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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아픔을 딛고

‘청소년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 어머니 조정실

■ 글·구미화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 2005.06.08 18:51:00

최근 ‘일진회’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뒤늦게 언론의 관심을 모으는 이가 있다.
2000년 학교 선배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던 한 여학생의 어머니 조정실씨.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딸은 올해 어엿한 대학생이 됐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조씨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학교폭력 근절과 피해학생 돕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는 조정실씨를 만나보았다.
‘청소년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 어머니 조정실

서울서초동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만난 조정실씨(48)는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최근 ‘일진회’가 사회 문제로 비화되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 관련 단체는 안 다녀본 곳이 없어요. 하지만 여태껏 누구 하나 관심 갖고 제 얘길 들어준 적이 없어요. 전 죄인이 아니고 피해자 가족인데도 너무나 치욕감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동안 학교폭력으로 우리 아이들이 몇 명이나 죽어갔는지 아세요? 왕따당한 아이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일주일에 세 건이나 받은 적도 있어요.”
조씨는 그동안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니며 학교폭력의 실상을 알릴 때는 관심도 갖지 않던 사회가 뒤늦게 학교폭력 예방책을 세운다고 나서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이 고통당한 많은 아이들과 그 가족들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는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 나 요즘 정말 씩씩하게 다니는데, 옷도 환한 색만 입고, 화장도 하는데…”
조씨는 요즘 ‘청소년인권운동가’로 불린다. 번듯한 사무실 하나 없이 청소년 관련 단체를 전전하고 있지만 2001년부터 인터넷에 학교폭력피해자지원센터(uri-i.or.kr)를 운영하고, 매주 대학로에서 학교폭력 추방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인상 좋은 아주머니 같다가도 학교폭력 얘기만 나오면 ‘싸움닭’처럼 돌변하는 그는 2000년 봄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주부였다. 그해 4월,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딸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기 전, 그는 학교폭력을 ‘영화에 나오는 남학생들의 패싸움’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같은 학교 3학년 아이들 다섯 명이 점심시간에 딸을 화장실로 불러내 폭행하고, 집으로 끌고 가 또 때렸어요. 아이들이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면서 ‘이렇게 해봤자 내 몸에 멍만 든다’면서 무릎을 꿇게 하고 허벅지에 몽둥이를 끼워놓고는 신발을 신고 발로 찼대요. 그 일로 제 딸은 요즘도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아파해요.”

학교에서 상습적으로 돈 뺏는 아이들 타이른 것이 딸이 폭행당하는 계기 돼
사건의 발단은 조씨가 딸의 학교에서 상습적으로 돈을 뺏는 아이들을 타이른 것에서 비롯됐다. 상습적으로 돈을 빼앗고 폭행을 일삼는 아이들이 있는데 학교에서는 빼앗은 돈을 되돌려주도록 하는 선에서 수습하고 말아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자 참다못한 조씨가 가해 학생들을 직접 만나 타이른 것. 하지만 아이들은 조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급기야 조씨와 그 부모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조씨는 결국 “같은 일이 다시 한 번 일어나면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강하게 경고하고 돌아왔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조씨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2학년 이진회 아이가 3학년 ‘일진회’에 조씨의 딸에 대해 이야기한 것.
중학생이었지만 아이들의 폭행 수위는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해질 정도로 머리채를 잡고 끌고 다녔고, 코피가 터지자 손발에 묻는다며 가서 씻고 오라고 한 뒤 다시 때렸다고 한다. 피범벅이 되어 돌아온 딸은 병원에서 한 달 넘게 입원 치료를 받았다. 대인기피증과 폭식증, 우울증이 심각해 두 달 동안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했다.
딸이 생후 8개월 됐을 무렵 남편과 헤어져 식당을 운영하며 딸과 단둘이 살아온 조씨는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그 후 학교와 경찰 등 어느 곳에서도 도움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졌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가해 학생들에게 5일간 사회봉사명령 처분을 내린 게 전부였고, 경찰에서는 “합의하라”는 얘기만 반복했다고. 사과는커녕 병원에 찾아와 협박과 욕설을 퍼붓던 가해 학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학교에 다니는 동안 조씨의 딸은 병원에 갇혀 신음하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음식을 마구 먹어대 살이 찌기 시작했다. 조씨는 결국 자신의 힘으로 딸을 회복시키기로 결심하고 40여 일 만에 딸을 퇴원시켰다.

‘청소년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 어머니 조정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신음하고 있을 아이들 생각하면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요”


“처음엔 병원에서 퇴원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이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 되겠더라고요.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쓰고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죠.”
조씨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딸을 퇴원 시킨 후 조씨는 곧바로 서울 성수동에서 경기도 의정부로 이사했다. 말을 잃고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는 딸에게 다시 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아이를 의정부에 있는 학교로 전학시키고 얼마 동안은 매일 함께 학교에 갔어요. 아이를 교실에 앉혀놓고 복도 창문 밑에 앉아 기다렸죠. 아이가 혼자 교실 밖으로 나오면 조용히 따라가 달래 다시 교실로 들여보내곤 했는데 근 1년이 지나니까 안정이 되더라고요.”
그는 자신의 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새 친구들이라고 말한다. 딸이 학교생활에 흥미를 붙이도록 학급 임원으로 추천하고, 학교에 늦거나 결석하면 그러지 말라며 다독였다고. 그는 지금도 딸의 사정을 알면서도 내색 한번 하지 않은 딸의 친구들이 고맙다고 한다.
딸이 조금씩 상처를 회복하는 동안 조씨는 운영하던 식당 문을 닫고 학교폭력의 실상을 알리기에 앞장섰다. 가장 먼저 각종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딸이 겪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협의회’와 교육청 등에도 사건을 알렸다. 그리고 형사소송 1년 만에 가해 학생들에 대해 보호관찰 처분, 민사소송 3년 만에 일정액의 피해보상 판결을 받았다.
후련할 듯도 하건만 조씨는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다고 한다. 가해 학생들을 처벌하기 위해 소송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길 바랐을 뿐인데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가해 학생들을 보호관찰소에 보낸 것이 가슴 아프다고. 그는 얼마 전 서울보호관찰소가 마련한 ‘용서와 화해의 장’ 행사에 참여해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만난 뒤로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고 한다.
“아이들이 고개를 못 들더라고요. 자기 잘못을 다 알고 있는 거죠. 아이들의 맑은 눈을 보면서 제가 오히려 미안해졌어요. 사회에서도 잘못을 뉘우친 아이들에게 절대 낙인을 찍지 말아야 해요.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다시 반항을 하거든요.”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학교폭력은 반드시 화해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잘 알기에 현실적인 방법을 일러준다.
“학교폭력 피해자는 어디서도 도움받기가 참 힘들어요. 일단 학교에서는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다면서 쉬쉬하려고 하죠. 심지어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는데도 쌍방 폭행으로 몰아갈 때도 있어요. 가해자 측에선 절대 먼저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요. 상황이 이러니 자녀가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면 우선적으로 증거를 확보해야 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 수집이 불리해지니까 사건 발생 즉시 상처 부위를 사진 찍고, 친구들로부터 당시 정황을 녹음해두거나 서면으로 받아둬야 하죠.”

‘청소년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 어머니 조정실

200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학교폭력 상담 사이트 ‘우리아이’에 올라온 청소년들의 글을 읽고 있는 조정실씨.


상처 부위 사진 찍고, 목격자 진술 있어야 가해자로부터 사과받을 수 있어
‘아이들 싸움을 갖고 증거 확보에 목격자 진술까지 받아놓아야 하나’ 하고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씨는 학교폭력의 실상이 생각보다 가혹하다며 “증거를 확실하게 확보해두지 않으면 아무리 억울해도 피해 사실을 인정받거나 사과받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증거를 수집하는 것만큼이나 피해를 입은 아이가 절대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많이 보듬어주고, 다독여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왜 바보같이 맞고 다니냐”는 식의 비난조의 말을 해서는 절대 안 되고, 어떤 상황에서든 가족이 자기편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과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자기 자식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부모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거 아니에요. 자식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 게 부모 마음이니까요. 하지만 진정으로 자식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당장 아이를 데리고 피해 학생을 찾아가 당사자와 그 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해요. 부모의 머리 숙인 모습을 보면 아이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게 되거든요. 부모가 ‘걱정 마, 아빠 엄마가 다 해결할게’ 하는 식으로 처신하면 아이가 잘못을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우쭐해져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될 거예요.”
조씨는 딸이 학교폭력을 당한 지 1년여 만인 2001년 2월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학교폭력 상담 사이트 ‘우리아이’를 개설했다. 지난해 경제적인 이유로 사이트를 폐쇄했다가 올 초 운영을 재개했는데 중학교 1~2학년 학생들의 참여율이 높다고 한다. 조씨는 자신이 직접 나서 학교폭력의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대학생 상담가들이나 비슷한 경험이 있는 중고등학생 또래 상담가들이 답글을 달아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며 “이 사이트가 학생들이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고, 억울함과 분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간으로 활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넷 상담 사이트를 개설한 뒤로 조씨는 3년 넘게 매주 토요일 대학로에서 학교폭력 추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참여자는 대부분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인데 최근 교사들의 참여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를 청소년인권운동가로 변신시킨 딸은 지난 3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또다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는 그는 성인이 된 딸을 보며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그는 현재 관광학과에 다니고 있는 딸이 훗날 항공사 승무원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이야기했다.
“저도 요즘 학부모들 못지않게 제 자식, 제 딸밖에 몰랐어요. 학교폭력이 뭔지 관심도 없었죠. 불량 학생들이 패싸움하는 게 학교폭력인 줄 알고 누가 학교폭력에 시달린다고 하면 혀를 차며 못마땅하게 생각했죠. 제 딸이 학교폭력으로 고통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다른 엄마들도 저처럼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학교폭력은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당하는 게 아니거든요. 눈을 마주쳤을 때 눈싸움에서 밀리면 당할 수도 있는 게 바로 학교폭력이에요.”
딸이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지만 선뜻 학교폭력 문제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는 조씨는 지난해 법원에 개인파산신청을 냈을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의 사정을 알고 청소년 문화센터인 서초구립유스센터에서 그에게 음료 자판기를 맡아 관리하도록 권했으나 그는 그 수익금마저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기금으로 내놓고 있다.
“유스센터에서 잘못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데 제가 신세를 지고 있으면 그러지 못하잖아요. 제가 쓸 돈은 제 순수한 노동으로 벌고, 해야 할 말은 해야죠.”

‘청소년인권운동가’로 변신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 어머니 조정실

의료보험 혜택, 피해자 가족 상담 등 학교폭력 피해자 구제 제도 마련 시급
매일 지역 정보지에 실린 구인란을 살피면서도 학교폭력 피해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두말 하지 않고 달려가는 그를 보며 일부에서는 “왜 아직 그러고 있냐”며 삐딱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숨죽여 신음하고 있을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겪게 될 절망과 사회적 냉대를 생각하면 다른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일부 국회의원들이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터라 조씨는 이 기회에 ‘학교폭력 피해자 구제 제도’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며 국회 교육위원회 공청회에 참석해 의견을 내놓는 등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 폭력을 당한 아이는 죽지 않는 이상 학교에 나가지 않으면 결석 처리가 돼요.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어서 장기간 치료를 하다 보면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크고요. 반면 가해자들은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이를 수행하는 동안 출석 처리가 되고, 봉사 점수까지 얻어 당당하게 학교생활을 하죠.”
학교폭력의 수위와 그 피해 정도를 잘 아는 조씨는 “예방이 최선이겠지만 곳곳에서 심각한 수준의 학교폭력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구제 제도가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현재 요구하고 있는 피해자 구제 제도는 병원 치료 시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피해자 가족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것. 이 외에도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경우 그동안의 진료기록을 인정받지 못하고 병원에 일정기간 입원해 새로 신체감정을 받아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으므로 기존의 진료기록이나 담당의사의 소견으로 환자의 상태를 판별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들이 가장 마음 편하게 있어야 할 곳이 가장 위험한 곳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그 누구보다 안타깝게 생각하며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고자 나선 조정실씨. 그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보면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예전의 요리 경력을 살려 그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허허 웃었다.

여성동아 2005년 6월 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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