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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아름다운 얼굴

17년간 봉사활동 체험 담은 에세이 펴낸 정애리

“나눔을 통해 채워지는 건 오히려 저였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자료&사진제공·‘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랜덤하우스중앙)

입력 2005.06.08 18:04:00

지적이어서 얼핏 차가운 이미지를 주는 탤런트 정애리.
TV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그는 17년간 사랑의 봉사활동을 묵묵히 실천해온 마음 따뜻한 천사표 연예인이다. 89년 촬영차 들렀던 성로원 아기의 집을 시작으로 그가 그동안 봉사활동을 통해 얻은 감동을 들어보았다.
17년간 봉사활동 체험 담은 에세이 펴낸  정애리

월드비전, 연탄은행, 생명의 전화, 독거노인, 평화마을 등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북한 동포 돕기, 한국희귀난치성질환 연합회 연예인 자문위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있는 탤런트 정애리(45). 그가 지난 17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과 희망을 담은 에세이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를 펴냈다. 거기엔 체험에서 우러나온 절절한 음성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무르녹아 있다.
그가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89년 단막극 ‘드라마게임’에서 잃어버린 아기를 찾아다니는 엄마 역할을 맡아 촬영차 노량진에 있는 ‘아기의 집-성로원’을 방문하면서였다고 한다. 성로원은 신생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혹은 맡겨진 아이들 70여 명이 보호받고 있는 보육원이다.
“이제 막 말을 배운 사내아이가 그림자처럼 졸졸 제 뒤를 따라다니면서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안아달라고 할 때도, 밥을 먹여줄 때도 그 아이는 ‘엄마, 엄마’ 하며 불렀지요. 그 아이의 엄마가 아닌 것이 너무 미안해서, 너무 속상해서 저는 그 아이의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로.”
창문에 한 줄로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달려나와 인사하는 아이들, 느닷없이 품에 안기는 아이, 가지 말라고 양팔에 매달리는 아이들까지…. 그 아이들의 눈빛이 떠나지 않아 다시 찾은 이래 17년 동안 일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성로원에 가고 있다는 정애리는 이곳을 찾으며 비로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들여다보던 삶의 시선이 ‘사람’을 향해 열리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성로원에서 세상을 살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은 셈이다.

연기 때문에 찾은 보육원에서 세상을 살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 깨달아
17년간 봉사활동 체험 담은 에세이 펴낸  정애리

목숨을 걸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은 봉사활동밖에 없다고 믿는 그는 드라마 촬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봉사활동에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부리나케 밥을 푸기 위해, 아이들을 목욕시키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러 달려간다.
또한 ‘그룹 홈’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차가운 세상으로부터 보호받을 작은 울타리조차 없는 이웃들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만들어 함께 살고 싶었던 그는 흑석동 꼭대기 이층집에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의미의 ‘하래의 집’을 열었다. 그곳에서 그는 두 분의 할머니,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착한 아이 은진이, 그리고 그 가족을 돌봐줄 맘씨 좋은 진호씨와 그의 아내 정희씨 부부 등과 함께 새로운 가족의 연을 맺고 살고 있다.
“한집에 모여 사니 저절로 식구가 되었습니다. 한집에서 자고, 한상에서 밥을 먹으며 점점 도란도란해졌습니다. 외롭고 배고팠던 기억들은 탈탈 털어서 깊숙이 개어놓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해 어깨를 내어주고 등을 빌려줍니다.”
그는 에세이에서 ‘밥이란 게 참 묘하고 질긴 정’이라는 독백을 한다. 한상에서 한솥밥을 먹다 보면 쌓인 밥그릇 수만큼 정이 깊어지고 한 가지 맛의 양념으로 버무려져 너와 내가 똑같은 맛으로 물들어 한식구가 된다고.
그가 펼치는 봉사활동의 무대는 국내뿐이 아니다. 월드비전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원조의 손길이 필요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는데, 작년에는 몽골을 찾았다. 지구촌의 기아를 돕기 위한 운동의 일환에서 비롯된 방문이었다.
몽골에서 마땅히 누울 자리도 변변치 않은 맨홀 속에서 열댓 명의 아이들이 내 집인 것처럼 서로 등을 기댄 채 살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을 때 그의 눈에서는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 습기, 그 캄캄함…. 결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처참한 것은 그곳의 아이들 모두가 먹을 것만 있다면 맨홀에서 사는 일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그런 참혹한 현실을 보며 그는 더욱 가슴이 타들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애리는 에세이를 통해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며 ‘사람’을 보면 ‘사랑’이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17년간 봉사활동 체험 담은 에세이 펴낸  정애리

정애리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시간을 쪼개 달려간다.


78년 KBS 탤런트 공채로 데뷔한 정애리는 85년 MBC 주말연속극 ‘사랑과 진실’까지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장안에 화제를 몰고온 ‘사랑과 진실’이 끝난 지 두 달도 채 안되었을 때 돌연 결혼을 발표하고, 결혼한 지 3일 만에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갔다.
인기 절정기에 결혼과 함께 TV에서 사라진 그가 아쉬워 세상은 그녀를 ‘바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그는 그 선택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88년 미국에서 돌아와 방송에 복귀한 그는 90년 드라마 ‘배반의 장미’로 옛 인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방송가에는 그의 불화설이 나돌았다. 이에 대해 봉사활동에 전념하며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는 지난 5월18일 방송된 MBC ‘내 인생의 사과나무’에 출연해 김성주 아나운서의 멘트를 빌려 처음으로 불화설의 진상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날 방송에서 김성주 아나운서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퍼즐 한 조각은 남편과의 결혼생활이었다”며 “한때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 눈물과 기도로 고민했던 문제를 이제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녀가 겪은 어려움의 시간을 짤막하게 말해주었다.
정애리는 이번에 펴낸 에세이의 후미에 이보다 조금 길게 갈등과 별거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남편과 헤어져 사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서로에게 닿아 있는 믿음이 조금씩 변해서였을 것이다. 변했다, 라는 말이 얼마나 깊은 슬픔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되었다. 그도 나도… 사소한 상처가 쌓여 깊어져갔다고 말하면 맞을까, 내 상처가 깊어져서 당신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고 말하면.”
그는 “처음에는 미웠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서서히 사랑이 떠난 자리를 아프지 않은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며 “이제는 하나도 밉지 않은 마음으로 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애리는 결혼 8년 만에 얻은 외동딸 지현(13)이와 산다. 그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봉사를 시작한 딸아이가 이젠 나 이상으로 봉사를 몸으로 실천하며 산다”고 대견해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성로원 아이들과 엄마를 나눠 갖고, 돌잔치도 같이 해서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입양문제와 위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 그에게 동생을 입양을 하자고 조를 정도라고.

든든한 버팀목이자 영원한 동반자인 딸 지현이
“딸아이가 항상 잠이 모자란 바쁜 엄마를 위해 쿠션도 챙겨주고, 틈나는 대로 문자를 보낸다”는 그는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론 엄마 같은 존재이고 든든한 버팀목이자 영원한 동반자”라며 지현이에 대해 무한한 신뢰감을 표현한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어른들의 상처를 보듬어준 어린 딸아이의 마음이다. 글쓰기를 마친 후 아이와 앉아 아빠 얘기를 나눴다. 남편과의 일을 고백하자고 마음먹은 일이 혹시라도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나의 염려는 그 한 가지였으니까. 떨어져 지내는 아빠의 이야기를 책 속에 담으려 한다는 말을 들은 아이는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날 딸아이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는 그는 “대화 끝에 엄마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자신도 그것을 옳은 일이라 믿겠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미안함과 고마움에 손을 꼭 잡고 “엄마는 아빠가 밉지 않다”고 말해주었다고.
17년간 봉사활동 체험 담은 에세이 펴낸  정애리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나눔이란 또 하나의 ‘중독’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정애리는 에세이의 인세 수익을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한번 시작하면 도무지 발을 뺄 수 없고 점점 더 큰 실천을 향해 가게 되는 것, 그것이 나눔의 힘이라고 믿는 그는 독자들에게 특별히 2만원의 사치를 진지하게 권고했다. 커피 몇 잔 마실 돈을 아껴서 내놓은 2만원은 밥을 굶는 아이의 도시락이 되기도 하고 아픈 사람의 약이 되어 쓰이기도 하고 추워서 떨고 있는 독거노인을 위해 따뜻한 연탄이 되어 지펴지기도 한다는 것.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사치나 허영보다 아름다운 것이 봉사의 허영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그는 돈 2만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 2만원의 돈을 내고 뿌듯해하면서 생색을 낼 수 있는 것이 ‘돕는 일’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여성동아 2005년 6월 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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