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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주부들이 뽑은 ‘차기 대통령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한때는 여성 정치인이 무능하다는 인식도 있었지만, 요즘은 청렴·도덕성 등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것 같아요”

글·송화선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5. 08. 02

‘여성동아’가 주부들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0대 주부들 사이에서 17.8%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박 대표는 전체 연령대에서도 20.4%의 지지를 얻어 23.0%를 기록한 고건 전 총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오랜 편견을 깨고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박 대표가 말하는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삶 & 알려지지 않은 일상생활.

주부들이 뽑은 ‘차기 대통령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한나라당 대표(53)는 여자가 더 좋아하는 여성 정치인이다. 그가 거리에 나타나면 제일 먼저 여자 상인들이 몰려들고, 악수하자며 손 내미는 이들도 태반이 여자다. 박 대표의 이런 대중적 인기가 설문 조사를 통해서도 증명됐다. ‘여성동아’가 7월16일까지 보름간 주부 1천9백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설문 조사에서 20대 1위, 전체 연령대 2위를 차지한 것. 전체 연령대 조사에서 박 대표는 1위 고건 전 총리(23.0%)에 불과 2.6%포인트 뒤지는 지지율로 2위에 올랐다. 지난 7월 조선일보가 실시한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도 박 대표는 고 전 총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두 사람의 지지율은 각각 53.6%와 36.9%(조선일보 조사는 3명 복수응답을 하도록 했기에 두 사람 다 지지도가 높게 나왔다)로 ‘여성동아’ 조사 결과에 비해 격차가 컸다.
차기 대통령감으로 박 대표를 꼽은 ‘여성동아’ 설문 조사 대상자들의 의견은 대부분 “이제 우리나라도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이경희 주부·서울 관악구)”는 것.
이에 ‘여성동아’는 박 대표에게 여성 대통령을 원하는 주부들의 의견에 대한 소감을 묻고,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삶과 평소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을 수밖에 없던 시절 보내며 ‘마음 다스리기’가 습관이 됐어요”

‘여성동아’의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에 대해 박 대표는 “최근 각종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대통령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고 답하는 유권자가 전체의 과반수에 이른다”며 “여성 정치인은 무능한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새는 ‘여성’이라는 단어에서 ‘청렴’ ‘도덕성’ 등의 이미지를 느끼는 이들이 많다. 여성 정치인 전반에 대한 인식 변화가 반영된 결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97년 정치 입문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수식어에 기대 정치를 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박 대표는 지난 8년 동안 한나라당 부대표와 대표 등을 역임하며 뛰어난 지도력을 보였다. 특히 각종 선거를 진두에서 지휘하며 한나라당의 승리를 이끌어 이제는 누구도 ‘정치인 박근혜’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박 대표의 정치인으로서의 성공을 뒷받침한 1등 공신은 바로 그의 대중적 인기. 박 대표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변함없는 차분함과 단아함’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머리카락 하나 흘러내리지 않게 올린 머리와 깔끔한 정장, 부드러운 미소는 박 대표의 트레이드마크.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공인으로서의 삶은 내게 일상생활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늘 그렇게 사는 게 답답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공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태도가 몸에 배어 있거든요. 이제는 정돈된 생활을 흐트러뜨리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질 정도죠.”
박 대표의 측근들도 그는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한다고 말한다. 선거기간에 전국의 유세장을 도는 강행군을 하느라 녹초가 돼도 의자에 몸을 기대 앉는 법이 없다고. 며칠씩 밤을 새워도 졸거나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화 내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도 분노를 밖으로 표시하지 않아 그를 수행하는 이들조차 박 대표가 언성 높이는 것을 본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주부들이 뽑은 ‘차기 대통령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여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 높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20, 30대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스물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스물일곱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뒤 ‘차라리 생명이 없다면 이런 고통은 느끼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할 만큼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
박 대표는 마음 다스리기를 평소 즐기는 테니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테니스 치는 것을 보면 자기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라켓을 들면 공을 한 개도 쳐내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아, 나는 테니스를 못 치겠구나’ 하고 포기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하지만 언젠가 할 수 있으리라 믿고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테니스를 잘 칠 수 있게 되죠. 마음 다스리기도 똑같아요. 처음에는 ‘내 마음인데 내 맘대로 안되랴’ 싶지만, 사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화날 때 참는 것이거든요. 그래도 안된다고 포기하지 않고, 애쓰다보면 되지 않나 싶어요.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습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박 대표는 예의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참으며 살 수밖에 없었던 지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박 대표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비결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들어가며 쉽게 대화를 풀어가는 능력. 박 대표는 기자들과 이야기할 때나 정책을 설명할 때도 전문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단어를 이용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말하는 스타일. 그래서 시장 상인 등 서민들과 대화할 때도 친근감 있게 다가간다는 평을 듣고 있다.

평소엔 경쾌한 댄스 음악 좋아하고 짬뽕 즐겨 먹어



박 대표는 의외로 서민적인 면모를 많이 갖고 있다. 댄스 가요를 좋아하고, 음식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잘 먹으며, 떠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를 기억해두었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그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꼽은 것은 그룹 ‘거북이’가 부른 경쾌한 리듬의 댄스 가요 ‘빙고’. ‘지금 내가 있는 이 땅이 너무 좋아/이민 따위 생각한 적도 없었고요/금 같은 시간 아끼고 또 아끼며/비상하리라 나 바라는 대로’라는 내용의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라고 한다.
대중 가요를 ‘듣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5월 박 대표는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팬 클럽 행사 때 랩과 노래가 섞인 ‘솔리드’의 ‘천생연분’을 완벽한 솜씨로 불러 ‘팬’들을 열광시킨 적이 있다. 오촌조카인 가수 은지원의 노래 ‘나우’ ‘만취 in melody’ 등도 음정, 박자까지 맞춰가며 따라 부를 수 있다고 자랑하는 박 대표가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노래는 의외로 ‘차차차’ 같은 트로트라고.
박 대표는 평소 짬뽕 같은 서민적인 메뉴도 즐겨 먹는다고 한다. 한 국회의원은 “박 대표에 대해 잘 모를 때 함께 중식당에 갔는데 짬뽕을 시켜 국물을 훌훌 마시며 맛있게 먹어 깜짝 놀랐다”며 “알고 보니 박 대표는 평소 짬뽕을 즐기더라”고 전했다. 짬뽕뿐 아니라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어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이 “우리 당 여성의원 중 가장 잘 먹는 의원을 뽑으면 박 대표가 1등을 차지할 것”이라고 놀렸을 정도라고 한다.
박 대표가 역할 모델로 삼는 이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는 세 살 때 어머니가 아버지 헨리 8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등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냈지만, 1558년 25세의 나이로 즉위한 뒤 정적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 받는 여왕이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을 고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 대표와 사생활 면에서 여러모로 통하는 인물인 것.

박 대표는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해 “어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 목숨을 빼앗으려는 음모도 겪었지만 잘 참아냈고, 오히려 그것을 바탕 삼아 고통을 아는 사려 깊은 지도자가 됐다. 관용의 정신을 갖고 합리적인 정치를 펴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대영제국을 만든 인물”이라고 평했다. 엘리자베스 1세를 리더십의 모범으로 생각하는 박 대표의 서재에는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 등 그에 관한 책이 여러 권 꽂혀 있다고. 박 대표가 ‘미래’와 ‘관용’ ‘화해’ 등을 정치 철학으로 삼는 것도 엘리자베스 1세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내 삶을 이끌어가는 힘은 책임감”
주부들이 뽑은 ‘차기 대통령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정치인으로서 박 대표의 최근 화두는 10년 안에 우리나라를 경제 선진국으로 성장시키는 것. 박 대표는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시간이 더 지나면 뛰고 싶어도 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지금 몇 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의 주변 인사들은 박 대표가 사석에서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전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이유도 지난 97년 IMF를 겪은 뒤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놀부는 오장육보에 심술보를 하나 더 달고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늘 ‘공인으로서의 책임보’를 달고 다녔고, 지금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IMF 위기를 겪으며 처음 한 생각이 나라 경제가 이 모양인데 나 혼자 편할 수 없다는 거였죠. 지금은 눈 감고 모른척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내가 한창 일할 나이에 나라의 어려움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박 대표의 공식 홈페이지 제목은 ‘애국애족 박근혜’. 그를 아는 이들은 박 대표가 ‘민족’이나 ‘국가’ 등의 단어를 일상용어로 사용할 만큼 남다른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박 대표에게 ‘행복한 사생활’이란 ‘어울리지 않는 사치’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그는 결혼 계획에 대해 묻는 질문에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자연스럽게 시기를 놓쳤다. 이제는 아마 평생 혼자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애인’까지는 아니어도 힘들 때 편하게 의논할 만한 이성 친구는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아직까지 소문이 안 났겠느냐”고 웃었다.
어린 시절부터 대중 앞에 노출된 삶을 산 탓에 사적인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을 박 대표가 힘든 순간에 떠올리는 건 지금의 박 대표보다도 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라고 한다.
정치에 의해 많은 것을 희생당한 뒤 스스로 다시 정치인이 된 박 대표는 장래 계획에 대해 “정치를 하는 동안 나는 늘 그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당 대표로서 국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당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국민들이) 대선까지 가야 한다고 하면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가장 유력한 여성 대통령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박 대표가 앞으로 어떤 정치 행보를 보일지 많은 여성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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