씻겨주시고 입혀주시고 또 좀 큰 후까지도 길러주신 외할머니는 네가 늘 따르고 “내 할머니야”라고 하듯이 참 현애의 할머니셨다. 교회생활에나 또 개인적으로도 몹시 바쁘신(침으로 환자를 고치셨다) 생활이셨으나 너히들을 곱게 거두어주시느라고 옛날 색흥겁을 꺼내어 저고리도 마련해주시고 수버선도 손수 해신켜주시고 세-타도 떠입혀주시곤 하였다. 네가 울어서 온 집안이 밉다고 해도 외할머니는 너를 덮어주시고 사랑해주셨다.(둘째 딸 현애의 육아일기 중에서)



잘 모르는 한글을 배워가면서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일기를 쓰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맞춤법이 조금 틀리고 문장이 조금 매끄럽지 않으면 어떤가. 구석구석 배어 있는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내가 육아일기를 쓰는 날이 우리집 가족 행사 날이었어요. 명애책(당시에는 육아일기라는 말이 없어 할머니는 아이들 이름에다 책이란 말을 붙여 불렀다고 한다) 가지고 와, 현애책 가지고 와 하면 아이들이 모두 쪼르르 모여들었어요. 그리고 옆에서 ‘어디 누구 것은 어머니가 뭐라고 써주시나’ 하고 눈을 빛내며 지켜봤죠. 얼마나 재밌고 즐거운 일이었는지 몰라요.”

예순다섯에 화가로 정식 데뷔, 앞으로 동화책 쓰고 싶어

육아일기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할머니는 수채화가로도 활동하며 이름을 알려왔다. 비록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았고, 예순 다섯이 되던 해 정식으로 화가가 되었다.

“저희 아버지는 한글 점자 창안자인 송암 박두성 선생님이에요. 앞 못 보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평생 하셨는데, 그 일이란 게 거의 무료 봉사에 가까웠어요. 그러니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죠. 솔직히 먹고 살기도 빠듯했어요. 그래서 미술 지도를 받게 해달라고 부모님께 말을 못했어요.”
그래도 할머니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황홀하고 행복하다”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계속 독학으로 그림 그리는 법을 익히면서 열심히 한우물을 팠고, 예순이 넘어서 한국수채화협회 공모전에서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면서 화가로 정식 데뷔했다. 그 후 여러 차례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맹인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고. 같은 길을 가고 있는 큰딸 유명애씨와 수채화 모녀전을 열기도 했다. 명애씨 역시 수채화가로 활동 중인데 지금은 서울에 있는 진흥아트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 세상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 모두 아름답지 않아요? 그걸 보고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지요. 어쩌면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관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노년이 되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늦게 시작한 만큼 남은 생 동안 더 많이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릴 것이고, 또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전파할 거라고 말했다. “눈이 보여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그림을 가르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있어 감사하다”는 할머니는 숨겨둔 또 다른 소망이 하나 있다고 귀띔했다. 바로 동화책을 펴내는 것.
육아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더불어 틈틈이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써왔는데 한번은 자신이 쓴 동화를 책으로 낼 양으로 출판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거절을 당했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죽기 전에 정말 좋은 동화 한 편 써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러면 그때 그 출판사 사람은 땅을 치고 후회할 거야, 그렇지요?”라고 말하며 마치 그 일을 지금 막 이룬 것처럼 즐거워했다.
“언젠가 친한 분이 그러는 거예요. ‘그 나이에도 여전히 바쁘시다니 정말 행복하신 겁니다. 모두들 무료해서 아주 고통스러워한답니다’라고. 맞는 말이에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늘 심심한 것이라면 질색하고, 내 인생이 바빠질 수 있는 길에 힘써 온 것 같아요.”
문득,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라는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의 저자 스코트 니어링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박정희 할머니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찾은 분이다. 그래서 그 삶이 더욱 아름다운지 모른다.

여성동아 2005년 10월 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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