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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배짱 경영 & 프라이버시 공개

“저에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저도 몰랐어요”

기획·최호열 기자 / 글·김진령‘일요신문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5.08.02 14:12:00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7월16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화제가 되고 있다.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그가 남편이 세상을 뜬 후 위기에 빠진 현대그룹을 정상화시킨 데 이어 대북사업까지 진전시키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해 재계를 놀라게 한 것. ‘부드러운 카리스마’라 불리는 그의 남다른 리더십을 집중 취재했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배짱 경영 & 프라이버시 공개

지난7월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50)이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난 사실이 북한 중앙TV를 통해 보도되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시아버지인 고 정주영 현대 그룹 명예회장과 남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 이어 그까지 북한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은 셈이기 때문.
현 회장은 지난 6월 열린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제에 특별 초청되어 평양에 갔을 때도 북측에서 각별히 예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경대를 관람할 때 다른 남측 대표단과는 별도로 안내하는가 하면 승용차도 따로 배정하고, 안내원도 별도로 배치했다는 것.
면담 다음 날인 7월17일 북한 방문을 마치고 강원도 고성을 통해 귀환한 현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어제 김정일 위원장과 단독 면담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백두산과 개성, 내금강에 대한 관광 프로그램 독점개발권을 구두로 약속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백두산 관광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이 “숙박시설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초대소 20채를 내줄 테니 활용하라”고까지 말했다고.
“7월15일 오후에 연락을 받았어요. 다음날 오전 11시부터 오찬을 포함해 3시간 30분 정도 만났는데, 김 위원장이 우리 일행을 직접 마중 나와 깜짝 놀랐어요. 제가 지난 6월 평양에 갔을 때 못 만난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도 했고요.”
현 회장은 김 위원장이 오찬을 할 때 현 회장의 큰딸 정지이씨를 보고 “안경만 쓰면 아버지와 꼭 닮았다”고 하는가 하면 “정 회장 부자를 만났을 때는 보드카를 함께 마시며 흥겨운 분위기를 냈었다”고 회상하며 즉석에서 보드카를 준비시켜 추모 건배를 제의하는 등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었다고 전했다. 또한 김 위원장이 식사 중에 어느 음식은 해바라기 기름으로 볶아야 맛있다고 말하는 등 요리에 대한 식견이 대단한 것 같았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마음이 쓰리다’는 말도 했어요. 그러면서 ‘정몽헌 회장에게는 금강산을 내줬는데 현 회장에게는 뭘 줄까 생각했었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시아버님과 남편의 영향으로 면담이 잘된 것 같아요.”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관광개발사업 확대 합의를 통해 다시 한번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셈이지만 현정은 회장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1남2녀를 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2003년 8월 남편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은 그의 인생을 갑작스레 바꿔놓았다.
2003년 10월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침몰 위기에 처한 현대그룹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위태롭던 현대그룹은 중심을 잡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취임 초기, 그에게 캐서린 그레이엄의 자서전 ‘퍼스널 히스토리’를 선물하는 사람도 있었다. 2001년 작고할 때까지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를 경영했던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도 63년 여름 남편이 자살하기 전에는 가정주부였다. 하지만 그는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지 한 달도 안돼 워싱턴포스트의 지휘봉을 잡아 63년 매출 8천4백만 달러의 워싱턴포스트를 2000년 24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로 키워냈다.
현정은 회장은 이제 시작이다. 물론 지난 1년9개월은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시숙의 난’이라 불리는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밀리지 않았고, 6개 계열사로 줄어든 현대그룹의 살림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 놓았다. 지난 7월 초에는 현 회장이 68%의 지분을 가진 현대유앤아이라는 회사도 세웠다.
현대유앤아이는 향후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그동안 경영권 분쟁에서 단기 처방으로 대응했던 현 회장 일가가 근본적인 소유구조 재편에 나섰음을 의미하며 그만큼 현 회장 체제가 안정궤도에 들어섰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현 회장의 최근 행보는 부쩍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초등생 자녀 둔 임직원들에게 자녀교육서 선물하는 등 감성적 리더십 발휘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배짱 경영 & 프라이버시 공개

7월16일 현정은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만나 화제를 모았다. 현 회장의 장녀 정지이씨(맨 오른쪽)도 자리를 함께 했다.


현 회장이 이렇듯 현대그룹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카리스마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그는 우유부단할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듣던 고위 경영진을 빠르게 정리해나갔다. 경영권 분쟁으로 그룹 안팎이 어지러워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깬 과감한 행보였다. 대북사업도 그가 직접 나서서 챙겨 자신이 북측과의 협상 파트너임을 분명히 했다.
현 회장 본인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남편의 급작스런 죽음과 시숙의 경영권 공격으로부터 ‘정몽헌가의 현대’를 지키기 위해 30년 가까이 살림만 하던 그가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이’ 현대그룹 회장직을 맡아 1년 9개월을 넘기면서 스스로에게 놀랐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강단은 부드러움과 함께 이뤄졌다. 현 회장은 직원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직원들에게 선물을 할 때도 ‘장사 잘하고 회사생활 잘하라’는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은 선물을 하지 않는다.
초복을 이틀 앞둔 지난 7월13일 현 회장은 임원 가족들에게 포장용 삼계탕 9백여 마리 분을 편지와 함께 보냈다. 편지에는 “열심히 일하시는 임원들과 이들을 아낌없이 지원해주시는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건강은 바로 지금 지키는 것이지 때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물론 초복 당일 구내식당에서도 직원들에게 삼계탕 특식을 선물했다.
지난 6월 중순에도 현 회장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임직원들에게 ‘아이 안에 숨어 있는 두뇌의 힘을 키워라’라는 책을 선물했다. 책과 삼계탕은 직원들로부터 “직장생활을 하는 동생을 생각하는 큰 누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선물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현 회장은 집안 대소사에는 꼬박꼬박 참석한다. 얼마 전 강남 봉은사에서 치러진 정세영 현대산업 명예회장의 49재에도 참석해 제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유족들과 현대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등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줬고, 정인영 전 한라그룹 명예회장의 부인상에서도 내내 자리를 지켰다. 그럼에도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웃는 모습으로 마주했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배짱 경영 & 프라이버시 공개

연애시절 고 정몽헌 회장과 찍은 사진(좌)과 고 정주영 회장과 함께 한 가족사진(가운데). 지난해 금강산 산행을 하는 현 회장 모습(우).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재벌가의 며느리 돼
현정은 회장은 재계 ‘왕회장’으로 불리던 정주영 회장의 다섯째 며느리로 세상에 먼저 알려졌지만 그의 친정도 결코 만만한 집안은 아니다. 뒷날 현대상선에 합병된 신한해운의 현영원 회장이 그의 아버지다. 현대상선 회장을 지내기도 한 현영원 회장은 호남의 거부인 현준호씨의 장남이고, 현준호씨는 20세기 초 호남 최대 갑부로 통하던 현기봉씨의 장남이다.
현기봉씨는 광주 농공은행과 우리나라의 최초 보험사로 알려진 조선생명을 설립했고, 아들 현준호씨는 호남은행을 설립했다. 재미있는 점은 현준호씨가 호남은행의 초대은행장으로 젊은 나이에 식산은행(현 산업은행) 총재를 지내는 등 조선의 영재로 꼽혔던 김신석씨를 직접 영입했는데, 그의 딸 김윤덕씨가 바로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 관장과 홍석현 주미대사(전 중앙일보 회장)의 어머니다.
현영원 회장은 김신석씨의 아들인 김홍준씨 가문과 절친한 관계로 현씨 가문과 홍 대사의 외가는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때문에 고 정몽헌 회장의 빈소에 김윤덕씨의 외손자인 삼성 이재용 상무 등이 찾아가 조문하기도 했다.
현정은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씨 쪽도 재계에 잘 알려진 가문이다. 용문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문희씨는 고 김용주 전방그룹 창업주의 장녀다. 김창성 한국경영자총협회장(전방 명예회장),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김문희 이사장의 남동생들이다. 김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와 대학원을 나와 80년대에 걸스카우트연맹 총재를 지내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였다. 이런 인연으로 현정은 회장도 걸스카우트연맹 활동을 했고, 지금도 걸스카우트연맹 중앙본부 이사직을 맡고 있다.
현영원 회장은 김문희 이사장과 사이에 딸만 넷을 두었는데, 현정은 회장은 둘째다. 55년생인 현 회장은 경기여중·고를 나온 공부 잘하는 여학생이었고 유복한 집안 환경 덕에 어려움을 모르고 컸다. 그는 이 시절에 대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기업가 집안의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워나가던 시기”라고 기록했다. 월반을 거듭한 끝에 그는 17세에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현영원 회장의 둘째 딸 ‘현정은 양’과 정주영 회장의 다섯째 아들 ‘정몽헌 군’의 혼사는 76년 7월에 있었다. 반은 중매. 75년 당시 신한해운 사장이던 현영원 회장이 딸을 대동하고 울산 현대중공업의 선박 명명식에 참석했는데 정주영 회장이 정은씨를 보고 며느리감으로 낙점한 것이다. 당시 정몽헌 회장은 군복무 중이었다. 결혼 뒤에도 대학원(이화여대)에서 학업을 계속한 현 회장은 첫딸 지이씨를 얻은 뒤 몽헌 회장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페어리디킨슨대 대학원에서 인간개발론을 전공했다.
현 회장의 사회생활은 여기까지다. 귀국한 뒤 어머니를 도와 걸스카우트연맹 활동을 폈지만 결코 앞에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남편 정몽헌 회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던 2003년 8월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남편이 자리를 비우자 그는 현대호의 조타수로 투입돼 남편보다 더한 강단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경영권 다툼의 당사자였던 시숙 정상영 KCC 명예회장을 빼고 나머지 정씨 일가들, 특히 몽자 돌림의 시아주버니들은 경영권 다툼에서 중립으로 일관했지만 현정은 회장에게 타격을 입히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현대가의 사실상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뜬 뒤 “회사 일에는 관여하지 않겠지만 유가족은 죽는 날까지 챙기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몽자 돌림 형제들의 중립이 사실상 현 회장의 수성을 도운 셈이다.

세 자녀 모두 재벌가 자제 같지 않게 소탈하고 예의 바르다는 평 들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배짱 경영 & 프라이버시 공개




현 회장의 자녀는 세 명. 첫째 정지이씨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졸업 뒤 외국계 광고회사에 다니던 그에게도 별안간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월 현대상선 재정부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것. 재정부로 발령을 받은 것은 현 회장의 뜻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을 알려면 재정부서에서 일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그쪽에서부터 일을 배우라고 했다는 것.
현 회장은 종로구 적선동 현대상선 12층 회장 집무실에서, 지이씨는 8층 재정부에서 모녀가 함께 일하고 있다. 지이씨는 올해 1월 정기인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했는데, 현 회장은 그를 새로 설립한 현대유앤아이의 등기이사에 올리는가 하면 이번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 자리에 배석시키는 등 배려를 하고 있다.
둘째 딸 영이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 유학을 떠나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부에 재학 중이다. 아버지 장례식 때 고3 수험생이던 외아들이자 막내인 영선씨는 지방의 한 대학에 적을 뒀지만 현재는 군대 문제로 휴학 중이다. 그는 군대 문제를 해결하는 대로 유학길에 오를 예정이다.
지이씨나 영이씨의 모습을 지켜본 주위 인사들은 “착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전한다. 현 회장의 자녀들은 겉모습만 보고는 재벌가 자제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소탈하고 예의 바르다는 말을 듣고 있다고 한다. 현 회장도 회장직에 오르기 전에는 또래 학부형들이나 친구 모임에서 재벌가 며느리답지 않게 소탈하다는 평을 들었다. 최근에도 그가 수수한 복장으로 별다른 수행원 없이 극장에서 나오는 모습을 봤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한다. 그의 취미 중 하나는 영화 감상이다.



여성동아 2005년 8월 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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