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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안타까운 이별

가수 김창남 부인 정임채씨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 가슴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

“남편이 저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줄 거라 믿어요”

글·김지영 기자 / 사진·조영철 홍중식 기자

입력 2005.08.03 13:52:00

80년대 인기 남성듀오 ‘도시의 아이들’의 전 멤버인 가수 김창남이 최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 20주년을 맞은 올해 남편을 떠나보낸 부인 정임채씨를 만나 남편에 대한 추억과 안타까운 심경을 들어보았다.
가수 김창남 부인 정임채씨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 가슴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

지난86년 남성듀오 ‘도시의 아이들’의 멤버로 가요계에 데뷔해 ‘달빛 창가에서’ ‘선녀와 나무꾼’ 등의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은 가수 김창남(48). 올 봄 미국 공연을 다녀온 뒤 간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던 그가 지난 6월27일 세상을 떠났다.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그의 빈소를 찾은 ‘도시의 아이들’의 또 다른 멤버였던 박일서를 비롯해 가수 신형원·유현상, 개그맨 전유성·이홍렬 등은 미망인 정임채씨(46)와 두 자녀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마다 애써 담담한 척하면서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정씨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 서울 동작동 자택에서 만난 정씨는 “남편이 나를 너무 끔찍이 사랑해 하나님이 샘나 데려가신 것 같다”면서 “함께 사는 동안 남편한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결혼생활 20년 동안 온전히 남편을 위해 살았어요. 친구들이 서운해할 정도로 개인적인 시간을 내지 못했어요. 남편은 저를 어디든 데리고 다니고 싶어 했거든요. 85년 결혼해 올해가 꼭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예요. 그래서 내년에는 같이 월드컵을 보러 독일에 가기로 했었는데….”

10년 전 과로와 과음으로 간경화 진단 받아
두 사람은 정씨가 “삼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라고 회고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첫 만남을 가졌다. 지난 83년 겨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 처음 만났는데 순간 서로 전기가 통하는 것을 느끼며 운명의 상대임을 직감했다는 것.
“남편이 저와 등지고 있었는데 뒤통수가 뜨끈뜨끈하더라고요. 그래서 저 사람한테 이상한 전기가 흐른다고 친구에게 얘기했죠. 남편 또한 저한테서 전기가 흘러나와 코가 타는 줄 알았대요. 남편이 저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는데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제가 먹고 있던 치킨을 놓쳤어요. 결국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나오는데 남편이 쫓아나와 커피 한잔 하자고 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죠. 제가 그날따라 그 집 치킨이 먹고 싶어서 갔다고 하니까 남편도 평소 안 그러던 친구가 세 번이나 찾아와 억지로 끌려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만날 운명이었던 것 같다면서요.”
가수 김창남 부인 정임채씨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 가슴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

그 이튿날 두 번째 만남의 자리에서 김창남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그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다”면서 “원래는 독신주의자였는데 그 말에 순순히 좋다고 대답했다”고 회고했다. 그때부터 45일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만난 두 사람은 1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그와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오순도순 살던 김창남의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온 것은 결혼 10주년 되던 지난 95년. 당시 김창남은 가수 활동으로 무리한 데다 술을 많이 마셔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김창남은 그때부터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꾸준히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상태가 호전되자 다시 일 욕심을 냈다고. 그런 남편에게 정씨는 “이제 무리하면 안 된다. 앞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간에 이상이 생기면 좀 피곤할 뿐 다른 증상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남편은 괜찮다면서 전처럼 바쁘게 일하면서 술도 즐겨 마셨어요. 편식이 좀 심한 편이고, 육식을 좋아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도록 저 나름대로 애써봤지만 끝내 식습관을 바꾸지 못했어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그러면 더 스트레스를 받아 빨리 죽을 거라고 해서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게 후회스러워요.”

가수 김창남 부인 정임채씨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 가슴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

남편 김창남의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을 안방에 걸어놓고 보면서 남편에게 하고픈 얘기를 털어놓는다는 정임채씨.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건강상태를 살펴온 김창남은 2년 전 “간에 이상한 것이 보이니 암세포인지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다행히 정밀검사에서 “암세포가 아니다”라는 결과가 나오자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뭐든 하면 푹 빠지는 스타일이라 교회 일에 굉장히 열심이었어요. 특히 올 초부터 목사님들과 함께 펼쳐온 ‘아버지 학교’ 봉사활동에 애착이 많았어요. 가정회복 운동의 일환인 ‘아버지 학교’는 가정에 소홀한 아버지들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어야 가정도 살고, 나라도 산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봉사 프로그램이에요. 남편은 아버지학교에서 그룹사운드 같은 팀을 짜가지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가정회복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어 했어요. 남편이 그 꿈을 이루지 못해 가슴이 아파요.”
김창남은 간암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도 3개월에 한 번씩 꾸준히 검사를 받았다. 그러다 지난 1월 아버지학교 팀과 중국과 홍콩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펼칠 당시 그는 “먹기만 하면 자꾸 체한다”고 불편함을 호소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에서 위궤양이라며 내준 약을 먹어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고.
그런 그가 간암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4월 미국 공연을 다녀온 직후였다. 병원에서는 “암 세포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번졌다”며 별다른 방도가 없다고 말했지만 김창남은 그 지경에 이를 때까지 아무런 통증도 호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간암이 굉장히 고통스러운 병이라고 하던데 전혀 아파하지 않았어요. 사실 미국 가기 전 병원에서 ‘간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며 수술을 권했어요. 하지만 남편은 이미 2개월 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 중이던 아들을 보러 가려고 비행기 표를 끊어놓은 상태였고, 더구나 그 무렵 미국에서 공연 요청이 들어와 예정대로 미국행을 강행했어요.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의 날씨가 너무 추워 예정보다 1주일 앞당겨 돌아왔는데 그 사이 상태가 악화됐다고 하더라고요.”
그 길로 김창남은 바로 입원했지만 병원에서는 매일 링거 주사를 놔주는 정도였다. 그러던 지난 5월 중순 “병실에 있지 말고 공기 좋은 데로 가라”는 주위의 조언을 듣고 두 사람은 잠시 병원을 나와 매니저의 친구 부부가 사는 경기도 양수리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
양수리에서 지내는 동안 정씨는 온종일 남편 옆에 붙어 있었다. 당시 김창남은 뜰에서 살살 걸어다니거나 가끔 햇볕을 쬘 때 외에는 누워서 지내야할 만큼 기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거기서도 매일 출장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던 지난 6월26일 정씨는 집안 어른들과 상의해 한방 치료를 받기 위해 퇴원했지만 “손쓰기가 너무 늦었다”는 진단을 받아야 했다.
“정말 당황스러웠지만 바로 입원할 수가 없어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남편이 자꾸 아픔을 호소하며 처음으로 진통제를 찾더라고요. 잠을 못 자고 뒤척이기에 찬송가를 불러주고 ‘당신은 하나님 아들이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라’고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성경책을 읽어주었죠. 남편은 옆에서 기도를 했고요. 덕분에 그날 밤 남편은 밤새 뒤척이긴 했지만 고통스러워하진 않았어요.”
아침이 되자 김창남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안 식구들이 다 그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김창남은 병원으로 가자는 식구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집에 있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간헐적으로 통증을 호소하고 벌떡 일어나 기도하기를 반복하던 그는 저녁 9시 30분쯤 결국 세상을 떠났다.

같이 사는 동안 서로 최선을 다했기에 홀가분하게 떠나보낼 수 있는 용기 생겨
가수 김창남 부인 정임채씨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 가슴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

장례식 내내 슬픔을 억누르고 비교적 담담한 모습으로 조문객을 맞은 부인 정임채씨와 큰딸.


그는 남편 김창남이 분명 좋은 곳에 갔을 거라고 말한다. 남편이 천당에 갔다고 믿는다는 그는 “남편은 결혼 후 내내 처가 식구들과 함께 살면서 극진한 애정을 쏟아주었고, 내 동생 세 명을 다 결혼시켰다”고 고마움을 표하면서 “그런 사위를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해온 친정 어머니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저더러 잘 버티고 있다고 해요. 지금까지 살면서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기에 홀가분하게 남편을 떠나보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원래 다정다감한 아빠였던 김창남은 아버지학교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로 아이들을 더욱 넉넉하게 품어주었다고 한다. 정씨는 그런 아빠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고 떠나 아이들이 빈 자리를 크게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철없이 굴던 대학생 딸(20)과 중학생 아들(16)이 오히려 그를 위로해준다고.
지금도 남편 김창남의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을 안방에 걸어놓고 보면서 남편에게 하고픈 얘기를 털어놓는다는 정씨는 “남편은 살아생전 ‘행복하다’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많이 표현해서인지 떨어져 있어도 떨어져 있단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편은 분명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정말 환한 얼굴로 임종했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덜 아파할 수 있고요. 그리고 남편이 저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줄 거라 믿어요.”

여성동아 2005년 8월 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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