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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인간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비결

입력 2005.08.09 13:41:00

인간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비결

NQ의 시대, 인간 관계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유지하느냐가 성공을 결정하는 시대다. 내가 꼽는 NQ 달인들의 공통점은 첫째, 사람을 사귈 때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를 이용해보겠다는 목적으로 사람을 대하면 아름다운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다. 지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돌연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도 있고, 반면 무시했던 사람이 실력자가 될 수도 있다. 둘째는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기대와 원망을 지우고 만나면 항상 반갑고 즐거운 인사를 나눌 수 있다. ‘지우기’는 다른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 유지뿐 아니라 나 스스로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 같다.
NQ(Network Quotient, 공존지수)의 시대라고들 한다. 네트워크 지수가 높은 이들, 즉 인간 관계를 잘 꾸려나가는 이들이 성공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단순히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게 아니라 그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바로 네트워크 관리다.
예전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으면 흔히 ‘오지랖도 넓다’등 부정적인 표현을 썼지만 요즘은 ‘인맥 넓히기’에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인맥 관리 노하우를 지도하는 강좌도 인기다.
이 시대 ‘NQ의 달인’으로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 가수 겸 화가 조영남, 연극배우이자 전 환경부장관 손숙, 정치인 김상현, 방송인 이금희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단순히 ‘사람이 많이 꼬인다’는 사실 외에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사람 사귈 때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생전 처음 본 여자에게도 “노란 색깔이 어울려요, 아님 보라가 나을까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묻거나 옆집에 이사온 열 살 연하 아줌마와도 금방 친구가 되는 여성들과 달리 목적지향적인 남성들은 사심 없이 누굴 만나기가 힘들다. ‘이 사람을 알아두면 쓸모가 있겠다’고 판단되어야 명함을 나누고 교분을 시작한다. 하지만 누구를 이용해보겠다는 야심이나 저의로 사람을 대하면 상대방 역시 그런 마음을 쉽게 파악해 아름다운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 현재 그 사람의 지위와 권력을 보고 비굴하게 비위를 맞추며 공을 들였는데 돌연 그 사람이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심지어 교도소에 가는 경우도 많다. 반면 마냥 무시했던 사람이 실력자가 되어 복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인맥 관리의 시대, 사람 사귈 때는 계산하지 말아야
이수성 전 총리는 지위상하와 연령고하를 막론하고 ‘형님 4만 명에 아우님 5만 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서울대 총장 시절에도 동네 상가에 들러 떡을 사먹으며 떡집 아줌마들과 친분을 쌓았는데 총리가 되자 이 아줌마들이 떡과 야식을 수시로 만들어 총리실로 날랐다고 한다. 그를 만난 자리에서 “깡패부터 종교인까지 누구와도 호형호제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거리를 가다 거지를 봤습니다. 그래서 갖고 있던 동전을 던져줬더니 아버지께서 `당장 그 동전을 다시 가져와 두 손으로 드려라’ 하고 나무라시더군요. 그 거지가 나보다 못한 것은 돈이 없다는 것뿐이라면서요.”
그런 겸허한 자세를 가르친 아버지 덕분에 그는 칠순을 앞둔 요즘도 수십여 개 단체의 장을 맡아 매일 매일을 보람차게 보낸다.
NQ 달인들의 두 번째 특징은 잘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어떻게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며, 대소사 등은 어떻게 처리할까 항상 궁금했는데 몇몇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건망증’이 비결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인지 이들은 처음 몇 번 만난 이들의 경우 이름은 커녕 존재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껄끄러웠던 일이 있었더라도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것 같다.

인간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는 비결

각계각층에 많은 지인들을 거느린 연극배우 손숙씨의 비법(?)도 건망증이다.
“오전에 한 신문사 기자와 만나서 두 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고도 그 날 오후에 다른 장소에서 만나면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니까요.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오는 명사들이라 해도 내가 관심 없으면 몇 번 봤어도 도통 누구인지 몰라요. 그래서 오히려 편하죠.”
이금희 아나운서는 화면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누구에게나 다정다감한 ‘상냥함의 여왕’이다. 누군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위로해주고, 생일이나 기념일을 챙겨 선물을 건네고(말로만 축하해주는 것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른 사람들의 청탁을 쉽게 거절하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생글생글, 방글방글 웃는 게 신기하다. “그렇게 남들에게 신경 써주고 베풀면 손해보는 느낌은 없수? 내가 열 개를 줬는데 상대방이 다섯 개밖에 몰라주거나 전혀 고마운 줄 모르면 속상하지 않아?”라고 물어보니 “저는 잘 잊어버려서 괜찮아요” 한다.
“누굴 만나면 무조건 반갑게 인사를 하거든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 전에 뭔가 싸웠거나 불편한 일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아요. 심지어 제가 직접 골라서 선물한 물건도 못 알아보고 나중에 ‘어머, 예쁘다. 이거 어디서 샀어?’ 하고 묻는다니까요. 그러니 뭐 기분 나쁘거나 손해봤다는 생각을 못하죠.”
술을 많이 마시는 남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조영남씨는 술이 잔뜩 취했을 때 한 말이나 만난 사람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나중에 그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면 “어 그래? 내가 그런 말을 했어?”라거나 “그 사람이 전에 본 그 작가야?”라며 정말 전혀 뜻밖이란 표정으로 묻는다.
두뇌가 명석하며 특히 이름을 잘 기억하는 것으로 유명한 교수가 있다. 정치인부터 문화인에 이르기까지, 그와 알고 지내는 사람들만 모아도 세종문화회관을 채울 정도다. 한번은 그 분이 내게 다른 교수를 소개해준 적이 있다. 몇 달 후 어느 모임에서 그 분을 다시 만났는데, 그가 전에 내게 소개시켜준 교수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아는 척을 했더니 내게 “아니, 유인경씨도 그 교수를 알아요?” 하고 묻는 게 아닌가.
나는 “어머머, 저번에 교수님이 제게 소개시켜 주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혹시 치매 아니세요?”라는 말이 아래 어금니까지 차올랐으나 겨우 참았다. 그 분 역시 잘 잊어버리는 기억력의 소유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타인은 물론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우기법’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힘은 노력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자동적인 것이든 간에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분 좋고 황홀한 기억보다는 언짢고 우울하고 신경질 나는 일들, 그리고 내가 억울하게 당했던 사건과 그 가해자들에 대한 어두운 기억들이 온통 머릿속을 들쑤셔놓아 다른 뇌기능조차 방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들에게는 그런 지저분하고 안 좋은 기억이나 불필요한 정보, 싫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일이 마치 클릭 한 번이면 끝나는 이메일 ‘휴지통 비우기’처럼 간단하고 산뜻하다니 얼마나 좋을까.
타인에 대한 원망과 분노,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감으로 비디오를 되돌려 보듯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던 당시의 상황과 대사들을 되새기느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 그래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어나는 이들과 달리 내가 꼽은 NQ의 달인들은 금방 잠들고 숙면을 취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정말 반갑고 기쁜 표정으로 대하고, 아무런 기대나 원망을 보이지 않으니 만나는 이들도 덩달아 즐거워지고 더욱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까.
열대야에 모기의 방해로 잠 들기가 쉽지 않은 여름밤, 괜한 망상과 기억까지 떠올리느라 주름살을 만들지 말고 이들의 ‘지우기법’을 배워보자. 타고난 성격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미운 사람의 이름을 한 번 부른 다음,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날려버리자. 나쁜 기억도 함께 말이다.
대신 미움이 있던 그 자리에 즐겁고 신나고 행복한 기억들만 차곡차곡 쌓아두자.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고, 고마운 이들에게 한 번 더 감사해하면서 말이다. 많은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려면 ‘지우기법’은 꼭 필요한 것 같다.


여성동아 2005년 8월 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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