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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명화 ①

날카로운 풍자가 담긴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

■ 글·이주헌

2005. 06. 01

날카로운 풍자가 담긴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

고야(1746~1828),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 1800,캔버스에 유채, 290×336cm, 마드리드, 프라도 박물관.


누구나 한번쯤 동화‘벌거벗은 임금님’을 읽거나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허영심 많은 한 나라의 임금님이 떠돌이 재단사의 말에 속아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행차를 나서게 된다는 이야기이지요. 자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착한 사람들에게는 보인다는 멋진 옷에 대한 욕심 때문에 임금님은 결국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이처럼 가진 것이 많을수록, 또 큰 힘을 누릴수록 허영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 사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이라는 그림은 ‘벌거벗은 임금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고야는 궁정화가였지만 당시 스페인 왕실 사람들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그린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을 보면 작가가 왕족에게 보내는 냉소적인 시선이 여기저기에 묻어납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왕족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13명의 식구가 모두 우스꽝스런 요괴처럼 그려져 있지요.
화면 중앙에 있는 왕비는 매우 오만할 뿐 아니라 정숙하지 않은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능했던 왕은 왕비의 위세에 눌려 주눅 든 표정으로 멍청히 서 있습니다. 다른 식구들도 화면 속에 제각각 우스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렇듯 자신의 후원자들을 허영과 탐욕, 공허의 화신으로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고야는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복장과 장식을 매우 화려하게 그려 겉모습을 번지르르하게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이 초상화의 모델이었던 이들은 그림 속에 숨어 있는 풍자의 칼날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지요.
겉보기에 화려한 것만을 좋아했던 한 왕가의 속물 근성, 그 어리석음이 고야의 그림 속에서 영원한 기념물로 남아 지금도 우리에게 겸양과 정직의 미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고야는 궁정화가로 크게 출세를 했으면서도 자신의 성공을 즐기기보다 어렵고 힘든 서민들의 생활과 나라의 앞날을 늘 걱정했습니다. 이러한 걱정에 더해 말년에는 귀까지 들리지 않게 되자 고야는 삶의 비극성과 허무함을 표현하는 아주 어두운 톤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지요. ‘검은 그림’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 그림들의 비극적인 성격은 그보다 앞서 그린 위의 왕족 초상화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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