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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새로운 도전

5년여 준비 끝에 영화 ‘오로라 공주’로 감독 데뷔하는 방은진

“영화 개봉 후 즐거운 비명을 지를지, 폐인이 될지 벌써부터 걱정돼요”

글·최호열 기자 / 사진·김연정‘프리랜서’

입력 2005.10.05 14:22:00

연기파 배우 방은진이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그가 연출을 맡은 연쇄살인 영화 ‘오로라 공주’가 11월 개봉하는 것. 모델로 출발해 디자이너, 연극배우, 영화배우, 대학 교수를 거쳐 영화감독으로 변신하기까지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들어보았다.
5년여 준비 끝에 영화 ‘오로라 공주’로 감독 데뷔하는 방은진

영화 ‘태백산맥’ ‘301, 302’ ‘수취인불명’과 드라마 ‘바보 같은 사랑’ 등에서 색깔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방은진(40)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그가 만든 영화 ‘오로라 공주’가 오는 11월 개봉하는 것.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마지막 편집 작업에 한창인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사실 그는 인터뷰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감독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이후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한 것은 물론 지난 7월 촬영장 공개 때도 슬쩍 자리를 피했을 정도. 영화가 완성된 후에 영화로 평가받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처음엔 카메라 앞이 아닌 옆에 서 있는 게 어색했다”며 감독 데뷔 소감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 감독이 얼마나 외로운 직업인지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결정을 혼자해야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해달라고 저만 쳐다봐요. 반면 제가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려보면 아무도 없어요. 모두 저는 신경도 안 쓰고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어요(웃음). 그때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외롭다는 그의 말과 달리 함께 일한 조감독에 따르면 주인공인 엄정화와 함께 찜질방도 가며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다른 스태프들과 출연진도 “이번 영화처럼 즐겁게 촬영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촬영장 분위기가 좋았다고. 그래서일까, 그는 배우들이 자기 능력의 100% 이상 연기를 해주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제가 배우를 했기 때문에 배우들의 고충을 잘 알잖아요. 그래서 조금만 더 다그치면 더 좋은 연기가 나올 것 같은 욕심이 생기면서도 다그치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이 정도면 됐지’하고 물러서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배우들이 더 열심히 하는 거예요. 제가 ‘저 사람은 저 정도를 연기할 거야’ 하고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연기가 나오니까 정말 기뻤죠. 특히 (엄)정화가 그랬어요.”
연쇄살인범인 여주인공을 맡은 엄정화는 뜻밖의 캐스팅이란 이야기가 많다. 그 역시 ‘의외성’을 노렸다고 말한다.
“투자자들도 의아해했죠. 하지만 정화 자신이 연기 변신에 대한 욕구가 강했어요. 다른 어떤 여배우들보다도 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지와 열정을 강하게 보여주었어요. 그래서 제가 엄정화라고 하는 의외성을 살려보자고 했죠. 정화의 밝고 섹시함이 킬러의 어두운 느낌을 더 짙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제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연극할 때 돈 없어 파출부 아르바이트하기도
방은진을 보고 있으면 천생 연기자란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무심한 듯 쳐다보는 눈길에도 강한 흡인력이 있고, 작은 몸짓 하나도 의미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툭툭 털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쓸쓸함…. 그건 그가 네 살 때 부모님이 헤어지는 등 어려서부터 순탄하지 않았던 집안 환경으로 인해 외로움을 혼자 삼키는 연습에 익숙했기 때문이리라.
힘든 사춘기를 보내던 그를 붙잡은 건 연극이었다. 그가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것도 배고픈 연극을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대학에 다니며 모델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졸업 후 디자인 업체에 취직, 핸드백과 액세서리를 디자인하며 돈을 모은 후 꼭 1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대학로에 갔다. 89년 연극 ‘처제의 사생활’로 데뷔한 그는 92년 서울연극제에서 연기상을, 93년 백상 예술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윤석화의 뒤를 이을 대형 신인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연극을 할 때는 아는 언니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아르바이트로 파출부도 했어요. 돈이 떨어지면 오디오, 세탁기 같은 살림살이를 하나씩 내다 팔기도 하고요(웃음). 그러다 정 안되겠다 싶으면 부모님에게 죽는 소릴 했죠. 그러면 조금씩 보태주셨거든요.”

5년여 준비 끝에 영화 ‘오로라 공주’로 감독 데뷔하는 방은진


93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에 출연하며 영화와 인연을 맺은 그는 박철수 감독의 영화 ‘301, 302’에서 집착과 강박관념이 심한 걸식증 환자 역으로 청룡영화제와 춘사영화예술제에서 잇달아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또한 2000년에는 KBS 드라마 ‘바보 같은 사랑’으로 시청자들에게 ‘방은진’이란 이름 석 자를 강하게 각인시키기도 했다.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던 그가 영화감독으로 외도(?)를 한 이유는 뭘까. 그는 참 단순한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배우로서 전 100%를 표현했는데 감독은 50%밖에 안되었다고 하는 거예요. 또한 저는 이 연기가 더 좋았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면 다른 컷을 썼어요. 왜 그럴까 생각했죠. 내가 감독이 되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면 감독이 원하는 연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밤샘 촬영을 하는데 조명팀 막내가 지붕꼭대기에서 조명을 붙든 채 졸고 있는 게 보였다고 한다. 도대체 영화가 어떤 매력이 있기에 저렇게 고생을 하고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좋아서 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고.
“여배우로서 애매한 나이가 되었어요. 출연하려던 영화와 공연이 무산되고, 들어오는 시나리오나 배역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서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다. 98년 ‘잠롱’이란 단편영화의 조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촬영장소인 철거된 동네에 들어가서 동선에 맞게 치우고, 남산1호터널에서 차량을 통제하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고 한다. 당시 촬영 현장에 있던 크레인 기사가 부지런히 일하는 방은진을 보고 “저 연출부 누구냐? 굉장히 열심히 하는데 방은진 닮았다”고 말해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 일을 하며 영화를 만드는 전체 판을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단편영화를 찍으려고 준비하는데 드라마 ‘바보 같은 사랑’ 출연 섭외가 들어왔어요. 그걸 하는 바람에 감독 데뷔 일정이 늦춰진 거죠.”

두 차례 영화제작 무산되자 영화 인생에 대한 회의 들기도
그는 2001년부터 시나리오만 썼다고 한다. 그동안 쓴 시나리오만 1백 편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하는데, 돈 되는 일은 거의 안 하고 시나리오를 쓰며 백수처럼 지냈으니 빚이 쌓일 수밖에. 그 돈을 앞으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가 처음 감독 데뷔를 하려고 했던 작품은 마르시아스 심의 소설 ‘떨림’이었다. 하지만 각색을 하다 스스로 “너무 무겁고 거창한 예술영화” 같아 덮었다. 두 번째로 선택한 작품은 계부와 딸의 사랑을 다룬 ‘첼로’란 작품으로 그의 창작 시나리오였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쿨한 결론에 이르는 모녀의 이야기는 제작사인 이스트필름의 명계남 대표가 “돈 벌 영화”라고 자신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소 헌팅과 캐스팅까지 끝난 상태에서 남자 주인공이 약하다는 이유로 좌초되고 말았다.
“큰 충격을 받았죠. 영화감독은 내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고, 저를 한걸음 더 확장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저를 집어삼키는 형태가 되니까 내 능력은 물론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겠더라고요. 저를 믿고 1년 이상 기다리던 스태프들 볼 면목도 없고요.”
“도저히 이 땅에선 못살겠다”는 생각까지 하던 차에 강우석 감독이 불쑥 자신이 하려고 아껴두었던 시나리오라며 ‘입질’이란 작품을 건넸다고 한다.
“그때 무지하게 고민을 했어요. 내가 시나리오를 쓸 줄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남의 것으로 해야 하나 싶었거든요. 한 달 동안 고민한 끝에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1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폐인처럼 살면서 뜯어고쳐 제 것으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오로라 공주’가 만들어졌죠.”
스태프들도 그의 영화를 애타게 기다렸던 모양이다. 지난 2월 말 테스트 촬영을 하면서 별로 춥지도 않은데 감독 자리 옆에 대형 온풍기를 설치해놓고 틀어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너무 오랫동안 이날을 기다려서 테스트하는 김에 온풍기도 테스트했다”고 했다는 것. 그 말에서 자기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스태프들의 애정이 느껴져 코끝이 짠했다고 한다.



5년여 준비 끝에 영화 ‘오로라 공주’로 감독 데뷔하는 방은진

방은진은 ‘오로라공주’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1년간 아무도 안 만나고 폐인처럼 지냈다고 한다.


‘오로라 공주’는 연쇄살인범 이야기다.
“분노라는 감정을 다루고 싶었어요. 분노라는 게 결국은 지극한 신뢰와 애정이 어그러졌을 때 생기는 거잖아요. 비극의 바탕은 사랑이라는 거죠. 또한 연쇄살인범인 여자의 집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요.”
그러고 보면 그가 만들려고 했던 작품들은 흐름이 있다. ‘떨림’은 섹스, ‘첼로’는 이혼, ‘오로라 공주’는 분노로 모두 사람과의 관계, 소통의 부재를 다룬 셈이다.
“섹스는 몸과 몸이 만나는 찰나의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떨림’에선 인간은 육체를 통해서라도 소통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소통이라는 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걸 담고 싶었어요. ‘첼로’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심지어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 위에 있다는 피붙이와의 무조건적인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번 영화는 거기서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고요.”
다음 작품을 묻자 “지금 보이고 들리는 것은 지금 하는 일밖에 없어요. 다음 일은 개봉을 해야 알 것 같아요. 룰루랄라 하며 다음 영화를 만들지, 전보다 더 폐인이 될지” 하며 초조한 심경을 토로했다. 하지만 엄정화와 문성근이 출연하고,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를 제작한 이스트필름이 만든 작품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영화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93년 이혼 후 프러포즈해온 남자 없어 혼자 살 뿐
그는 지금 혼자 산다. 91년 말 결혼했다 93년 헤어진 전 남편과는 지금도 종종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고 한다.
“생일 때는 항상 전화가 와요. ‘나와라. 밥 사줄게’ 하는데 잘 만나지지는 않아요. 그 남자는 결혼도 했고 딸도 둘 있어요. 지금 만나면 그 가족들에게 뭔가 누를 끼치는 것 아닐까 싶더라고요. 저도 결혼을 했다면 마음이 편할 텐데 말이죠. 그래서 가끔 통화만 해요. 그래도 저를 걱정해주고 생각해주는 마음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전 남편에 대해 “결혼을 안 했다면 우린 더 좋은 친구로 지냈을 것”이라고 했다.
“저희는 그냥 친구였고 결혼에 대한 목표나 환상 같은 게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과 헤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제가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혼자의 삶을 산 지 벌써 12년이 넘었다. 재혼할 생각이 없는 것이냐고 하자 웃으며 “항상 열려 있다”고 말한다. 생활이 단조로워서 그랬는지 한번도 프러포즈를 받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
“남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제가 스키를 좋아하는데 스키장을 가도 내 주위엔 남자가 안 보여요. 몇 년 전에도 아는 코디네이터와 ‘남자 잡으러 가자’며 스키장에 갔다가 둘이 열심히 스키만 타다 왔어요. 내가 남자들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아닌 게야(웃음).”
영화와 연기가 좋아서 결혼을 안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그는 결혼에 대한 거부감도 없지만 당장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게 될지 자기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
“제가 가족이란 틀만 갖추지 않았지 지금도 살림은 자신이 있어요. 요리도 좋아하고 집 꾸미는 것도 좋아해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정을 꾸리고 살 거예요. 근데, 솔직히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건 민망할 것 같아요.”
그는 애완견과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20년 넘게 미국에 살고 있어 일년에 한 번 만날까 하는 정도고, 이복형제들과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연락을 안 하고 지낸다고 한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혈연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엄마와도 살갑고 그런 게 없어요. 그렇다고 남처럼 하는 것은 아니고요. 저에게 평범하고 보편적인 삶은 없는 것 같아요.”

5년여 준비 끝에 영화 ‘오로라 공주’로 감독 데뷔하는 방은진

외롭지 않느냐고 하자 그럴 사이도 없었다고 한다. 가족은 없어도 그를 챙겨주는 수양어머니와 친구, 후배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그분들과 한동안 연락도 못하고 지냈는데 이번 영화가 잘 나오면 ‘은진이가 저렇게 사느라고 그랬구나’ 하고 이해해주실 거예요.”
영화 촬영 때문에 얼굴이 많이 그을렸다. 건강과 피부 관리는 어떻게 했을까.
“전혀 못했어요. 운동은 따로 할 수 없으니까 일부러 뛰어다녀요. 계단만 보면 뛰고, 카메라에서 모니터까지 뛰어요. 얼마 전엔 모처럼 분을 바르고 촬영을 했는데 거리촬영을 하고 나니까 떡이 졌더라고요. 어느 날 거울을 보니까 ‘여자로서의 인생은 끝나는구나’ 싶더라니까요. 왜 그렇게 비참하던지…(웃음).”
그는 여배우로는 드물게 사회참여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의식 있는 배우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의 도리”라고 말하는 그가 의외의 꿈을 털어놓았다. 개를 더 많이 키우고 싶다는 것. 그것도 버려진 개들을 키우고 싶다고 한다. “영화 촬영을 하면서 버려진 개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는 그의 말에서 연쇄살인범을 다룬 ‘오로라 공주’가 따뜻한 마음을 일깨워주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동아 2005년 10월 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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