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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에 대한 감동사연 공모 당선작 [우수상]-안진아

입력 2005.07.15 10:51:00

안진아(25세, 서울시 중랑구 묵1동)
친정 엄마에 대한 감동사연 공모 당선작 [우수상]-안진아

94년 겨울, “야~ 이제 고생 끝났네!” “언니! 집 너무 좋다! 27평이라고?” “야! 야! 내가 이 집 사는 데 15년 걸렸다.” “언니, 대단해! 이제 서울에 집도 있고…” 방에서 자고 있던 나는 이모들과 엄마의 이야기에 어슴푸레 잠이 깨고 있었다.
조금 더 뒤척이다가 일어나야지 생각했지만 나의 귀는 어느새 엄마와 이모들의 대화 속으로 열려 있었다. 엄마와 이모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도 눈으로 방 천장을 둘러보면서 “와! 이제 우리도 집이 생겼네! 나도 내 방이 생겼어” 하며 흐뭇하게 웃음을 머금고 이불 속에 파고드는 순간 밖의 대화 속의 불청객인 나의 귀는 내 인생에 다시는 그날을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언니! 이 좋은 날 왜 울어~” “참, 세월이 참 빨라. 이 콧구멍만한 집 사는 데도 15년 걸렸어. 남들 5년 정도면 사는 집, 배운 거 없으니까 참 힘들더라. 학교 못 다닌 거 참 서럽더라구. 진아가 초등학교 다닐 때 뭘 물어보는데 대답을 해줄 수가 있어야지. 괜히 짜증내면서 내일 학교 가서 선생님한테 물어봐! 그랬어.” “뭐 언니만 못 배웠나? 막내만 간신히 중학교 졸업했잖아.” “야! 그래도 니들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다녔잖아. 난 학교문턱도 못 넘었다.” 덜컹! 마지막 소리는 엄마였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항상 새 학기 때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써오라고 하면 아빠가 아무렇지 않게 고졸이라고 써주셨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다들 그 정도는 배웠겠거니 해서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에게 나에게 처음으로 내 방이 생긴 날 나는 이렇게 이불 속에서 울고 말았다.
며칠 후, 새 집으로 이사오기 전 10년을 해온 슈퍼를 정리하신 엄마는 집에 하루 종일 있기 심심했는지 아침에는 운동 삼아 뒷산을 오르락내리락 하셨고, 오후에는 집 근처 구민회관에 다니셨다. 처음에는 ‘그래. 그동안 장사했는데 갑자기 그만두니 하루 종일 얼마나 심심하겠어?’ 싶었다. 엄마 서랍 속에 반짇고리를 찾던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나 쓰는 바둑판 공책에 또박또박 엄마 이름이 적힌 노트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1백점짜리가 하나도 없는 엄마의 받아쓰기가 있었다. 영락없는 1학년 글씨체에 내가 척 보기에도 쉬운 받아쓰기가 여지없이 빨간 색연필의 호통을 받고 있었다.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아야! 이것 좀 받아. 무거워죽겠다.” 엄마였다. 난 나쁜 짓 하다 걸린 사람처럼 황급히 공책을 덮어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그날 저녁 우려했던,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저녁을 먹고 가계부를 정리하던 엄마에게 동생이 “엄마! ‘부두 5백원’이 모야? 이거 ‘두부 5백원’ 아냐? 엄마, 두부를 부두라고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디게 웃긴다. 크하하. 너무 웃긴다.” 엄마 표정을 보니, 평소의 엄마가 아니었다. 혼자 먼 산 보듯이 아무 말도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게 아닌가.
당황한 내 동생과 이미 공공연한 비밀을 알고 있는 나. 순간 우리 집만 공기가 멈춘 듯했다. 아빠의 불호령에 피난민처럼 우리는 각자 방으로 피신했고, 그날 엄마의 훌쩍거림은 밤새 내 귓가에 맴돌았다. 엄마에게도 자존심이 있을 텐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기억한다는 것을 엄마가 알면 나는 나쁜 딸이 될 것만 같다.
2005년 여름, 엄마는 당당하다. 모르는 것은 당당히 물어본다. 평생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신조로 당당하게 어깨를 피신다. 나는 엄마의 전담 통역사가 되었다. TV에서 하는 뉴스 내용, 집으로 오는 각종 고지서와 안내문 등 나는 엄마가 좀 더 알기 쉽게 일상생활의 예를 들어 설명해준다. 엄마는 나의 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 아니, 이제 세상이 엄마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엄마! 행복해?

여성동아 2005년 7월 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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