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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책을 펴는 즐거움

엄마와 아기가 오순도순 함께 읽는 희망 이야기 아기 참새 찌꾸

2005. 08. 09

‘아기 참새 찌꾸’는 초원을 찾아 떠나는 아기 참새 찌꾸의 모험을 그린 성장 동화. 참새 찌꾸의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 속엔 지구촌의 기아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도 녹아 있다. 하지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동화 전체가 한 폭의 그림을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

엄마와 아기가 오순도순 함께 읽는 희망 이야기 아기 참새 찌꾸

들풀이성기어 자란 냇가 오솔길을 혼자 거닐어본 적이 있는가. 냇물은 깊지도 얕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조잘댄다. 여름 햇살과 하늬바람에 속살을 드러낸 풀들은 부끄러움을 못 이겨 하늘하늘 살랑인다. 무심한 발길질에 놀란 나비가 풀숲에서 폴랑 날아오르고 벌레들은 뚝 울음을 그친다. 문득 냇물과 풀숲과 오솔길, 그리고 그 안에 든 모든 것이 ‘소리 있는 정적’의 품에 안긴다. 평소 스쳐 지낸 것들이 어느새 중요한 의미로 가슴에 다가들고 분노나 욕심, 미움 같은 마음속 더께는 하찮은 것으로 변해 흩어진다.
쉽고 예쁜 우리말로 추억의 곳간을 슬며시 열어주는 글을 읽는 건 큰 즐거움이다. 거기다 어릴 적 노닐던 강가와 숲길, 거기 사는 새들에다 우리 이웃의 얘기까지 곁들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곽재구 시인이 쓴 동화 ‘아기 참새 찌꾸 1, 2’(파랑새 어린이 펴냄)는 바로 그렇게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 즐거움을 안겨주는 책이다. 작가 스스로 책머리에 밝힌 집필 동기부터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아름답다.
“오랫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은 한 아이가 엄마와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이라 생각해왔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는 그걸 듣다가 엄마에게 알지 못했던 것을 묻고… 이번엔 아이가 엄마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러자 엄마가 아이에게 이건 무슨 뜻이니, 묻고… 그러다가 아이는 엄마의 무릎 위에서 잠이 들고….”
평화롭기보다는 모험과 환상으로 가득한 책
그러나 사실 아기 참새 찌꾸는 평화롭기보다는 모험과 환상으로 가득한 책이다. 세상과 부닥쳐 싸우고 바꿔보려는 투지가 번득이기도 한다. 그걸 작가는 격하거나 어려운 말은 피하면서 발음하기 예쁜 구어(口語)들을 고르고 골라 꿈같은 이야기로 엮어놓았으니 읽는 내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찌꾸는 80년대 어느 날 서울 한강변 전주 위 둥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난 지 일주일 만에 아빠에게서 “훌륭한 참새가 되는 길은 얼마나 하늘을 잘 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과 “훌륭한 참새는 두려움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는 뚜렷한 ‘삶의 철학’과 ‘이념’을 전수한다. 고작 몇 번의 날갯짓 연습 끝에 첫 날기를 목숨을 건 하늘로의 비상으로 시작한 그는 늠름하고 강건하며 세상을 이끄는 으뜸 참새로 성장하기까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그의 이름 찌꾸가 참새들 말로 ‘초원의 개척자’요, 아빠 이름 찌뿌가 ‘초원의 방랑자’, 엄마 찌무가 ‘초원의 시’ 라는 멋지고 가슴 설레는 뜻을 가져서만이 아니다. 날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을 관찰하고 “시(詩)란 세상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노래이자, 세상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것과 “회사에서 퇴근한 아빠가 엄마의 볼에 뽀뽀하는 것도 사랑의 시고, 엄마가 아침상에 식구들이 좋아하는 두부 된장국을 구수하게 끓여 내는 것도 사랑의 시”임을 알고 있었을 정도로 찌구의 가슴이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찌꾸는 종로의 데모 현장에서 최루가스를 마셔 빈사 상태에 빠졌다가도 살아날 수 있었으며 온몸이 부스러지는 고통을 이기고 참새로서는 처음으로 기류를 타는 큰일도 해낼 수 있었다. 최루가스 같은 열악한 환경도 이겨내고 기류도 마음대로 탄다는 것은 세상 어디든 거침없이 갈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한다. 소래 포구를 거쳐 지리산, 한라산과 비무장지대 금강산을 거쳐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날아다니며 찌꾸는 동족 참새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의 우정과 사랑도 멋들어지게 만들어간다.



문학에서 사실 동화는 역사적·이념적 사건이나 상황을 풀어내기는 적합지 않은 장르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곽재구 시인은 참새의 관점, 참새의 입을 빌어 한국적 상황의 응어리진 부분을 절묘하게 묘사한다. 찌꾸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길수 할아버지 이야기는 바로 북한으로 돌아간 장기수 이인모 노인의 이야기며 참새 사냥꾼들의 학살 장면은 80년 5·18 민주화운동을 비유했음이 분명하다. 비무장지대 총알구멍이 난 철모를 통해 작가는 민족 전쟁의 참상을 일깨우고 또 한편 지구촌의 기아 현장도 중계해준다.

참새의 입을 빌어 한국의
응어리진 상황 절묘하게 묘사하기도
작가의 말처럼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다 아이가 엄마의 무릎 위에서 잠드는 동화”의 수준은 그러므로 찌꾸가 초원을 찾아 떠나는 1권에서 사실상 끝난다. 2권에 들어와 작가의 현실인식이 독자에게 주입되면서 “이거 동화 맞아?”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작가는 아름다운 시어와 예쁜 뜻 말을 풀어놓아 시선을 잡아매둔다.

첫눈을 위한 시



내가 만약첫눈이 된다면난 너희 집 마당 앞에제일 먼저 내릴 거야

들에도산에도나무에도교회당의 예쁜 십자가 위에도내리지 않을 거야

내가 만약첫눈이 된다면난 너희 집 마당 앞에작고 예쁜 참새 발자국 하나새길 거야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을 연상시키는 기류타기 비행 장면이나 “추억의 지층들이 한 켜 한 켜 쌓여 빛을 내는 게 이 지상의 모습이야”라는 주인공 참새 찌꾸의 말도 동화가 조금 ‘오버’하는 것을 가려주는 좋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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