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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스승과 제자

8년 만에 연극무대 서는 배우 유오성

“언제나 격려해주는 선생님의 믿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기획·송화선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5.08.10 15:57:00

연기파 배우 유오성과 우리나라 최고의 액팅 코치로 꼽히는 최형인 교수가 연극 ‘테이프’의 주역과 연출로 뭉쳤다. 잇따른 영화 흥행 실패와 구설수를 딛고 연극무대로 복귀한 유오성과 그를 지켜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최 교수를 만나 이들의 특별한 사제 관계에 대해 들어보았다.
8년 만에 연극무대 서는 배우 유오성

배우유오성(39)과 ‘배우를 키우는 선생’으로 유명한 최형인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56·극단 한양레퍼토리 대표)는 남다른 인연을 가진 사이다. 유오성은 한양대 연영과 85학번으로 최 교수가 84년 가을 이 학교에 부임한 뒤 처음으로 뽑은 제자 가운데 하나. 유오성은 대학 졸업 후에도 최 교수가 창단한 극단 ‘한양 레퍼토리’의 첫 작품 ‘핏줄’(92년)의 주역을 맡으며 연극계에 데뷔해 특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이런 두 사람이 연극무대에서 다시 만나 화제를 모으고 있다. 97년 ‘칠수와 만수’를 끝내고 스크린과 브라운관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던 유오성이 8년 만에 최 교수가 연출하는 연극 ‘테이프’에 출연하는 것.
7월22일부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테이프’는 빈스라는 한 남자가 10년 전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에이미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존과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연극은 빈스가 존이 에이미를 강간했다고 믿고 그날 밤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테이프를 녹음하면서 전개된다. 이 작품에서 유오성은 마약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지만 자원봉사 소방관이라는 점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강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여리고 순수한 28세 청년 빈스 역을 맡았다.
“4학년 학생들 수업을 진행하다 처음 이 작품을 대했는데,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매력 있었어요. ‘이 작품 꼭 해야 되겠는데 누구랑 하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떠오른 게 오성이었죠. 강한 이면 속에 순수한 매력을 가진 빈스 역의 임자는 오성이밖에 없더라고요.”
두 사람이 함께 작품을 하게 된 데 대한 최 교수의 설명이 끝나자 유오성은 바로 “실은 내가 먼저 선생님께 매달렸다”고 말을 받았다. “그동안 연기하며 관습적으로 ‘사기쳐 온’ 것들을 바로잡아줄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년 만에 연극무대 서는 배우 유오성


힘겨울 때 손을 뻗은 제자, 한결같이 믿고 격려해주는 스승
사실 유오성은 그동안 기나긴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2001년 영화 ‘친구’가 대성공을 거둔 이후 주연을 맡은 영화 ‘챔피언’ ‘별’ ‘도마 안중근’, SBS 드라마 ‘장길산’ 등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했고, 개인적인 구설도 끊이지 않았다. 전성기 시절 선이 굵고 힘차다는 평을 듣던 그의 연기도 최 교수가 “‘장길산’을 보니 오성이가 눈빛도 약해지고 상당히 지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할 만큼 힘이 빠졌다. 유오성은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할 때 선생님이 대본을 주셨다”며 최 교수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르네상스 우먼’으로 불리는 최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뉴욕대에서 연기학 석사학위(MFA)를 받고, 배우 출신 교수 1호, 배우 출신 여성 연출가 1호 등의 기록을 세운 바 있는 여걸. 연기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고함 치고, 때로는 때리기까지 하면서 “스스로를 깨버리라”고 주문하는 교수법으로 유명하다. 권해효 설경구 이문식 홍석천 등 최 교수의 제자들이 한결같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그를 꼽는 것은 이처럼 남다른 열정과 사랑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런 최 교수에게 유오성은 어떤 제자일까.

8년 만에 연극무대 서는 배우 유오성

“한양대 연영과 85학번 아이들은 제 첫 제자들이라 느낌이 각별해요. 그중에서도 오성이는 처음부터 눈에 띄었죠. 강원도 영월 출신인데, 솔직하고 순수한 데다 마음에 없는 얘기는 못하는, 한마디로 ‘미친놈’이었거든요. 자기 안에 표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것이 안으로 들끓어서 어떻게 나오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연영과에 오는 애들치고 미치지 않은 애들이 없지만, 오성이는 졸업시키면서 ‘저 녀석은 놓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할 만큼 특별했죠.”
최 교수는 유오성이 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독백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아 엉엉 운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벌써 20년이 지난 일이지만 최 교수는 지금도 제자들에게 “예전에 유오성 선배는 교수를 울릴 만큼 연기를 잘 했다”고 이야기한다고.
그런 제자가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겪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연극무대에 돌아온 모습을 보는 스승의 표정에서는 애틋함이 묻어났다.
“나는 오성이가 연극하려는 애인 줄 알았어요. 너무 빨리 영화로 간 게 아쉬웠죠. 지금도 영화를 조금만 늦게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영화는 조금만 잘못해도 순식간에 추락하는 곳이잖아요. 오래 나가 있는 제자들을 보면 늘 마음이 아프죠. 그래서 연극무대에 돌아오면 ‘네 존재가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줘요.”
이처럼 한결같이 자신을 믿고 격려해주는 스승에게 유오성이 손을 뻗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유오성은 “기자들 중에는 잔인하게도 내게 ‘추락해보니 어때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며 “하지만 난 비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추락한 것도 아니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8년 만에 연극무대 서는 배우 유오성

최형인 교수는 유오성에게 힘들 때 돌아갈 수 있는 ‘고향’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친구’나 ‘간첩 리철진’ 같은 영화는 제 연기 인생이라는 산의 마루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시절에도 난 스타가 아니라 배우였을 뿐이죠. 올라가면 내려오는 거고…. 아무리 작은 배역이라도 이 역할을 할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게 배우잖아요. 지금은 저에게 시나리오도 들어오지 않지만, 제가 죽는 날 누군가가 제 연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덧 불혹의 나이,연기와 가정 책임지는 배우 되고 싶어”



어느덧 불혹의 나이에 이른 유오성은 이제는 연기가 한층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다고 털어놓았다. “마흔이 되니 과연 앞으로 몇 편의 작품을 더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 한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최 교수도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는 오성이가 너무 커버려 다른 배우들과 균형이 깨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성실하게 연습하고 상대역과 호흡도 잘 맞추는 모습을 보며 한결 책임감 있는 배우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칭찬했다. 그는 “옛날에는 아기 배우였다면, 이제는 가족과 자신의 연기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힘겨운 시간을 거쳐온 유오성에게 가족은 남다른 의미다. 유오성은 “지금의 나에게 가족은 신앙이자 종교”라는 말로 깊은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8년 만에 연극무대 서는 배우 유오성

“아들이 여섯 살이에요. 깊게 뿌리 내리고 높이 크라는 의미로 이름을 ‘근탁’이로 지었는데, 이 아이의 세 살 때부터 다섯 살까지의 일을 하나도 모릅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한동안 너무 바빠서 지켜봐주지 못한 거죠. 아빠로서 자식이 한창 커 가는 중요한 시기를 놓쳤다는 게 너무 미안하더군요.”
그래서 요즘엔 책도 읽어주고 유치원에도 데려다주며 그동안 근탁이에게 못한 아버지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연기자로서 요즘의 나는 환자나 다름없고, 선생님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의사”라며 “이건 정말 배우로서 하기 힘든 말이지만, 솔직히 요즘 내 연기는 타성의 늪에 빠진 것 같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라고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저에게 연기를 가르친 분이고, 대학 졸업 뒤 뭘 해야 할지 막막하던 때 배우로 데뷔시켜준 분이에요. 힘들 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연기자 유오성의 ‘고향’과 같은 존재죠. 제가 선생님께 연극무대에 다시 서게 해달라고 졸랐고, 그 덕에 지금 아주 행복해요.”
유오성은 “‘테이프’의 빈스 안에 숨어 있는 나약함, 순수함, 솔직함 등을 표현하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작품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최 교수도 “유오성에 대해 이런저런 오해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아는 오성이는 어린애처럼 순수한 배우”라며 “남성적인 외양에 여린 심성을 가진 빈스 역에 딱 어울리는 오성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멋진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나를 나답게 지켜주는 힘은 과연 뭘까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지쳤을 때 돌아갈 수 있는 둥지 같은, 엄마 품처럼 포근한 무대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관객에게도 이런 제 마음이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여성동아 2005년 8월 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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