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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희망의 몸짓

휠체어 댄스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국가대표 휠체어 댄서 김용우

“사람들이 제 춤을 보며 환호하는 순간 장애를 잊게 됩니다”

글·김정은‘여성동아 인턴기자’ / 글·이동주‘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5.07.14 11:06:00

지난 6월 중순 방송된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에는 한 춤꾼이 출연해 정열적인 라틴댄스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한국 최초의 국가대표 휠체어 댄서 김용우씨가 그 주인공. 두 다리 대신 두 개의 휠체어 바퀴에 몸을 싣고 세상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댄서 김’ 김용우씨를 만났다.
휠체어 댄스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국가대표 휠체어 댄서 김용우

“처음사고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된 사실을 알았을 때는 별로 충격받지 않았어요. 그때까지 장애라는 것이 정확히 뭔지 몰랐거든요. 마비증상도 치료하면 당연히 나을 줄 알았고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장차 무역업에 종사해 세계를 주름잡는 경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김용우씨(34). 스물일곱 해 동안 큰 어려움 없이 평탄하기만 하던 그의 삶을 한순간에 뒤바꿔버린 사고는 97년 10월, 잠시 머물던 캐나다에서 일어났다. 당시 김씨는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마친 후 여동생이 유학 중인 캐나다에서 단기 어학 코스를 밟고 있던 중이었다.
“연극을 통해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무대 공연을 마치고 이틀 후 반 친구들과 로키산맥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안 좋았어요. 눈도 많이 왔고요. 결국 빙판길에서 저희가 탄 차가 뒤집히는 사고가 났죠.”
이 사고로 척추에 손상을 입은 김씨는 통증은 느끼지만 움직이지는 못하는 하반신 불완전 마비가 됐고, 캐나다에서 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캐나다 병원에서 두 달 정도 지내는 동안 김씨는 자신이 장애인이 됐다는 사실에 크게 좌절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누구나 차별 없이 긍정적으로 대하는 그곳 사회 분위기가 그의 불안하고 위축된 마음을 다소나마 위로해 주었기 때문. 하지만 98년 4월 한국으로 돌아와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뒤로는 그동안 인정하기 어려웠던 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을 위한 공공시설이 너무 미흡해요. 당장 공항에 도착하니 그 사실이 몸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보도 블록이나 지하철 계단만 봐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가장 기본적인 시설은 갖추지 못한 상태이면서 또 ‘너희는 정상인들과 다르니 신경 써주겠다’는 인식들을 갖고 있어요. 앞에서 장애인이 오면 슬쩍 피해주거나 돌아가는 거죠. 전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밖으로 나가면 이 사회는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끝없이 일깨워주었다고 한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은 언제나 더 쓰리고 독한 법, 그때까지도 자신이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김씨는 긴 방황을 시작했다.
“전 제가 다시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상처라는 게 치료만 잘하면 원래대로 되돌아가잖아요. 장애도 그런 거라고 믿었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까 정말 힘들더군요. ‘나는 장애인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1년 정도 걸렸어요. 장애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는 3년 넘게 걸렸고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되면서 찾아온 장애의 그늘 벗어나는 데 3년 넘게 걸려
장애라는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날 무렵인 2002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던 아버지가 그의 곁을 떠났다. 평소 건강하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몸이 안 좋다고 하시더니 병원을 찾았다가 간암 판정을 받았고, 입원한 지 얼마 안돼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강인하면서도 정이 많던 그의 부모님은 김씨가 장애인 판정을 받을 때도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거나 약한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생의 벼랑 끝에 선 심정이던 김씨를 지탱해준 것은 바로 부모님의 격려와 애정이었다. 그런데 그 안식처마저 빼앗아가는 삶의 잔인함에 김용우씨는 한동안 많이 좌절했다고 한다. 게다가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마땅한 직업조차 없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휠체어 댄스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국가대표 휠체어 댄서 김용우

김용우씨는 휠체어 댄스 대중화를 위해 매주 토요일 휠체어댄스 동호회 ‘휠 포 유’ 회원들과 두 시간 동안 신나게 춤을 춘다.


“3년 정도 재활치료를 받은 후 계속 직업을 구하려고 애써 봤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어요. 그동안 공부만 했기 때문에 특별한 전문 기술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던 그에게 아는 형이 ‘춤’을 권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춤에 별로 흥미가 없었어요. 오히려 기공이나 명상 쪽에 관심이 많았죠.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까 그런 일들은 몸이 따라주질 않더라고요. 자세도 힘들고요. 그때 마침 아는 형이 댄스 스포츠를 해보라고 권했어요. 춤이 제가 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렇게 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전문 댄서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저 아무 기쁨도 없는 그의 인생에서 작은 위안 삼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한 번 놓쳐버린 희망을 다시 붙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희망은 일종의 마약과도 같다. 중독 되기는 쉬워도 간단히 끊어내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어느 순간부터 춤추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즐거워졌어요. 그때 제게 처음 춤을 권한 형이 한국휠체어댄스스포츠연맹(kwdsf.org) 이치훈 회장님을 소개해주더군요.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마침 이 회장님은 본격적으로 국내에 휠체어 댄스를 소개할 선수를 찾고 계시던 중이었어요.”
김씨는 2002년 ‘국내 최초의 국가대표 휠체어 댄서’로 거듭나게 되었다. 휠체어 댄스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팀을 이뤄 추는 댄스 스포츠를 말한다. 춤에 사용되는 곡이나 기본 동작은 일반 댄스 스포츠와 같다.
현재 국내에는 김용우씨 같은 선수급 휠체어 댄서가 10여 명 있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를 아는 사람들은 그만큼 완벽하고 섬세한 춤 실력을 갖춘 댄서가 없다며 ‘타고난 춤꾼’이라고 말한다. 지난 3월 홍콩에서 열린 ‘제2회 홍콩 아시아 휠체어 댄스 대회’에 한국 대표로 나간 김씨는 룸바, 차차차 등 라틴댄스 5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 주위의 평가가 과장이 아님을 입증해보였다.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을 되찾았어요. 그전에는 장애를 가진 ‘나’를 어떻게든 숨기려고만 했는데 사람들이 제 춤을 보면서 즐거워하니까 힘이 나기 시작했죠. 특히 대회에 나갔을 때 관중들이 열렬히 환호해주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가슴이 벅차고 흥분돼요. 그 순간에는 저나 사람들이나 제 장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의 느낌과 열정을 섬세한 춤으로 표현하는 행복한 댄서로 보죠.”

장애인이 다섯 가지 일밖에 할 수 없다면 그 일을 최대한 즐기며 살고 싶어
물론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댄스 스포츠는 섬세하고 빠른 동작이 요구되는데 휠체어 댄스는 무거운 바퀴가 달린 휠체어를 타고 하기 때문에 정지 동작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비장애인들은 춤을 출 때 스텝으로 힘을 전달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휠체어 바퀴로 전달해야 하니까 그게 힘들어요. 어떤 때는 춤추고 나면 온몸이 아플 정도예요. 완전 마비라면 고통조차 못 느끼는데 저는 불완전 마비라 가끔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가 있거든요.”
잠을 이루기조차 힘들다는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자 김용우씨는 빙그레 웃으며 “참아야죠.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그냥 참고 견디는 수밖에요”라고 대답했다.

휠체어 댄스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국가대표 휠체어 댄서 김용우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인생과 지금의 인생을 놓고 보면 이제 겨우 일곱 살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라는 김용우씨의 목표는 휠체어 댄스의 대중화다. 그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 ‘휠포유(Wheel for you, cafe.daum.net/wdsport)’는 이런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작은 모임이다. 여자 회원들은 대개 비장애인인데 주로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기 모임은 매주 토요일마다 있다. 그날이 되면 휠포유의 회원들은 모임장소인 홀트복지센터 체육관 바닥이 윤이 날 정도로 2시간 동안 신나게 춤을 춘다.
“휠체어 댄스는 저 같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댄서가 동등한 위치에서 춤을 춘다는 게 좋아요. 누가 누구를 이끌어주는 게 아니라 하나가 되어 즐길 수 있죠. 제가 우리나라 휠체어 댄스의 시초인 만큼 앞으로 휠체어 댄스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키우고 싶어요. 또 제 전공을 살려 무역업도 하고 싶습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중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직 사귀는 여자친구가 없다는 그에게 어떤 타입의 여성과 결혼하기를 원하냐고 묻자 그는 “그게 제가 원한다고 되는 건가요?”라며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신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가족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해해야 할 것도 많고 도와줘야 할 것도 많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습니다. 저한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잘 가꿀 수 있는 지혜로운 여자,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성격이면 더 좋겠죠.”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는 김용우씨. 그는 비장애인들이 열 가지 일을 할 수 있고 장애인들이 다섯 가지 일밖에 할 수 없다면 그 다섯 개의 일을 최대한 즐기면서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저 자신을 비장애인들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 처한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장애인 분들도 저희같이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냥 동등하게 대해주세요. 장애를 가진 사람을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차별이니까요.”

여성동아 2005년 7월 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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