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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카드로 만든 집’에서 자립 의지 다지는 자폐증 두 청년 임이건·고경필

글·김정은‘여성동아 인턴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5.07.14 10:51:00

북한산 등산로 입구에 자리한 카페 ‘카드로 만든 집’의 실내 정경은 여느 찻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큰 목소리로 반갑게 손님을 맞는 두 청년 임이건씨와 고경필씨의 모습은 무언가 조금 달라보인다. 우리가 흔히 ‘자폐아’라고 부르는 발달장애인들이기 때문.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을 받는 말투는 느릿하고 어색하지만 탁자에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려놓는 이들의 손길에는 정성이 가득하다.
카페 ‘카드로 만든 집’에서 자립 의지 다지는 자폐증 두 청년 임이건·고경필

카페‘카드로 만든 집’은 일종의 직장 체험실이다. 취업이 쉽지 않은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일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약간의 수입도 얻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으로 재작년 겨울 문을 열었다. 믿음복지회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센터에서 운영 중인 이곳에는 현재 두 명의 자폐증 청년들이 일하고 있다. 주방일과 계산을 담당하고 있는 임이건씨(24)와 자리 안내 및 서빙을 하는 고경필씨(23)가 그 주인공. 말수도 많고 붙임성도 좋아 주변 상인들 사이에서 ‘동네 이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는 이건씨는 대뜸 “요즘 장사가 너무 안돼요” 하며 카페 운영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반면 경필씨는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힘든 일 없어요. 재미있어요”라고 간단한 대답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이 없다. 한 살 위인 이건씨가 가끔 시비를 걸어도 그저 웃으며 넘긴다는 스마일맨. 카페의 관리를 맡고 있는 자립지원센터 오유정 과장(32)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한번도 그릇을 깬 적이 없을 정도로 조심성과 책임감이 남다르다.
“이건씨와 경필씨 모두 카페가 문을 열기 전부터 1년 넘게 자립지원센터에서 직업 훈련을 받았어요. 카페 내부 공사에도 함께 참여했죠. 그래서인지 카페 일에 정말 열심이에요.”

한번도 그릇 깬 적 없을 정도로 조심성과 책임감 강해

비교적 자폐 증세가 심하지 않은 이건씨는 컴퓨터에 능숙해 2000년부터 믿음복지회 사무국에서 프로그램 설치나 은행 업무 등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경필씨는 자립지원센터가 카페에서 일할 발달장애인들을 공개 모집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1년 넘게 이곳에서 일해온 덕에 지금은 제법 능숙한 모습이지만 처음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한다.
“발달장애인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작은 소리에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요. 경필씨는 요즘도 지하철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리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요. 그러고는 휴대전화 주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그 모습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죠. 처음엔 카페에서도 손님들의 휴대전화가 울리면 그쪽으로 가는 바람에 곤란한 적이 많았어요.”
금연인 줄 모르고 카페 안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 한 손님에게 두 사람이 불같이 화를 내는 바람에 싸움이 날 뻔한 적도 있었다. 오씨는 “발달장애인들은 융통성이 부족해 한번 정해놓은 원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 든다”며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에는 이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꽤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처음 문을 열고 반년 동안은 손님이 오지 않을까봐 자폐증 청년들이 일한다는 사실을 숨겼는데 이 때문에 경필씨가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목동에 있는 발달장애인 그룹 홈에 살며 매일 아침 9시에 카페로 출근하는 경필씨는 이어폰을 끼고 박자를 맞추며 걷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 특이한 걸음걸이의 낯선 청년이 매일 아침 북한산 주변에 나타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해 출근 중이던 경필씨가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것. 이 일이 있고 난 후 오씨는 카페에 대해 알리고 무료로 작은 음악회 등을 열며 주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요즘은 주변 상인들이 손님들을 카페에 모시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단골 손님도 생겼고요. 처음에는 ‘직원들 말투가 이상하다’던 분들도 사연을 듣고는 현관 앞 메모판에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가세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나 시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는 오씨는 이들을 위한 취업 훈련과 체험의 기회가 더 많이 생겨나고 이것이 실제 취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발달장애인은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많이 느껴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다른 곳을 보거나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곤 하죠.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충분히 극복될 수 있어요. 이건씨와 경필씨도 처음에는 사람들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주문도 잘 받고 손님들과 간단한 대화도 나눌 수 있게 되었어요.”
‘카드로 만든 집’ 2호점을 여는 것이 목표라는 이건씨의 진짜 꿈은 컴퓨터를 더 공부해 전문 수리기사가 되는 것. 경필씨는 호텔리어가 되는 것이 꿈이다. 카페 준비과정 중에 무상으로 서비스 교육을 시켜주었던 한 호텔 지배인의 모습에 반했기 때문이다.
오씨는 “영화 ‘카드로 만든 집’에서 자폐아인 주인공은 하늘나라에 있는 아빠와 만나기만을 꿈꾸면서 카드로 높다랗게 집을 쌓아올려요. 그 카드 집처럼 저희 카페가 발달장애인과 세상 사이의 다리가 되면 좋겠어요. 이건씨와 경필씨도 원하는 곳에 꼭 취업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하고 바람을 말했다.

여성동아 2005년 7월 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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