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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가슴 아픈 사랑

세상 뜬 아내를 그리는 자전 에세이 펴낸 이두식 홍대 미대 학장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운명적으로 찾아온 첫사랑 아내,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는데…”

기획·강지남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5.08.31 11:41:00

스물여섯에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한 것을 시작으로 화려한 작가생활을 해온 이두식 교수. 최근 자신의 예술 인생과 사랑이야기를 담은 ‘고릴라 로마 역에 서다’를 펴낸 그가 10년 암투병 끝에 2002년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가슴 저린 사랑이야기를 들려줬다.
세상 뜬 아내를 그리는 자전 에세이 펴낸 이두식 홍대 미대 학장

순애보의남자 주인공이라고 하면 ‘겨울연가’의 배용준이나 ‘가을동화’의 송승헌이 먼저 떠오른다. 말랑말랑, 보들보들해야만 순애보 주인공으로 적격일까. 선입견을 가지고 이두식 교수(58)를 만나면 ‘아니, 어떻게!’라고 속으로 외칠지도 모른다.
182cm의 큰 키에 고릴라를 닮은 외모. 첫인상은 순애보 이미지와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두상이 커서 옆모습을 보면 김일성 주석 같기도 하고, 가수 현철이나 문인 이문열을 닮은 것도 같다.
“옛날에는 안 이랬는데 언제부터인지 머리가 커진 거예요.”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꽃미남 같은 외모였음을 거듭 강조하며 그 시절 사진을 보여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들여다봤는데, 정말 사진 속 남자는 훤칠한 키에 곱상한 외모였다. ‘나이 들면서 두상만 자라는 경우도 있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 교수와 마주앉았다. 그는 최근 자전적 에세이 ‘고릴라 로마 역에 서다’를 펴냈다.
“성신여대에서 강의하던 시절 여학생들이 ‘고릴라’란 별명을 붙여줬어요. 제가 봐도 전 고릴라를 닮았어요. 고릴라는 무섭게 생기긴 했어도 귀여운 구석이 있어요. 고릴라 표정은 수십 가지라더군요. 근데 전 요즘 ‘히죽히죽’ 웃는 고릴라가 됐어요.”
책을 펴내고 연일 취재에 응하며 사진기자들이 요구하는 웃는 표정을 짓다 보니 한 가지 표정이 되었다며 ‘씩’ 웃는다. 그 모습이 친근감을 준다. ‘저 사람의 숨은 매력이 바로 이건가’ 싶을 만큼. 그의 책 앞머리에 추천사를 쓴 박완서씨의 글 중 한 토막을 들여다보면 이두식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서울예고 입학식 날 버스정류장에서 보고 첫눈에 반해
‘이두식·손혜경 부부는 나보다 조금 늦게 아치울(워커힐에서 구리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로 이사를 왔다. 어느 날 손혜경이 남편과 우리 집을 방문해 그때 처음으로 이 화백과 인사를 하게 되었다. 건장하고 잘생긴 그가 검정 양복으로 정장을 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도무지 빈틈이라곤 없이 완벽하게 멋을 낸 게 오히려 좀 코믹해 보였다. 이웃에 마실 온 것치고는 너무 권위적으로 보인 탓도 있지만, 아마 아무렇게나 파격적으로 입을수록 세련돼 보이는 손혜경과 비교되어서 더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그를 조폭 같다고 놀리며 깔깔댔다.’
그의 부인 손혜경씨와 친자매처럼 지냈던 박완서씨는 이두식 교수에 대해 ‘그의 마누라와 마누라 친구들로부터 악의 없는 놀림을 당하는 데 익숙한, 순한 미소만 띠고 있던 남자’라고 표현한다.
그는 스물여섯에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한 이후 대한민국의 굵직굵직한 상들을 휩쓸며 화려한 작가생활을 해왔다. 우리나라 미술계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로 인정받으며 96년에는 49세의 나이로 최연소 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국내에서만 이름을 떨친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 로마시는 2000년을 맞이하는 기념사업으로, 시내 중심가 24개 지하철역에 세계적인 화가들의 그림을 벽화로 거는 컨템퍼러리 뮤지엄 계획을 세웠다. 모두 70여 명의 작가가 초대됐는데, 아시아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이두식 교수의 작품이 초대됐다. 작품명은 ‘페스티벌’. 농악을 소재로 길이 14m의 벽화로 제작된 이 작품은 현재 플라미니오 역에 설치되어 있다. 이두식 교수는 서울 부산 파리 뉴욕 도쿄 등지를 돌며 모두 46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뉴욕 57번가의 제리 브뤼스터 화랑의 초대작가로도 5년간 활동했다.
이 같은 왕성한 작품 활동 뒤에는 작고한 부인 손혜경 여사가 있었다. 꺼질 줄 모르는 첫사랑의 설렘이 그의 창작활동에 불을 지핀 것.

세상 뜬 아내를 그리는 자전 에세이 펴낸 이두식 홍대 미대 학장

홍대 교수실에서의 이두식 교수.


“서울예고에 입학하던 날, 입학식이 끝나고 집에 가기 위해 서대문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하얀 얼굴, 가로로 긴 눈을 한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더라고요. 멍하니 바라만 보았어요. 불덩이를 삼킨 것 같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교실에 그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같은 반이라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가슴 떨려서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동갑내기 고교동창 손혜경씨에게 첫눈에 반해 짝사랑하게 된 이두식 교수는 손혜경씨 가까이 살고 싶어서 하숙방을 근처로 옮기기도 했다.
“김소월의 시 ‘산산이 부서지는 이름이여’를 하숙방 벽에 붙여놓고 낭송하면서 아내를 열망했어요. 사랑을 하면 유치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혜로워지기도 합니다. 빛나는 아이디어가 태풍처럼 휘몰아치기도 하고요.”
경북 영주가 고향인 이두식 교수는 여름방학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학교 실기실에서 해질녘까지 데생 연습을 했다고 한다. 첫사랑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병원 가지 않고 10년간 암투병, 늘 의연한 모습 잃지 않아
“둘이 같이 학교를 오가면서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밤에도 공부하다 말고 달려나가 휘파람 신호로 아내를 불러내 방범등 불빛 아래에서 밤늦도록 서 있기도 했고요. 독서광이던 아내는 골목길 계단에 앉아 ‘호밀밭의 파수꾼’ ‘어린왕자’ ‘데미안’ 등을 읽고 이야기해주곤 했어요. 스펀지 같은 감수성으로 아내의 이야기를 흡수했지요.”
아내 손혜경씨와 함께 읽은 책, 함께 들은 음악, 그리고 함께 본 영화가 마치 어제 일처럼 하나하나 또렷이 기억난다는 이두식 교수. 그는 장모가 “두식이가 밤마다 혜경이를 불러낸다”고 담임교사에게 일러바치는 바람에 선생님에게 귀와 코를 잡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가난한 화가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어른들의 반대에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어쨌든 열여섯에 첫사랑을 만난 이두식 교수는 10년을 쫓아다니다 스물여섯에 결혼에 골인했다.
세상 뜬 아내를 그리는 자전 에세이 펴낸 이두식 홍대 미대 학장

이두식 교수는 잘 해주지도 못한 채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회한이 밀려올 때면 “아무리 금실 좋은 부부라도 배우자의 고독을 뼛속까지 이해하긴 힘들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한다고 한다.


“결혼할 무렵 광화문에서 가수 이장희와 함께 화실을 얻어 저는 그림을 가르치고 장희는 노래를 만들었어요. ‘돈은 없지만 결혼식은 올려야겠다’고 했더니 장희가 어떻게든 꾸려보자고 했어요. 태화기독교회관을 결혼식 장소로 정하고 축가는 송창식과 윤형주가 불러주기로 했어요.”
부부는 축의금을 모아 방 하나, 부엌 하나짜리 판자집을 구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 무려 열세 번 이사를 다녔다. 그에게 아내는 생활고를 잘 견뎌준 당차고 대범한 버팀목이자 절친한 친구, 예술 혼을 자극해준 동지, 엄격한 비평가였다.
“작품 활동에 며칠만 게으름을 피워도 바로 채근 했어요. 작품에 대해서도 아내만큼 날카롭게 지적해준 사람이 없었죠. 아내의 신랄한 평가는 때로 고통스러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리 있는 지적이라 참고로 할 때가 많았지요.”
이두식 교수의 조교 시절 일이다. 서울시 문화상 수상 추천서 서류를 모 교수에게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그 교수는 당시 프랑스 유학 중이었다. 어찌 주소를 물어 찾아갔는데 이사를 간 상태였다. 동사무소까지 찾아갔지만, 전출신고를 하지 않아 새 주소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서류를 책상 속에 넣어두었는데, 이 일이 일부러 이 교수의 추천서류를 누락시켰다는 오해를 샀다. 이두식 교수는 불명예스럽게 조교직에서 물러나게 됐고 몇 푼 안 되는 월급이었지만 그 수입이 생활의 기반이었기에 ‘내일부터 당장 어떻게 생활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부인 손씨는 아주 덤덤하게 “당신한테 잘못이 없는 거잖아요. 잘 됐네. 어차피 조교 끝날 때도 됐고, 이제 작품만 열심히 하면 되겠네” 하면서 “배고픈데 우리 밥 먹어요” 하며 밥상을 차렸다고 한다. 이두식 교수는 아내의 속 시원한 태도 덕분에 가장으로서 어깨에 짓눌린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고.

세상 뜬 아내를 그리는 자전 에세이 펴낸 이두식 홍대 미대 학장

이두식, 송혜경 부부의 결혼식 사진


그런 아내가 40대 중반에 암 선고를 받았다. 아내는 현대 의술과 양약을 확신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암 수술을 받고도 재발해 죽는 환자들을 보며 병원에는 절대 가지 않겠노라고 고집 부렸다. “내 방법대로 죽겠다”는 아내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아내를 살리는 길인지 죽이는 길인지 고민한 이두식 교수는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아내는 절대 응석을 부리지도, 칭얼대지도 않았다. 늘 의연한 아내가 오히려 안쓰러웠다. 어린아이처럼 “무서우니까, 혼자 있기 싫으니까 출근하지 마”라고 했으면 가슴이 덜 아팠을 것이라고.
그는 잘 해주지도 못한 채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회한이 밀려올 때면 “아무리 금실 좋은 부부라도 배우자의 고독을 뼛속까지 이해하긴 힘들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한다고 말하며 눈 주위를 붉게 물들였다.



한일월드컵 응원 함성으로 떠들썩하던 날 세상 떠나
“내 핑계대고 모임에 빠지고 그러지 마. 그림도 더 열심히 그려. 또 어디 가서 마누라 아프다고 말하고 다니지 마.”
이것이 아내의 주문이었다. “아프면 언제라도 전화해. 달려올게” 했지만, 이두식 교수는 아내가 여간 아프지 않고서는 학교에 있는 남편을 불러들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아내 전용 휴대전화를 하나 더 사서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만약 아내가 어디가 불편해 전화를 했는데 자신의 휴대전화가 통화 중이면 안될 것 같아서였다.
병마를 잘 이겨내는 듯하던 아내는 갈수록 상태가 나빠졌다. 그런 지경이면서도 “남자가 잠을 푹 자고 나가야 일을 하지. 나 때문에 잠 설쳐서는 안 돼” 하며 그에게 옆방에서 잘 것을 주문했다. 걷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자 박완서씨와의 산보도 중단됐다. 아내는 결국 2002년 결혼 30주년이 지나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던 시각, 신촌 세브란스병원 밖은 난리가 났었어요. 2002년 한일월드컵 경기에서 한국팀이 승리하자 신촌 일대가 환호성으로 뒤덮였지요. 그런 열광의 분위기 속에서 저와 아내는 마지막 헤어짐의 의식을 치렀습니다.”
그의 나이 쉰여섯. 한번쯤 부부 전시회를 가졌으면 좋았으련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로 남는다고 한다.
홍익대 미술대 학장인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홍대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응로 화백의 뒤를 이어 예술의전당에서 ‘영재 그림교실’을 진행하는 등 후학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그림을 운명이라 생각한다. 자기 식대로 성실하게 열심히 그리다 보면 기회가 찾아온다고 강조한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화가의 경험은 작품 세계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림은 공상과학이 아니에요.”
그는 이번에 펴낸 책에서 생계를 위해 5년여간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는 수출화를 그리기도 했다고 공개했다. 일본인 바이어가 풍경화 몇 점, 정물화 몇 점, 인물화 몇 점 하는 식으로 주문하면 요구에 맞춰 그림을 그린 것.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종일 앉아 수출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자신만의 그림을 또 그렸다고.
“이발소 그림을 그렸던 때를 낭비의 시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하루에 대여섯 점씩 무수히 많은 이발소 그림을 그리면서 순발력과 화면의 구도를 빨리 잡는 법을 기를 수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은 오늘날 붓을 잡고 순식간에 그려내는 직관적인 터치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뭐든 많이 그려본 경험이 화가에게는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는 지금도 매일 하루 한 점씩의 작품을 그려내는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이두식 교수는 누구나 화가가 될 수 있는 소양과 소질이 있다고 강조한다. 시간이 날 때 붓을 잡고 가슴에 넘쳐나는 이미지를 화폭에 옮기면 인생이 훨씬 아름답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책 ‘고릴라 로마역에 서다’에는 그림 감상법, 그림 잘 그리는 법 등도 소개되어 있어 예술적인 교양을 쌓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여성동아 2005년 9월 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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