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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풍‘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

“’모래시계‘ 백재희를 연상시키는 역할 맡고 9개월간 닭고기만 먹으며 ‘몸’ 만들었어요”

기획·강지남 기자 / 글·이승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 사진·’영화인‘ 제공

2005. 09. 08

영화 ’태풍‘ 마지막 촬영 장소인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는 “컴퓨터 그래픽을 한 몸 같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근육으로탄탄하게 다져진 몸매를 자랑했다. 더 이상 드라마 ’모래시계‘의 ‘백재희’ 이미지가 부담스럽지 않다는 그에게서 연기 욕심을 들어보았다.

영화 ’태풍‘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

이정재(32)의 몸이 이렇게 육감적인 줄은 몰랐다. 지난 8월초 순제작비만 1백50억 원이 들어간 블록버스터급 영화 ’태풍‘(12월 개봉)의 마지막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만난 이정재는 복부에 새겨진 왕(王)자가 비현실적일 만큼 또렷했다.
’친구‘에 이어 이 영화로 또다시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경상도 사나이 곽경택 감독은 이정재의 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CG(컴퓨터 그래픽)를 한 몸 같아요. 몸이 느무(너무) 심해. 심해도 느무 심해. 적당히 (몸을) 만들라고 했는데, 느무 잘 만들었어.”
이정재의 몸이 이 정도이다 보니 촬영장에선 재미있는 일들도 벌어진다. 이정재의 멋진 몸을 보며 혀를 내두르던 현장 스태프가 “나도 죽기 전에 이정재 같은 몸 한번 돼보고 죽어야 할 텐데”라면서 부러워하자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홍경표 촬영감독이 곧바로 한마디를 던져 웃음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넌 안돼. 지금 바로 죽어라.”
이날 촬영 장면은 이정재가 “내가 만족할 때까지 내 몸을 만든 다음 찍게 해달라”고 곽 감독에게 요청해 촬영 스케줄의 맨 마지막에 남겨뒀다는 후문이다. 이정재는 몸을 만들기 위해 ’태풍‘을 촬영하는 9개월 내내 술과 담배를 끊고 식이요법을 했다.
“하루 네 끼를 먹었어요. 첫 끼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끼는 삼계탕만 먹으며 운동을 했어요. 근육을 만드는 데는 고단백 식품인 닭고기가 좋으니까요. 첫 끼는 왜 삼계탕을 안 먹었냐고요? 하하. 새벽에 문 여는 삼계탕 집이 없더라고요.”
옆에 있던 이정재의 매니저는 “정재씨야 몸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닭만 먹었지만 애꿎은 저는 몇 달 동안 삼계탕만 먹어서 이젠 닭이란 말만 들어도 속이 뒤집혀요”라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이번에 이정재는 이를 악물고 영화 ’태풍‘에 뛰어든 것 같았다. 그는 위험한 자동차 액션 장면도 “내가 직접 하겠다”고 자원해 정말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이번 역할은 제가 제작사를 직접 찾아가 ‘무조건 맡고 싶다’고 했어요. 두세 작품할 시간에 이 작품 하나를 찍어야 할 정도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영화였지만, 이번에 남성적인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배우로서 모든 걸 걸었죠.”
영화 ’태풍‘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

이날 찍는 장면은 해군특수부대 장교인 강세종(이정재)이 부대원들과 전투적인 럭비를 하면서 체력과 우정을 다지는 영화 시작 부분이다. 2분 남짓한 장면을 위해 촬영은 4시간 가까이 진행됐지만, 이정재는 불만 한번 표시하지 않았다. 이정재는 럭비공을 품에 안은 채 상대 배우들과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부딪치며 뛰어가기를 수십 회나 반복했지만, 곽 감독은 여간해서는 만족스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정재! 상체를 숙이고 독하게, 팍팍팍팍 부딪치면서 독하게 달려. 콱 (상대를) 쳐버리고 퍽퍽 받아버려.”
곽 감독은 “마지막 촬영인데 다치면 어때”라면서 상대 배우들에게도 “이정재를 제대로 들이받으라”고 주문했다. 정말 독한 감독이었다. 무릎 깊이의 바닷물을 헤치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이정재의 허벅지는 마치 종마의 그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까무잡잡하면서도 참기름을 바른 듯 반들반들하고, 따스하면서도 단단한 그의 몸은 근육 하나하나의 짜임이 모두 눈에 들어올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얼굴에 각진 부분이 멋있어 곽경택 감독이 ‘각돌이’라는 별명 지어줘
영화 ’태풍‘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

이정재는 ‘태풍’ 촬영장에서 곽 감독으로부터 ‘각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마 턱 광대뼈 눈두덩처럼 얼굴에서 ‘각’진 부분은 하나같이 멋들어져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곽 감독은 이정재를 관찰하면서 특별한 주문을 했다고 말했다.
“이정재는 목소리 톤도, 대사를 치는 능력도 다 좋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사를 많이 하는 걸 꺼려했어요. 아마도 배우 초년병 시절에 들었던 ‘대사가 안 좋다’는 말을 너무 오래 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영화는 이정재가 ‘대사’라는 스스로의 콤플렉스를 멋지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해요.”
곽 감독은 이정재에게 눈과 이마의 근육을 특별히 많이 써서 아주 강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정사‘ ’인터뷰‘ ’시월애‘ ’선물‘ 등의 영화를 통해 이미숙, 심은하, 전지현, 이영애라는 국내 최고의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온 이정재이지만, 사실 그의 진가가 가장 빛났던 건 남자배우와 ‘투 톱’이 되어 불꽃 튀기는 기 싸움을 벌이던 영화들에서였다. 정우성과 열연했던 ’태양은 없다‘가 그랬고 정준호와 쫓고 쫓기는 운명적인 대결을 펼쳤던 ’흑수선‘이 그랬고, 이범수와 형제지간으로 등장해 관객의 배꼽을 잡게 만들면서 2003년 추석 극장가를 휩쓸었던 ’오! 브라더스‘가 또한 그러했다.
’태풍‘에서도 그는 정의감 넘치는 해군특수부대 장교 역을 맡아 해적으로 떠돌면서 한반도 전체에 끔찍한 복수를 하려는 탈북자 출신의 해적 두목 씬(장동건)과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친다.
“개인적으로는 장동건씨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연기는 자기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상대배우와 함께 하는 공동작업이니까 자기 호흡만 중요한 게 아니죠. 하지만 남자니까 뭔가 승부를 내보고 싶은 것도 있고, 제 속마음에 잠재해 있던 경쟁의식이 나올 수도 있겠죠(웃음).”
이정재는 아주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장동건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가 가진 장점보다 그 친구의 장점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건씨는 자기 감정을 이어가는 데 탁월해요. 한마디로 연기 호흡을 스스로 가지고 놀 정도죠. 촬영 현장에서는 조용하고 진지한 데다가 평소 책을 많이 읽어요.”
곽 감독은 ’태풍‘의 성공 열쇠가 ‘이정재 장동건 두 배우가 갖는 매력의 팽팽한 균형’에 있다고 보았다. 곽 감독은 시나리오상에서 두 배우가 나오는 장면 수까지 똑같도록 치밀한 장치를 만들었다. 곽 감독은 촬영에 앞서 이정재 장동건 두 배우를 불러다놓고 이렇게 “탁 깨놓고”(감독 표현) 말했다고 한다.
영화 ’태풍‘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

“느그(너희) 둘이 정확히 1대 1로 붙어야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정재가 더 멋있다’는 반응과 ‘장동건이 더 멋있다’는 반응도 50대 50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 망한다.”
하지만 이정재에겐 국내 어떤 남자배우들도 갖지 못한 강력한 장점이 있다. 그건 바로 ‘착하고 정직하다’는 이미지를 유전자처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하긴 그래요. ’태양은 없다‘에서도 저는 진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놈으로 나오죠. 하지만 어찌 보면 귀여운 느낌도 있어요. 전 직선적이고 남자다운 역할을 주로 해왔지만, 심지어 사기꾼 역할을 할 때도 심성은 ‘진짜 나쁜 놈’이 아니었죠.”

고현정에게 “드라마 함께 찍자”는 제안 받았으나 일정 맞지 않아 아쉬워
그는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도 “대단한 다혈질이에요. 직선적이죠. 일단 내 속부터 다 뒤집어 보여줘야 속이 편해요”라고 털어놓았다. ’태풍‘에서 그가 맡은 역할도 자신의 성격처럼 “강직하고 임무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캐릭터”다. 그는 정말 어떠한 질문에 대해서도 ‘상대에게 이렇게 비쳐지겠지’ 하는 것을 계산하면서 대답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때로는 질문한 사람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었다.

영화 ’태풍‘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이정재

영화 ’태풍‘의 공동 주연 장동건과 함께 선 이정재.


“흥행배우요? 전 아니에요. ’오! 브라더스‘가 흥행에 성공했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죠. 흥행을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이번 작품은 크게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제작비도 높고, 많은 스태프들이 함께 고생한 작품이니까요.”
이정재는 한 여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보디가드로 출연해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드라마 ’모래시계‘ 속 자신의 캐릭터였던 ‘백재희’를 문득 입에 올렸다.
“지금도 택시를 타거나 하면 운전기사 분들이 저를 ’모래시계‘의 ‘백재희’로 기억해줘요. 그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또 그 작품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백재희 이미지가 부담스러워서 그동안 그 이미지를 버리려고 노력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태풍‘을 만나면서 지금쯤이면 다시 그런 이미지의 역할을 해도 좋을 것 같았어요. 영화 속 강세종이란 인물은 백재희처럼 정의롭고 의리가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임무를 두고 인간적인 고민과 망설임에 빠진다는 점에서 백재희와 다소 다르죠.”
곽 감독도 이런 백재희 이미지를 얼마나 마음에 들어했던지, 이정재가 맡은 극중 인물인 강세종이 사용하는 가짜 여권에 백재희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정도.
이정재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상대역이었던 고현정과의 특별한 인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고현정씨가 연예계에 복귀하기 전과 복귀한 후에 만난 적이 있어요. 복귀 전 만났을 때 고현정씨는 걱정이 많았어요. 그동안 가정주부로 지냈고 또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났으니까 자신이 컴백하면 시청자들이 다시 자신을 사랑해줄까를 두고 고민하는 눈치였죠. 저는 ‘자신감을 가지라’면서 복귀를 권했어요. 드라마 ’봄날‘이 끝나고 얼마 전 다시 만났더니 마음이 아주 편안한 것 같았어요.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이정재는 “고현정씨가 ’봄날‘이 끝났으니 다음 드라마를 함께하자는 제안을 해왔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 정중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정말 아쉬웠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연기를 잘 모르겠어요. 뭐든 노력한 만큼 나오는 거겠지만, 연기란 게 정말 열심히 해도 그만한 결과가 안 나올 때도 있고, 또 건성건성했는데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면 할수록 힘든 게 연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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