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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대상 문학강좌에 참석한 강금실 전 장관

”틀에 맞춰 살기엔 난 너무 게으른 사람, 그 무엇보다 행복 꿈꾸며 살아요”

글·송화선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5.09.06 17:10:00

한때 ‘강효리’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연일 신문·방송의 헤드라인 뉴스를 장식했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퇴임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지난 8월 초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강 전 장관에게 궁금한 요즘 생활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일반인 대상 문학강좌에 참석한 강금실 전 장관

“추미애의원이 탱크라면 강금실 장관은 오픈카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가리기보다 드러내길 좋아하고, 군림하기보다 소통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48)이 ‘강효리’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 언론인 출신 작가 조선희씨는 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지난 2004년 7월 법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던 강 전 장관이 오랜만에, 여전히 ‘오픈카’처럼 솔직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지난 8월5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미술관 강당에서 열린 ‘금요일의 문학 이야기’에 시인 김정환씨와 함께 ‘이야기 손님’으로 참석한 것이다.
짙은 쑥색 원피스에 하얀 재킷을 받쳐 입고 커다란 귀고리를 단 강 전 장관은 특유의 화사한 미소를 띤 채 그동안의 생활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읽고, TV 수사물과 요가 즐기며 지내
현재 강 전 장관이 갖고 있는 공식 직함은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와 참여정부 여성인권대사. 법무부 장관 시절과 비교하면 책임감의 무게가 많이 가벼워졌다. 장관직에서 물러나며 “이제는 좀 놀고 싶다”고 말했던 그는 “요즘 원래 성격대로 게으르게, TV도 보고 좋아하는 책도 읽으며 지낸다”며 밝게 웃었다.
“바쁘기는 하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여유 있어요. 요새는 TV 보는 버릇이 생겨서 퇴근하고 자정 넘어서까지 계속 TV 앞에 앉아 있을 때도 있고요(웃음). 좀 규칙적으로 살아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매일 아침 자명종을 맞춰놓고 몸부림만 치다가 못 일어나요. 제가 가톨릭 신자인데, 여섯 달 동안 새벽 미사를 한 번도 못 갔어요.”
그는 “한동안은 일주일 동안 책 일곱 권을 독파할 만큼 미친 듯이 읽었는데, 그 이후 TV에 빠져 요새는 한 권도 제대로 못 읽고 있다”거나 “지난 6월에 요가학원에 등록하고 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요가를 시작하니 너무 좋다. 너도 해보라’고 했는데, 여름이 된 뒤 덥고 비가 많이 온다는 핑계로 한 번도 안 나가 민망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특별히 하는 게 없어 할 말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야기 중간 ‘하하하’ 소리가 날 만큼 유쾌하게 웃는 모습이 강 전 장관다웠다.
여유 있고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가 최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문장 하나하나마다 작가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어 좋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책에 보면 주인공이 한 대학의 잔디밭에 앉아 자신의 생각을 하나씩 끌어올리는 장면이 있어요. 그 과정을 호수 수면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물고기를 하나씩 건져올리는 모습으로 묘사하는데, 문장이 정말 기막히죠. 평소 깊이 있고 섬세한 산문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왜 이제야 읽었을까 싶을 만큼 감동했어요. 인간다움의 품격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고요. 앞으로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읽어보려고 해요.”
장관 재직 시절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춤이고, 그 다음이 노래”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을 만큼 문화 전반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강 전 장관은 “문학과 법은 진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해 있다”며 문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반인 대상 문학강좌에 참석한 강금실 전 장관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브론티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샬럿 브론티의 소설 ’제인 에어‘를 보면 여성이 차별받던 당시 시대상에 대한 작가의 울분과 주관적 감정이 폭발적으로 섞여 있지만,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티는 이미 이를 초월한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부분이죠. 좋은 글을 쓰려면 작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억압 공포 등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게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에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며 버지니아 울프의 의견에 깊이 공감했어요. 사실 사건을 다루다 보면 자신도모르는 사이에 사건 당사자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질 때가 있거든요. 법조인이 사건과 자신의 판단 사이에 적정한 거리를 두지 못하면 사물의 본질, 진실을 놓치게 돼요. ’자기만의 방‘의 매력은 작가의 깊은 성찰을 통해 읽는 이에게 이처럼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 있죠.”
강 전 장관은 요즘 연쇄살인사건이나 전생, UFO 등을 다룬 TV 프로그램도 즐겨 본다고 한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그가 얻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 너머에 있는 ‘그 무엇’에 대한 고찰이다.
“여기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가운데는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반성의 기미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범죄인도 있을 거예요. 반면 아주 훌륭한 사람도 있겠죠. 도대체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사실 인간이란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저 자신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게 됐죠. 사실 저도 뭐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는 다양한 면을 갖고 있더라고요.”
강 전 장관은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보통 때는 멀쩡하지만 한번 놀기 시작하면 그 멀쩡한 정신을 빨리 벗어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두 얼굴’의 소유자”라는 평을 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강 전 장관을 아는 이들 가운데는 그의 특징으로 ‘너무나 멀쩡함’을 드는 이들도 있다.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정당함’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의 대학 선배이기도 한 시인 김정환씨는 강 전 장관이 판사직에서 물러난 뒤 그에게 문인들을 소개해달라고 했던 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강 전 장관이 막 변호사 개업을 한 뒤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는데 불쑥 “이제 본격적으로 변론을 써야 하는데 내가 가진 법 지식만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문학하는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지만 김씨는 그날 이후 강 전 장관을 존경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법이라는 건 아무리 훌륭해도 정상의 틀을 벗어날 수 없고, 문학은 아무리 훌륭해도 비정상적인 것이잖아요. 이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깊이 관련돼 있지만,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법조인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강 전 장관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그 둘 사이의 관계를 파고들며 좀 더 나은 법을 찾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강 전 장관은 가끔씩 이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멀쩡함’으로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줘요. 그를 만날 때마다 왜 저리도 당연한 일을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반성하게 되죠.”
어쩌면 많은 이들이 강 전 장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의 이러한 ‘멀쩡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장관 재직 시절 장관은 부하 직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면 안 된다거나, 중년 여성은 ‘연애’에 대해 언급하면 안 된다는 식의 ‘비정상적인’ 금기를 너무나 ‘멀쩡한’ 방식으로 하나 둘 깨뜨리며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리고 지금도 그의 거침없음은 여전했다.

연애하려고 계속 노력 중
강 전 장관은 “지금 연애를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질문에 “사석에서는 ‘연애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내가 매일 연애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는지 안다”며 “요새는 도청문제도 있고 해서 말하기 어려운데…”라고 농담을 던졌다.
“사실 아직도 안 한다고 말하면 창피한 거고, 한다고 하면 누군지 알아내느라 시끄러울 거 아니에요(웃음). 그냥 ‘노력 중’이라고 할래요. 연애하려고 계속 노력 중입니다.”


강 전 장관은 이야기하는 동안 몇 번이나 자신이 바라는 것은 ‘행복한 삶’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가 춤을 즐기고, ‘노는 것’을 좋아하며, ‘연애’를 꿈꾸는 것은 모두 그 목표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공동체의 삶 역시 ‘부의 축적’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면 때문인지 사람들은 강 전 장관이 ‘좀 더 많은 이들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다. 최근 그는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대법원장 후보 명단에 오르며 다시 여론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강 전 장관의 답변은 ‘쿨’했다.
“아무 관심이 없어요. 내가 대법원장이 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 자체가 없으니, 무슨 얘기가 나오는지도 잘 모르겠어요”가 전부다.
“그래도 사람들이 ‘강금실 선생을 키우자’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걸요”라고 하자 그는 “키우다니, 잡아먹으려고?”라며 “호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주물러온 남성들의 세계에 대해 ‘코미디’라고 일축할 수 있는 그 무서운 단순함. 나는 공인이자 여성이며, 무엇보다도 문화인인 여성 강금실이 무거운 세계를 들었다 놓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문학평론가 박철희씨가 강 전 장관에 대해 밝힌 바람이다.
강 전 장관은 지금 자신의 행복 안에서 살고 있지만, 그의 ‘유쾌한 멀쩡함’이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이 사회를 ‘들었다 놓아주기를’ 바라는 이들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여성동아 2005년 9월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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