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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반가운 얼굴

한국 여아 입양 위해 5년 만에 귀국한 이옥주

“아이 키우며 느끼는 행복,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기획·김유림 기자 / 글·김미희‘자유기고가’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5.07.07 17:24:00

지난 2000년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개그우먼 이옥주가 지난 5월 말 귀국했다. 결혼 후 두 아들을 키우며 전업주부로만 지내온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평소 입양을 원하던 남편과 뜻을 같이 해 한국 여자아이를 새 식구로 맞기로 했기 때문. 딸이 생긴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다는 그에게 미국에서의 생활 & 아이들 키우는 재미에 대해 들어보았다.
한국 여아 입양 위해 5년 만에 귀국한 이옥주

5년만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개그우먼 이옥주(36)의 곁에는 남편 토머스 거슬러씨(39)와 귀여운 두 아들 대니(7)와 토미(3)가 있다. 가족들에 둘러싸여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평범한 가정주부의 모습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다는 사실에 얼마나 설레었는지 몰라요.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어려움도 많았어요. 게다가 1년 동안 콜로라도에 있는 시집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해야 했기 때문에 심적인 부담감도 컸었죠. 지금은 뉴멕시코 앨버커키로 이사해 시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데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큰아들 대니는 올 가을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는 우리나라로 치면 어린이집과 같은 프리스쿨에 다니면서 태권도와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고. 그는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데려다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유치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바쁘게 살다보니 한국에 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그가 이번에 큰마음 먹고 고국을 방문한 이유는 특별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 친부모 못지않게 사랑으로 키우고 싶어
지난 4월부터 준비해온 셋째 아이 입양 절차를 밟기로 한 것. 처음에 이옥주 부부는 주변 사람들의 사례를 보고 아프리카 아이를 데리고 올 생각도 잠깐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와 같은 인종의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한국 아이를 새 식구로 맞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그는 “아이가 엄마와 생김새가 닮으면 정서적으로도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고 이질감도 덜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유니세프와 적십자 회원으로 꾸준히 활동해오고 있어요. 결혼할 때도 아이를 입양할 생각이 있다고 밝히더라고요. 저도 남편 생각에 적극 동의하긴 했지만 아이 둘을 낳아 키우느라 지금까지 엄두를 내지 못했죠. 그러다 둘째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문득 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입양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아이 욕심이 있는지 아이는 많을수록 좋은 것 같아요. 가족 단합도 잘 되고 집안에 웃음도 많아질 것 같아서요. 비록 배 아파 낳지는 않았지만 가슴으로 낳은 아이인 만큼 친부모 못지않은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싶어요.”
하지만 입양 절차가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고 한다.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고 수많은 인터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입양 과정이 너무나 복잡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일단 저희 가정이 아이를 입양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심사해요. 부모가 될 사람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교육관은 어떤지도 물어보고요. 그리고 집을 직접 방문해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어떻게 교육시키고 있는지, 평소에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는지도 묻고요. 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가정환경이 갖춰져 있는지도 심사하는데 화장실 변기 물까지 내려보더군요.”

한국 여아 입양 위해 5년 만에 귀국한 이옥주

둘째 아들 토미의 돌잔치. 맨 오른쪽에 있는 두 사람이 그의 시부모다.


그는 미국에서 홀트아동복지회 콜로라도 에이전시와 입양 절차를 논의해왔다. 그러나 한국 아이를 입양하기로 한 이상 직접 모국에 와서 도움을 얻는 게 좋을 것 같아 귀국을 서두르게 되었다고. 보통 입양에 걸리는 시간은 1년 정도지만 철저히 준비를 해온 만큼 7월에 미국으로 돌어갈 때는 어쩌면 아이를 안고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곧 여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TV에서 아기가 나오면 “저런 아이가 우리집에 올 거야”라고 말하고 수시로 “아기가 우리집에 오면 좋겠지? 잘 해줄 거지?” 하며 동생에 대한 존재감을 확인시키고 있다고. 그래서인지 큰아들 대니는 여동생이 오면 인형을 사주겠다며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98년 결혼해 어느덧 7년 차 베테랑 주부가 된 그는 2000년 12월 남편의 나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사는 동안 자상한 남편과 사랑스런 아이들 덕분에 화려했던 연예계 생활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고 한다.
그는 96년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 언니의 소개로 남편 토머스 거슬러씨를 만났다. 하지만 남편을 소개받을 때만 해도 그는 영어 공부도 하고 친구로 지낼 생각만 있었을 뿐 결혼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결혼한다고 했을 때 양쪽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미국인과 결혼해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큰언니조차 반대했으니까요. 아버지가 남편을 직접 만나보시고는 결혼을 승낙하셨죠. 어른들이 보시기에도 예의 바른 사람이거든요. 시부모님도 동양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저를 그리 탐탁해하지 않으시다 저를 직접 보시고 그제야 안심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한국어 배워 부모를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대니와 토미

그가 당초 계획보다 빨리 미국으로 떠난 것은 혼혈아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에서 아이가 상처받는 게 싫었고 남편 또한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했기 때문. 현재 살고 있는 앨버커키에는 백인, 흑인, 인디언 등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고 있어 혼혈인에 대한 편견이 그리 심하지 않다고 한다.
“처음 콜로라도에 살 때는 향수병에 걸려 한동안 고생했어요. 주위에 동양인이라고는 하나 저밖에 없어 외로움이 무척 컸어요. 우리말이 너무 하고 싶어서 할머니처럼 혼자 ‘구시렁구시렁’대는 버릇까지 생기더라고요. 다행히 앨버커키에서는 교회, 한인회 등 어딜 가든 한국 교민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하지만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죠. 특히 한국의 맛이 그리워 김치부터 떡까지 안 해 먹는 게 없는데도 한국에서 먹던 맛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한국에서는 쑥을 캐본 적도 없으면서 봄에 쑥 비슷한 새싹이 파릇하게 돋으면 왜 그렇게 한국이 그리운지…. 한일월드컵과 그리스올림픽 중계도 우느라 제대로 못 봤어요. 문대성 선수가 금메달 따는 모습을 보면서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집에서 기르는 개를 ‘김치’로, 어항 속 물고기는 ‘물김치’로 부른다고 한다. 두 아들에게도 한국의 정서를 심어주기 위해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다고. 남편도 아이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같이 배우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와 남편은 서로를 부를 때 “자기야”라고 부르고, 대니와 토미도 “아빠” “엄마”라고 부르며 토미는 대니를 “형님”으로 부른다고.
하지만 혼자서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려니 어려움도 많다고 한다. 어려서는 그가 가르치는 대로 한국어를 곧잘 따라 하던 대니가 차차 영어가 더 쉬워지자 한국어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국 여아 입양 위해 5년 만에 귀국한 이옥주

“대니는 집에 돌아오면 밖에서 있었던 일을 저한테 다 얘기하는데 영어가 먼저 나올 때면 ‘한국말!’ 하면서 주의를 주죠. 어느 날인가 ‘You know what?’ 하면서 말을 꺼내기에 한국말로 하라고 했더니 ‘Never mind’ 하면서 아예 말을 안 하는 거예요. 또 한 번은 대니를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엄마는 선생님 만나서 얘기하고 갈게’ 하고 말했더니 아이 친구들이 대니에게 ‘너희 엄마 무슨 말 하는 거니? 웃긴다’ 하며 놀리더라고요. 그러자 아이가 ‘I don’t know’ 하는 거예요. 그 뒤로 ‘우리 엄마는 한국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말을 한다. 나는 그게 자랑스럽다’는 문장을 만들어서 달달 외우게 했죠. 언젠가는 엄마의 나라를 직접 보여주고 한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그는 이번 방문이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이 동물을 좋아해 한국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간 곳이 동물원이 있는 놀이동산. 아이들을 낙타 등에 태워주고 신나는 놀이기구도 마음껏 타게 해줬더니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만큼은 아이들에게 영화도 실컷 보고 오락게임도 맘껏 하게 해줄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도 한국을 신나고 즐거운 곳으로 기억할 것 같기 때문이라고.
두 아이는 각각 엄마와 아빠를 쏙 빼닮았다. 큰아들 대니는 쌍꺼풀 없는 엄마 눈을 닮았고, 토미는 아빠 얼굴 그대로다. 대니는 큰아들이라 듬직하고 남자다운 반면 토미는 애교가 많다고. 잘못해서 혼을 내려고 하면 달려와 안기면서 엄마의 입을 막고 뽀뽀를 해댄다고 한다.
힘든 외국 생활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은 역시 남편. 그는 “결혼할 당시만 해도 남편을 그저 ‘결혼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살수록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한 달의 절반은 출장 때문에 밖에서 생활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을 돕고 아이들과도 잘 놀아준다고. 그가 가끔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는 게 억울해 이유 없이 화를 내면 남편은 무조건 잘못했다며 그를 달랜다고 한다.
“제가 화가 날 때 하는 넋두리가 있어요. ‘내가 예전에는 잘 나갔는데…’ 하면서 시작하는 뻔한 레퍼토리죠. 남편은 이제 제 억양만 들어도 무슨 말 하는지 다 알아들어요. 그래서 제가 얘기를 하기도 전에 먼저 남편이 위로의 말을 건네요. ‘나 하나 믿고 다 포기하고 이곳에 와줘서 고맙다. 아이들 잘 키워주는 것도 고맙고,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없다는 거 잘 안다’면서 마구 칭찬을 해주죠. 그렇게 남편의 위로를 받으면 금세 마음이 누그러지고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그가 화가 났다 싶으면 남편과 아이들이 ‘아저씨쇼’를 선보여 결국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고 말한다. ‘아저씨쇼’는 바지를 옆구리까지 치켜올리고 “아저씨~” 하면서 추는 우스꽝스러운 춤이라고. 언젠가 “다른 건 다 해도 좋으니 뽀글파마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길에서 큰 소리로 남편을 혼내는 아줌마만은 되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그가 “당신도 아저씨는 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는데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아저씨’란 단어를 희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 출장올 때마다 장모에게 ‘매운 김치찌개’ 해달라며 전화하는 남편

남편은 친정 식구들에게도 친아들처럼 살갑게 대한다고.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지역으로 출장을 자주 오는 남편은 한국에 올 때마다 친정 식구를 만나 그를 대신해 안부를 전해준다고 한다.
“매운 음식을 유달리 좋아하는 남편은 인천공항에 내리면 바로 친정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대요. ‘어머님, 맵고 맛있는 김치찌개 부탁해요’ 하고요. 그럼 어머니는 돼지고기와 청양고추 듬뿍 넣은 특제 김치찌개를 해놓고 기다리시죠.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사위가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속이 메슥거린다고 나한테 매운 김치찌개를 해달라고 전화해. 내가 하는 김치찌개가 최고로 맛있대’ 하면서 자랑도 하신대요. 어머니가 영어를 못하시는데도 남편과 표정, 몸짓만으로 말이 다 통해요. 서로 비밀이 없는 사이죠(웃음).”

한국 여아 입양 위해 5년 만에 귀국한 이옥주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옥주 가족의 단란한 모습. 그는 결혼 초 1년 동안 시부모님, 시할머니(사진 맨 위 왼쪽)와 함께 생활했다.


방송생활에 대한 미련을 한 번쯤 가질 법도 하건만 그는 자신에게는 주부 역할이 더 잘 맞는다고 말한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일이 재미있다고.
“어느 날 토미를 데리고 낮잠을 자는데 아이에게서 나는 입 냄새가 너무도 달콤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면서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지난해에는 대니가 저를 크게 감동시킨 적이 있는데, 영화를 본다는 아이가 너무 조용해서 방으로 가봤더니 울고 있는 거예요. 놀라서 왜 우냐고 물었더니 ‘저 아이가 빨리 엄마 아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났어’ 하고 대답하지 뭐예요. 우리 대니가 처음으로 슬픔을 깨달았다는 걸 안 순간 저도 큰 감동을 받았어요. 만약 일을 계속했다면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오랜만에 찾은 고국에서 그는 가는 곳마다 자신을 알아보고 격려해주는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친절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멀리 타국에서지만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한번 더 하게 됐다고.

여성동아 2005년 7월 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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