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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BIG EVENT

친정 엄마에 대한 감동사연 공모 당선작 [대 상]-이명주

입력 2005.07.15 10:12:00

이명주(34세, 경남 진해시 청안동)
친정 엄마에 대한 감동사연 공모 당선작 [대 상]-이명주

산달이 가까워진 나를 걱정해 남편은 자기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기어이 함께 길을 나섰다. 이런저런 이유를 늘어놓았지만, 사실은 내 눈으로 직접 엄마를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불안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엄마! 가만히 이름만 되뇌어도 가슴이 싸하게 아려오며 눈물이 나는 이런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엄마는 그냥 엄마일 뿐인데, 30여 년이 훌쩍 넘는 오랜 세월 입에 붙어 있던 흔한 호칭일 뿐인데…. 그런데 왜 요즘은 그 흔한 호칭이 그리움과 서러움, 그리고 표현 못할 무언가가 마구 뒤섞인 복합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아직 한참이나 더 가야 엄마가 사는 동네가 나오는데도 난 이미 마을 어귀에서부터 엄마의 흔적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흐르는 개울가에 초점 없는 멍한 눈을 고정한 채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 반가움과 안쓰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몇 번이나 세차게 불렀지만 엄마는 여전히 미동도 없다. 곁에 다가가 어깨를 감싸도 그저 얼굴 모르는 낯선 타인을 대하듯 스윽 눈길 한 번 주는 게 전부일 뿐, 세상에서 가장 자애롭고 한없이 따뜻한 미소로 “아이구, 내 새끼 왔냐?”며 포근히 반겨주시던 그 모습이 아니다.
턱하니 막혀오는 가슴의 통증을 느끼며 눈물이 샘솟듯 차올라 먼발치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데 “언제 왔어? 언제 가?”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순간,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며 “엄마! 나야 나, 엄마 딸. 알아보겠어? 나라구. 제발 정신 좀 차려봐” 고함치듯 악을 써가며 어깨를 흔들어댔다. 그런 내 행동에 엄마는 움찔 놀라 겁에 질린 어린 아이처럼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누구세요? 왜 이러세요? 무서워요”라며 또다시 당신만의 창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왜 그랬는지….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실망과 절망을 거듭하며 ‘이제 엄마는 옛날의 엄마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몇 번이고 마음을 다스려놓았건만 오늘도 부질없는 기대와 헛된 희망으로 엄마의 아픔을 더 헤집는 결과를 내고야 말았다.
아직 환갑이 채 되지도 않은 나이에, 엄마는 평생을 너무 많은 아픔과 고통과 눈물만을 안겨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만의 세계에 안주하기로 했나 보다. 억울함이 산같이 쌓여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분노가 치솟을수록 세상을 향해, 그리고 평생 해바라기해온 나를 향해 고함 한 번, 저항 한 번 해보기라도 하지. 역시나 당신 하나 조용히 희생함으로써 모든 것을 덮으려고 했나 보다. 바보같이.
줄줄이 딸린 8명의 동생들을 위해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을 했던 엄마에겐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 또 연인으로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사람이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 장녀로 많은 동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는 공통점 외에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더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미래를 약속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울 명문대 출신의 공장의 책임자(내 아버지다)가 엄마에게 열렬한 구애를 했고, 내 아버지가 엄마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그 남자가 말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 뒤 엄마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었고, 잘못 끼워진 단추로 인해 불행이 시작되었다.

5대 독자였던 아버지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참으로 모질게도 엄마를 괴롭혔던 할머니는 ‘아들을 못 낳는다’는 죄목까지 곁들여 버젓이 씨받이를 들였고, 이후로도 아버지의 숱한 바람으로 엄마는 배다른 자식이 다섯이나 더 당신의 호적에 오르는 수모를 당했다. 그럼에도 ‘일일이 바로잡으려면 복잡해진다’며 인내했지만 결국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모진 말을 끝으로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그나마 당신의 전부였던 두 딸을 의지하며 눈물로 세월을 삼켜야 했던 엄마는 작은딸이 뚜렷한 병명도 없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남으로써 가슴속 한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무게로 커지고 말았다. 그 이후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남모르는 장애를 가진 나까지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지레 겁을 먹고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란 소리를 듣는 날엔 둘이 같이 청산가리 털어넣고 죽을 줄 알라”며 더욱 엄하고 무섭게 교육을 시켰던 냉정한 엄마였지만, 잠든 내 머리맡에서 밤마다 소리 죽여 우는 한없이 마음 약한 여자이기도 했다.
하나 남은 자식인 나만큼은 결코 “당신의 인생을 되밟게 하지 않겠노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던 엄마는 생계를 위해 파출부, 식당종업원부터 시작해서 노점상 등 안 해본 것이 없다. 단속에 걸려 경찰소에라도 끌려가는 날엔 “엄마는 먹고살려고 애쓴 것뿐이지, 절대 부끄러운 일은 안 했다”며 어린 내가 상처를 받을까봐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곤 하셨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더 어린 젊은 나이에 혼자되어 여자로서 더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많이 겪었던 어머니를 그때의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작은 실수에도 예외 없이 매질과 호된 꾸지람을 내리는 것에 때론 강한 반발심을 느끼기도 했다. 더군다나 여전히 젊고 매력적인 엄마의 주위엔 늘 남자들이 몰려들었다. 엄마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음에도, 난 ‘혹시라도 엄마까지 나를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노심초사일 때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짜증과 신경질이 늘어나며 엄마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내 사춘기의 열병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즈음, 거짓말처럼 우연히 엄마가 첫사랑과 재회를 하게 된 것이다. 점잖은 외모와 행동, 그리고 경제적 여유,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엄마에 대한 사랑 등 엄마에게 어울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아저씨의 등장으로 엄마는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늘 어둡고 그늘졌던 엄마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번질 때마다 난 아저씨에 대한 이유 없는 적개심과 불안감에 매번 냉대를 했다.
더군다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아저씨의 원망은 더더욱 참기가 힘들었다. 급기야 “공부 잘하고 예뻐서 주는 선물”이라며 고가의 수표를 주었을 때 집어던지면서 “이딴 것 필요 없으니 다시는 엄마와 내 앞에 나타나지나 말라”며 소리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에 놀란 아저씨는 “착한 딸이 나로 인해 삐뚤어질까 걱정된다. 딸이 어른이 되어 우리를 이해해줄 때까지 만나지 말자”고 했고,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난 우리 딸만 있으면 돼. 아무도 필요 없어”라며 쓸쓸한 웃음을 짓던 엄마의 얼굴에 다시금 그늘이 드리워진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엄마의 재혼을 인정했다면 지금의 깊은 후회는 없었을 텐데…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난 어른이 되었고, 손의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질 정도의 고생과 헌신으로 나를 키운 엄마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무디어지고, 과도한 관심과 사랑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을 즈음에야 적극적으로 아저씨와의 만남을 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저씨의 엄마에 대한 사랑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고 큰 것이었다.
엄마에 대한 미련과 사랑 때문에 결혼생활도 일찍 접었던 아저씨에겐 자식들도 없었고, 오랜 지병으로 인해 누군가 곁에서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말년엔 당뇨병으로 인한 심한 후유증까지 앓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두 분의 결혼을 인정했더라면 지금의 이 황망함과 깊은 후회는 남기지 않았을 것을…. 이른 나이에 결혼을 감행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난 뒤에야 나를 대신해 엄마가 기대고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할 것이라는 이기적인 이유로 아저씨를 찾았으니, 이 죄스러움을 어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더니, 결혼을 하고 보니 매 순간 엄마 생각이 간절히 났다. 남편의 극진한 사랑으로 새록새록 사는 재미가 더할 때마다 ‘엄마는 평생 이런 기분도 못 느껴보고’ 하는 애잔함에 가슴이 쓰렸고, 마음이 상할 때도 ‘이런 작은 일에도 이렇게 속상한데 남편의 숱한 바람에도 모자라 그로 인한 남의 자식들까지 인정했어야 했던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절로 눈물이 났다. 더구나 아이를 낳은 뒤로는 ‘부부가 함께 키워도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은데 홀로 자식을 키우기 위해 엄마가 얼마나 많은 노심초사를 했을지, 왜 툭하면 입에 담기 힘든 모진말로 스스로를 다지려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은 이 철없는 딸의 뒤늦은 후회를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상처와 회한을 주었다. 극진한 정성으로 당신의 자식을 대하듯 사랑을 주셨던 아저씨를 인정하지 않은 나에 대한 원망인 듯, 아저씨는 엄마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더는 여한이 없다”며 기쁜 얼굴로 엄마의 품에서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 내게 가슴속에 못다 한 죄스러움에 대한 작은 변명이라도 쏟아놓을 기회를 주지 않고, “너한테 아버지 소리 한 번 들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바람을 들어드릴 기회도 주지 않고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나를 시집보내고 난 뒤 두 분은 “더 이상 도시가 싫다”며 친지들이 살고 있는 시골로 가셨다. 가끔 시골에 들를 때면 두 분이 함께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 뒷자리에 엄마를 태운 아저씨가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달리면 세상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아저씨 등에 얼굴을 기댄 엄마의 모습을 보곤 했는데, 이젠 그런 그림 같은 풍경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추억 속의 기억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짧은 행복이 그렇게 끝나버린 충격일까. 엄마는 더 이상 세상과의 공존을 원치 않으셨다. 당신의 모든 것을, 평생을 걸고 지키고 보살폈던 자식이었으나, 저밖에 모르는 한없이 이기적이고 무심했던 나의 배신에 대한 제일 큰 형벌로 엄마는 오늘처럼 나를 철저히 외면하는 고통을 주시나 보다. ‘인정하기 힘든 충격에 의한 일시적인 기억상실일 수도 있지만, 평생 완쾌될 수 없는 치매일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이 현재 엄마의 상태이지만, 평생을 엄마가 나한테 쏟아부었던 정성과 사랑을 이제 앞으로 내가 되갚으려고 노력한다면, 다시금 예전의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하던 그 엄마로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할머니가 이상하다”며 의아해하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어른으로 살면서 너무 많이 상처받고 힘들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다시 아이로 되돌아가서 편안하게 사시는 거”라고 얘기한 것처럼 앞으로 엄마가 지금의 모습으로밖에 살 수 없다고 해도 이제부턴 내가 엄마가 되어서 ‘애기엄마’를 잘 돌봐주려고 한다. 엄마가 없는 나는 상상할 수도 없고, 엄마의 딸이 아닌 나 역시 상상할 수도 없기에.
“엄마! 어떤 모습으로라도 내 곁에 오래 있어만 줘요. 나도 엄마한테 뭔가 할 기회를 줘야 하잖아. 엄마! 평생 못해본 그 말, 지금에서야 하게 되는 한스러움에 내 스스로가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몰라. 엄마! 너무너무 사랑하고, 엄마 딸로 태어난 것도 자랑스러워. 다음 세상에서도 꼭 우리 모녀지간으로 만나. 그때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서 나한테 쏟은 사랑과 정성 꼭 되갚을 기회를 줘요. 엄마! 오래오래 사셔야 해. 아셨죠?”

여성동아 2005년 7월 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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