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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박성종씨가 들려준 박지성의 열정 축구인생 & 성공 뒷얘기

한국 선수 최초 영국 프리미어 리그 진출해 화제!

기획·최호열 기자 / 글·김호‘축구 전문 프리랜서’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일요신문 제공

입력 2005.08.02 13:49:00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오라는 대학이 없을 정도로 무명이었던 축구선수가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축구 리그인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했다. 축구스타 박지성이 그 주인공. 아버지 박성종씨와 허정무 등 축구 스승들로부터 박지성의 성공신화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버지 박성종씨가 들려준 박지성의 열정 축구인생 & 성공 뒷얘기

네덜란드PSV 아인트호벤에서 활약하던 축구스타 박지성(24)이 지난 7월14일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정식 입단했다. 이로써 그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 선수가 되었다. 계약기간은 4년간이며 연봉은 2백만 파운드(약 36억8천만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선수가 프로축구 세계 3대 빅 리그(영국 프리미어 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에 입성한 것은 안정환과 이천수에 이어 박지성이 세 번째다. 그러나 빅 리그 중에서도 ‘꿈의 리그’로 불리는 프리미어 리그, 그것도 자타가 인정하는 명문 구단에 입단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세계적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유는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통의 명문 구단이다. 박지성 자신도 맨유 팬이었을 정도.
박지성은 맨유에 입단하기 직전까지 ‘정신적 아버지’로 불리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아인트호벤 잔류를 요청해 고민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성을 2002 한·일 월드컵대표팀에 발탁, 그를 오늘에 이르게 한 히딩크의 요청이었으니 그 고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히딩크는 “만약 내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정상급 팀인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가게 될지라도 박지성은 꼭 데려가겠다는 문구를 팀 잔류 계약서에 써넣겠다”고 하면서까지 그를 붙잡으려고 했다. 명성보다는 실력 위주로 선수 선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히딩크가 그렇게까지 말했다는 것은 이미 박지성의 실력이 세계 빅 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나 다름없다.

고교 졸업 후 오라는 대학 없어 선수생활 중단될 위기 겪기도
아버지 박성종씨가 들려준 박지성의 열정 축구인생 & 성공 뒷얘기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처음엔 아들이 축구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곧 마음을 돌려 지극 정성으로 뒷바라지를 해왔다.



그러나 학창시절의 박지성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철저한 무명선수였다. 키가 작고 왜소한 체구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98년 당시 그의 키가 남학생 평균키인 173cm 정도였으니 축구선수로서는 작은 편이었다. 그로 인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그를 받아주겠다는 대학이 없어 대학진학에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
박지성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부가 창단된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지원했다. 비록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았지만 공을 차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공을 끼고 살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어요. 남들이 다 돌아가버린 텅 빈 운동장에서 혼자 축구공을 튕기며 연습을 하곤 했죠. 그런데 불행하게도 겨울방학 때 축구부가 없어지고 말았어요.”
몇 해 전 기자와 만난 박지성은 자신의 축구인생의 시작을 이렇게 소개했다.
“축구부는 없어졌지만 열심히 훈련했어요. 어느 겨울날인가, 이런 제 모습을 보신 코치선생님이 축구부가 있는 세류초등학교로 전학시켜주셨죠. 이것이 계기가 돼서 지금까지 축구화를 신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 박성종씨(47)는 아들이 처음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 강하게 반대했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프로축구단이 없었어요. 축구해서 대학을 나와도 뚜렷한 직업을 찾기 힘들었고요. 그래서 반대를 했죠. 전 솔직히 공무원이나 했으면 하고 바랐어요.”

아버지 박성종씨가 들려준 박지성의 열정 축구인생 & 성공 뒷얘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식 직후 퍼거슨 감독과 함께 맨체스터 응원 스카프를 들어보이는 박지성.(아래 사진)


박씨는 아들에게 축구를 못하게 했던 이유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아버지 박씨를 설득한 사람은 어머니 장명자씨였다. 아내의 설득과 아들의 고집에 결국 두 손을 든 박씨는 그 후 아들을 열성적으로 뒷바라지했다고 한다.
“아들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구리를 잡아왔어요. 개구리는 자기 키보다 몇 배나 높이 뛰는 동물이니까 개구리를 먹이면 아들이 힘이 좋아지고 잘 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또한 제가 정육점을 했기 때문에 고기도 원 없이 먹였어요.”
어머니 장씨도 지극정성으로 아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박지성이 일본 J리그와 네덜란드에서 뛸 때도 낯선 이국땅에서 홀로 아들 곁을 지켰다. 장씨는 이번에도 따뜻한 밥을 먹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들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갔다.
아버지 박성종씨의 마음을 돌린 이후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박지성은 수원공고에 진학해 이학종 감독과 만나면서 축구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 감독은 당시 박지성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잘만 키우면 ‘물건’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160cm 정도로 다른 축구선수들에 비해 작은 키와 왜소한 체격이 문제라고 생각한 그는 1년간 박지성에게 축구부를 출입하지 말고 무조건 쉬게 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1년 후 박지성은 키가 10cm나 훌쩍 자랐다. 그후 키가 더 자라 현재 175cm다.
축구선수들은 누구나 한두 번씩 숙소를 도망쳐나온 경험을 갖고 있다. 힘들고 혹독한 훈련 때문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도망은커녕 오히려 축구귀신처럼 축구공과 씨름하며 고교시절을 보냈다.
‘성실둥이’ ‘부지런둥이’ ‘바른생활 사나이’ 등과 같은 별명이 말해주듯 그는 학창시절 성실하고 노력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국내 대학팀 중 그를 원하는 곳이 한곳도 없어 선수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까지 겪었다.
이 감독은 명지대도 어렵게 들어간 곳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감독의 부탁으로 박지성을 받아들인 김희태 당시 명지대 감독은 “지구력은 좋은데 힘이 없었어요. 그래도 볼을 쉽게 차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고민하다 가능성을 믿고 받아들였죠”라고 회상했다.
명지대에 겨우 입학하게 된 박지성은 더욱 이를 악물었다. 체격이 작다고 대학이나 프로에서 눈여겨보지도 않는 설움을 일거에 날려버리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갓 대학에 들어간 99년 초, 명지대 축구부와 올림픽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뛰게 된 것. 여기서 그는 맹활약을 펼쳤고, 그 모습을 당시 올림픽대표팀을 이끌던 허정무 감독이 눈여겨보았다.
“지성이가 그때 아주 호리호리했어요. 키도 작고 몸도 약해 보였죠. 하지만 볼을 다루는 감각과 지능적인 플레이가 뛰어났어요. 상당히 가능성 있는 선수란 느낌이 들었죠.”
허 감독은 당장 그를 올림픽대표팀에 발탁했다. 이후 박지성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올림픽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당시 월드컵대표팀 감독으로 갓 부임한 히딩크를 매료시켰다. 2000년 6월 명지대를 휴학하고 일본 프로축구 2부 리그 소속이던 교토 퍼플상가로 진출한 박지성은 2년 만에 팀을 우승과 함께 1부 리그로 승격시키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네덜란드 진출 후에도 한동안 무릎 부상으로 최악의 시기 보내
아버지 박성종씨가 들려준 박지성의 열정 축구인생 & 성공 뒷얘기

사실 월드컵 본선에 앞서 175cm, 70kg의 작은 체구인 그가 체격이 좋은 유럽선수들과의 치열한 몸싸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많았다. 박지성은 이 같은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포르투갈 전에서 극적인 왼발 결승골로 한국축구를 사상 첫 월드컵 16강에 올려놓았고, 더 나아가 4강 신화를 견인해냈다. 이때부터 세계는 그를 주목했고, 월드컵이 꺍〕?후 히딩크는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그를 데려갔다.
유럽은 그에게 또 다른 세상이었다. 국민적인 기대 속에 아인트호벤으로 진출했지만 첫 시즌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무릎 부상으로 인한 수술, 이어진 부진으로 벤치 신세를 져야 했던 것. 아인트호벤 팬들은 그에게 비난을 퍼부었고, 언론에선 그의 ‘퇴출’을 강하게 언급했다. 아버지 박씨는 “당시를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고 할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
“정말 최악이었어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었죠. 저도 마음 편히 잠든 날이 없었어요. 경기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아들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것 외엔 부모로서 해줄 방법이 없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래도 박지성은 좌절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창 일본 복귀 이야기가 나올 때였어요. 어느 날 지성이가 경기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때까지는 반드시 아인트호벤에 남겠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네덜란드에 계셨던 김학봉 성남 일화 감독의 충고도 지성이에게 큰 힘이 되었어요. 김 감독이 ‘여기서 죽을 때까지 뛰어야 한다. 일본이나 한국은 그 후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면서 독려를 해주셨죠.”
아버지 박성종씨가 들려준 박지성의 열정 축구인생 & 성공 뒷얘기

팬들과 언론의 비난에도 히딩크는 박지성을 믿고 기다렸다. 그의 기다림에 보답이라도 하듯 박지성은 네덜란드 2004~2005 시즌 챔피언컵과 암스텔컵 우승컵을 안겨주었고, 유럽 최강팀들이 겨루는 2005년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아인트호벤을 4강으로 견인했다. 이때의 눈부신 활약이 맨유 퍼거슨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은 물론이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3년간 관심 있게 지켜봤고, 특히 지난 시즌엔 20회나 그의 경기를 관전했다”며 영입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박지성은 지난 7월6일 맨유 입단을 위해 영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부모님은 제 마음 편하라고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한 것 자체로도 성공한 것이라고 하시는데 전 달라요. 반드시 세계 스타들과 어깨를 견줄 겁니다. 지켜봐주세요” 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말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그는 지난 7월16일 열린 스코틀랜드 1부 리그 클라이드FC와의 친선경기에서 골과 연결되는 절묘한 패스를 하는 등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맨유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리라고 예상하는 축구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무명시절에도, 네덜란드에서 부상과 부진에 빠졌을 때도 결코 좌절하지 않은 강한 정신력을 가진 박지성이기에 머지않아 프리미어 리그에서 또 한번의 신화를 창조할 것으로 믿고 있다.

여성동아 2005년 8월 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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