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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의 미국생활 마치고 돌아온 KBS 황수경 아나운서

“숨가쁘게 돌아가는 뉴욕에서 진짜 열정적인 인생이 뭔지 배우고 돌아왔어요”

글ㆍ김유림 기자 | 사진ㆍ조영철 기자|| ■ 장소협찬ㆍ알라또레 레스토랑 ■ 헤어 &메이크업ㆍ정현정 파라팜

입력 2005.10.05 13:16:00

남편, 아이와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KBS 황수경 아나운서가 지난 8월 1년 동안의 뉴욕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에게 미국생활 &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1년간의 미국생활 마치고 돌아온 KBS 황수경 아나운서

지난해 8월 남편, 아이와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오른 KBS 황수경 아나운서(34)가 1년 만에 귀국했다. 미국 뉴욕형사법원으로 연수를 가게 된 남편 최윤수 검사(35)를 따라 컬럼비아대 동아시아 연구소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것. 그는 미국에서 생활한 1년이 일주일처럼 느껴졌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좋아해 뉴욕 생활이 잘 맞았어요. 무엇보다도 그곳은 진정한 프로들만이 살아남는 곳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뉴욕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모여든 사람들이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뉴욕의 에너지’가 무엇인지 알겠더라고요. 브로드웨이의 수많은 극장에서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을 봐도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그들만의 프로정신이 느껴졌어요. 작고 협소한 무대에서 관객들의 호응이 적어도 열정을 다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진짜 프로가 아니었구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됐고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지난 93년 KBS 아나운서 공채로 입사해 10년 넘게 방송 진행을 해온 그는 재충전의 기회를 찾고 있던 중 남편에게 연수 기회가 오자 망설임 없이 동행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예전에도 남편에게 몇 번의 연수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가 임신 중이거나 중요한 프로그램을 맡고 있어서 도저히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이번에도 부부가 동시에 연수기회를 얻은 것은 아니어서 그는 휴직계를 내고 개인 부담으로 유학길에 오른 것이라고 한다.

“재충전하고 싶어 미국 연수 떠나는 남편 따라 자비로 오른 유학길”
유학 정착 단계에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부부는 작은 일로도 자주 다퉜는데 특히 아이를 돌보는 문제가 곧잘 부부싸움의 원인이 됐다고 한다. 남편이 연수를 받는 동안 그 역시 공부를 해야 했기에 네 살배기 아들을 유치원에 맡기고 데려오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고. 남편과 그가 격일로 아이를 책임졌는데 일터와 학교가 있는 맨해튼에서 집이 있는 뉴저지로 오는 시간이 1시간 반이나 걸려 유치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1년간의 미국생활 마치고 돌아온 KBS 황수경 아나운서

뉴욕에서 공부하며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황수경 아나운서.


“아이가 처음에는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를 썼어요. 영어를 전혀 모르니까 친구나 선생님들이 많이 낯설고 두려웠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자 말도 잘하고 스스럼없이 유치원에 가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아이가 정말 잘 하고 있는 걸로 알았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아이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는 남편과 저만큼 미국생활이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국에서 살던 얘기를 하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심지어 다시 미국 가자고 하면 싫다고 해요(웃음).”
그는 오랜만에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캠퍼스를 누비던 시간이 정말 꿈만 같았다고 말한다. 학위를 딸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원하는 수업을 마음대로 골라 들었고 점심시간 때 학생들이 주최하는 세미나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했다고. 한번은 같은 수업을 듣던 한 여학생으로부터 필기노트를 빌려달라는 제안을 받은, 가슴 뿌듯한 경험을 했다고 자랑한다. 그는 공부를 하는 내내 영어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포기할 건 포기하고 잘 들리는 수업 위주로 강의를 들었다고. 모르는 내용은 자연스럽게 옆 사람에게 묻고 교수를 찾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정치 미디어 관련 수업을 주로 들으면서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고.
“동아시아를 주제로 하는 강의에서 단 한번도 우리나라가 거론되지 않는 걸 보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그러다 한번 북핵 문제가 화두가 된 적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송을 하면서 북한에 다녀온 경험이 몇 번 있는데 당시 북한을 방문하고 느꼈던 저의 감정들을 표현하려고 해도 영어로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많더라고요.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웠죠. 한편 방송인으로서 제가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던데 제가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그는 아침마다 지옥 같은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낡고 지저분한 지하철에 갇힌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폐쇄공포증 때문에 정말 참기 힘들었다고. 자가용을 이용하기에는 도로가 너무 막히고 주차료도 비싸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교내 주차비만 한 시간에 20달러(2만원 정도)이기 때문에 차를 몰고 다닌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아이를 엄격하게 다루는 엄마, 아이 도시락 싸느라 처음으로 김밥 싸봐”
1년간의 미국생활 마치고 돌아온 KBS 황수경 아나운서

그는 결혼 후 처음으로 온전한 가정주부로 지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한다. 물론 공부하느라 모든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주말에는 가족끼리 공원에서 산책을 하거나 공연을 보러 다니며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그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내기가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아이가 처음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아침에 도시락을 싸야 했는데 그 덕에 김밥이란 걸 처음 싸봤다고 한다.
“그곳의 한국 엄마들은 아이 도시락으로 한식을 싸는 게 쉽지 않아 대신 김밥을 자주 싸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몇 번 시도해봤는데 김밥 싸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어요. 김밥 옆구리가 터지고 한 줄을 싸려고 해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더라고요. 어쩔 때는 고구마나 감자, 말도 안되는 샌드위치 등을 싸주기도 했어요(웃음). 한 달 정도 그렇게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결국 급식을 신청했죠. 아이도 아이지만 저도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싼다는 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거든요. 대신 아이와 남편에게 아침밥은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줬어요.”
그는 평소 아이를 엄격하게 다루는 편인데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런 자신의 교육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가 버릇없는 행동을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소란 피우는 걸 절대 용납하지 못하고 음식도 건강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손도 못 대게 하는데 어느 날 문득 ‘아이를 너무 옭죄는 것은 아닌가, 다양한 걸 체험해보도록 하는 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언젠가 한번은 집 근처에 살고 있던 대학동창에게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와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는데, 그날 친구 덕에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에 다녀온 아이의 반응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난생 처음 햄버거를 맛본 아이가 집에 돌아와 흥분을 감추지 못하더라는 것. 그는 새로운 맛을 경험하며 그토록 기뻐하는 아이가 가엾게 느껴지기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가 악역을 맡는 대신 아빠는 아이 편이 돼준다고 한다. 가끔 아이를 살짝 데리고 나가 아이가 먹고 싶다는 걸 사준 뒤 “엄마한테는 비밀이야”하고 말한다고.

1년 만의 방송복귀 앞두고 기대 반 걱정 반, 문화 관련 프로 맡고 싶어
1년간의 미국생활 마치고 돌아온 KBS 황수경 아나운서

컬럼비아대 동아시아 연구소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1년 동안 연수를 마친 황수경 아나운서는 오랜만에 캠퍼스를 누빈 시간이 꿈만 같았다고 말한다.


남편은 원래 6개월 정도 미국에 머물 계획이었는데 5개월이 채 안돼 귀국해야 했다고 한다. 남편이 떠나고 아이와 단둘이 남은 그는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에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3개월 뒤에는 친정어머니가 미국으로 오셔서 아이를 데리고 가셨다고 한다.
“원준이를 보내고 몇날 며칠을 울며 앓았는데 정작 원준이는 떠나는 날 공항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라고요. 그만큼 빨리 한국에 가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아이가 가고 저 혼자 2개월 정도 더 머물다 왔는데, 아이와 남편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 시간이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보고 싶은 공연도 마음껏 보러 다니고 박물관, 미술관을 찾아다니면서 싱글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만끽했거든요(웃음). 수요일에는 주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을 봤는데 타임스퀘어에 있는 티켓할인판매소에서 1백 달러짜리 티켓을 절반 가격에 사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곤 했어요. 한국에서는 공연을 보더라도 깊이 빠져들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곳에서는 배우 한명 한명을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공연의 매력에 빠져들었죠.”
그는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짐 정리를 하면서 처음으로 장사라는 걸 해봤다”며 밝게 웃었다. 가구나 전자제품들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인터넷 중고시장에 사진을 올려 되팔았다고.
“세든 아파트는 집을 비우기 전에 관리소로부터 검사를 받아야 해요. 바닥부터 천장까지 깨끗이 청소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2백~3백 달러를 주고 청소 대행업체에 맡기는데 저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저 혼자 청소를 다 했어요. 남편이 와서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바빠서 올 수가 없었어요. 돌아오는 날 인천공항에 친정 부모님이 마중 나오셨는데 아버지는 꼬질꼬질한 제 모습을 보시더니 고개를 돌리시더라고요. 1년 동안 화장을 한번도 안 했기 때문에 피부도 엉망이었고 잘 챙겨 먹지 못해서 그랬는지 몸도 많이 말랐었거든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살을 심하게 앓았는데 어머니가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해주셔서 금세 건강을 회복했어요. 덕분에 지금은 살이 많이 올랐어요.”
뉴욕의 문화와 에너지를 마음껏 즐기고 돌아온 그는 방송 복귀에 앞서 기대 반 걱정 반이라고 한다. 평소 문화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그런 성격의 프로를 맡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특히 그는 음악에 관심이 많아 언젠가 한번은 인터뷰 형식이 가미된 음악 프로를 맡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1년간의 미국생활을 통해 열정적인 인생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돌아왔다는 그는 “이번 기회를 터닝 포인트로 삼아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5년 10월 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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