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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나눔 체험

민경혜 주부의 호스피스 봉사

기획·김명희 기자 / 구술정리·이수향’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5.09.02 18:16:00

주부 민경혜씨(40)는 1년 전부터 말기 암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를 하고 있다. 죽음을 가까이 둔 환자들을 접하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현재의 삶에 감사하게 된다는 그가 들려주는 봉사활동 체험기.
민경혜 주부의 호스피스 봉사

오늘은 여느 아침보다 더욱 분주하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한 호스피스 봉사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고3 수험생인 아들의 아침을 챙겨주고, 빨래며 설거지, 청소를 끝낸 후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 내가 방문할 곳은 경기도 양주에 있는 김원복 할아버지 댁이다. 워낙 노쇠하신데다 말기 암으로 혼자서는 거의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에게 우리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씩씩하게 인사를 하며 할아버지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긴다.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에 부쳐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하시지만, 이분이 나를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불과 며칠 만의 방문인데도 집안이 엉망이다. 일단 나는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방안 곳곳을 신속히 치운다. 환자에게 위생적인 환경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혼자서 용변을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틈틈이 기저귀를 갈아 드리는 것도 내 몫이다. 워낙 깔끔한 성격이라 기저귀 가는 것만은 한사코 거절하던 할아버지도 이젠 내 손길에 제법 익숙해진 눈치다. 한결 나아진 할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숨이 나왔다.
호스피스 봉사는 보통 병원봉사와 가정봉사로 나뉘는데, 내가 맡은 가정봉사는 병원에서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해 가정으로 오신 분들을 돌보는 경우가 많다. 지난 1년간 봉사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그분들과 말없는 사랑을 나눴다.
민경혜 주부의 호스피스 봉사

민경혜 주부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한다.


호스피스 봉사는 남들이 추켜세우듯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다. 또 일반적으로 고된 노동으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도 아니다. 혼자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분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작은 사랑’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동안 미처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을 삶의 마지막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분들을 통해 느끼게 되는 것이다.
특히 호스피스는 섬세한 손길을 지닌 주부들이 하기에 더없이 좋은 봉사다. 일주일에 두세시간 짬을 내서 하는 봉사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희망을 얻는지, 작은 손길 하나에도 얼마나 감격스러워하는지는 봉사를 해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 좀 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일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보람이다. 또 이제는 훌쩍 커버린 두 아들에게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하다.
할아버지의 이곳저곳을 주물러드리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는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을 도와 환자의 고통을 완화시켜준다.
부어 있는 발을 크림으로 마사지하면서 할아버지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건넨다. 내가 돌아가고 나면 적막한 빈집에 남겨질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또다시 마음이 아파온다. ‘말 걸어줄 사람 하나 없이 홀로 누워 있어야 할 할아버지의 외로움은 오죽할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호스피스 봉사에는 환자의 정신적 안정을 돕는 일도 포함된다.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지만 봉사자들이 환자를 부모처럼 살갑게 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친근한 말 한마디에 환자들은 죽음의 공포와 육체적인 고통을 덜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
“할아버지, 시원하세요?” “다리 저리세요?” “아프면 말씀하세요”라는 내 말에 고개만 끄덕이는 할아버지. 눈을 감고 있는 표정이 무척 시원하고 편안해 보인다.
어느덧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할아버지를 남겨두고 일어서자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며칠 후에는 좀 더 건강한 모습의 할아버지를 뵐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번에는 할아버지 머리를 감겨드려야겠다.


※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는 주부들의 훈훈한 사연을 찾습니다. 자원봉사를 하시는 주부 본인이나 주위 분들의 간단한 사연을 적어 연락처와 함께 이메일(honeypapa@donga.com)로 보내주세요. 문의 02-361-0956

여성동아 2005년 9월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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