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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 부부가 사는 법

오거돈·심상애 해양수산부 장관 부부가 들려준 연애담 & 결혼생활

”30년 전 미팅에서 첫 만남 2년 뒤 다시 만났을 때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글·강지남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5.09.12 15:30:00

성악가 뺨치는 노래 실력을 지녀 화제를 모은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 하지만 말더듬이에 작은 키를 지닌 오 장관은 평생을 “말 잘하는 사람, 키 큰 사람을 이겨내는 기분으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대학교 때 미팅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오 장관 부부를 만나 30년 넘도록 연애하듯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오거돈·심상애 해양수산부 장관 부부가 들려준 연애담 & 결혼생활

오거돈 장관이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 가족 사진.


콤플렉스를 자기 인생의 장애물에서 원동력으로 승화시킨 사람을 만나고 나면 하루 종일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취해 지내게 된다.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57) 부부를 만난 지난 8월11일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중증 말더듬이에다 작은 키,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부산 국제시장 고철장수의 넷째 아들은 서울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장관직까지 올랐다. 또한 첫눈에 반한 이화여대생과의 결혼에 성공, 아이 셋을 낳아 바르게 키웠다.
초등학교 시절 오거돈 장관은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국어책에 ‘내일 비가 오거든 소풍 가지 말거라’라는 문장이 나오면 아이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깔깔 웃어댔다. 오 장관의 아버지가 돈을 주고 지어온 ‘귀한 이름’이 아이들 귀엔 그저 우습게만 들렸던 것. 오 장관의 학창시절 별명은 ‘오거든 가거든’ ‘큰 돼지’ ‘빅 피그’ 등 이름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인터뷰 전 해양수산부 직원으로부터 “장관님의 요즘 별명은 공상과학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요다”라고 전해들었는데 실제 만나보니 비슷한 인상이라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오 장관은 지금도 말을 조금 더듬는다. “이, 이왕 준비한 거 과, 과일부터 먹고 사진 찍읍시다”라며 기자에게 과일을 권했다. 초등학교 때는 말더듬이 증세가 심해 문장 한 줄을 제대로 읽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일선에 배치됐을 때 더듬거리며 보고하는 그에게 짜증을 내는 선배들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오 장관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부인 심상애씨(53)에게 그의 키가 얼마냐고 슬쩍 물었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건 국가기밀인데…” 한다. 눈대중으로 짐작컨대 158cm인 그의 부인보다 작은 듯했다. 오 장관은 “평생 어딜 가든 내가 가장 작았는데, 국무회의에 가보니까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나보다 더 작은 것 같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자식들 중에 동직원 한 명 나오면 좋겠다”는 아버지 바람에 공무원의 길 선택
오거돈·심상애 해양수산부 장관 부부가 들려준 연애담 & 결혼생활

오거돈 장관은 콤플렉스 앞에서 자기 한계선을 긋는 대신 이를 뛰어넘는 도전을 택했다. 말더듬이를 고쳐볼 요량으로 6학년이 되고 나서부터 한 시간에 한 번씩 손을 번쩍번쩍 들어 발표를 하고, 합창반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 실력은 수준급. 신기하게도 노래를 부를 때는 말을 더듬지 않았는데, 그의 노래 실력은 부인 심상애씨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cyworldnate.com/ okbabe)에 들어가면 ‘부산 갈매기’ ‘우리는’ ‘잊혀진 계절’ 등 그가 부른 노래가 올려져 있는데 중후하게 울려퍼지는 음색이 성악가의 것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키는 작지만 체력 좋고 싸움 잘하는 꼬마 오거돈을 우습게 보는 친구는 없었다고 한다. 오 장관의 싸움 기술은 작은 키를 십분 활용하는 것. 작은 키를 이용해 상대의 가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넘어뜨린 다음 몸통을 올라타고 흠씬 두들겨 패 항복을 받아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6학년 형을 때려눕힌 적도 있다. 그 형 어머니가 집으로 찾아와 “대체 누가 내 아들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았냐”며 언성을 높였는데, 오 장관을 보더니 “저렇게 작은 아이한테 맞았다니 너무 창피하다”며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평생을 키 큰 사람,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을 이겨내는 기분으로 살아왔다”며 미소짓는 그에게서 세월을 통해 단단하게 다져진 자신감이 내비쳤다.
서울대 철학과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후 행정고시에 합격한 오거돈 장관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와 부산시를 오가며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0년 부산시 정무부시장, 2003년 부산광역시장 권한대행을 지내고 2004년 부산광역시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마한 뒤 올해 1월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됐다. 오 장관이 공무원이 되겠다고 맘먹은 데는 아버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오거돈·심상애 해양수산부 장관 부부가 들려준 연애담 & 결혼생활

“제 아버지는 국제시장에서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고철장수로 시작해 나중에는 철강을 생산하는 회사까지 세우신 자수성가한 분입니다. 50년대 피란민들로 들끓던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니, 동사무소 직원이나 경찰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겠어요.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자식들 중 동직원이나 경찰 한 명 나오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 영향으로 ‘국민에 봉사하는 공직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오거돈 장관은 40억원대의 재산을 가진 부자다. 철강산업으로 크게 성공한 그의 아버지는 오 장관이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무렵 그 앞으로 많은 재산을 상속시켰다. 오 장관은 “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물려주신 것은 돈에 흔들리지 말고 청백리로서 뜻을 펼치라는 당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강다리 건너며 ‘사랑의 맹세’ 노래 불러줘
“남편은 결혼을 하면서 제게 한 가지 다짐을 받아뒀어요. 재산 불릴 생각은 하지 말라고요. 70∼80년대는 아파트를 분양받기만 해도 몇 배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였잖아요. 지금도 재산 대부분은 상속받은 상태 그대로 놔두고 있어요. ‘공직자가 재산 굴리는 데 신경 써서는 안 된다’는 게 남편의 지론이거든요.”
오 장관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비단 재산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노력해 부를 축적한 부모로부터 ‘노력해서 안될 일은 없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배웠다고. 오 장관은 열 형제 중 넷째다. 열 형제가 방 한 칸에서 뒹굴다 보니 양보할 줄 아는 미덕과 함께 적극 나서서 ‘자기 몫’을 찾는 전투력을 동시에 배웠다.
“어머니가 엉엉 울면서 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돈 빌리려고 애쓰는 모습도 본 적 있어요. 단돈 10만원이 없어서 열 두 식구 생계가 달린 가게를 날릴 뻔한 위기도 있었고요. 어릴 땐 너무 가난해서 열 형제 밥상에 고작 생선 한 마리가 반찬으로 올랐는데, 생선에 젓가락을 두 번 연속으로 갖다대면 여기저기서 숟가락들이 날라와 제 머리를 때리곤 했죠(웃음).”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오 장관의 부인 심상애씨는 문화유산 해설가다. 2001년부터 박물관 강좌 등을 통해 공부한 뒤 부산시립박물관 등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부산YMCA 이사, 청소년위원회 문화분과위원장, 밝은터 이수회 후원회원 등 사회활동도 벌이고 있다.
심상애씨는 키 작고 말까지 더듬는 남자의 무엇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던 걸까. 오 장관 부부에게 각각 “상대의 무엇에 반했냐”고 물으니 그 대답이 재미있다. 먼저 오거돈 장관은 “예뻤다”며 경상도 사나이답게 짤막하게 답했다. 심상애씨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남편 눈이 선하지 않아요?”라며 기자에게 동의를 구하는데, 마치 그 모습이 갓 시집온 새색시 같았다.
71년 경기도 포천의 산정호수. 각각 30명의 서울대와 이화여대 학생들이 이곳에서 대규모 미팅행사를 가졌다. 오거돈 장관은 친한 친구의 파트너였던 심상애씨의 고운 자태가 눈에 쏙 들어왔고, 심상애씨는 산정호수에서 보트를 타면서 멋들어지게 노래 부르는 오 장관을 보며 ‘노래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년 후인 73년, 오 장관은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해군장교 임관을 얼마 앞두고 나간 미팅자리에서 심상애씨를 다시 만났다.
“둘 다 ‘이건 운명이구나’ 했어요. 그리고 데이트를 시작했는데, 한강다리에서의 데이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밤늦은 시간, 제 2한강교를 걸으면서 남편이 노래를 불러줬어요. ‘봄날에는 꽃 안개’ ‘사랑의 맹세’ 등…. 정말 멋있었어요.”
심상애씨가 추억에 잠긴 듯 이야기하자 오 장관이 옆에서 거든다.
“내가 거기서만 불러줬나? 덕수궁 돌담길, 서울대공원, 서울대 교정 등 안 간 데가 없었지.”
두 사람은 오 장관이 해군장교로 임관할 무렵 결혼했고, 1남2녀를 낳아 길렀다. 심상애씨는 여느 며느리처럼 시집살이를 했고, 여느 어머니처럼 맘고생을 하면서 아이들을 길렀다. 특히 막내인 아들 정완씨가 생후 5개월 때 가와사키병에 걸려 생명이 오락가락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80년이었던 당시 열이 41℃까지 끓어오르는데 치료법이라곤 비닐로 싼 얼음 위에 아이를 눕혀놓고 알코올로 몸을 닦아주면서 아스피린을 먹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심상애씨는 처음 남편의 눈물을 보았다고 한다. 다행히 정완씨는 건강하게 자라 고려대에 진학했고, 지금은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학업을 시작했다. 큰딸은 결혼해 아들을 낳았고, 둘째 딸은 아빠 닮아 음악에 재능이 있어 미국에서 피아니스트 박사과정을 밟는 중이라고.



매주 일요일 아침 아이들 데리고 산에 오르며 부족한 대화 나누고 예의범절 가르쳐
오거돈·심상애 해양수산부 장관 부부가 들려준 연애담 & 결혼생활

부인 심상애씨를 도와 과일접시를 내오는 오거돈 장관.


여느 아버지처럼 오 장관도 일하느라 바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진 못했다. 대신 일요일 아침 일찍 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 산에 오르면서 부족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오 장관은 “아이들 데리고 산에 다니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예의범절도 가르치게 된다”고 말한다. 산을 오르내리다 처음 만나는 어른들에게 꼬박꼬박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도록 하면서 바른 인성을 키워줄 수 있다는 것. 또 오 장관은 아이들과도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긴다. 가족끼리 차를 타고 오고 가는 길에도 노래 부르고, 엄마한테 혼이 나서 시무룩해져 있는 아이들을 달래주기 위해서도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은 아빠의 노랫가락에 화음을 넣을 정도로 그 실력이 대단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꽤나 엄격한 아버지이지만 그렇다고 생각이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에요. 아들이 대학 1학년 때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이고 부산 집에 내려와 저는 남편 입에서 큰 소리가 나올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대뜸 이랬어요. ‘머리가 노랗고 빨간 것이 무슨 상관이냐. 사람은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요.”
오거돈 장관은 “아내는 완전히 야당”이라며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항상 자신에게 “겸손해라. 너무 자신하지 마라”라며 잔소리를 하기 때문이라고.
“저도 아내가 남편 기를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자예요(웃음). 그런데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주변에서 좋은 소리만 해주잖아요. 그러다 중심을 잃을까봐 일부러 좀 못되게 말하는 건데….”
마지막으로 오 장관에게 “부부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원론적인 질문에 그 또한 원론적으로 답했지만, 요즘 세상에선 여러 번 되씹어보아야 할 ‘명답’인 것 같다.
“전 주례를 설 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란 일심동체라고요. 자기 손이 도박질을 했다고 그 손을 잘라 내버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부부도 마찬가지예요. 상대 배우자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하고 맘에 들지 않는다 해도 쉽게 떼어내버리면 안 되는 겁니다. 끝까지 상대를 믿고 신뢰하고 아껴주라고, 요즘 젊은 부부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여성동아 2005년 9월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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