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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와 3년째 캐나다 머무는 이성미가 들려주는 ‘조기 유학 체험기’

“맨발로 뛰어나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 보면 잘하고 있다는 생각 들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김미희‘자유기고가’ ■ 자료&사진제공·‘아들아, 너는 세상을 크게 살아라’(이지북)

입력 2005.06.01 10:30:00

지난 2002년 세 아이를 데리고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이성미.
그는 낯선 땅에서 혼자 세 아이를 돌보며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가족의 참의미를 되새기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집에 있는 숟가락 하나까지 싸들고 떠났던 짠순이 이성미가 들려주는 ‘좌충우돌 조기 유학 체험기’.
세 아이와 3년째 캐나다 머무는 이성미가 들려주는 ‘조기 유학 체험기’

개그우먼 이성미(46)에게 조기 유학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2002년,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 은기(16)가 먼저 유학 얘기를 꺼냈다.
“은기가 수재도 아니고 조기 유학을 보낼 만큼 넉넉한 형편도 아니어서 화부터 냈어요. ‘야, 유학은 무슨 유학이야! 공부도 못하면서! 한다던 골프나 열심히 해’ 그랬죠. 그랬더니 은기가 ‘엄마 말대로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는 건 한국에선 안된단 말이야!’ 하면서 방문을 꽝 닫고 나가버리더라고요.”
그는 갑작스러운 은기의 말과 행동을 듣고 자신이 아들에게 요구하던 ‘된사람’만 되어서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대접받는 세상이니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 자기가 해야 할 공부를 하는 것도 한국에서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그때부터 그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조기 유학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아직 초등학생인 은기를 혼자 보내기가 내심 불안했지만 당시 그는 아이와 함께 떠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친정 아버지가 와병 중이라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것. 25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해온 방송생활을 접는 것도 그에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선후배들의 격려에 힘을 얻어 은기를 먼저 보내고 곧 자신도 따라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은기를 보내기에는 캐나다가 적당했어요. 날씨는 물론 자연 경관이 좋아 아이들이 뛰어놀기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했죠. 연 학비가 캐나다 돈으로 9천5백~1만5천 달러(7백60만~1천2백만원) 정도여서 미국보다 저렴하고 물가도 싼 편이고요. 한국 사람이 많아 언어 소통에 애를 먹지 않아도 되는 밴쿠버 코키트럼으로 가기로 최종 결정하고, 사립학교나 공립학교나 학비가 비슷해 이왕이면 사립학교에 보내기로 했어요. 아이가 지낼 집은 비용만 비싼 기숙사 대신 제 집처럼 편하고 영어도 빨리 배울 수 있는 홈스테이로 정했고요.”
그는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를 혼자 유학 보내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그에 따르는 비용 또한 고민이었다고 한다. 학비와 보험료, 홈스테이 비용을 다 합산해보니 1년에 드는 비용이 2천만원을 훌쩍 넘었다. 거기다 여기 남아 있는 가족들의 생활비까지 보태니 만만찮은 돈이 들어가야 했다. 예산을 빡빡하게 짜긴 했지만 유학 가서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이것저것 사다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비용이 배로 불어났다.
“은기가 쓰던 책들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방에 싸줬어요. 보통 유학 갈 때 한국어로 된 책들은 버리고 가거나 짐이 된다고 가져가지 않는데 저는 참고서는 물론 다 푼 수학문제집도 박스에 차곡차곡 정리해 우체국에서 배편으로 부쳤어요. 배로 부치면 항공기보다 훨씬 저렴하기도 하고 은기가 당장 쓸 것이 아니니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어서요. 물론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만한 것들도 다 챙겨 보냈죠.”
프로급 운동실력 지녀 캐나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모으는 장남 은기
은기가 떠나고 6개월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는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살자’는 다부진 마음을 먹고 캐나다로 떠났다. 여섯 살 은비와 갓 태어난 은별이도 함께 했다. 그의 남편은 자기 일을 하던 사람이 캐나다에 가서 놀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 일 안 하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싫다면서 한국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 그는 은기를 보낼 때도 그랬지만 집에서 숟가락 하나까지 각자 쓰던 물건을 고스란히 챙겨 갔다. 나중에 캐나다에는 재래시장이 없어 값을 흥정할 수도 없고 물건을 살 때마다 세금이 붙는 걸 알고는 한국에서 쓰던 물건들을 가져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세 아이와 3년째 캐나다 머무는 이성미가 들려주는 ‘조기 유학 체험기’

이성미는 캐나다에서 오로지 은기, 은비, 은별 세 남매의 엄마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가 캐나다에 도착해서 보니 은기는 벌써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은기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은 건 운동 취미 덕분이었어요. 남자라면 운동 하나쯤은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 태권도, 테니스, 검도, 스키, 스케이트, 골프, 수영 등을 두루 가르쳤던 게 효과를 본 거죠. 어떤 운동이든 일단 한번 시작하면 제대로 배울 때까지 그만두지 못하게 한 터라 은기는 운동 실력이 프로급이거든요.”
은기는 영어 실력도 눈에 띄게 향상되어 있었다. 은기 덕분에 그는 집을 구할 때도, 세금 문제로 관공서에 전화할 때도, 쇼핑을 갈 때도,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정말 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석 달 정도 지나자 은기가 그를 대신해 통역해주는 것을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소파를 구입한 지 몇 주일 뒤에 하자를 발견했어요. 은기를 시켜 전화 서비스로 문의했지만 같은 말만 반복해서 답답하더라고요. 은기랑 직접 찾아가려는데 이 녀석이 바쁘다는 거예요. ‘네가 안 가면 어떻게 하니? 우리 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너밖에 없잖아!’ 하고 따졌더니 ‘그러면 엄마가 영어를 배우면 되잖아. 왜 영어 하나도 못해서 내 약속도 못 지키게 해’라며 버럭 짜증을 내지 뭐예요.”
그는 “‘이런 무시를 당하려고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이렇게 와 있나’ 싶어서 마음속으로 울었지만 한편으로는 캐나다에서 살려면 영어 공부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아이들의 영어 실력을 따라가려면 그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영어를 못해 따지기 좋아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대로 살 수 없는 것도 갑갑했던 터였다. 그는 다운타운에 있는 학원에 등록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최고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 살려주는 교육 방식이 좋아
둘째 은비(8)도 타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영어를 잘 못해 유치원에 가는 것을 꺼리고, “엄마, 나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하며 울기도 했다. 자다가 아빠가 보고 싶다면서 일어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여기가 더 좋은 곳이야” 하면서 은비를 달랬다고 한다. 하지만 감수성 예민한 은비는 좀처럼 나아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은비가 보이지 않아서 2층 은비 방에 가봤더니 하늘을 보며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한국 하늘아, 잘 있니? 나, 캐나다의 은비야. 난 잘 지내. 한국은 어때?’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착하고 마음 여린 은비에게 너무 무심했던 게 아닌가 싶어서요. 한국으로 다시 가야 하나 고민하면서 이틀 밤을 제대로 못 잤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 은비가 어느새 외국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푹 빠져서 신나게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는 거예요.”
그는 은비의 변화를 보며 아이들의 소소한 감정 변화로 인해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로 아이가 향수병을 겪는 듯하면 밖에서 지내는 시간을 늘려주거나 함께 여행을 떠나는 지혜도 생겼다.
외국에서 살아 좋은 점은 누구도 그가 어떤 옷을 입고 다니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 그도 한국에서는 공인이라 늘 옷 매무새에 신경을 썼지만 캐나다에서는 편안한 차림으로 다니고 자유롭게 행동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도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루는 후배 개그우먼 박미선이 전화를 걸어 “언니, 혹시 오늘 오후에 마켓 다녀왔어? 그것도 은비가 신을 만한 아이들 슬리퍼 질질 끌고?” 하고 물었다고 한다. 누군가 인터넷에 “이성미씨 슬리퍼 질질 끌고 마켓에 왔다”고 글을 올렸다는 것.

세 아이와 3년째 캐나다 머무는 이성미가 들려주는 ‘조기 유학 체험기’

누워 있는 엄마 이성미 옆에 앉아 디지털 카메라를 보고 있는 막내 은별이.


“외국에서 산다는 즐거움에 블라인드도 제대로 치지 않고 살았던 저 자신이 한심스러웠어요. 그곳은 캐나다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잖아요. 한국에서처럼 제가 돌아다는 게 모든 사람들의 눈에 들어가고, 말 한마디도 화젯거리가 되기는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이사할 집을 이곳저곳 다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캐나다에 집이 세 채나 있는 부자로 소문이 나 있어요. 일일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냥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하며 웃고 살죠.”
그는 캐나다에서 철저하게 엄마 이성미로 살고 있다. 한국생활에 미련을 갖게 될까봐 처음 몇 달간은 한국에서 하는 방송도 거의 보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넷에 접속을 해도 메일을 확인하고,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정도이지 방송국 홈페이지나 신문 등은 검색하지 않는다고.
그 덕분에 아이들은 캐나다에 잘 적응하고 있다. 그는 “요즘 들어 부쩍 공부에 관심이 많아진 은기는 학원을 더 다니거나 친구들과 따로 스터디를 하고 싶어 한다”고 귀띔했다. 은비는 발레와 암벽등반, 수영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 스케줄이 빡빡하다 보니 그는 하루 종일 운전만 하는 날도 있다고 한다. 말이 좋아 외국생활이지, 아이들 뒷바라지하러 온 엄마들은 자기 생활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보니 문득 맨발로 뛰어나가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이들이 공부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는 걸 보며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은비가 학교에서 ‘Helpful Hanna’라는 상장을 받아왔어요. 각 반의 아이들이 모두 하나씩 돌려받는 상이죠. 누구는 노래를 잘해서 받고, 누구는 말을 잘한다고 받는 그런 상이지만 우리 은비가 영어나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남을 돕고 배려하는 아이라는 게 더 대견스러웠어요.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면 저야 좋아하는 수다도 맘껏 떨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각자 개성을 살려주는 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는 거잖아요.”
세 아이와 3년째 캐나다 머무는 이성미가 들려주는 ‘조기 유학 체험기’

이성미는 남편과 떨어져 세 아이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지만 하루 하루 달라지는 아이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데 너무 소홀했다고 생각한 그는 요즘 아이들이 캐나다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있다. 집에서 영어 대신 한글을 가르치고, 음식도 한식 위주로 먹이는데도 막내 은별이가 한국에 대한 기억은커녕 아는 게 거의 없어 걱정하던 그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공연도 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한국 문화에 관한 공연을 기획해서 아이들에게 한국을 느낄 수 있게 해주려고 해요. 엄마들도 참여하게 할 거예요. 아이들이 희망을 갖고 엄마와 함께 스트레스도 풀 수 있도록 말이에요. 한국 유명 교육학자의 교육 강의나 태극기 그리기 대회 등 우리 문화는 물론 한국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해요.”
이성미는 지난 3년간의 캐나다 생활을 정리해 최근 ‘아들아, 너는 세상을 크게 살아라’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잘하고 있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여성동아 2005년 6월 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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