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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시련을 딛고

암투병, 전 남편과의 소송 등 시련 딛고 배우로 활동 재개한 오미희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불행 겪겠지만 기쁜 일도 그만큼 생기리라 믿어요”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5.10.05 16:44:00

암투병으로, 재혼한 전 남편과의 7년여에 걸친 이혼 관련 소송으로 몸 고생,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던 오미희가 오랜만에 연기에 복귀했다. 그가 시련을 딛고 새 삶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과 딸 혜리와 뒤늦게 알콩달콩 모녀의 정을 쌓아가는 잔잔한 행복을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암투병, 전 남편과의 소송 등 시련 딛고 배우로 활동 재개한 오미희

연기자보다는 라디오 DJ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오미희(47)가 데뷔 후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0월 개봉하는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오드리 헵번을 닮았다고 믿는 무명배우로 출연해 자신을 짝사랑하는 구두쇠 부자 노인(주현)과 중년의 사랑을 연기하는 것.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무척 밝아 보였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97년 재혼했던 전 남편과의 이혼과 관련된 각종 소송이 지리하게 이어져 마음고생을 했는데, 이제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카메라 앞에 선 게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영화는 처음이고 드라마도 2001년 SBS ‘그래도 사랑해’가 마지막이었는데, 그 드라마조차도 5년 만에 출연했던 거였죠. 이번 영화는 그만큼 제게는 화려한 외출, 색다른 경험이에요.”
그가 영화 출연 제의를 받은 것은 지난 2월. 옷가게에서 오드리 헵번 스타일의 스커트를 입어보고 있는데 영화사에서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자신 없다’며 거절을 하려다 “오드리 헵번 같은 역할”이라는 말에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대본을 보내달라고 했다고.
“오드리 헵번과 일부 닮은 점을 가지고 전부 닮았다고 믿는 여자예요. 그래서 지금은 비록 단역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톱스타가 될 거라는 꿈을 가진 무명배우인데, 포장마차 주인을 연기하러 가면서도 오드리 헵번처럼 온갖 멋을 내는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는 시나리오를 읽으며 무명배우가 자신의 분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제 안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밀크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블랙커피를 마실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마치 오미희는 블랙커피를 마셔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해요. 저에게 다른 모습도 있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항암 치료와 그보다도 더 힘들었던 소송과정이 그를 한층 성숙시킨 것일까. 인터뷰 내내 그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라고 말할 만큼 여유가 넘쳐 보였다.

“인생을 힘들게 한 사람들 원망하기보다 마라톤 같은 인생 즐겁게 완주하고 싶어”
“가장 힘들었을 때는 2003년 초에 법정 소송 때문에 라디오 DJ를 그만두었을 때였어요. 청취자들에게 ‘안녕히 계세요’란 말을 할 기회조차 없이 갑자기 잘렸죠. 그땐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하나 남은 성냥개비를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라디오는 항암치료를 받을 때도 놓지 않았거든요. 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쉬는 것도 중노동이더라고요.”
그는 과거의 생채기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 드러낸다.
“혼자 있을 때 글을 써요. 제 딸이 ‘엄마는 왜 이렇게 글을 잘 써’ 할 정도로요(웃음). 그러면 전 ‘외로움이 고통이 가르쳐주고 간 언어’라고 하죠. 전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마음속은 심한 욕들로 가득 차 있는데 방송을 하면서는 ‘하늘은 참 맑고요, 사랑하기 좋은 시간이에요’ 하고 말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언제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있던 욕이 튀어나올지 몰라 겁이 나기도 했어요.”
닫혀 있던 그의 마음을 열어준 것은 지난해 열린 아테네올림픽 마라톤 경기였다고 한다. 당시 마라톤대회에서 중반까지 선두로 달리던 브라질의 리마 선수가 갑자기 튀어나온 관중에게 제지를 당해 넘어지며 페이스를 잃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새벽에 중계방송을 보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밤새 응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리마가 비행을 하듯 두 팔을 활짝 벌리며 골인 점을 지나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암투병, 전 남편과의 소송 등 시련 딛고 배우로 활동 재개한 오미희

“전 그전까지만 해도 ‘난 잘못한 게 없으니까 그런 피해를 당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리마를 보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무 잘못이 없어도 내동댕이 쳐지는 게 인생이고 그건 아무도 예상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는 걸요. 그리고 리마가 다시 일어나 묵묵히 뛰어 기쁘게 골인 점에 들어오는 것을 보며 저도 내 인생의 소풍이 끝나는 날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그는 자신이 밤새도록 마음 졸이며 리마를 응원한 것처럼 ‘오미희’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제 잘못된 선택으로 같이 아파했던 사람들이 있어요. 전에는 제 주위 사람들도 같이 힘들어한다는 걸 몰랐는데, 리마를 응원하는 저를 보며 깨달은 거죠.”
특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고 한다.
“제 이름이 아름다울 ‘미(美)’에 계집 ‘희(姬)’인데 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 제가 계집 ‘희’가 뭐냐고 하면 ‘어렸을 때 너무 예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하시곤 하셨죠.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계집 ‘희’ 대신 기쁠 ‘희(喜)’로 쓰기에 제가 ‘왜 그러시느냐’고 했더니 ‘이름 때문에 네 인생이 힘든 것 같아서 바꾼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는 그동안 아무 말도 하시지 않았지만 제가 선택을 잘못해서 겪은 불행까지도 당신의 불찰로 생각해 마음고생을 하셨던 거예요. 그날 참 많이 울었어요.”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들을 다 용서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마음으로부터 용서를 하고 나니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2001년 융모상피세포성질환으로 인해 암투병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는 건강해 보였다.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고 있는데 현재 깨끗한 상태라고 한다. 암은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병이어서 건강관리에 남다른 신경을 쓸 법도 한데 그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한 피부관리도 별다르게 하지 않는다고.
“제가 몸 고생 마음고생을 한 것에 비해 젊어 보이고 건강해 보이는 건 주말에 푹 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책을 한 아름 쌓아놓고 군것질을 하듯 이 책 저책 보는 게 참 행복해요.”

지금 가장 큰 행복은 딸 혜리에게 칭찬 듣는 것
물론 그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사람은 딸 혜리. 지금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있는 혜리는 매주 토요일이면 그의 집으로 와 자고 일요일에 함께 교회에 간다고 한다. 딸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가 한층 경쾌해졌다.
“혜리는 목소리가 참 예뻐요. 저는 간혹 매서울 때가 있는데 혜리는 한없이 고와요. 그래서 혜리의 전화를 받을 때 참 행복해요. 제가 이 말을 하면 ‘내가 누구 딸인데, 엄마 딸이잖아’ 그래요. 제가 키우지 못했는데도, 고맙죠.”
그는 혜리가 백일도 되기 전에 헤어진 후 어느 정도 자라기 전까지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딱 한번 갓난아기였을 때 첫 남편 식구들이 모두 여행을 간 사이 아이를 봐주던 사람의 도움으로 데려다 3일 동안 돌봐준 적이 있다고.
“그 조그만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재우는데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를 조몰락거리며 만지다 결국 깨워서 울렸죠(웃음). 아이의 따뜻한 체온과 침 냄새를 맡으면서 자곤 했는데, 그 후로 몸이 아프면 아이의 체온이 정말 그리웠어요. 아플 때 그렇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얼마 전, 혜리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암투병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안녕, 형아’를 봤다며 전화를 한 것.
“혜리가 ‘엄마가 그렇게 힘든 치료를 받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해’ 하며 우는데, 그 말이 얼마나 저를 치는지…. 그래서 제가 ‘너도 아픈 날이 많았을 텐데 엄마도 그때 한번도 네 옆에 못 있었어’ 하니까 ‘나는 한번도 안 아팠어’ 하는 거예요. 저도 아플 때 아이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났는데, 걔는 아플 때 또 얼마나 제 생각을 했겠어요.”

암투병, 전 남편과의 소송 등 시련 딛고 배우로 활동 재개한 오미희

오랜만에 만난 오미희는 얼굴과 말투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물론 처음부터 혜리가 그를 이해하고 지금처럼 살가웠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사춘기 때는 “엄마가 날 버렸잖아” 하며 시퍼런 비난의 칼날을 들이대기도 했는데, 당시는 그가 뭐라 변명을 하려 하면 더 반항을 해 만나기가 무서웠을 정도였다고. 차라리 딸의 비난에 침묵하자 아이의 반발하는 강도가 조금씩 낮아지더니 사춘기가 끝날 무렵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친구처럼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지낸다고.
요즘 그의 가장 큰 행복은 딸의 칭찬을 듣는 것.
“제가 음식을 하고 있으면 ‘아, 맛있는 냄새’ 하고 감탄해요. 상을 차리고 있으면 ‘아, 이 멋진 테이블 세팅’ 그러고, 먹으면서는 ‘아, 이 맛’ 하면서 감탄을 해줘요. 전 결혼하고 남편과 산 시간이 얼마 안돼 누가 제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어준 기억이 없어요. 어쩌면 처음으로 맛있게 먹어준 사람이 혜리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금요일이면 슈퍼도 갔다 오고 음식준비를 하느라 무지 바빠요(웃음).”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냐고 묻자 “외롭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고독한 사람이래요. 느끼죠. 그런데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요” 한다. 그런 그에게 또다시 사랑을 할 여유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묻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영화에서 주현 선배가 저를 지고지순하게 짝사랑하는데, 그걸 찍으면서 ‘나이 든 나를 남자들이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전에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건 제가 사랑을 할 수도 있겠다는 말이지 사랑을 하고 싶다, 그걸 선택하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저보다 혜리에게 좋은 남자친구가 생기면 좋겠어요.”
“과거에도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불행한 일들이 벌어졌듯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하지만 또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기쁜 일도 생길 거라는 여유도 갖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평온함이 느껴졌다.

여성동아 2005년 10월 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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