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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부인 조현숙씨가 말하는 우리 부부 연애담 & 결혼생활

“첫 약속처럼 평생 든든한 호위병이 돼준 남편,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해요”

글·송화선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미래문화사 제공

입력 2005.07.13 10:45:00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고건 전 총리의 결혼생활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해 3월 고 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활동하던 시절에조차 부인 조현숙씨는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 그런데 ‘여성동아’는 부인 조씨가 지난 99년 펴낸 수필집 ‘안개같이 피어오른 삶이여’에서 ‘베일에 싸인’ 고 전 총리의 평소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을 발견했다. 조씨가 수필집을 통해 털어놓은 고 전 총리의 청춘 시절 & 알려지지 않은 일상생활.
고건 부인 조현숙씨가 말하는 우리 부부 연애담 & 결혼생활

고건전 총리(68)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손꼽히는 정치인. 아직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감’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961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 내무부장관, 서울시장, 국무총리 등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탁월한 행정 능력을 발휘했고, 지난해에는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까지 무리 없이 수행함으로써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생활은 상당 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등단한 수필가인 부인 조현숙씨(68)가 지난 99년 펴낸 수필집 ‘안개같이 피어오른 삶이여’에는 궁금한 고 전 총리의 일상을 살펴볼 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안개같이 피어오른 삶이여’의 서문 첫 문장은 ‘속내를 보이며-그분에게 드립니다’. 여기서 ‘그분’은 다름 아닌 고 전 총리를 가리킨다. 조씨는 2백여 쪽에 이르는 책 구석구석에 ‘그분’을 언급하며 ‘쑥스러워 차마 직접 전하지 못한’ 속 깊은 애정을 풀어놓고 있다.
아래에서 다른 서체로 되어 있는 부분은 모두 조씨의 책에서 그대로 발췌한 것이다.

첫·만·남

고 전 총리가 서울대 정치학과 1학년, 조씨가 이화여대 국문과 1학년이던 1956년 이들 부부는 두 대학 연합 문학 서클인 ‘미네로스(미네르바와 에로스의 합성어)’에서 처음 만났다.
지나치는 남학생의 은근한 눈길을 받으면 나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던 그런 시절, 이화여대와 서울대의 문학과 음악을 논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미네로스’라는 서클로 우린 가끔 교수님을 모셔놓고 진지하게 토론을 벌였던 것이다. 남학생 여덟 명 중에 정치과 학생이 다섯, 의대생이 둘, 지질학과 한 사람 등이었다. 그곳에서 별명이 만들어졌다. 그분은 ‘뚱땅’, ‘현웅(玄雄; 검은 곰)’, 나는 ‘백합’으로 불렸다.
당시의 첫 만남에 대해 조씨는 2001년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그분(고 전 총리)의 외모가 너무 엄격해 보이고 터프한데다 얼굴에 여드름도 좀 나 있고 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조씨를 마음에 들어한 듯하다.
어느 날 ‘미네로스’ 문학 서클이 끝난 후 버스를 타고 마침 자리를 잡아 종로에서부터 앉아 올 때 나는 저만치서 뚫어지게 나를 지켜보는 눈이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마침내 보문동 큰길에서 차가 멈추었고 내가 내리는 순간, “현숙씨를 평생 호위해드릴 호위병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게 다 무슨 말이람. 우선 주위를 살핀 후 그 말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우리 클럽의 회장이며 대학 입학에서 1등을 했다는 바로 그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소스라쳐 놀라 길을 마구 달리는데 그이가 계속 따라왔다.
얼마 전 우리 아버지께서는 어떤 남학생이 대문 앞에 얼쩡거린다며 물을 퍼서 물세례를 주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과 부모님의 눈에 띌까 보아 숨듯이 대문에 들어서며 빗장을 질렀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거의 매일 이대 앞에서 기다리거나 집까지 따라왔다. 마침내 터프한 그이의 끈질긴 구애 끝에 양가 부모님의 허락하에 정식으로 만남이 시작되었다.’

연·애·시·절
조씨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청년 고건’은 때로는 수줍고, 때로는 장난스럽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해주는 로맨티스트다.
그이는 배가 아프다면 업어 주고, 눈병이 났을 때는 ‘우리 할머니가 내가 눈병나서 아플 때는 이렇게 해주었다’면서 내 눈에 매달린 눈곱까지도 혀로 다 핥아 주었다.
둘이서 처음으로 ‘갈채’라는 그레이스 켈리가 나오는 영화도 보았다. 신세계 5층에 있는 뮤직홀에서 찻잔을 마주했을 때 그분은 거의 손을 떨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음을 보고 나는 왜 그분이 여학생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신 것이 처음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데이트 시절 고 전 총리는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젊은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경기도 입구에 ‘금릉’이라는 곳이 있다. 근처에 저수지가 있는 그곳은 우리 이외에 누구의 시선도 느낄 수 없는 아주 조용한 곳이다. 여름에는 많은 뱀이 우글거렸다. 그런데 참으로 돈키호테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분이 상의를 벗어던지더니 “나 헤엄쳐서 저 건너편에 갔다올게요. 현숙씨, 꼼짝 말고 계세요”라는 말과 함께 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말릴 틈도 없었다. 그때 반대편에서도 막 나룻배 한 척이 이쪽을 향해 떠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디서부터 따라갔던지 아주 긴 뱀 한 마리가 물살을 가르며 쏜살같이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리소리 외쳤다.
“뱀이요! 뱀이 따라가고 있어요!”
그러자 위험을 느낀 그가 쏜살같이 나룻배에 닿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러한 돌출된 그의 행동이 나를 놀라게도, 기쁘게도 한다.
조씨와의 연애 사실을 아버지(고 고형곤 박사)에게 들켰을 때 고 전 총리가 보여준 ‘순진한’ 모습도 이채롭다.
막 (자주 데이트를 다니던 홍릉 임업시험장) 능선을 오르려는데 저만치 두어 분의 중년 남자가 시냇가에서 개를 데리고 앉아 계신 모습이 보였다. 나는 무심히 바라보며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홱하며 그가 돌아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 어깨를 탁 쳤다.
“현숙씨 빨리 갑시다.”
우린 쏜살같이 오던 길로 줄달음질쳤다. 한참을 뛰다가 나는 물었다.
“왜요?”
“우리 아버지가 거기 산책 나와 계시는군요. 내가 이곳에 드나드는 줄을 모르시거든요.”
고 전 총리가 처음 사랑을 고백했을 때 무작정 도망치기만 했던 조씨는 점점 서로를 알아가며 그와 사랑에 빠진 듯하다. ‘매일 찾아와 넙죽 절을 하며 평생 호위해주겠다는 그 말에 넘어가’ 대학을 졸업한 해에 바로 고 전 총리와 결혼을 한다.

결·혼·생·활
고건 부인 조현숙씨가 말하는 우리 부부 연애담 & 결혼생활

그러나 이들 부부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고 전 총리가 고시 공부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났고, 조씨는 1년간 독수공방 시집살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랑과 함께 한 지 한 달, 마침내 어머니께서는 우리들을 떼어놓으셨다. 신랑이 멀리 양주군에 있는 흥국사로 보내어져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정말로 세상에 나같이 호된 시집살이를 한 사람이 없을 듯싶게 그런 시집살이를 했다. 우리 시댁은 그때 청량리에 있는 일본식 2층 집에 살았다. 그때 집의 화장실은 긴 복도 중간 바로 시부모님 방 앞에 있었다. 나의 친정 어머니의 생각 깊은 사려에 나는 솜이 들어 있는 요강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솜이 넣어진 요강은 아무리 오줌을 힘차게 누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 전 총리는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에도 전국을 돌며 행정공무원 생활을 했고, 지방 출장도 잦았다. 경기여중,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재학시절 교사 자격증을 따는 등 재능이 뛰어났던 조씨는 행정가로 승승장구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사회활동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씨가 행복했던 건 고 전 총리가 무뚝뚝한 가운데 한 번씩 보여주는 깊은 사랑 덕분이었다고.
(그분의 출장 가방을 싸다 보니) 한 가지 장난기가 동한다. 나는 그이의 출장 가방을 풀고 속옷을 꺼냈다. 어느 옷에 숨길까 하다가 속옷에 숨기기로 하고 맨 처음 입을 옷 속에 조그만 메모지에다가 ‘한눈 팔지 마세요-여편’이라고 쓴 쪽지를 곱게 접어 감추었다. … (그이가 돌아온 뒤) 난 남편의 속옷가지를 털었다. 그런데 무엇이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접은 메모였다. 그제야 나는 생각이 났다. 다시 펴 보았다.
“그대로 아냐? 아이 재미없어라.”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아주 조그맣게 ‘한눈팔지 마세요.-여편’이라는 글 밑에다 ‘두 눈 다 팔았음-남편’이라고 써놓은 것 아닌가. 순간 나는 이런 재치도 있었구나 싶어 너무 웃음이 나왔다. 나는 사실 여부를 떠나 우선 그 반대로 믿기로 했다. ‘만약 정말 그랬다면 양심을 가지고 이렇게 쓸 수야 없겠지’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믿음이다.
22년 전(1977년) 로마에서 보여준 그분의 행동도 나를 긴장된 삶 속에서 잠시 미소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당시 로마에서는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회의가 열렸다. … 여기저기 다니다 우리 테이블로 온 세 명의 이태리 음악팀은 우리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나를 유심히 보더니 미소를 띠며 웃었다. 맛있는 음악과 멋진 이태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포도주를 조금 마신 탓에 나도 같이 살짝 웃어 주었다. 1불짜리 하나를 주자 우아한 표정과 몸짓으로 ‘오 솔레미오, 돌아오라 소렌토, 무정한 마음’ 등의 곡을 끊임없이 부르는 것이었다. 넋을 잃고 보았더니 키가 큰 미남인 한 남자는 만돌린을 치면서 나를 보고 계속 웃었고, 나는 노래에 그리고 내가 주인공이 된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온 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분이 말을 한마디도 안 하시는 것을 느꼈다. 옷을 갈아입고 욕실로 들어간 그분이 나오는데 타월을 전부 모아 둘둘 말아서는 볼처럼 크게 만들어 옷을 벗으려는 나를 향해 던지는 것이 아닌가. ‘단지 외국 여자라서 쳐다본 것뿐인데’ 하고 역정을 내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같이 웃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 나는 왈칵 밀려오는 모멸감과 창피감으로 어쩔 줄 몰랐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미소가 슬며시 번져 오는 것을 감추어야 했다. 나의 그분도 질투심이 있구나 하고….



요·즘·의·삶
고건 부인 조현숙씨가 말하는 우리 부부 연애담 & 결혼생활

3공화국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접견한 고건 전 총리.


조씨는 부부 둘 다 말수가 적은 편인데다 고 전 총리가 늘 바쁘기 때문에 평범한 부부들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고 적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오면서 이제는 서로의 작은 몸짓이 의미하는 것까지 이해하는 사이가 됐다고.
벌써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결혼 초의 서투름과 어색함은 이제 낡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서로가 서로에게 많이 익숙해지고 있다.
얼굴 표정이나 고개의 끄덕임, 왼팔과 오른팔의 의미를 다 읽을 수 있고, … 나만이 그의 요구를 다 알 수 있는 몸짓들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배려하는 것이 나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다.
나는 그분이 한마디 말씀의 운을 띄우면 그 다음 다음의 행동까지 알아서 다 해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나 자신조차도 눈치 없는 부인 같은 생각에 못 견뎌 완벽하게 잘 처리하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남편이 싫은 내색을 하면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남들은 그것이 그분에 대한 나의 사랑이 깊어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년이면 조씨는 고 전 총리와 만난 지 50년이 된다. 긴 시간 함께해온 고 전 총리에게 조씨는 변함없는 사랑을 시로 남겼다.
고건 부인 조현숙씨가 말하는 우리 부부 연애담 & 결혼생활

부부

우리의 세월은
뽀얀 먼지를 덮어쓴 채로
덧없이 흐르지만
당신으로 인해
꺼질 줄 모르고 타는 불길은
내 가슴을 태우고
한 줌 재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리네.


여성동아 2005년 7월 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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