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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책을 펴는 즐거움

영혼을 울리는 열두 살 소녀의 그리움 이야기 ’그리운 메이 아줌마‘

기획·김동희 / 글·민지일’문화 에세이스트‘ / 일러스트·변영미

입력 2005.09.02 17:39:00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가난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에게 입양된 고아소녀 서머가 메이 아줌마의 죽음을 겪은 뒤 슬픔과 그리움을 딛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 열두 살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삶과 사랑, 그리움에 대한 성찰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영혼을 울리는 열두 살 소녀의 그리움 이야기 ’그리운 메이 아줌마‘

안다고말하지만 실제론 알지 못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다. ‘사랑’과 ‘죽음’, ‘그리움’과 ‘슬픔’ 같은 것들이 그렇다. 삶의 여정에서 매 순간 마주치고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끊임없이 다루어왔지만 그 천의 얼굴을 다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문제를 다룬 얘기가 때론 무겁고, 때론 진부하거나 밋밋하며, 어쨌든 결말은 뻔하다며 경원시하기 일쑤다. 작가들은 그럴수록 더 격렬한 소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사실 마음 편하게 읽다가 덮는 순간에야 숱한 상념과 뭉클한 감정이 솟게 하는 책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작가들은 처음부터 현란한 필치로 독자를 빨아들여 독자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에 묶어놓는다. 숨 돌릴 새 없이 사건을 만들어 감정을 강요하고 작중인물을 격정의 포로로 삼거나 대립구도의 한 각에 세우는 일을 즐긴다. 밋밋하다며 중간에 던져버려서는 좋은 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 담담하게 풀어내
영혼을 울리는 열두 살 소녀의 그리움 이야기 ’그리운 메이 아줌마‘

미국의 중견작가 신시아 라일런트는 그런 상식을 외면했다. 그의 소설 ’그리운 메이 아줌마‘(사계절 펴냄, 햇살과나무꾼 옮김)는 우선 현란하지 않다. 큰 사건도 없고 격정, 대립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열두 살 소녀의 심정으로 맑고 담담하게 엮었다. 물이 그냥 그렇게 흐르듯 세상을 얘기하고 삶과 죽음에 대하여, 참사랑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감정을 삭이며 얘기한다. 섣불리 독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작품 내용은 간단하다. 여섯 살 고아소녀 서머는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의 눈에 띄어 웨스트버지니아로 입양돼 자란다. 집이라고 해봤자 산골짝 다 쓰러져가는 녹슨 트레일러. 기울어 덜컹거리고 현관 계단도 꺼졌지만, 벽을 뒤덮은 오브 아저씨의 ‘예술품’ 바람개비들이 빙글빙글 돌고 사랑으로 빛나는 이 집을 서머는 ‘천국에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느끼며 살았다. 바람개비의 수만큼이나 꿈, 사랑, 영혼, 신비, 아름다움이 이 집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의 사랑도 남달랐다. 아저씨가 부엌에 앉아 아줌마의 길고 노란 머리를 땋아주는 광경을 본 여섯 살 꼬마가 둘 사이에 흐르는 건 애틋한 사랑이라고 금세 느꼈을 정도로 두 사람은 서로를 깊고 넉넉하게 사랑했다. 그러나 사람의 사랑이 너무 깊으면 날개 달린 천사도 질투하는 법. 서머가 열두 살 되는 해 어느 날 메이 아줌마는 밭을 매다 갑자기 숨을 거둔다.

작가의 실제 어린 시절 삶을 바탕으로 씌어져
아줌마의 죽음 이후 서머와 오브는 그저 아줌마를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할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줌마는 ‘오직 사랑뿐인 커다란 통’ 같았고, 그 속에서 가족들은 강할 수 있었지만 아줌마가 죽은 뒤 오브와 서머는 더 이상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온종일 바람개비나 만지작거리던 해군 상이군인 출신 오브나 몇 년 동안 이집 저집 떠돌아다닌 고아 출신 서머는 따로따로 혹독한 그리움에 시달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맞는 계절의 황량함이 남은 사람의 가슴을 더욱 황량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혼을 울리는 열두 살 소녀의 그리움 이야기 ’그리운 메이 아줌마‘

“아저씨도 나도 메이 아줌마가 몹시 그립다. 이 어둠, 이 겨울, 그리고 이 차디찬 새벽에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약한 일이다.”
이들은 크고 극적인 일보다 사소한 일들을 떠올리며 사무치는 그리움에 몸을 떤다. 오브는 메이가 ‘3년간 몰래 적금을 부어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비싼 대패 톱을 사준’ 큰 일보다 ‘아픈 무릎을 연고로 문질러줘 다음 날 걸을 수 있게 해준’ 작은 일을 떠올린다. 서머 또한 ‘수두에 걸려 열이 펄펄 끓고 헛소리를 해댈 때 32시간 동안 눈 한 번 붙이지 않고 간호한 일’보다 ‘그네를 타고 노는 서머를 보고 “서머, 우리 귀여운 아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아기”라고 다정하게 불러준 일’ 같은 걸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작가는 사랑과 그리움을 설명하기 위해 요란을 떨지 않는다. 메이 아줌마가 아홉 살 때 홍수로 부모를 잃었으며 그때 엄마가 양철 빨래통에 넣어주어 목숨을 건진 일이라던가 상이군인 오브는 해골처럼 마르고 관절염을 앓아 재미로 바람개비나 만들고 있다는 배경을 스쳐 지나는 대화 속에 담담히 묻었듯이 감정을 누르고 절제하며 얘기를 풀어나간다. 삶과 가족에 대한 작가 나름의 성찰도 열두 살 서머의 생각을 빌려 그저 담담하게 풀어낸다.

“지금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면 나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은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우리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오브와 서머가 메이 아줌마의 영혼을 만나러 떠났다 실패하고 돌아온 날 서머의 꿈에 나타난 메이 아줌마의 설명도 그렇다.

“아저씨와 내가 젊고 튼튼했으면 서머, 넌 네가 우리한테 얼마나 필요한 아이인지 깨닫지 못했을 거야. 넌 우리가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느님은 우리가 늙어서 너한테 많이 의지하고 그런 우리를 보면서 너도 마음 편하게 우리한테 의지할 수 있게 해주신 거야. 우리는 모두 가족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었어. … 나는 아저씨에게 당신은 나의 달님이고 해님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 그리고 서머, 우리 사랑스런 아기가 우리한테 왔을 때 너는 내게 빛나는 별님이 되어 주었단다.”

작가 라일런트의 실제 어린 시절 삶을 바탕으로 씌어진 ‘그리운 메이 아줌마’의 시작과 끝은 바람개비 이야기다. 바람개비는 사랑, 꿈, 그리움이자 바로 메이 아줌마를 상징한다. 그걸 모두 하늘에 날리는 것은 더 이상 찌든 슬픔만을 부둥켜안고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여성동아 2005년 9월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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