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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권말부록|명문대 합격 노트②

미국 11개 명문대 합격, 프린스턴대 진학하는 곽지용

“2주일에 1권씩 읽어야 하는 필독도서는 물론 참고도서까지 원서로 꼼꼼하게 읽었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김미희‘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05. 13

지난 2월 민족사관고를 졸업한 곽지용군은 최근 프린스턴 컬럼비아 코넬 등 미국 11개 명문대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중학교 3학년 여름부터 단기간에 폭발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민족사관고 진학에 성공했던 그는 내로라하는 미국 11개 명문대에 합격해 또 한번 주위를 놀라게 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능력이 200% 발휘된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보았다.

미국 11개 명문대 합격, 프린스턴대 진학하는 곽지용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 대한 기본 생각 두 가지. ‘공부 외에는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는다’와 ‘쭉 공부를 잘해왔을 것이다’. 프린스턴, 칼텍, 컬럼비아, 코넬, 듀크 등 11개 대학에 합격한 곽지용군(19)은 이 두 가지 생각이 다 편견임을 보여주는 케이스다. 그에게 공부는 선택이요, 의지요, 재미라고 한다.
“교환교수로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때 2년, 중학교 때 1년 반 정도 미국에서 살다 왔어요. 엄마가 비행기 안에서 알파벳을 가르쳐주신 게 영어 공부의 시작이었죠. 미국은 중학교도 수업이 오후 2~3시면 끝나는데 공부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을 때라 시간 나는 대로 놀았어요. 그래도 나중에 대학은 미국에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했죠.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미국 동부지역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여행했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 학교들이 좋아 보이더라고요.”
아무 걱정 없이 미국 아이들과 뛰어놀다 중학교 3학년 여름 귀국한 그는 맞닥뜨린 국내 현실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또래 중학생들이 이미 대학 진학을 위해 치열하게 선행학습을 하고 있었던 것. 막연히 미국 유학을 꿈꿨던 그는 서둘러 준비하지 않으면 꿈이 좌절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고 한다.
마음만 초조할 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그에게 한줄기 희망이 되어준 건 두 권의 책이다. ‘민사고 천재들은 하버드가 꿈이 아니다’와 민족사관고 초기 졸업생 네 명이 쓴 ‘내 공부는 내가 한다’가 그것. 두 권의 책을 통해 유학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비로소 보이는 듯했다는 그는 민족사관고 국제반 진학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민족사관고가 수재들만 들어가는 학교로 명성이 자자하기에 과연 입학할 수 있을지, 설사 입학한다 해도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지레 겁먹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중학시절의 절반가량을 미국에서 보낸 그는 일단 중학교 3학년 과정을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점에 있는 문제집이란 문제집은 거의 다 사서 몇 번씩 반복해 풀었다고 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책상 앞에 10분 이상 앉아 있지 못하고 수시로 들락거리며 물 마시고, 화장실 다녀오기 바빴다는 그는 ‘뒤처지는 공부를 따라잡으려면 생활습관부터 바꿔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자 집중력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고.
다행히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미국에서 생활한 덕분에 영어의 기본은 잡혀 있던 터라 미국에서 본 토플 점수와 영어 에세이로 서류 전형을 통과할 수 있었다. 창의력 테스트 등 몇 개의 관문도 무사히 통과한 그는 마침내 2002년 민족사관고에 입학했다.
민족사관고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벽까지 손전등 켜가며 공부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에게는 커다란 시련이 코앞에 버티고 있었다.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국제반 친구들의 실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던 것. 1년 안에 그들 수준에 맞추지 않으면 유학의 꿈은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고 한다.
그의 ‘민족사관고 적응기’는 고군분투에 가깝다. 오랜 기간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아이들에 비해 영어 실력이 부족했던 그는 수업 자체가 험난한 산을 오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영어 원서로 수업을 하는 터라 내용을 알든 모르든 무조건 읽어야 했는데 시간상 모르는 단어를 일일이 사전으로 찾아볼 수 없어 무조건 읽으면서 이해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또 학교에서 매주 3백50개 이상의 단어 시험을 보는데 처음엔 단어를 쓰면서 외우다가 도저히 시간이 안돼서 눈으로 보며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미국 11개 명문대 합격, 프린스턴대 진학하는 곽지용

프린스턴대 이공계열에 진학 예정인 곽지용군은 생명공학기업을 세워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한다.


“1학년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거든요. 1학년 때는 시간이 아까워 동아리 활동도 안 했어요. 새벽 2시면 기숙사 전체에 불이 꺼지는데 손전등으로 불을 밝혀가며 공부한 적도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2박3일 동안 집에서 지낼 수 있는데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까지 책을 펴고 공부했고요. 집에서도 몇 시간씩 한자리에 눌러앉아 공부하는 저를 보고 엄마가 놀라실 정도였죠. 그렇게 한 덕분에 1학년 말에는 반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 됐어요.”
처음엔 도대체 이해가 안되고, 황당하기만 했던 수업이 1년여 만에 알아듣기 쉬워지고, 과제에 대한 부담도 줄었다고 한다.
“민족사관고에서는 1학년부터 찰스 디킨스나 셰익스피어, 존 그리샴 같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원서로 읽게 해요. 2주일에 1권씩 읽어야 하니 엄청난 부담이죠. 안 읽을 수는 없고, 이왕 하는 거 확실히 끝장을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참고하라고 일러준 원서까지 다 챙겨 읽고 수업에 임했죠. 남보다 앞서가려면 남보다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넓고 깊게 공부하는 게 제 방식이에요. 그렇게 하면 처음엔 지지부진한 것 같아도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거든요.”
‘공부할 때는 절대로 요령을 피워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공부 철학. 그는 책을 읽을 때도 앞뒤 표지는 물론 목차와 서문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읽는다고 한다. 잠을 줄여 공부해야 할 때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뿌린 만큼 거둘 때의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짜릿하다고.
성적이 안정권에 들자 그는 과외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초등학교 6학년 때 1품까지 땄던 태권도를 다시 시작했다. 다른 운동은 하지 않고 태권도만 집중적으로 한 결과 태권도 3단을 따고 2학년 때는 태권도부 주장, 3학년 때는 태권도부 보조교사로 활동하게 됐다. 그는 태권도를 통해 체력뿐 아니라 리더십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한다. 2003년 강원도지사기 태권도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부원들을 연습시켰던 그는 시험기간에도 연습을 줄이지 않아 부원들의 원성을 샀으나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며 논리적으로 설득해 밀어붙인 결과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공계열 진학해 노벨상 타고 싶어
‘한다면 한다, 아니 더 잘하고 만다’는 그의 신조는 민족사관고 영자 신문 ‘민족헤럴드’의 편집장을 맡았을 때도 진가를 발휘했다. 디자인팀과 편집팀을 나누고 사설팀을 분리시키는 등 스태프들이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것. 팀원의 사기가 진작돼 신문의 질이 높아졌고 3백~4백 부였던 발행부수를 1천 부까지 늘리는 성과로 이어졌다. 문화일보와 교육부가 주최하는 미디어 콘테스트에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국 11개 명문대 합격, 프린스턴대 진학하는 곽지용

부모와 함께 미국 여행을 했을 때의 모습. 곽지용군은 앞으로 ‘겸손하지만 당당하라’는 부모의 가르침대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봉사활동에도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학교에서 권하는 자원봉사에도 열심히 참여했지만 그는 집 근처 장애아동보호시설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매우 보람됐다고 한다.
“영섭이란 아이가 있어요. 일곱 살쯤 됐는데 정신지체에다 시력도 잃어서 늘 침대에 누워만 있더라고요. 침대에서 내려오면 여기저기 부딪쳐서 온몸에 멍이 드니까요. 처음엔 제가 말을 걸어도 웃지 않고 차갑게 대했어요. 그 아이의 마음을 열어주고 싶어 하루는 침대에서 내려놓고 손바닥을 마주 대고 감촉을 느끼게 해줬어요. 매번 새로운 음악 CD를 가져가 들려주기도 하고요. 방학 때 한동안 못 갔다가 오랜만에 찾아갔더니 영섭이가 예전처럼 침대에만 있지 않고 혼자 나와 있더라고요. 그곳 선생님 말씀이 이젠 웃기도 잘하고 뭐든 적극적으로 하려고 한대요. 정말 감격스러웠죠(웃음).”

미국 11개 명문대 합격, 프린스턴대 진학하는 곽지용

어른스럽게 “진실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진정한 봉사”라고 말하는 그이지만 엉뚱하고 별난 구석도 있다. 친구들이 ‘엽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독특한 취미는 운동화 쇼핑. 인터넷으로 새로 나온 운동화 정보를 검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본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운동화 마크를 따라 그리거나 운동화 디자인을 직접 해보기도 한다는 그는 첨단 기술이 집약된 운동화들을 보면 저절로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언젠가 기능성 운동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소망도 있다고 한다.
운동화의 기능만큼이나 그의 꿈도 기발하고 빠르게 진화해왔다. 어릴 적 그의 장래 희망은 쓰레기수거차량 기사. 쓰레기수거차 모양이 독특해서 꼭 운전해보고 싶었다고.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는 마라톤 선수가 되고 싶었고, 외교관이 멋있어 보인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연구해볼까 생각 중이지만 아직 결심을 굳히지는 못한 상태. 그러나 확실한 건 일단 이공계열로 진학한 뒤에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 노벨상을 탈 만큼의 성과를 올리겠다는 각오다. 그는 야무진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을 프린스턴대에 내딛기로 결정했다.
“미국 서부 쪽은 연중 날씨가 따뜻해서 공부가 안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프린스턴대는 아이비리그 중에서 학부 중심의 인재 양성을 하는 곳으로 명성이 높아요. 인구 1만 명 정도의 소도시에 대학이 하나의 타운을 형성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그는 아직 전공을 결정하지 못했지만 노벨상을 탄 이후의 계획은 구체적으로 세워뒀다. 노벨상을 탄 다음 생명공학기업을 세워 돈을 벌 생각이라고. 그는 많은 돈을 벌어 사회에 환원한 뒤 대학교수가 되어 후진 양성에 힘쓰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나아가 과학기술부 장관 같은 과학기술 분야의 지도자가 되어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을 집요하게 추진해 한걸음씩 꿈을 향해 다가서는 곽지용군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미국에서도 ‘겸손하지만 당당하라’는 부모의 가르침대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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