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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에 대한 감동사연 공모 당선작 [우수상]-한주연

입력 2005.07.15 10:41:00

한주연(35, 부산시 남구 대연동)
친정 엄마에 대한 감동사연 공모 당선작 [우수상]-한주연

아버진 6·25 때 북에서 정말 솥단지 하나만 들고 월남한 소년 가장이었습니다. 공부는 무척 잘했지만 가정 형편으로 인해 학업을 접고 부산 영도에 있는 선박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소에서 일을 하시는 분이라 목에 낀 철가루를 씻어내려야 하신다면서 항상 술을 드셨지요. 술만 드시면 주정을 했는데, 그래서 저희들은 밤이 싫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는 이불로 저희를 감싸며 자는 척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불 속에 누워 아버지의 “야, 이년아”로 시작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대며 어머니를 때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괴롭히다가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자던 저희들을 깨워 엄마와 함께 바깥으로 내쫓고는 문을 잠가버리시곤 하셨지요. 그럼 한밤중 모두가 잠든 시각 외딴, 인적 드문 골목에서 엄마와 저는 어린 동생들을 하나씩 안고 남의 눈을 피해 그렇게 밤새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정말 큰 사건이 터진 건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또 술을 드시고 온 아버지는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엄마를 때리고 욕하며 회사에서 쌓인 분을 풀고 계셨어요. 그런데 그날은 그것으론 부족하셨는지 연탄불 위에 추운 아침 저희들 따뜻한 물로 세수하라고 올려놓은 양동이의 뜨거운 물을 어머니의 온몸을 향해 부으신 겁니다.
그 좁디좁은 방에 저희들과 같이 있던 어머니는 그 짧은 순간에도 저희에게 튈지도 모를 그 뜨거운 물세례를 우릴 감싸며 피하셨어요. 시간이 멈춰버린 정적이 흐르고 저희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고통스런 비명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진 당신이 저지른 행동에 자신도 놀라 몇 마디 욕과 함께 몇 날 며칠을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어머닌 한동안 팔을 쓸 수 없었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흉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어머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버지와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저와 동생들의 요구에도요.
아버지가 술을 안 마실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면 저희들은 그저 하루를 조용히 지낼 수 있다는 마음에 행복했습니다. 한동안 그런 평화가 연이어 계속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진 매일 저희들과 낚시도 다니고, 등산도 다니며, 사달라고 하는 과자도 잘 사다주며 하루 종일 저희들과 놀아주기 시작하셨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저희와 놀아줄 즈음 어머니에게선 썩은 고기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계속 그 생활을 지속하셨고, 어머니의 썩은 생선 냄새는 계속 되었습니다. 부재중인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옷에는 생선 조각들이 붙어 있고, 비릿한 생선 냄새는 어머니가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희 어머니가 한 번씩 가져다주는 쥐포가 왜 그리 맛있던지, 저희들은 그 시절이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견디고 살아온 우리 어머니의 고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그저 자식 잘되기만을 낙으로 참고 살아오셨는데, 남동생이 어머니에게 돈 많이 벌어다준다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들어간 회사에서 오른손이 절단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 이후 아버지는 자식새끼 병신 만들었다고 어머니를 또다시 매일 밤 때리셨어요. 그러고는 남동생에게도 “병신새끼, 나가 뒈져” 하며 악다구니를 지르더군요.
그러자 어머닌 아버지에게 대드셨어요. “왜 애한테 그런 소리하냐”고요. 울 엄마 정말 미련하죠. 당신 맞는 건 안 아프고, 자기 자식한테 욕한다고 그렇게 아파하니까요. 저와 동생들이 아버지와 이혼하고 그냥 우리끼리 나가서 살자고 했지만 어머니는 끝내 저희들 말은 듣지 않으셨어요. 다 자식 잘되자고 하는 건데, 이혼하면 시집 장가 보내기 힘들다며 끝내 참고 사시겠다고 하는 겁니다.

전 이런 두 분을 보며 시집 절대 안 간다고 맹세했지요. 하지만 이 세상 거짓말 중에 처녀가 시집 안 간다고 하는 게 제 1의 거짓말이라고 하듯이 저도 ‘아~ 이 사람과는 결혼해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긴 남자가 생겼습니다.
한 많은 우리 어머니의 환갑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걱정투성이입니다. 이유인즉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불화만 보고 지낸 탓인지 동생들은 결혼에 대단히 회의적이라 서른이 넘어도 결혼할 생각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식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오셨던 어머니는 자식들 결혼 못하는 게 당신 잘못인 양 매일 기도하십니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결혼해서 알았습니다. 아이 낳고 살면서 알았습니다. 왜 어머니가 이렇게 가슴에 인내와 한이라는 글자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시는지를요. 자식을 보고 있음 내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것들을 지켜주고 싶은 그 마음을요.
이 못난 딸은 그렇게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혼자 방황한답시고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냐고, 왜 자식들 가슴에 멍에를 지우냐고 오히려 어머니를 괴롭혔습니다. 아버지에게 화를 내야 되는데, 저도 아버지와 같이 어머니에게만 화를 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듯이 저 또한 어머니에게 함부로 대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남편으로 여기고 꿋꿋이 지금도 이겨내고 계십니다. 그나마 제 마음 한편에선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전 지금도 생활에 쫓겨 제 딸까지 맡겨놓고 어머니에게 폐만 끼치고 있습니다. 미안한 마음과 사랑한다는 마음,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30년 넘게 닫힌 마음이라 그런지 잘 표현되지도 않습니다. 전 지금도 엄마에겐 다정한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합니다.
오늘 가족과 찍은 앨범을 들여다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35년을 살면서 어머니와 찍은 사진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전 어머니와 사진을 찍으러 가려 합니다. 그리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언제나 웃어주며 우릴 다독거려주셔서 고맙다고, 우릴 버리지 않고 이렇게 훌륭하게 잘 키워주셔서 고맙다고요. 어머니 사랑해요.

여성동아 2005년 7월 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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