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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임백천이 처음 공개한 ‘20년 방송인생 & 가정생활’

“항상 부족한 나를 많이 이해해주는 아내 덕분에 일도 가정도 편안해요”

글·김지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5.07.14 14:59:00

방송인 임백천이 KBS FM 개국 40주년을 기념하는 ‘임백천의 골든팝스’ 특집방송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DJ들을 초청해 추억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진 것. “데뷔는 가수로 했지만 방송 진행자야말로 천직”이라는 그가 20년 방송인생과 일상의 고충과 행복, 방송인으로 오랜 생명력을 유지해온 비결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DJ 임백천이 처음 공개한 ‘20년 방송인생 & 가정생활’

올해로FM 개국 40돌을 맞은 KBS가 최근 이를 기념하는 특집방송을 여러 프로그램에서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임백천의 골든팝스’는 지난 6월13일부터 일주일 동안 ‘우리나라 최초 DJ’인 최동욱을 비롯해 윤형주, 박원웅, 김세원, 김광한, 황인용, 송승환 등 FM과 역사를 같이한 역대 인기 DJ 7명을 차례로 초대하는 특집방송을 내보내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프로그램의 DJ 임백천(47)은 “그분들이 열악한 시대에 일궈놓은 과수원의 과실을 따먹은 것 같은 미안함과 지금도 계속 방송을 해야 할 분들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일주일이었다”며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최동욱씨 방송은 아쉽게도 듣지 못하고 자랐어요. 황인용씨는 제가 전문 MC생활을 시작하면서 임성훈씨와 함께 본보기로 삼았던 분이고요. 김세원씨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대표 성우인데, 70년대에 샹송, 칸초네 같은 유럽 음악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분이죠. 송승환씨 같은 경우는 세계적인 공연을 기획하고 있는 정말 자랑스러운 분이고요. 저와 연배가 비슷하고 공감하는 정서가 많아 평소 사석에서도 자주 어울려요. 70년대 청춘의 감성을 사로잡았던 윤형주씨의 감성은 지금도 통하죠. 방송 중에 저와 함께 ‘저 별은 나의 별’ 등 두 곡을 불렀는데 트윈폴리오의 향수를 느꼈을 거예요.”
그는 특히 ‘팝의 메신저’ 김광한에 대해 “아주 좋아하는 전문인이고,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이라고 소개하면서 “전통과 연륜이 존중되고 선배가 대우받는 사회가 왔으면 한다”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가 ‘임백천의 뮤직쇼’로 처음 FM 방송을 시작할 때도, 또 지금 하고 있는 ‘임백천의 골든팝스’를 시작할 때도 공교롭게 김광한이 진행하던 시간대를 넘겨받은 것.
“본의 아니게 자꾸 제가 자리를 빼앗는 기분이 들어 처음에는 이 프로그램을 맡지 않으려고 했어요. 선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요. 또 박원웅씨 같은 경우는 굵고 나직한 음성이 매력인데, TV든 라디오든 시도 때도 없이 목청을 높이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분이 아닌가 싶어요. 지난 일주일 동안 그분들을 통해 추억을 반추했다기보다 너무 나약하고 가벼워진 이 사회에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 같아요.”
지난 2003년 5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맡아온 그는 라디오 진행의 묘미를 한마디로 “캄캄한 밤하늘에 별을 쏘는 것”이라고 표현하면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방송을 듣고 있을 청취자를 생각하면 무섭고도 떨린다”고 말했다.
“TV에 비하면 라디오 방송은 진행자의 출연료도 턱없이 적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그래도 TV 방송에서 느낄 수 없는 라디오만의 매력이 있어요. 라디오는 목소리만 듣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채요. 지식 정도, 성격, 가치관까지요. 그래서 두렵고 무섭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가슴 떨리고 신나는 일이죠. 못난 사람, 잘난 사람 할 것 없이 듣기 때문에 항상 친절하고 겸손해야 하고요.”

건축회사 다니다 6년 만에 방송 복귀해 한동안 고전하다 ‘마음에 쓰는 편지’로 재기
그의 방송철학은 “친절하고 겸손하게”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고, 모르는 사안에 대해서는 조사해서 알아낸 후 정확한 얘기를 전해준다는 것. 또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신문과 책을 즐겨 보면서 당시 유행어나 시사적인 이야기, 사회 분위기를 익히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독서 마니아인 그가 즐겨 읽는 책은 수필집과 시집. 특히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을 좋아하는데 읽을 때마다 작가의 감각과 감성에 매료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고 한다.

DJ 임백천이 처음 공개한 ‘20년 방송인생 & 가정생활’

아내 김연주와 한달에 한번씩은 서너 시간씩 밀린 대화를 나누며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임백천.


원래 그는 방송 진행자가 아니라 가수로 먼저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국민대 건축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 78년, ‘한마음’이라는 노래를 들고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8백대1의 살벌한 경쟁을 뚫고 심수봉, 배철수, 노사연 등과 함께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 이듬해 그는 우연히 MBC 장명호 PD의 눈에 띄어 ‘영11’의 전신인 ‘젊음이 있는 곳에’의 사회를 맡으며 방송진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또 그 프로그램의 여자 파트너인 왕영은과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 둘 셋 임백천 왕영은입니다’의 DJ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당시 왕영은씨나 저나 대학생이었어요. 왕영은씨는 ‘TBC 해변가요제’에서 ‘여름’이라는 노래로 대상을 수상한 한양대학교 혼성 4인조 ‘징검다리’ 팀의 멤버였죠. 대학생 신분으로 MC를 맡은 건 저희가 처음이었는데,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 시절 스무 살을 갓 넘은 대학생들이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았죠. 연륜과 지성을 겸비한 차인태씨 같은 분이 MC로 활약하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럼에도 장명호 PD는 ‘대학가요제’를 계기로 커지기 시작한 젊은이의 힘과 문화를 발 빠르게 수용하기 위해 저희를 기용한 거죠.”
당시 그가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은 대학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던 정태춘의 음악을 대중에게 처음 알리고, ‘개그’를 처음 선보여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더불어 여중생과 여고생들 사이에 DJ로서 그의 인기 또한 지금의 비나 세븐 못지않게 대단했다고 한다.
“매일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았어요. 당시 청소년들에게는 라디오가 전부나 다름없었거든요. 정성스럽게 만든 그림엽서를 만드느라 밤을 새우고, 또 그 엽서가 방송에 채택되면 자랑하던 시대였죠. 당시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종일 방송국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는, 요즘 흔히 말하는 ‘스토커’ 여학생도 있었는데, 그런 여학생을 보면 떡볶이를 사주며 달래기도 하고 차비도 쥐어주며 보내고 그랬어요.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이웃집 여동생 같으니까 오빠의 입장에서 밤에 다니면 위험하니 빨리 가란 식이었죠. 여학생들이 집으로도 많이 찾아왔는데 그러면 어머니가 밥을 먹여 보내셨어요.”
하지만 그는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방송활동을 접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대학시절 내내 학업과 방송활동을 병행하며 재미있고 즐겁게 보냈지만 당시는 아르바이트로 여겼을 뿐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기에 4학년 때 아나운서로 입사하라는 모 방송국 간부의 제의도 뿌리치고 미련 없이 방송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6년간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건축보다는 방송이 자신에게 더 잘 맞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나이 서른에 MBC ‘광장 마로니에’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MC로 복귀했다.
‘광장 마로니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공연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당시로서는 신선하고 파격적인 프로그램이었는데 시대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대중적인 사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6개월 만에 막을 내리는 아픔을 맛본 그는 이후 아무도 찾아주는 이가 없어 “인기곡을 내놓으면 또다시 나를 찾겠지 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노래를 발표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노래가 바로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마음에 쓰는 편지’. 그가 가수로서만이 아니라 방송 MC로도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노래다. 그는 “당시 대학생이던 노영심이 작곡을, 80년대 인기 듀오 ‘어떤 날’의 조동익이 편곡을, ‘춘천 가는 기차’를 부른 가수 김현철이 세션을 각각 담당해 완성된 노래”라면서 “그런 좋은 후배들의 도움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후 그는 ‘특종 TV 연예’를 비롯해 ‘결혼이야기’ ‘행복채널’ ‘가요쇼’ ‘임백천의 원더풀 투나잇’ ‘좋은나라 운동본부’ ‘쇼! 파워 비디오’ ‘슈퍼 TV 오늘은 즐거워’ ‘夜 한밤에’ ‘테마쇼 환상특급’ ‘멋진 친구들’ ‘슈퍼 선데이’ ‘낭만 콘서트’ 등 방송 3사의 인기 프로그램들을 넘나들며 MC로 맹활약을 펼쳤다.

20년 가까이 방송인으로서 꾸준한 생명력을 이어온 그에게 ‘인기’ 비결을 물었더니 “나도 인기가 있다고 느끼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선문답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지금은 제 방송을 보고 듣는 사람들은 물론 방송국에도 ‘참 믿을 만하다’ ‘뭐든 맡길 수 있겠다’는 신뢰감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방송 진행자는 연예인 같은 인기인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전달자요, PD나 엔지니어와 같은 스태프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제가 어디선가 소신 있는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데 만족하고 있어요.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듯 방송은 PD의 예술이에요. 방송 진행자는 하고 싶다고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선택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떤 PD를 만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참 운 좋게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특종 TV 연예’의 송창의 PD와 일하면서 여러모로 배웠고,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 겨우 대학교 2학년생이던 저를 생방송을 하게끔 데뷔시켜준 장명호 PD도 잊지 못할 분이고요. 저하고 일했던 PD 중에는 이름을 대지 않으면 죄송할 만큼 좋은 분들이 많아요.”
MC나 DJ로서 그의 모습은 다정다감하고 편안한 옆집 오빠 같은 분위기다. 그렇다면 그는 가정에서 어떤 남편이자 아빠일까.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고 싶은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질 못해요. 제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자고 있고 또 아침 일찍 방송 준비하러 나오다보니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아내에게 미안할 때가 많아요. 가정적인 남편이 못 되니까요.”



아내와 아이들이 유학가서 편하게 공부할 수 있게 뒷바라지할 각오 돼 있어
DJ 임백천이 처음 공개한 ‘20년 방송인생 & 가정생활’

지난 93년 결혼에 골인해 방송계 최초로 MC부부가 된 임백천과 김연주.


말은 그렇게 해도 평소 그는 아내와 하루에 몇 번씩 전화통화를 하고, 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 돌아오면 선물까지 챙겨주지는 못하더라도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하는 일은 빼먹지 않고 있다. 또 바쁘다 보니 아내와 평소 자주 대화하진 못하지만 한달에 한번씩은 서너 시간씩 밀린 대화를 나누며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한다.
“아내가 참 현명한 여자예요. 종종 부부싸움을 할 때도 있지만 오래 끌지 않고, 어지간해서는 잔소리를 하지 않거든요. 제가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많이 써주고요. 항상 저를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에요. 같은 방송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저희가 지금껏 잡음 없이 살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아내의 힘이 컸어요.”
지난 93년 MC 김연주(39)와 결혼한 그는 1남1녀를 두고 있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평소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보다 ‘마음껏 뛰어놀라’는 말을 자주 하는 아빠라는 그는 “두 아이 모두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아이들을 공부 잘하고 똑똑하게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인성을 길러주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요즘은 이것저것 어릴 때부터 과외를 많이 시키는데 저희는 수영 말고 다른 건 안 시켜요. 몸이 건강하고 씩씩해야 공부도 잘할 수 있잖아요. 한창 뛰어놀 나이에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도 않고요. 남들이 뭐를 하든 따라 하지 말자는 게 저희 부부의 공통된 생각이에요. 공부에 소질이 있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는데 무조건 공부 잘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공부를 아주 잘해서 의사나 판사가 될 만한 실력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킬 순 없고요.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수 있게끔 재능을 찾아 키워주고,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아이가 될 수 있도록 항상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평소 그는 아이들에게 무섭고 엄한 아빠는 아니지만 마냥 좋게만 대해주는 아빠도 아니다. 버릇없이 굴면 그냥 넘기지 않고 호되게 야단을 친다는 것. 웃어른에 대한 공경심과 예의 바른 몸가짐을 갖도록 평소 아이들에게 “어디를 가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어른을 보면 꼭 인사하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큰아이는 심성이 워낙 착한 아이라서 부모 말을 잘 따르는데 둘째는 사내아이라 그런지 좀 드센 면도 있고 큰아이보다는 말을 안 듣는 경향이 있어요. 그럴 때는 따끔하게 혼을 내요.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게요.”
요즘 김연주는 방송활동을 쉬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재미에 빠져 있다. 지난해 유학을 떠날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마음의 결심을 굳히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임백천은 “현재도 유학 계획은 유효하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재능이 많은 아내가 공부를 좀 더 해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좋은 방송인이 되도록 뒷바라지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유학을 가라는 얘기도 제가 먼저 했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같이 공부도 하고 견문도 넓혔으면 하고 제의를 했죠. 아이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가르쳐주고 싶거든요. 요즘은 영어를 못하면 안되는 시대니까요. 물론 세 사람의 학비를 대기가 만만치 않을 테고 가족들이 다 가면 많이 그립고 외롭겠지만 이미 기러기아빠로 살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요.”

6년 전 금연하고, 매일 아침저녁 5분씩 전신욕으로 건강관리
DJ 임백천이 처음 공개한 ‘20년 방송인생 & 가정생활’

방송이 천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을 쓰겠다는 사람이 있는 한 일하다가 은퇴할 생각이라는 임백천.


‘겨울연가’ 배용준 스타일의 바람머리에 캐주얼 차림을 즐기는 그는 어느덧 4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지만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여전히 젊고 건강해 보인다. 피부 또한 중년 남성치고는 깨끗하고 고운 편. 그 비결은 그동안 방송인으로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해온 덕분이다.
“방송 활동을 하다보니 항상 긴장하면서 사는데 그 긴장감이 저를 풀어지거나 흐트러지지 않게 해주는 것 같아요. 또 기름기가 끼어 있거나 지저분하면 곤란하니까 운동을 매일 규칙적으로 하진 못하지만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서너번은 정기적으로 해야지 하고 마음먹은 게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지키지는 못하고 있죠. 대신 매일 아침저녁으로 5분씩 목까지 담그는 전신욕을 빼먹지 않고 해요. 견통이 있는데다 생방송을 매일 하니까 목을 풀어줘야 하는데 전신욕을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지거든요.”
그는 건강을 위해 6년 전 금연을 했다. 목소리가 탁해지고 매끄럽게 나오지 않아 생업에 지장을 줘서 끊었다고 한다. 스무 살 때부터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장이 이 정도로 의지박약해서야 어떻게 가족들이 나를 믿고 의지할까’ 하는 생각이 금연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제가 구강청결에 좀 유난을 떠는 편이에요. 그런데 담배를 피우면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자신 있게 말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전히 끊었는데 술자리에서와 부부싸움을 했을 때만 흡연의 유혹을 잘 참아내면 금연에 성공할 수 있어요. 금연한 덕분에 피부도 좋아지고 목소리도 좋아지고 눈동자도 한결 맑아졌어요. 현재 금연협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최불암씨도 저 때문에 금연을 하셨죠.”
두 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예전에 봤던 그는 TV 같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라디오 같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사람 냄새가 폴폴 풍긴다는 뜻으로 그 말을 건넸더니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라며 허허 웃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기 자신이 보잘것없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청춘 시절엔 제가 제일 잘난 줄 알고 방방 뜨고 그랬는데 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몰라요. 나이를 먹어서까지 그렇게 펄펄 나는 사람들은 굉장한 선각자거나 철이 덜 든 사람일 거예요. 그래도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고, 또 그때그때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기에 후회는 없어요. 지금 나이를 먹어 생각해보면 얼마나 치기 어린 시절이었나 싶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추억이고 재미있는 시절이었죠.”
그에게 “가수 활동을 계속하지 못한 아쉬움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아무런 아쉬움도 없다”고 말한다.
“제가 조용필씨 노래를 참 좋아해요. 조용필의 10분의 1만큼만 실력이 됐어도 모든 것을 접고 노래만 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만한 실력이 안되고, 또 저한테는 방송이 천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저를 쓰겠다는 사람이 있는 한 하는 데까지 하다가 은퇴할 생각이에요.”
방송 경력 20년을 막 넘어선 임백천. 그동안 쇼와 오락 프로그램은 물론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와 시사교양 프로그램까지 각양각색의 프로그램을 섭렵한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체험 삶의 현장’ 같은 봉사활동이 가미된 ‘쇼양프로그램(쇼와 교양 프로그램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다”면서 “무엇보다 가족 모두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보였다.

여성동아 2005년 7월 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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