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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유인경의 Happy Talk

어느 토요일 오후 울기 프로젝트

일러스트·정지연

2005. 08. 31

어느 토요일 오후  울기 프로젝트

인터뷰 하느라 만난 ‘뇌호흡 창시자’ 이승헌 박사는 내게 화가 쌓여 뇌의 편도가 부풀어올랐다며 펑펑 소리 내어 울어보라고 충고해주었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울어본 기억이 아득했다. 펑펑 울어보겠다고 작정하고 과거의 속상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애를 써봤지만 결국 시원한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억울한 일도 있었지만 행복한 일도 많았고, 속상한 일보다 감사할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젠 웃음이건 눈물이건 분노건 기쁨이건 내 감정에 충실하리라, 무엇보다 혹사시킨 내 몸에게 사죄를 하고 잘 돌보리라 마음먹었다.

“참많이 참고 살았나봅니다. 뇌의 편도가 부풀어 있어요. 그건 분노를 관장하는 부위인데 화나거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부풀어 오르지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승헌 박사(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총장)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최근에 내게 나타난 미묘한 몸의 변화에 대해 말했는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주제는 국학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었고 인터뷰 내내 명랑한 표정으로 웃기만 했는데 어떻게 내게 억울함이 많다는 걸 알았을까.
‘뇌호흡의 창시자’가 하는 말이라서가 아니라 숱한 사람을 만난 임상경험자이기에 그의 말을 존중하고 싶었다. 포도주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많이 마신 소믈리에들은 한 모금만 마셔도 어느 지방의 어떤 품종으로 어느 연도에 만들어진 포도주인지 감별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역시 25년간 수련과 지도를 한 분이니 얼굴빛만 보고도 건강이나 심리 상태를 아는 것이 수긍이 간다. 그분은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보시더니 이런 처방(?)을 주셨다.
“이제 참지 말고 미운 사람 있으면 인형으로 만들어서 때려주기라도 해봐요. 무엇보다 수련을 통해 뇌 속의 분노를 꺼내 지우는 게 좋지만 시간이 걸릴 테니까 일단 한번 펑펑 소리내어 울어보기라도 해봐요.”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신경정신과 의사의 말도 기억났다. 내가 환경이나 업무 성격상 울분이나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그걸 ‘명랑’으로 포장하고 두꺼운 뚜껑으로 덮어둔 것 같다고 했다. 어느 날 그 뚜껑이 열리면 폭발할 거라면서….

드라마를 보면서는 펑펑 울면서도 개인적인 일로 울어본 기억은 아득해
맞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울어본 기억이 아득하다. 텔레비전을 볼 때는 드라마만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심지어 뉴스 시간에도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면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주책없이 흐른다. 영화를 보러 가서는 훌쩍거리거나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같이 간 사람들이 창피해서 ‘일행이 아닙니다’란 표정으로 거리를 두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울어야 할 때는 울지 못했다. 속상할 때, 억울할 때, 정말 슬플 때, 심지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음껏 울지 못했다. 밤에 조금만 울어도 다음 날 아침 눈이 붕어처럼 퉁퉁 붓기 때문에 출근이나 방송 걱정이 되어 참았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저 막막하기만 해서 울음조차 제대로 안 나오고, 화장터에서만 무서워서 울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는 속상한 일이 있어 몇 번 울긴 했는데 마스카라가 번져 거의 공포영화의 주인공처럼 되었다. 나는 아파도 울지 않는다. 운전을 할 줄 알면 자동차에 타서 소리내 울 수 있을 텐데 그것도 불가능하다. 어쩌다 남편과 싸우고 울면 딸아이가 더 크게 울어서 멈추게 된다.
어릴 땐 조금만 서운한 일이 있어도 발을 뻗고 엉엉 울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곤 했는데, 이젠 제대로 울지를 못하니까 울음찌꺼기가 몸에 남아 각종 병을 만드는 게 아닐까. 올 초에 만났던 최인호 선생도 생각났다. 올해 환갑인데도 어찌나 청년 같고 피부가 고운지 감탄했는데 그는 글 쓰다 막히거나 속상하면 아기처럼 펑펑 운다고 했다. 잘 우는 게 젊음과 미모의 비결인 듯했다.
그래서 ‘울기 프로젝트’를 결심, 드디어 D데이를 잡았다. 시간은 토요일 오후. 남편은 워낙 늦게 들어오고, 딸아이는 학원 가고, 도우미 아줌마도 휴가 가는 날, 혼자 집에서 문 걸어 잠그고 에어컨 켜놓고 발버둥치면서 울어보리라.
아, 그런데 울 복도 없지. 그날따라 남편은 대낮부터 들어왔고 딸아이는 저녁에 과외를 한다고 하고 아줌마까지 외출을 하지 않았다. 딸아이에게 울기 프로젝트를 설명하니까 “엄마, 그럼 과외가 끝나는 10시에 울어”라고 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울기 프로젝트

드디어 10시. 결코 좁은 집이 아닌데도 혼자 틀어박혀 울 곳을 찾기도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삼복더위에 목욕탕에 들어가 욕조에 물을 틀어놓으며 울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나한테 속상하게 했던 사람, 억울했던 일들, 웬수 같은 인간들, 분노의 사건들을 떠올리면서 그 감정과 직면해서 울음으로 치유해보려고 했다. 옛날 일기장을 보면 눈물로 얼룩진 사연도 많으니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억울한 일, 나를 괴롭힌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시간이 흘러 공소시효가 지나서인지 혹은 내가 요즘 너무 착해져서인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었지?”라고 부르르 떨리는 게 아니라 “그 사람도 그럴 만했지 뭐” “그 일은 이젠 기억도 잘 안 나네” 등 영 싱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주 어릴 때 유년의 기억까지 더듬어서 오빠들이 별 이유 없이 날 마구 때린 일들을 떠올려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상처로 남았다기보다는 덕분에 사회생활에서 그 어떤 사람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성격을 만들어준 것 같아 고맙기까지 했다.
방법을 바꿔보았다. 아이 때처럼 엄마한테 고자질하기로 말이다.
“엄마, 정말 나 억울한 것 많아. 그래서 가슴에 뭐가 많이 막혀 있대. 이거 울어서 풀어야 한대. 근데 엄마,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지? 그리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결국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리워서 울었다. 나중에 시간을 재어보니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는 방법을 잊은 것은 아닌가, 이러다 영영 울지도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혹시 분노를 쌓아둔 저장고가 구멍이 나서 저절로 빠져나간 것은 아닐까. 숙제를 못한 아이처럼 영 찜찜하기도 했다.
마지막 시도를 했다. 거울을 보면서 내가 나한테 하소연을 하면 울음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거울을 보니 울음은커녕 웃음만 나왔다. 할 수 없이 샤워만 하고 나왔다.

올 가을 내가 할 일은 나를 사랑하기,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기
내 기억의 서랍 속에, 내 몸의 어딘가에 억울함과 분노와 좌절감 등이 분명히 남아 있을 텐데, 그걸 내 눈물로 씻어서 정화를 해줘야 독소가 빠져나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텐데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한순간에 비워지는 휴지통인가. 뭐든 자연스러운 게 최고다. 언젠가 눈물이 나와서 마냥 울 때가 오겠지.
곰곰 생각해보니 어떤 이들은 가까운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누명을 뒤집어쓰고도 꿋꿋하게 견디는데 난 나와 생각이 다르고 존중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해하며 남들을 원망했으니 그것부터 반성해야 한다.
또 계산해보면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희열의 순간, 가슴이 파닥거리는 행복한 일이 더 많지 않았는가. 무시당하고 억울한 순간보다는 과대평가받고 환영받아 ‘난 정말 복도 많다’고 감사했던 일이 훨씬 더 많았다. 이승헌 박사가 울어보라고 권한 덕분에 내가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은 사람인지를 알았다.
이젠 웃음이건 눈물이건 분노건 기쁨이건 내 감정에 충실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딴생각하느라 혹사시킨 내 몸에게 사죄하고 몸을 잘 돌볼 생각이다. 어쩜 가장 억울한 건 내 몸일지도 모른다. 건강하게 타고난 몸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았으니 말이다.
내 뇌와 몸이 내게 하는 말을 잘 알아듣기, 나를 사랑하기,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기…. 이게 올 가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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