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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1년 보낸 김영란 대법관 & 강지원 변호사

“앞으로도 소수자·약자의 인권 지키는 데 더 적극적인 목소리 낼 거예요”

글·송화선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5.10.05 15:30:00

지난해 8월 김영란 대법관은 ‘국내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자 ‘16년 만에 탄생한 40대 대법관’으로 주목 받으며 대법원에 입성했다. 1년이 흐른 지금 그는 자신의 대법관 생활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김 대법관과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남편 강지원 변호사를 만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1년 보낸 김영란 대법관 & 강지원 변호사

지난해 8월25일은 우리나라 사법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이다. 40대 여성이던 김영란 판사(50)가 남녀차별과 연공서열의 벽을 넘어 대법관에 임명됐기 때문. ‘국내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1년을 보낸 김 대법관의 소회는 어떨까. 또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강지원 변호사(54)는 김 대법관의 지난 1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 9월 중순, 김 대법관의 경기도 분당 자택을 찾았다.
“일요일 아침부터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현관에 들어서며 김 대법관에게 첫인사를 건네자 “이미 한창 일하고 있는걸요, 뭐” 하는 답이 돌아왔다. 주말에도 보통 새벽 5시면 일어나 부엌 식탁에서 사건기록을 검토한다는 것. “이 약속 없었으면 지금도 일하고 있었을 거예요. 대법관이 된 뒤부터 새벽 5시가 이 사람의 기상시간이고, 동시에 출근시간입니다.” 옆에 있던 강 변호사가 말을 거들었다.
대법관은 판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 하지만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고 한다. 지난해 대법원이 처리한 사건은 모두 2만 건. 총 14명인 대법관 가운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이 한 사람당 약 1천7백 건씩 담당한 셈이 된다.

대법관 한 명이 처리하는 사건 수 한 해 1천7백 건, 하루 종일 사건기록에 파묻혀 살아
그래서 김 대법관은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참 많이 바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일에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할 때까지 30분 남짓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기록을 검토하고, 퇴근해서도 저녁식사와 집 근처 헬스 클럽에서의 운동, 잠깐 동안의 독서시간을 제외하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재판 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주말 역시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같은 일과가 이어졌다.
“우리나라 최고 법원의 판결문이 우리집 식탁 위에서 만들어진다면 사람들이 깜짝 놀랄 거예요(웃음). 하지만 이 사람은 출근 전, 퇴근 후 자투리 시간마다 어김없이 저곳에서 일을 합니다. 근무시간만 갖고는 엄청난 업무량을 다 소화할 수 없다는 거죠. 문제는 눈을 너무 혹사시켜서 시력이 자꾸 떨어진다는 거예요. 대법관 된 뒤 벌써 안경을 여러 번 바꿨어요. 안구건조증도 점점 심해지고.”
강 변호사의 목소리에선 부인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듬뿍 묻어났다. 하지만 정작 김 대법관을 고통스럽게 하는 건 업무량보다 ‘내가 판결을 내리면 끝’이라는 부담감이라고 한다.
“제가 내리는 결정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대법관은 소송 당사자를 직접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자료를 끊임없이 읽고 또 읽으며 최선의 결론을 찾기 위해 노력하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적지 않아요.”
판사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안타까운 사연을 절절히 적어 보내는 사건 당사자들의 글도 그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고 한다.
“형사재판의 경우 징역 10년 이상이 선고된 사건이 아니면 대법원에서 형량을 고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상고심에 올라오는 사건 가운데 상당수는 ‘징역을 줄여달라’거나 ‘벌금을 깎아달라’는 내용이죠. 기록을 읽어보면 그들의 사연이 얼마나 마음 아픈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해 벌금을 저리나 무이자로 빌려주고 나중에 갚게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어요. 하지만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대법관으로서 제가 쓸 수 있는 판결문은 ‘양형(量刑 : 형벌의 정도를 헤아려 정함)은 상고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한 문장뿐이죠. 그렇게 사건을 끝내고 나면 참 안타까워요.”
그러나 김 대법관이 이런 심리적 부담의 무게에 눌려 자신의 역할을 소홀히 한 건 아니다. 그는 대법관 임명 당시 “사회의 그늘에 있는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일하는 대법관이 되겠다”는 뜻을 밝혔고, 지난 1년 동안 이들에게 의미 있는 판결을 다수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1년 보낸 김영란 대법관 & 강지원 변호사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지난 6월, 14세 여중생을 성폭행하려 했으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군인의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한 것. 한 40대 장교가 길을 묻는 척하면서 여중생을 승용차에 태운 뒤 성폭행을 시도한 이 사건은, 여중생이 반항하는 사이 주변을 순찰하던 다른 장교가 현장을 목격하면서 미수에 그쳤고, 고등군사법원은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여중생이 팔꿈치와 무릎이 벗겨지는 정도의 작은 부상을 입었을 뿐 아니라 피해자의 아버지가 가해자와 합의해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김 대법관은 “154cm의 키에 몸무게 40kg인 피해자가 건장한 군인과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입은 상해를 경미하다고 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고, 가해자는 강간치상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우리나라 판례를 보면 자동차 안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에 대해 ‘소리 지르면 들릴 만한 거리에 아파트가 있는데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걸 보면 강간이 아니다’라고 한 것도 있어요. 그 판사는 여성들이 가해자의 협박이나 더 큰 폭력에 대한 공포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린다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제가 대법관이 된 건 여성의 시선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소수자의 시각, 피해자의 시각이 필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이런 김 대법관을 가장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이는 바로 강 변호사라고 한다. 사시 18회에 수석 합격한 뒤 오랫동안 검사로 일하다 지난 2002년 개업한 강 변호사는 김 대법관이 힘겨워할 때마다 때로는 법률 전문가로, 때로는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생의 동반자로 최선의 조언을 해준다고.
“제가 또 이 사람 웃기는 데 일가견이 있거든요. 여기저기서 들은 우스갯소리를 들려주고, 가끔은 엉뚱한 행동도 하면서 마음을 풀어지게 해요.”

남편 강 변호사의 성악 활동 뒷바라지 즐겨
사실 강 변호사는 법조계에서 소문난 ‘팔방미인’. 일반 법조인들과 달리 그는 방송 진행자, 연극배우, 성악가 등 다양한 분야로 ‘외도’하며 매번 화제를 모으곤 했다. 특히 그가 요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성악. 지난해 2월부터 성악가에게 정식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각종 음악회의 ‘명사 초청’ 코너를 통해 남다른 노래 실력을 뽐내고 있다. 이런 그의 ‘외부 활동’을 뒷바라지하는 것이 김 대법관의 여가생활 중 하나라고.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1년 보낸 김영란 대법관 & 강지원 변호사

법조인의 길을 함께 걸으며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김영란 대법관, 강지원 변호사 부부.


“어제 오후에는 한 수도권 도시가 개최한 축제에 초대받아 무대에 섰는데 마침 이 사람이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저랑 같이 갔어요. 가보니 다른 출연자들은 대부분 성악과 학생들이어서 부모가 따라왔더라고요. 제가 ‘이제부터는 당신이 내 학부모’라고 말했죠.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이 제 학부모 같기도 하더라고요. 노래 부르는 거 들으면서 ‘그건 좀 잘했다’ ‘그 노래는 다시 부르지 마라’ 같은 충고도 해주고요(웃음).”
강 변호사의 아내 자랑이 이어지자 김 대법관은 “아들 성악 가르치느라 고생이 많다. 요새는 노래 잘 못하면 레슨비 안 준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고 농담을 건네며 환히 웃었다.
사실 대법관이 되기 전 김 대법관은 책을 읽거나 영화, 전시회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생활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린 뒤 얼굴이 알려져 일상생활이 다소 불편해졌다고.
“원래는 티셔츠에 헐렁한 바지만 입고 시장에 다니곤 했는데, 갑자기 알아보는 분이 많아지니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물건을 둘러보다 가게 주인이 갑자기 알은척을 하는 바람에 필요 없는 것까지 사기도 하고(웃음). 처음엔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어느새 그런 시선들에도 익숙해져 요즘은 다시 예전처럼 자유롭게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딸과 함께 극장에 가 ‘친절한 금자씨’를 보기도 했다고.
“요즘 퇴임하시는 대법관들이 많잖아요. 그분들께 남은 우리가 하는 인사는 ‘축하드립니다’예요(웃음). 그 만큼 대법관은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은 자리거든요. 저는 인사를 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나도 임기(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며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연임할 수 있다)를 마치는 날 축하인사를 받으며 홀가분하게 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실수 없이 최선을 다해야지’ 하는 다짐을 합니다. 지난 1년을 돌아봐도 가장 자랑스러운 건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에요. 지금의 마음을 퇴임할 때까지 잊지 않고 계속 노력할 겁니다.”

여성동아 2005년 10월 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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