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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신세계 회장 프라이버시 첫 공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알려지지 않은 나의 일상, 사업가로서의 야망까지…”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제공·신세계 사보

입력 2005.05.31 16:20:00

IMF 외환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할 때 오히려 ‘이마트 신화’를 창조하며 재계의 주목을 받았던 신세계 이명희 회장. 그동안 언론에 한 번도 노출되지 않았던 그가 처음으로 아버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에 대한 추억과 신세계 경영 뒷얘기, 건강관리와 자녀 교육법 등 개인사를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 프라이버시 첫 공개

신세계 이명희 회장(62)은 여성으로선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다. 온라인 경제매거진 ‘에퀴터블’이 발표한 ‘2004년 한국의 100대 주식부자’에 따르면 그가 보유한 주식 가치만 9천1백억원으로 여성들 중에서는 부동의 1위이고, 남녀를 통틀어도 삼성 이건희·이재용 부자,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롯데 신동빈·신동주 형제에 이어 여섯 번째다.
하지만 이 회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결혼 후 10년 넘게 전업주부로 지내다 뒤늦게 경영에 뛰어들어 중소기업에 불과하던 신세계를 국내 굴지의 유통전문그룹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한 그는 67년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정재은 조선호텔 명예회장(66)과 결혼한 후 줄곧 집에서 살림하며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37),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33) 남매를 키워왔다. 그러다 79년 마흔 가까운 나이에 아버지 고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의 부름을 받고 신세계 이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87년 이병철 명예회장이 타계한 후 신세계를 물려받은 그는 92년 신세계를 삼성그룹에서 내용적으로 분리한 데 이어 97년엔 법적으로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98년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당시 1만5천원대였던 신세계 주가를 7년 만에 32만원대(2005년 5월 현재)로 20배 이상 끌어올렸다.
삼성가 사람들이 그렇듯 이 회장도 인터뷰는 고사하고 언론에 노출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갖고 있는 그의 자료사진이 증명사진 한 장밖에 없을 정도.
그런 그가 최근 한 일간지 인터뷰와 신세계 사보 특별기고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자신이 신세계를 이끌게 된 사연, 건강관리와 자녀교육 등 개인사를 처음으로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사보에서 이 회장은 고 이병철 명예회장에 대해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차갑고 냉정한 경영자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따뜻하고 인자한 분이었다. 막내딸인 내게는 큰 칭찬이나 꾸지람 없이 항상 정을 주셨다”고 회상했다. “살아 계시는 동안 아침저녁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거의 매일 어디든 동행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할 정도.
“그때 아버지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뭐하노’였어요. 이 말은 경상도 사투리였지만 제게는 ‘어서 오라’고 하시는 가장 부드러운 말씀이었죠. 이처럼 아버지는 당신의 성격처럼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함축적이고 간결했어요. 손님을 만날 때 저를 늘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르치셨죠.”
“아버지와 체질, 성격, 생김새, 취향, 편식하는 습관까지 닮아”
그는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남편이 삼성전자 사장으로 있을 때 아버지를 모시고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남편이 “있다가 아버지를 모시고 공장에 왔을 때 나랑 눈이 마주치면 아버지 몰래 윙크하라”는 짓궂은 요구를 했었다고. 이것을 공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버지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했는데 공장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헬기가 이륙하자마자 “했나?” 하고 물어보더라는 것.
또한 가슴 아픈 기억도 털어놓았다. 이 명예회장이 76년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 어느 누구도 위로의 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정도로 집안 분위기가 무거웠다고 한다. 그만이 아버지 곁에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고. 그러자 이 명예회장은 철없이 우는 막내딸에게 그간 자신이 조사한 수술 의사의 경력에서부터 위암 완치사례, 치료계획 등의 자료를 보여주며 오히려 딸을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 프라이버시 첫 공개

아버지 고 이병철 삼성 명예회장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이명희 회장. 이명희 회장은 형제들 중에서도 아버지와 가장 가까웠다고 회상한다.


“아버지가 도쿄에서 수술을 받을 때 제가 동행했어요. 수술이 끝나고 난 후 아버지께 수술실에 들어갈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니가…’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시더라고요. 저도 그만 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만 흘렸어요.”
이 회장은 이 명예회장에 대해 “주위에서는 냉철하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아버지에겐 섬세하고 여성적인 면도 있다”고 평했다. 화려한 넥타이와 핑크색 와이셔츠 입기를 즐겼다는 것. 그래서 핑크색 단추를 달아 화려한 와이셔츠를 만들어 드렸고, 아버지가 쓰는 초라한 만년필에 조그만 액세서리라도 붙여드리려고 애썼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길을 가다 아버지가 즐겨 맸을 법한 화려한 넥타이를 보면 저도 모르게 멈춰 서서 옛 생각에 잠기곤 해요.”
그는 자신이 이 명예회장의 체질, 성격, 취향, 생김새, 좋아하는 음식, 편식하는 습관까지 참 많이 닮았다고 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에 파고드는 성격도 똑같아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둘이 일주일 동안 그것만 먹은 적도 있다고. 또한 이 명예회장은 지독한 메모광이었는데 자신도 아버지와 함께 다니며 자연스럽게 그 습관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스트레스까지 즐겼던 아버지와 달리 자신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망가는 편이었다고.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모범을 보였고, 그런 아버지를 보며 우리 형제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는 그는 이 명예회장의 가정교육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어른 앞에서 자식을 안고 어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어요. 항상 엄하게 교육시키고 어릴 때부터 예의범절을 지키도록 하셨죠. 성공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부심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자부심은 나쁘지 않지만 그것을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은 자만심입니다. 자부심을 숨기는 것이 겸손이며, 이것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은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 본능을 조절하고 상황에 맞도록 자신을 절제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이 저의 교육방법이에요. 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며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죠. 저는 제 아이들이 똑똑하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알고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기 바랍니다.”
1년에 두 번 외국 나가 새로운 감각 익혀
학창시절의 꿈이기도 한 현모양처로 살고 있던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아버지 전 못합니더’ 했죠. 자꾸 뒤로 빼니까 나중엔 화를 내셨어요. 당시 아버지의 지론은 여자도 가정에 안주하지 말고 남자 못지않게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고 스스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버지의 강요로 저는 현모양처의 꿈을 접고 신세계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보시기에 제가 분석하는 걸 좋아하고, 변화무쌍한 것, 새로운 것을 좋아하니까 백화점 사업을 맡기신 것 같아요.”
그가 아버지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배운 것은 역시 사람경영.
“출근 전날 아버지가 저를 불러 하신 말씀이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사인을 하지 말라는 것은 책임을 피하라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맡겼으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대신 믿지 못할 사람은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었죠. 저는 이 말씀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어요.”

이명희 신세계 회장 프라이버시 첫 공개

이명희 회장은 형제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 안정되게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아버지의 철저한 자식교육 덕분이라고 말했다(오른쪽 사진은 왼쪽부터 장녀 한솔 이인희 고문, 삼성 이건희 회장, 고 이병철 삼성 명예회장, 이명희 회장).


그는 최고경영자가 되어서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의 경영방침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을 선임하는 데 주력했다고.
“오너가 항상 자리에 지키고 앉아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해서 기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굴러가고 진화할 수 있는 체계화된 조직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전문경영인들로부터 브리핑을 듣다 ‘이게 아니다’ 싶을 때만 나선다고 한다. 신세계 그룹 관계자도 “이 회장은 그룹의 경영에 직접 나서지 않으며 전문경영인들에게 그룹의 구도 및 본인의 소신 등을 자주 얘기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감성과 덕의 경영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느꼈다고 했다.
“기업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정말 반해서 미치도록 따르는 사람 없이는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남이 자기에게 반하게 하려면 자기가 먼저 사람에게 반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반하려면 따뜻한 인간미가 전제되어야 하고요. 또한 남이 자기에게 반하려면 인간적 매력도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매력이 없다면 아랫사람으로부터 존경과 더불어 사랑을 받을 수 없어요.”
이 회장은 신세계를 삼성그룹에서 분리하게 된 사연도 소개했다.
“삼성그룹에 함께 있는 동안은 신세계가 발전할 수 없었어요. 삼성의 지원은 대부분 전자나 반도체에만 집중됐죠. 그래서 오빠(이건희 회장)에게 ‘나 분리할래요’라고 말했어요. 분리할 당시 신세계는 백화점 한두 개와 조선호텔 정도였죠. 지금 이처럼 성장한 데는 국제 감각이 바탕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도 1년에 두 번 정도 유럽과 뉴욕을 다녀온다고 한다. 1년 이상 해외에 다녀오지 않으면 패션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는 외국에서 완전히 바뀌어 돌아옵니다. 미국에 가면 건축에 빠지고, 미술 감각도 달라집니다. 좋은 것을 발견하면 반드시 사진을 찍어요. 그 물건이 몇 달 뒤엔 제품으로 개발돼 제 앞에 있어야 해요. 추구하지 않고 감동받지 않는 삶은 재미가 없어요.”
그가 오늘의 신세계를 만들게 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사랑했던 아버지의 부재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깊은 시름에 빠져 방황하던 그는 방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창고형 할인점 프라이스클럽과 월마트를 보게 된 것.
“당시 신세계는 중소기업 규모에 불과해 신규 사업을 하기에는 자금과 능력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그걸 보니까 적은 투자로 가능하겠더라고요.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에서도 할인점을 해보자고 제안했죠.”
이마트는 이렇게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신세계는 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후 프라이스클럽과 제휴하여 노하우를 습득하였고 백화점 경영을 통해 얻은 한국 유통 트렌드를 분석하여 한국에 맞는 새로운 할인점을 개발했다. 그렇게 해서 93년 서울 도봉구 창동에 처음으로 테스트 점포를 열었다. IMF 외환위기 때는 프라이스클럽과 카드 부문을 매각하고 여기서 생긴 자금을 이마트에 집중 투자했다. 이것이 오늘날 신세계가 급성장하는 중심 기둥이 되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 프라이버시 첫 공개

이명희 회장은 중국에까지 진출한 이마트를 세계 최고의 할인점브랜드로 만들겠다고 한다. 사진은 중국에 세워진 이마트.


그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오전 9시쯤 일어나 제일 먼저 신문을 보면서 기고문, 경제·교육 분야 기사 등을 오려서 원본은 따로 스크랩하고 복사한 종이는 메모장에 붙여요. 식사 후에는 책을 보는데, 요즘은 책을 보면 어깨가 아파서 다른 사람 보고 읽어달라고 해요. 하지만 하워드 가드너가 쓴 ‘창조적 마인드’(Creating Mind)같이 아주 좋은 책은 직접 읽어요. 밤에는 TV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요.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리는데, 대학 들어갈 때는 그림을 입학하기 위한 ‘무기’로 배웠지만 지금은 즐겨요. 앞으로 한문글씨도 배우고 싶고 펜글씨도 익히고 싶어요.”
“나이가 들면서 자꾸 살이 찌는 것 같아 건강관리를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는 그는 한번 결심한 것을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는 것 같아 이것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달려든 결과 1년 동안 8kg을 뺐다고 한다. 그의 다이어트 방법은 간단했다. 식사는 하루에 두 끼만 먹는데, 특히 저녁은 샐러드를 먹고 오후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골프와 남산 걷는 운동을 즐긴다고 했다.
“남산에 운동하러 갈 때 오빠 이건희 회장을 만나요. 오빠가 가끔 집으로 오라고도 합니다. 집안 문제 가지고 의논하죠. 가족끼리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할 때 말이죠. 홍 관장(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하고도 친하게 지내요. 서로 나이도 비슷하고, 자식들 나이도 비슷하니까요. 판단 기준도 비슷해요.”
한편 올 1월 발간된 신세계 사보를 통해 “오는 8월 대대적인 공사를 마치고 다시 오픈할 예정인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우리의 자존심이며 얼굴이자 상징”이라며 “올해는 백화점 오픈을 계기로 신세계가 재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 그는 신세계그룹의 미래에 대한 원대한 꿈을 펼쳐보이기도 했다.
“이마트를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 겁니다. 또한 2012년까지 백화점 9개, 이마트 1백30개, 그리고 중국에도 25개 이상의 이마트를 만들 예정입니다. 사업영역도 현재의 백화점과 할인점 사업뿐 아니라 쇼핑센터, 인터넷쇼핑, 아울렛 등 다양화할 거고요. 그래서 2013년에는 신세계를 매출 규모 33조원의 세계 10대 유통그룹으로 올려세울 겁니다.”
이를 위해 그는 신세계 직원들에게 “고 이병철 삼성회장은 성공한 일은 다시 돌아보지 않았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았다. 이를 위해 직원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새로운 것을 찾지 않으면 언제나 허전하고 부족하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며 그런 마음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아버지처럼 되는 게 제 꿈”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명희 회장은 지금 또 하나의 이병철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성동아 2005년 6월 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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