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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특별한 가족 사랑

입양한 다섯 아이 키우며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영선·김미현 부부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며 자라는 모습 보면 눈물 날 만큼 가슴이 찡해요”

기획·송화선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지재만 기자, 글로세움 제공

입력 2005.08.31 15:11:00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무려 다섯 명의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 화제다. 충남 논산 가야곡에 사는 이영선·김미현 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 이들의 보금자리를 찾아가 ‘슈퍼부모’와 장난꾸러기 오형제의 행복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꽃과나무, 새소리가 가득한 충남 논산의 외딴 산골 가야곡에는 특별한 가족이 살고 있다. 이영선(47)·김미현(31) 부부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아들, 진전(7) 진주(6) 진우(5) 진하(4) 진서(3) 형제가 바로 그들.
이 가족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함께 뛰놀고 있는 다섯 아이가 실은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영선·김미현 부부가 99년부터 한 해에 한 명씩 공개 입양한 아이들. 올해 대학생이 돼 따로 나가 자취를 하고 있는 큰아들 진건(20)까지 합치면 아들만 여섯인 이들 부부는 친형제가 아닌 아이들이 한데 뭉쳐 뛰고 구르며 끈끈한 형제애를 갖게 하기 위해 산골 생활을 선택했다고 한다.

부모 없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울타리 만들어주고 싶어 입양 시작
입양한 다섯 아이 키우며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영선·김미현 부부

도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논산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 마을 가야곡에 도착하자 해맑은 미소를 가진 다섯 아이가 쪼르르 달려나와 기자를 맞았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 숙여 인사하는 아이들 뒤로 이들 못지않게 환한 미소를 가진 이씨, 김씨가 보였다.
이들이 이처럼 대가족을 꾸리게 된 것은 지난 98년 신학대학에 다니던 김미현씨가 아들 하나를 둔 ‘이혼남’ 이영선씨와 결혼하면서부터.
“남편은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셨어요. 15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는데, 첫눈에 남다름이 느껴지는 분이셨죠. 옳은 일을 할 때는 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편안한 길 대신 기꺼이 가시밭길을 걷는 분이셨으니까요. 어린 마음에도 ‘우리 목사님, 저러다 큰일 나시지’ 싶었는데,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교단에서 쫓겨나셨어요. 원어 성경을 연구하면서 우리 성경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자고 주장하시다 이단으로 몰렸거든요.”
이 목사는 교회에서 쫓겨난 뒤 가정마저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열 살배기 아들 진건이와 맨몸으로 거리에 나앉은 그는 천막집의 방 한 칸을 월세로 얻어 간신히 삶을 꾸려나갔다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씨는 그에 대한 믿음과 존경으로 ‘남은 인생을 모두 그분에게 걸자’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제가 어릴 때 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안타깝게도 그 후 석 달 만에 돌아가셨지만, 제 마음속에는 늘 ‘어른이 되면 나도 이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목사님도 항상 부모 없이 사는 아이들을 거두어 함께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저도 같은 길을 걷고 싶다며, 제가 먼저 목사님께 프러포즈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이 쉽지만은 않았다. 김씨의 어머니가 결사 반대했기 때문이다.
“스물네 살짜리 딸이 ‘이단자’라고 불리는 가난하고 비전 없는 목사와 결혼하려는데 어느 부모가 허락하겠어요. 나이 차이도 많이 났고요. 일찍 남편 잃고 혼자 저를 키우느라 온갖 고생 다 하신 어머니께서는 ‘절대 안 된다’며 강하게 반대하셨죠. 하지만 저는 뜻을 꺾지 않았어요. 어머니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돌이켜봐도 그때 끝까지 결혼을 포기하지 않은 건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김씨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엄마에게 매달리고 서로 장난치며 뛰어노는 다섯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없던 이 목사도 “그 무렵을 생각하면 나 하나만 믿고 온갖 어려움을 견뎌준 아내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을 보탰다.


입양한 다섯 아이 키우며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영선·김미현 부부

아빠가 직접 지은 집에서 자연과 함께 뛰어놀며 자라는 꾸러기 오형제들.


98년 1월 군산의 한 허름한 천막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들 부부는 영세한 신문 지국을 인수해 열한 살 진건이까지 온 가족이 합세해 신문 배달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쓸 만한 옷가지들이나 빈 병, 신문지 등도 보이는 대로 주워 모았다. 이 목사는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기 일쑤였고, 진건이도 손발이 부르터 학교를 가지 못할 만큼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이들은 결혼 당시의 약속대로 99년 둘째 진전이를 입양했다.
“처음엔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정성을 다해 운영하다 보니 날이 갈수록 신문지국이 번창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저와 목사님은 결혼하면서 꼭 2년만 돈을 번 뒤 그 뒤부터는 다른 일을 하자고 약속했거든요. 그래서 2000년 1월, 지국을 정리한 뒤 그동안 모은 돈 5천만원을 들고 이곳 가야곡으로 이사했죠.”
이 목사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울 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논밭을 만드느라 하루 종일 연장을 쥐고 일한 손의 손가락이 마비될 만큼 고생했지만, 이 목사의 땀과 정성 덕에 황폐하던 땅은 번듯한 벽돌집과 텃밭, 비닐하우스 등을 갖춘 따뜻한 가족의 보금자리로 변했고, 식구는 매해 한 명씩 늘어났다.
이들 부부가 차례로 입양한 아이들은 아빠가 만든 텃밭에서 자란 유기농 야채와 집 앞 감나무에 열린 감을 따 먹고, 마당에서 자라는 오골계가 갓 낳은 알을 주워 깨 마시며 자연과 함께 커가고 있다.
이들이 모두 아들만 입양한 것은 남자아이의 경우 키우기 어렵고 다 자란 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아 국내 입양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이 목사는 “막상 아이들을 키워 보면 ‘남의 자식’이 아니라 ‘내 자식’인데, 입양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얻지 못하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씨 생각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입양을 시작할 때는 부모 없는 외로운 아이들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제 사랑을 전해줘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며 실은 이 아이들이 제게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일곱 살인 둘째 진전이는 동생들이 야단 맞으면 애교를 피워 엄마 화를 풀어줄 만큼 동생들을 잘 챙기고, 셋째 진주는 노래만 나오면 열창하는 우리 집 가수예요. 넷째 진우는 빨래와 호미질까지 도맡아 하는 일꾼이고, 다섯째 진하는 아이들 중 가장 순진하면서도 가끔 엉뚱한 사건을 일으키는 요주의 인물이죠. 막내 진서는 뭘 해도 예쁘고 귀여워 온 가족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며 자라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만큼 가슴이 찡해요”라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 부부는 지금 논산 시내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식구가 여덟 명이나 되는 대가족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야채는 이 목사가 텃밭에서 가꾼 것을 뜯어 먹고, 아이들 머리는 결혼 뒤 미용 기술을 배운 김씨가 직접 잘라주는 등 부부가 전천후로 뛰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있다고 한다. 고만고만한 개구쟁이 다섯 아들을 키우며 바깥 일과 살림까지 척척 해내는 이들의 별명은 자칭 ‘슈퍼엄마’ ‘슈퍼아빠’다.

“아이들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 ‘너는 틀림없는 내 아들’이라고 말해줄 겁니다”
입양한 다섯 아이 키우며 산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영선·김미현 부부


‘슈퍼부부’의 최대 고민은 아이들이 자란 후 입양아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걱정. 아직 어린아이들은 자신들의 출생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엄마가 동생을 입양기관에 가서 데려오는 것을 보고 ‘아, 나도 저렇게 엄마 아빠한테 왔구나’라고 이해하는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가끔 ‘가슴이 먹먹하고 뻐근할 만큼’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놓았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죠. 정답이 없는…. 우리 부부는 그저 아이들이 울 때 같이 울고 힘겨울 때 같이 힘겨움을 느껴주는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해줄 겁니다. 누가 뭐래도 너는 내 자식이라고, 그리고 엄마 아빠는 널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이죠.”
이 목사와 김씨의 바람은 아이들이 자신의 출생을 부끄럽게 여기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힘없고 못 배운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따뜻하고 강한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 이런 뜻을 모아 최근 김씨는 입양한 다섯 형제가 티 없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담은 책 ‘가야곡 꾸러기 오형제의 행복일기’(글로세움)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독수리 오형제는 오인오색. 내 배 앓아 낳은 자식이라면 어찌 이렇듯 각기 다르게 개성들이 예쁠 수 있었을까. 이 놈들을 보고 있노라면 잘난 자식 다섯을 골라서 훔쳐온 기분이다. 난 참 복도 많다”고 자랑했다.
이 목사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는 “서로를 감싸고 아껴주면서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는 오늘도 진짜 ‘가족’들과 함께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여성동아 2005년 9월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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